[고죠유지]고백과 동거(3)

거기서거기 by 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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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회전 2차 BL 고죠사토루X이타도리 유지 

-대학생/동거AU

(*) 제 개인적인 캐해에 의한 날조가 상당히 많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포타 재업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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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도리는 깨고나서 한참동안 멍한 표정으로 제 앞에 있는 잘생긴 얼굴을 보았다. 얼굴만 잘났다고 듣기만 실컷 들었지 이렇게 가까이서 고죠의 얼굴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왜 고죠가 맨얼굴로 제 앞에 있는 건지 의문을 갖기보다는 정신없이 구경했다. 조각상으로 만든 것 같은 완벽한 이목구비와 보기만해도 눈이 행복해지는 화사한 얼굴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평온하게 잠들어있는 고죠는 천사가 잠든 것처럼 아름다웠다. 이타도리는 왜 다들 고죠 사토루를 보고 얼굴이 아깝다고 매번 우는 소리를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잘생겼네."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데 하얗고 긴 속눈썹이 파르르 움직였다. 눈꺼풀이 열리며 푸른 눈동자가 드러나자 고작 눈을 뜬 것 뿐인데도, 마치 저주에 걸린 공주님이 깨어난 것과 같은 감동이 울려왔다. 만약 이런 장면을 본다면 너나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반해 버릴 것이다. 고죠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그가 뭘 하든 이해해버리겠지.

고죠 사토루의 성격상 그런 걸 반길 리가 없다. 그는 철저히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지 남이 달라붙는 건 질색으로 여긴다. 머리가 그토록 똑똑한 사내가 왜 우스꽝스러운 꼴에 답답할 정도로 칙칙한 패션만 고수하는지 이타도리는 깨달음을 얻으며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심장도 쿵쾅거리며 뛰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저 안에 있는 건 자기밖에 모르는 철부지 도련님에, 제멋대로인데다가 오만한 선배라는 걸 똑똑히 알면서도 마음이 설레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선배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무섭도다. 고죠 사토루. 

이타도리는 심장을 붙잡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사이 잠이 깨질 않아 인상을 구기고 찌풀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죠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며 이불 속에서 제 팔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그 아래 옷 하나 입지 않은 순백의 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타도리는 대번에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이 휘둥그레 뜨여졌지만 고죠는 별반 신경쓰지 않으며 부스스한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너, 엄청 일찍 일어나네."

포즈만 놓고 보면 무슨 섹시남친 컨셉으로 침대에서 일어난 모델이 나온 패션 잡지 사진 같았다. 이타도리는 괜히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어버버, 하고 굳은 채로 입을 움직이다가 고죠를 향해 "에? 네?" 하고 멍청한 대꾸만 반복했다. 고죠는 이타도리를 보더니 중얼거렸다.

"...잠이 덜 깼나."

고죠는 흐아아, 하고 하품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히 팬티는 입고 있었다. 그렇지만 착 달라붙는 복서팬티로는 그의 엉덩이라인이 여실하게 드러났으며 뿐만 아니라 근육질의 허벅지와 매끈하게 뻗은 맨 다리도 훤히 보였다. 이타도리는 침만 꼴깍 삼키고 있다가 고죠의 모습이 문 밖으로 사라진 후에야 다시 힘없이 이불 위로 쓰러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이타도리는 눈을 껌뻑껌뻑하고 내리 떴다감으며 천장을 보았다. 그가 사는 좁은 원룸 천장과 달리 목조로 덧대어진 천장에는 조명등 대신 커다란 실링팬이 달려 있었고, 벽면 사이 사이로 숨겨진 조명이 은은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전등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빛이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방 풍경을 보던 이타도리는 엄청나게 부드럽고 푹신한 이불을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으로 고죠의 모습을 되내이다가 돌연 이불을 걷어냈다. 그리고 고죠와 다르지 않는 알몸 차림의 자신의 몸을 보고 숨을 삼켰다.

"으아아!"

비명이 절로 나왔다. 이타도리는 물 밖으로 나온 생선처럼 날뛰며 일어섰다. 다행히도 고죠처럼 팬티 한 장은 입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자신의 팬티가 아니라 생전 처음보는 복서팬티였다. 고죠가 입고 있던, 검은색에, 브랜드 로고가 박혀 있는 팬티. 마트에서 4장에 만 원으로 구입한 트렁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이게 도대체..."

이타도리는 기겁하며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 순간 머리가 찡, 하고 지끈거렸고 속이 울렁거렸다. 제 몸에서 나는 알콜 냄새가 고약했다. 으으,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이타도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고죠 선배랑 같이 밥을 먹었던 것까지는 떠올랐다. 대학 이야기를 하다가 술이 나왔고...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었다. 

