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고백과 동거(4)
주술회전 2차 BL 고죠사토루X이타도리 유지
-대학생/동거AU
(*) 제 개인적인 캐해에 의한 날조가 상당히 많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포타 재업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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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까지 몽땅 다 해치울 즈음이 되서야 고죠는 식탁으로 돌아왔다. 텅텅 빈 그릇을 보고 그는 곧장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접시에 딸기를 담아 내어주었다. 비싸서 평소엔 구경도 못하는 딸기가 붉고 탐스럽게 윤기를 빛내니 이타도리는 염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딸기를 베어물었다.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감격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고죠의 손님 맞이는 정말 환상적으로 훌륭했다. 이타도리는 감탄하며 그렇게 배가 터지기 직전이 되서어야 겨우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고죠는 이타도리에게 집 구경을 시켜주었다. 분명 고죠 한 사람이 사는데도 부엌과 거실, 욕실과 창고를 제외하더라도 방이 네 개나 되었다. 이타도리가 자고 나온 침실, 서재, 손님용 방이 두 개가 비어 있었다. 게다가 방마다 욕실이 별도로 붙어 있었고 크기도 모두 넓고 근사했다.
"룸메이트를 몇 명 구하시는 건가요?"
저도 모르게 물어보는 이타도리에게 고죠는 "한 명." 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고죠는 손님용 방 중 네가 편한 곳을 고르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두 방 모두 이미 가구는 다 갖춰져 있었고 커튼과 침구를 비롯한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그저 사람은 들어와서 잠만 자면 될 것 같았다. 이타도리는 자신이 호텔에 온 건지 룸메이트를 위한 방을 구경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방을 보는 내내 연신 '좋네요.' 를 중얼거리던 이타도리는 보면 볼 수록 자신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경을 마친 둘은 거실에 앉았다. 고죠는 차를 내어주며 이타도리에게 다른 조건을 일러주었다.
이 집은 학교 후문으로 걸어서 무려 10분 거리. 버스 정류장까지는 5분이고, 지하철까지는 반대편으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 그리고 편의점이나 마트도 코앞이다.
또한 어차피 고죠 본인의 집이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을 때 이타도리는 자신의 예상이 맞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월세는 필요 없다. 관리비 정도만 절반 내면 된다.
한 마디로 엄청나게 좋은 집을, 그냥 들어와서 살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어때?"
이타도리는 입을 우물거렸다. 조건이 좋아도 너무 좋지 않은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서 이타도리는 곧바로 좋다! 고 말하지 못한 채 슬그머니 대답을 피했다.
"고죠 선배는 이 집에서 사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1년."
어쩐지 모든 게 너무 새 것 같았다. 집에 전반적으로 생활감이 없다고 해야하나. 냉장고도, TV도, 침대와 벽지 마저도, 모두 막 들어온 것처럼 반짝거렸으니까. 이타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때는 선배 혼자 살 생각으로 들어왔던 거 아니세요?"
그야 뭐, 하고 말끝을 흐리던 고죠는 눈을 깜빡이더니 이타도리를 보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정말 직설적이다.
돌려서 말한다는 게 없는 건가. 이타도리는 자신도 단순해서 예의를 차린다던가 아니면 빙빙 꼬아서 말하는 재주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이 사람 보다는 부드럽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찌르듯 들어오는 고죠의 말에 이타도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어차피 고죠 선배 앞에서 제 속내를 완벽하게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걸 숨길 수 있는 성격도 되지 못했다. 그럴 바엔 오해나 사지 말자고 생각하며 이타도리는 최대한 악의 없이 말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솔직히 왜 룸메이트를 구하는지 모르겠어요."
"뭐?"
"선배 혼자 지내도 이 집은 완벽한 걸요."
자신을 이렇게까지 룸메이트로 데려오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어도 충분할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은 삼킨 채 이타도리는 고죠에게 물었다. 그가 "내가 구한다는데, 그런 게 중요해?" 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이유가 궁금했다. 도대체 왜. 고죠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마라."
목소리를 낮춘 고죠에 이타도리는 덩달아 긴장했다. 그가 이토록 비밀스럽게 말하려는 게 무엇인 걸까. 두근거리며 고죠를 따라 이타도리도 어깨를 숙였다. 그러나 정작 고죠의 말을 듣자마자 이타도리는 '에?'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도 그럴게, 고죠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며칠 전에, 공포영화를 봤는데."
"네."
"그 이후로 혼자 있기가 무서워서."
이타도리는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고죠는 자세를 다시 바로 하고서 "크흠" 하고 헛기침하며 "그게 다야." 하고 말을 마쳤다. 이타도리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고죠 사토루는 존재감과 유명세만큼이나 그의 사생활도 소문이 자자했는데, 걔 중에는 그의 집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부자라던가 그건 이외에도 지역에서 유명했던 것이다.
