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어른이 되고 싶다
2019.06.27 작성 | 공백 미포함 875자 | ※262화 기반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맞지도 않는 더러운 신발이 벗고, 비도 막아주지 못하는 우산을 던지고 나 홀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그런 어른이. 제대로 된 방도 없는 빌어먹을 집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몇 날 며칠이고 그러한 소원을 빌었다. 어른이 되는 그날만 오면 모든 것을 다 부숴버리고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그날이 빨리 찾아왔다.
정확히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그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한유진, 나의 아저씨.
나를 먼저 찾아온 것은 본인이면서, 정작 나쁜 생각이랄 것도 안 했으면서 낯선 사람을 함부로 따라가면 안 된다고 꾸짖던 사람. 아저씨는 부모님을 여읜 후, 내가 첫 번째로 만난 어른이었다.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길 줄 아는 무늬만 어른인 사람이 아니라, 자신보다 어린아이를 ─설사 그 아이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해도─ 챙기고 아끼는 그런 어른. 아저씨를 시작으로 나는 더 많은 어른을 만났고, 더 넓은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뻤다.
정말 순수하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가 그렇게나 기뻤다.
내 성장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있고, 무언가를 해내면 순수한 칭찬이 돌아온다. 답지 않게 애교를 부려도 귀엽다고 받아주기도 하고. 물론 그런 나를 보고 기분 나쁘다며 시비 거는 녀석도 있긴 하지만 그 녀석도 나름 날 좋게 봐주는 걸 알기에 투닥거리는 게 제법 재미있다. 당사자 앞에선 이런 얘기할 수 없지만. 그리고 힘들거나 부족한 것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고, 내가 웃으면 함께 웃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과 하루하루 쌓아올린 나날은 청명한 하늘처럼, 드넓은 바다처럼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렀다. 복층에 있는 내 방, 내 침대에서 눈부신 매일매일을 곱씹고, 그 빛깔을 흡수하며 현재의 내가 되었다.
물의 지배자, 박예림.
내가 생각해도 멋진 이름이다.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도 예전과는 달리 천천히 어른이 되고 싶다. 무늬만 어른이 되지 않도록. 다른 사람을 책임질 줄 알고,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은 솔직하게 어른들 틈에서 어리광도 부리면서.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아저씨는 제가 얼마나 더 강해질 거 같아요?"
"얼마든지. 네가 원하는 만큼."
"그럼 끝도 없는데!"
끝도 없이 펼쳐질 나의 세상을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강한.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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