이타도리는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제 아래를 내려보았다. 아냐. 우연히 사고가 생겨서 벗은 걸지도 몰라. 아무리 그래도 고죠 선배와 자신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있나. 고죠의 팬티차림을 봐도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타도리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다가 다시 머리가 아파와서 끙, 하고 앓으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다 문을 열고 돌아온 고죠와 눈이 마주쳤다.

"이타도리. 뭐하냐."

다행히도 고죠는 방금 전처럼 팬티차림은 아니었다. 다만 위에 샤워가운을 입고 돌아왔는데 어쩐지 팬티 차림일 때만큼이나 묘하게 색기가 흘러나왔다. 이타도리는 뒤로 은근슬쩍 몸을 빼면서 어색하게 답했다.

"다, 다리가 풀려서요."

건강하면 이타도리 였다. 어딜가든 몸 하나 튼튼한 게 유일한 자랑인 그의 대답에 고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타도리는 속으로 식은땀이 흘렀지만 떠오르는 변명도 없어서 "지금 일어나려고요." 하며 침대를 짚고 섰다. 그러자 머리가 징징징, 하고 찌를 듯한 두통이 연이어 올라왔다. 다시 힘없이 침대에 풀석 쓰러지자 고죠는 혀를 끌끌 차며 양손에 들고 있던 컵 중 하나를 내밀었다.

"마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였다. 받아들자 입 안에 달달한 맛이 퍼졌다. 꿀물차였다.

"어제 너무 마셔서 좀 힘들거다."

한 마디로 숙취라는 소리였다. 이타도리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단한 탓에 어물어물 감사인사를 하며 차를 들이켰다. 고죠는 이타도리가 차를 마시는 내내 그의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묘한 침묵 속에서 이타도리는 고죠의 분위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혹시 어제 밤에 진짜로 뭔 일을 한 걸까. 아니다. 그저 가리고 있던 눈이 보이니 느낌이 새로운 것일 뿐이다. 그런 것임에 틀림 없었다. 

"차가 맛있네요."

이타도리는 애써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고죠는 "응" 이나 "그래?" 같은 기대하던 대답이 아닌 직구를 날렸다.

"너 어제 일 어디까지 기억해?"

"푸우우웁!"

이타도리는 마시던 차를 내뱉었다.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고죠에게 뜨거운 차를 뒤집어 씌우진 않았지만 이불은 엉망이 된 후였다. 으아아. 이타도리는 "이게, 그러니까..."하고 허둥지둥 거렸다. 고죠는 한쪽 눈썹을 올리고는 이불을 옆으로 치웠다.

"빨래 돌리면 돼."

그렇게 말하고는 고죠는 이타도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타도리는 묵직한 압박감 속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건 일단 제가 잘못했어요!"

이타도리는 고죠에게 한 대 맞을 각오를 다지고서 외쳤다. 제발 고죠가 자신을 용서해주길 바라면서. 그러나 정작 고죠는 이타도리의 말을 듣고 "하아?" 하고 기막힌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게 왜 사과할 일이야? 너 진짜 바보냐?"

"아니 그치만..."

"취했으니까 기억 못할 수도 있는 거지. 그냥 기억 하나 못하나 물어본 것 뿐이었어. 일일이 과민반응하지 않아도 돼."

이타도리가 어벙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고죠는 그 턱 끝에 손가락을 대었다. 그리고 위로 쭈욱 올렸다. 고개 숙이고 있을 필요 없다는 듯이. 이타도리는 그를 따라 고개를 들며 눈을 깜빡였다. 그, 그럼 자기가 생각하는 그런 큰 일이 있었던 건 아닌 걸까. 이타도리는 고죠의 눈치를 살폈다. 두 눈동자가 드러나서 인지 고죠의 표정은 전보다 훨씬 쉽게 읽혔다. 그는 조금도 화가 나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타도리를 보며 고죠는 헹, 하고 입술을 비틀었다.

"도대체 뭔 상상을 한 거야?"

"아뇨. 제가 선배한테 실례를 저지른 게 아닐까 싶어서요. 둘 다 알몸인데다가, 이렇게 침대에서 눈을 떴으니까..."

"너랑 나랑 거사라도 치른 줄 알았어?"

그 말대로입니다.

그렇지만 이타도리는 차마 긍정하지 못하고 으으,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그는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해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고죠는 이타도리의 뺨을 꼬집었다.

"으아, 아하요."

이타도리가 우물거리며 말하자 고죠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 거렸다. 평소 짓던 해맑은 목소리였다.

"생각해보니 실례를 저지르긴 했네."

"에?"

"주점에서도 일어나지 않아서 내가 끌고 와야했고, 집에도 들어오자마자 토했고, 옷은 덕분에 다 벗은 거다."