주술사 집안으로.
이타도리는 그런 것을 믿지 않았지만 꽤 유명한 정치인이 오고간다던가, 테레비전 방송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던가, 전국 주술협회 회장이라던가, 그런 말들이 꽤 오고가는 것으로 보아 보통 무서운 집안이 아니긴 한 듯 싶었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불량배들이나 괜한 일로 고죠 사토루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뭐? 공포영화?
이타도리는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닌가 싶어서 한 번 더 물어보았다.
"공포영화요?"
"응."
"선배 집...주술인가 뭔가 하지 않나요?"
그러나 고죠는 마치 그 질문이 올 줄 알았다는 듯이 곧바로 말했다. 주술은 저주랑 요괴에 관한 것이지, 귀신이나 살인자와는 다르다. 그러면서 주술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는데 이타도리는 걔 중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마지막 고죠가 명쾌하게 내려준 결론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짜로 무서워서 그래."
거짓말이다. 이거.
그도 그럴게 고죠의 얼굴에 두려움이라곤 1g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그저 예쁜 얼굴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타도리를 향해 푸른 눈동자를 빛낼 뿐이었다. 이타도리는 헛웃음을 쳤다. 거짓말인 걸 알아도, 고죠가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기로 한 이상 진짜 속내를 듣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 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게 어딨어.'
이타도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런 그의 시야에 고죠의 손이 들어왔다. 태연자약해보이는 태도와 달리 고죠의 손가락은 초조하게 손등을 톡, 톡, 토독 하고 두들기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타도리가 룸메이트로 들어와주길 기다리는 게 분명했다.
싫다고 하면 강제는 안 할 사람이지만. 안한다고 말하면 그건 그것대로 풀이 죽을 것만 같아 신경이 쓰였다. 이타도리는 잠시의 고민 끝에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고죠와는 대학에서도 마주해야할 텐데. 벌써부터 이 사람을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일단 여기서 살자. 같이 있는다해도 이렇게까지 집이 크면 서로 오고가는지 알기도 힘들 거 같고. 뭣보다 지금 집을 구하기 힘들어 급한 건 이타도리 였지, 고죠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산다면 1년간 근방을 돌아다니면서 주변에 대해 알아가는데 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나서 집을 구하기도 쉽겠지. 그렇게 편리하게 생각하며 이타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1년간만 부탁할게요."
이타도리가 말하자마자 고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지. 화났나? 이타도리가 놀라서 쳐다보는데 고죠는 갑자기 방에 가더니 서류를 들고 왔다. 계약서였다. 이타도리가 인상을 구기자 고죠는 당당하게 사인을 요구했다.
"원래 이런 건 다 남겨놓아야 하는 거야."
이상한 조항은 없다. 1년간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집에서 머무르겠다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도 계약서 내용은 굉장히 단순했다. 그저 비워져 있던 공백칸에 '(1)년' 이라는 숫자가 더해지고 그 밑에 고죠의 사인이 먼저 적혀 있다는 게 좀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이타도리는 쭉 읽다가 알겠다, 며 사인을 했다. 그제야 고죠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서류를 보았다.
돈 문제 때문에 계약서를 쓰는 게 아니라 기한 때문에 쓰는 건 처음이었던 이타도리는 싱글싱글 웃으며 행복해하는 고죠를 보며 물었다.
"선배, 혹시 이 집에 뭐 이상한 거 있어서...절 액받이나 뭐 그런 걸로 쓰려는 건 아니죠?"
"걱정 마. 넌 그런 거 받으면 바로 죽어."
뭐? 그걸 어떻게 걱정하지 마라는 거야? 이타도리가 곧바로 "네?" 하고 되묻자 고죠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까, 그런 데 쓸 일도 없다는 뜻이야. 액받이가 죽어버리면 술자가 누군지 쫓아갈 수 없잖아."
이타도리는 처음으로 고죠의 집안일이 정말로 위험한 일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고죠는 그 이상 자신의 집안에 대해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행여나 이타도리가 불안해할까봐 덤덤히 덧붙이기만 했다.
"괜찮아. 난 강하거든. 너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어."
껄껄 웃으며 자기만 믿으라는 고죠를 보며 이타도리는 "그렇..군요." 하고 작게 답했다. 다만 그걸 감사해야할지, 아니면 애초에 모르던 게 나은 건지 알 수 없었다.
***
그렇게 이타도리는 고죠와 생활을 시작했고, 그 사실을 노바라와 후시구로에게 말했다.
"고죠 선배가? 너랑?"
그 말을 듣자마자 재수 학원에서 공부로 썩어가던 노바라는 "으아아아..." 하고 머리를 붙잡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후시구로 마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타도리 스스로도 이게 이상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기에, 조용히 끄덕였다. 만약 지금 앉아있는 곳이 패스트푸드점만 아니었어도 이 둘은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날뛰었을 게 분명하다. 밥 먹을 때 이야기하길 잘했다고 이타도리는 생각했다. 입을 벌린 채 굳어버린 노바라에게 감자튀김을 한 조각 넣어주며 이타도리는 말했다.
"자세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공포영화가 무섭다고 고죠는 말했지만 고죠도 비밀로 하라고 했고, 이타도리도 믿지 않았으므로 그 이야기는 괜히 꺼내지 않았다. 그러자 노바라는 감자튀김을 우적 씹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진짜로, 방을 찾아 헤매던 너와 룸메이트를 구하던 고죠 선배가 우연히도! 그 날 만나서 우연히! 둘의 사정이 맞아 떨어져서, 살기로 했다는 거야?"
'우연'이 너무 많다.
노바라가 대놓고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자 이타도리는 어색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다니까." 하고 시침을 뗐다. 노바라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콜라를 쭉 들이키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혹시, 고죠 선배한테 협박 받는 중이야?"
"곤란한 일이 있으면 우리가 힘을 써주지."
후시구로마저 노바라의 생각에 동조했다. 그만큼 고죠 사토루와 룸메이트를 하게 된 일은 말도 안되는 일인 것이다. 이타도리는 손을 내저으며 "그런 거 없어." 하고 연신 말했다. 선배는 아무 일도 시키지도 않고, 오히려 선배가 더 잘해주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육체노동 시키거나 하진 않아?"
"청소랑 빨래, 요리는 업체를 고용해서 하고 있으니까 할 거 없대."
"월세가 지나치게 많다던가."
"관리비만 절반 부담하기로 했어. 그마저도 평균 월세 반 값이야."
"이상한 일을 부탁하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안 해."
몇 번의 문답 끝에 정말로 고죠 사토루와 평등한(?) 룸메이트 관계로 지낸다는 것을 확인받은 후에야 둘은 표정을 풀었다. 다만 노바라는 여전히 신기해 했다.
"믿을 수가 없네. 그 인간, 학교 다닐 땐 항상 혼자 다녔잖아. 게토 선배 전학가고 쇼코 선배가 학생회 들어간 이후부터는 진짜 이타도리 너 말고는 그 누구도 그 인간 옆에 서 있지도 못했다고."
"검도부에서는 가르쳐줬잖아."
"그거야 대련할 때만이지. 그 이외에는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니까. 그런 인간이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니."
노바라는 사람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이타도리 역시 동의했다. 자신도 이렇게 고죠 선배와 살게 될 줄은 꿈꾼 적도 없으니 말이다. 후시구로는 다시 햄버거를 우물우물 먹더니 이타도리에게 물었다.
"그럼 넌 불편한 거 없어?"
"나?"
"응. 선배랑 같이 산다는 거, 쉬운 일이 아닐 거 같은데."
후시구로의 말에 노바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까탈스러운 인간이랑 살게 된 경위는 그렇다쳐도, 이제 살게 되었으니 힘든 점이 분명 있을 터. 혹시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며 걱정했다. 그 말에 이타도리는 계속 괜찮다, 정말 괜찮다, 말하던 것을 멈칫 하고 멈춰섰다.
"있긴 있구나!"
노바라는 눈을 빛내며 이타도리를 보았다. 그 눈빛이 뭔가, 걱정도 섞여 있지만 흥미진진해하는 게, 암만봐도 재밌어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말하지 말까. 이타도리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한 달간 이 문제로 해결법을 찾지 못한 그는 친구들에게 입을 열었다.
"없는데. 없어서 불편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의아해하는 두 친구에게 이타도리는 조심스럽게 지난 몇 주간의 이야기를 꺼냈다.
시작은 첫날부터였다.
월요일.
이타도리가 챙겨온 짐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여행용 캐리어 하나와 배낭 가방 하나를 매고 온 게 전부였다. 애초부터 이사할 생각으로 원룸에 살던 짐을 모두 할아버지 집으로 빼둔 터라 옷 몇 벌과 늘 들고다니는 액션영화 포스터, 그리고 선물받은 밴드 앨범이 전부였다. 지나치게 단촐한 짐에 고죠는 눈썹을 올렸지만 나중에 나머지 짐은 할아버지 집에서 가져온다 말했더니 "...계약서가 있으니까." 하고 끄덕였다.
다만 그 탓에 당장 쓸만한 생필품이 부족했다. 칫솔이나, 속옷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이었다. 이타도리는 한 시간만에 짐정리를 끝내고 거실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는 고죠에게 근처 마트가 어딨냐고 물었다.
"왜?"
"살 게 있어서요."
이타도리가 생필품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하자 고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검은 자켓과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다.
"어, 같이 가려고요?"
"어차피 나도 장 보러 가야 돼."