덤으로 씻기고 눕히는 것까지 죄다 하느라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며, 고죠는 이타도리에게 "너 보기보다 무겁더라" 하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이타도리의 얼굴은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듯 붉게 물들었다. 부끄러움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으아, 죄송해요!"

"됐어. 많이 먹인 내 잘못이지."

신경쓰지 마라는 듯 고죠는 손을 내저었다. 생각보다 무척이나 쿨한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이타도리는 곤란했다. 이 잘못을 어떻게 갚아야하는 걸까. 눈앞이 캄캄해져 침대에 얼굴을 푹 박아버리자 고죠는 그의 뒤통수를 보다가 손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그럼 어제 한 말도 기억나지 않겠군."

"어제 한 말이요?"

이타도리의 물음에 고죠는 그의 목덜미를 가만히 보았다. 며칠 전에 머리를 자른 건지 까슬까슬하게 잘린 뒷머리 아래로 뼈가 도드라진 단단한 몸이 보였다. 고죠는 침을 삼키며 손가락을 뻗었다가 "선배?" 하고 묻는 이타도리의 말에 다시 한 번 그의 머리통을 꾹 눌렀다.

"네가 집을 못 찾아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까지 했나요?"

"그래. 그리고 마침 나도 룸메이트를 구하는 중이라고 말했지."

어? 이타도리는 눈을 깜빡였다. 고죠 선배가? 이 사람이 룸메이트를 구한다고? 고죠의 손이 느슨해진 틈을 타 고개를 들자 장난기 없이 진지하게 자신을 향한 고죠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진심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이타도리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선배가요?"

보통 룸메이트를 구하는 이유는 방세가 부담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고죠는 방세가 부족할 리가 없다. 그 예로 이 집부터 어마어마하지 않는가. 필시 이 집은 전세나 월세 같은 게 아니라 고죠 본인이 소유한 집일 것이다. 게다가 이타도리의 기억 속 고죠는 항상 혼자 다녔고, 혼자 다니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노바라의 말에 따르면 이타도리가 전학 오기 전에 친한 친구가 있긴 했었는데 그 사람이 학교를 관두고 난 뒤부터 모두와 대화를 나눠도 아무하고도 깊게 사귀지 않았다고 했던 것이다. 필시 어떤 사정이 있고, 성향 상의 문제라고 여겼다. 

그러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룸메이트와 고죠 사토루라니. 그만큼 안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정작 고죠는 태연자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한동안 들어오기로 했지."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이 고죠는 결과만 말했다. 도대체 어제 밤에 무슨 대화를 나눈 걸까. 이타도리는 기겁하며 외쳤다.

"네에? 제가요?"

이타도리는 자기가 소리쳐놓고선 제 목소리에 머리가 울려 이마를 붙잡았다. 연속해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들려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죠는 호록, 하고 차를 들이키고는 말했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오기로 했어."

"다음주 월요일이면...사흘 뒤 잖아요?"

아니다. 금요일 밤에 식사를 했으니, 이제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모레였다. 그렇게 빨리? 이타도리는 기겁했으나 고죠는 덤덤히 그렇다고만 답했다.

"빠를 수록 좋다고 한 건 너였다."

"그야 그렇지만...선배는 괜찮은 거예요?"

"안 괜찮으면 이렇게 말을 꺼낼 일도 없었겠지."

고죠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는 진심으로 이타도리를 룸메이트로 들일 생각이었다. 이래도 되나? 이타도리는 얼이 빠진 채로 그를 보다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좋아해야할지, 아니면 거절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정보를 받아들이기 급급했다. 고죠도 그런 이타도리의 상태를 짐작했는지 쯧, 하고 혀를 한 번 차고는 말했다.

"밥 먹고 나서 집 보고 결정해."

집 주인은 고죠 였고, 룸메이트를 들이는 데 결정을 내리는 것도 그여야했다. 그렇지만 고죠는 마치 이타도리가 모든 결과를 쥐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 그게 너무도 이상했지만 이타도리는 약간의 여유가 생긴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서, 고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죠는 씻고 나오라며 욕실을 가리켰다. 옷도 내어주었다. 이타도리는 차를 내려놓고 어기적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자신이 사는 원룸과 비슷한 크기의 욕실에는 샤워부스를 비롯해 이타도리가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도 될만큼 커다란 욕조까지 있었다. 정갈한 무채색의 타일들이 붙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욕실을 보며 이타도리는 잠시 굳었다가 이마를 붙잡았다. 이런 집에, 내가 룸메이트로 산다고?

'아니, 일단 밥...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눈앞의 광경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던 이타도리는 강제로 생각을 멈추고, 설거지를 해도 충분할 것 같은 커다란 세면대 앞에 서서 씻었다. 목욕을 해도 된다고 고죠는 말했지만 아침부터 저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쓰기엔 서민인 이타도리에겐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생겨나지 않았다. 샤워만 간단하게 하고 나온 그는 옷을 입고 나왔다. 그러자 거실에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밥 먹을 수 있겠냐?"