요리는 업체에서 알아서 하는 거 아니었나?
이타도리는 의아했지만 고죠가 사먹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고, 첫날이라 가르쳐주려나 싶어서 말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고죠가 향한 곳은 지하의 주차장이었다. 그곳에 세워진 검은 차의 문을 열더니 고죠는 올라타며 말했다.
"타."
"이 차, 선배 꺼예요?"
"응."
굳이 차까지 타고 나가야하나 싶었지만 차를 보자마자 이타도리는 근사한 생김새에 홀려버렸다. 그는 차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보닛 위에 동그란 엠블럼이 달려있는 이 차가 보통 비싼 게 아니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차를 탈 기회는 많지 않다. 이타도리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올라탔고, 안전벨트까지 착용하고 나서야 고죠는 능숙하게 핸들을 돌렸다.
"선배, 운전 하실 줄 아시네요."
"쓸 일이 많으니까. 왜. 너도 배우고 싶어? 가르쳐줄까?"
고죠는 당장 핸들을 바꿔줄 것처럼 굴었다. 이타도리는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배워봤자 아직 쓸 일도 없을 뿐더러 이렇게 비싼 차로 배우고 싶진 않았다. 고죠는 피식 웃으며 차를 몰았다. 이타도리는 푹신한 좌석에 등을 붙이면서도 불안한 눈으로 고죠를 보았다. 자신은 분명 동네 마트 위치를 물어본 건데. 고죠의 차는 이상하게 동네를 벗어나 도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선배, 저희 어디로 가는 건가요?"
"살 거 있다며."
"네."
"그럼 사러 가야지."
그렇게 고죠가 이타도리를 데려간 곳은 백화점이었다. 이타도리는 거대한 건물을 보고 칫솔을 살 생각을 곧바로 접었다. 고죠가 이곳에 볼 일이 있어 먼저 들렀나보다,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웬걸. 고죠가 향한 곳은 쇼파나 전등과 같은 인테리어 소품이 가득 놓인 층이었다. 그곳에서 고죠는 이타도리에게 "여기 칫솔 있다" 하며 물건의 위치를 가리켰다.
가격표를 본 이타도리는 침을 삼켰다. 뭔 칫솔이 고작 하나에 3천엔이나 한단 말인가. 7개 세트로 5백엔 하는 칫솔밖에 사본 적 없는 이타도리는 조용히 칫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고죠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맘에 안 들어?"
"네."
"그래? 그럼 이건 어때?"
두번째로 집어든 칫솔은 4천 5백엔이었다. 아니. 어째서 더 비싼 걸 가져온단 말인가. 물론 칫솔모도 이타도리가 평소 쓰던 것에 비하면 촘촘하고, 손잡이도 나무로 만들어져 고급스러워보이긴 했지만. 그래봤자 칫솔은 칫솔이 아니던가.
"이거 금으로 만든 건 아니죠?"
이타도리가 기막혀하며 묻자 고죠는 낄낄 웃으며 답했다.
"금으로 만든 거 갖고 싶어?"
"미쳤어요?"
"뭐, 약간은."
이타도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대로 고죠가 고르도록 내버려뒀다간 자신의 피땀흘린 아르바이트비가 순식간에 다 바닥나버릴 거라 생각하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고죠 선배가 살 것부터 사러가요."
"왜. 재밌었는데."
고죠는 어딘가 조금 들뜬 기색이었다. 원래 쇼핑을 좋아하는 걸까. 그렇다면 본인 쇼핑이나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 남의 지갑을 파산내지 말고. 이타도리는 한숨을 쉬며 고죠와 함께 식품코너가 있는 지하로 향했다. 그곳의 음식들도 눈이 돌아갈정도로 비쌌지만 어차피 이타도리가 먹을 게 아니니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렇지만 고죠는 하나씩 고를 때마다 이타도리를 불렀다.
"이거 맛있겠다."
고죠는 고기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소고기였는데 빛깔이 붉은빛과 하얀 마블링이 섞여 예술적이었다. 뭐, 고죠 선배가 먹을 거니까. 이타도리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래요?"
"먹을래?"
"제가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고죠를 보고 "왜요?" 라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평생 먹어볼 일 없는 고급고기를 선배가 사준다는데. 어느 바보가 거절하겠는가. 이타도리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제야 고죠는 카트 안에 고기를 두 세개 집어다가 넣었다. 이 질문과 대답을 우유 앞에서도, 딸기 앞에서도, 그리고 빵 앞에서도 반복한 뒤에야 이타도리는 식품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진짜 장보러 왔나보다.'
좀 이상한 장보기 였지만.
카트 안에 가득찬 음식을 보며 그때까지만해도 이타도리는 정말로 이건 '고죠 선배의 몫'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고죠가 과자 코너 앞에서 고민할 때 즈음이었다.
"앗!"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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