"네."

얻어먹는 처지에 이러쿵저러쿵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식탁에 차려진 밥을 보자 이타도리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고슬고슬한 하얀 밥에, 연어구이, 된장국, 그리고 한 가운데 놓인 커다란 샐러드와 쟁반에 한가득 쌓여있는 고기까지. 풍성해도 너무 풍성한 한 상이었다. 이 선배는 매번 이런 밥을 먹는 걸까.

'그래서 몸이 좋은 건가.'

고죠의 알몸을 잠깐 떠올린 이타도리는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라? 진짜로 나 몸이 어딘가 안 좋은 건가? 생각에 빠진 그에게 고죠가 말했다.

"부족하면 더 말해. 다 네 꺼야."

젓가락을 들고 멈춘 게 아마 자신의 눈치를 보느라 안 먹는 거라 여긴 듯 싶었다. 이타도리는 "네!" 하고 씩씩하게 대답하며 밥을 한 젓가락 떴다. 고기가 들어가자 울렁거리던 속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몸이 좀 허했나보다. 입 안에 씹히는 쌀밥의 따끈한 단 맛에 감격하며 그는 마시듯 밥과 고기를 먹다가 커피 한 잔을 들고 제 맞은 편에 앉는 고죠를 발견했다. 수저도 젓가락도 놓지 않은, 텅 빈 자리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선배는 안 먹어요?"

"난 원래 아침 안 먹어."

그럼 나 때문에 일부러 밥을 차린 걸까. 이타도리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인사했다.

"그, 감사합니다."

고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를 홀짝였다. 고죠도 샤워가운에서 티셔츠에 츄리닝 바지를 입었는데, 검은 색이 아닌 흰 티셔츠에 회색 바지였다. 검은 색으로 똘똘 싸매지 않은 고죠는 처음이라 이타도리는 신기해하며 커피를 마시는 그를 보았다. 아직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게 일어났음에도 영화 속에서 남배우가 등장한 것처럼 근사했다. 기럭지가 길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 걸까. 이타도리는 신기해하며 와구와구 밥을 먹었다.

고죠는 이타도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의 앞에 앉아 신문을 읽으며 기다렸다. 그러다 킁, 킁, 하고 냄새를 맡았다. 다른 음식이라도 올려둔 걸까? 이타도리가 고개를 들자 고죠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고죠의 푸른 눈동자가 파도가 밀려와 물보라를 치는 것처럼 일렁이며 흔들렸다. 왜? 하고 이타도리가 묻기도 전에 고죠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한테서...내 샴푸 냄새가 나서."

이타도리는 젓가락을 쥔 채로 굳었다. 혹시라도 뭔가 잘못된 것임에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고죠 선배가 말을 주저할 리가 없잖은가. 그렇지만 이타도리는 위기를 느끼면서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당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야 방금 고죠 사토루의 집 욕실에서 씻고 나왔으니 고죠 사토루의 샴푸 냄새가 나는 건 당연했다. 그게 뭐가 잘못된 거지? 그는 황급히 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래봤자 코에는 고기 냄새밖에 맡아지지 않았다. 혹시 향이 너무 튀어서 그런가? 아니 본인이 쓰던 건데. 온갖 의문 속에서 이타도리는 당황하며 물었다.

"안 어울리나요?"

그래서 지적하는 건가? 영문을 몰라하며 이타도리가 묻자 고죠는 손을 내저었다.

"아냐. 그런 게 아니라..."

고죠는 뭔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벙긋 거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자기가 못 들은 건 아닐까 싶어 이타도리가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 돌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화가 오네."

"네?"

"받고 올테니까 밥 마저 먹어."

고죠는 그렇게 자리를 후다닥 떠버렸다. 이타도리는 홀로 식탁에 남아 그가 앉아있던 자리에 남아있는 커피잔만 보았다. 잔에서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들렸던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그래도 고죠 선배가 그렇다고 하니 뭐라 하겠는가. 뭐 진동벨이라도 들은 모양이겠지. 자기 집이니까 더 잘 들을 수도 있는 거고. 킁킁, 하고 한 번 더 냄새를 맡던 이타도리는 우물거리며 고기를 씹었다. 씹으면 씹을 수록 그의 머릿속에는 고죠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흔들리던 눈동자와 황망해하던 얼굴. 그리고 끝에만 살짝 붉게 물들었던 귀.

그것은 당황이었다.

'고죠 선배도 그런 표정을 짓긴 하는 구나.'

이태껏 안대 너머에 저런 귀여운 얼굴을 숨기고 있었나.

괜히 두근거리는 기분이 들어 이타도리는 고기를 마저 삼키고 국을 후르륵 마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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