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led With A Kiss

현제유진 | 로판st, 출정으로 잠시 이별하는 연인. 좀 서글픔 주의

맞춤법 검사, 미래의 제가 하겠죠.

아래 음악을 듣다가 생각났습니다. 한국어 가사가 있는 버전으로 공유합니다.

아래 브금이 하이라이트랍니다! 꼭 들어주세요 ><

https://youtu.be/Yn-TlyuKP_w

Though we gotta say goodbye for the summer

우리는 여름 내내 이별해야 하지만

Darling I promise you this

내 사랑, 이건 약속할게요

I'll send you all my love every day in a letter

나의 모든 사랑을 편지에 담아 보낼게요

Sealed with a kiss

키스로 봉인해서

젊은 이들의 음탕한 파티를 제외하고, 모두가 잠에 드는 야심한 새벽. 한유진은 얄팍한 가스등에 의존하며 달렸다. 슬립만 걸친 채로 경비 없는 복도를 쏘다니면 어김없이 나타난 그의 연인이 양털로 짠 가디건을 어깨에 걸쳐줬다. 정말, 그가 주는 사랑은 혀가 아리게 달아서 다른 디저트는 달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한유진에게는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너무 사랑해서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밤잠 이루지 못하는 애닳픈 사랑이 있다. 값비싼 보석이나 이국의 도자기 보다 당신 얼굴 한 번 보는게 더 좋은 순진한 마음일진대, 그 연인의 출정 소식이 들려왔다. 소문은 소문이라 믿으며. 그가 저에게 일언반구 없을까 싶었다. 멍청하기도 하지! 연인의 출정을 저 좋다며 추근대는 왕자의 비난으로 확답 받았다.

"성현제는 그 전쟁에서 죽을 거야. 폐하께서 그리 하도록 만드실 거거든."

"어찌하여 전하의 신민을 사지로 모시나이까!"

질투란다. 고작 한유진이 잘난 성현제와 약혼해버린 나머지 끓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네 약혼자를 기어코 사지를 몰겠다 선언했다.

동부 전선은 200년간 조용한 적 없는 곳이었다. 동쪽의 나라와는 금광 채굴권으로 다툼이 잦았고, 이제는 대규모 이주 문제로 전쟁의 도화선이 터졌다. 현재로는 동부 영주끼리 힘을 모아 전선을 지키고 있으나, 동국의 기세가 흉흉했다. 수도는 전쟁 기금을 모으는 파티가 유행하고 출정 의무가 있는 공작을 연인으로 둔 한유진도 금이니 보석이니를 팔아 보탰다. 부디 제 연인이 나가지 않기를 바라며.

불안한 계절이 지나 여름 직전의 봄. 수도에서 무사히 결혼을 마친 부부는 이제 오래 평안하기만을 꿈꿨다. 꿈은 밤잠에나 이루라는 신의 계시처럼 짤막한 봄이 끝나기 전, 성현제는 출전했다.


"유진아 내 사랑."

출정식이 끝난 낮. 그는 신민의 뜨거운 염려와 함께 떠났다. 한유진은 남편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이라도 보겠답시고 험준한 산길 앞에 서서 신민의 염려보다 곱절은 뜨거운 키스를 받았다.

"가지마. 당신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유진아, 날 봐. 마지막까지 얼굴을 보여줘야지."

서러움에 젖은 부드러운 뺨에 입술을 붙였다 떼어낸 성현제는 이제 가셔야 한다는 재촉에 인상을 찌푸렸다. 빌어먹게 선선한 바람이 그 말간 뺨을 차게 식혔다. 곧 여름이라지만 아직 추운 날이었다.

"이번 여름은 나 없이 보내는 최초의 시간일 거야. 하지만 약속할게. 자주 편지하고, 편지마다 키스를 퍼부울 거니까. 그걸 나 대신으로 여기며 지내야 해. 알겠지?"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그는 떠났다. 저기 저 먼 곳으로. 한유진은 따라가지도 못할 험준한 땅으로.


전세는 양국이 소꿉장난하듯 엎치락 뒷치락했다. 어제 차지한 땅은 오늘 다 내어주고, 오늘 내어준 땅을 내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기던 지던 그딴 건 내 알 바가 아니라는 듯 성현제는 아주 자주 편지를 보냈다. 바쁘지도 않으신지 묻고 싶어도 싸구려 종이에 볼품 없이 번진 잉크가 모든 걸 설명했다.

'동부의 낮이 얼마나 더운지 상상하기도 어려울 거야.'

이딴 한담이나 늘어놓다가도 마지막은 늘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한유진은 전쟁기금 모금 파티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값비싼 걸 내어놓고도 정작 제 목은 내어주지 못해 안달났다. 수십 개의 승전과 패전 소식이 오가도 남편 낯짝 하나는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불안한 마음과 함께 여름 무더위는 흘렀다. 마치 여름만 만나지 못한다 말한 남편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도 그곳은 아직 여름이라며 덧붙였다. 동부전선의 여름은 일년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니 여름이 끝날 때 만나자 라는 건 아주 오래 만나지 못한다는 말과 같았다.

한유진은 내놓다 못해 이제는 저택을 팔아넘길 작정으로 나섰다. 당장 이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신민의 도리고 뭐고 눈에 보이는 황족의 목이란 목은 죄 베어낸 다음 적군에게 던져줄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 소설에 나오는 스파이처럼 동국에 잠입해 전쟁을 끝내는 상상을 했다. 하루의 반 이상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승전보라도 들리면 잠시 안도했지 그러고도 다음날 후퇴 소식이 들리면 다시 기절하기를 반복하던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날.

종전소식과 함께 남편의 전사 소식이 들려왔다.


우습게도 전사 소식은 여름이 온전히 끝남을 선포하는 시기에 찾아왔다. 이제 이 땅의 여름은 다 갔으니 내 소식이나마 이렇게 보내겠다는 그의 뜻 같았다.

"성현제 대장께서 나라를 위해 명예롭게 순국하셨습니다."

가을이랍시고 여름에나 어울리던 꽃이나 커튼을 바꾸느라 거실에서 하인 다섯을 통제하던 한유진은 갑자기 찾아온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신은 찾지 못해 이번 공훈으로 받으신 국가 최고 보훈자 외 훈장 다섯 개를 유품으로 전해드립니다."

남편의 보좌관은 저 역시 제 상관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양 그의 잘 관리된 훈장 몇 개만 덜렁 들고 왔다. 검은 상복은 전쟁이 끝났다는 증표 대신이었고, 찾지 못한 육신은 작렬하는 폭격에 형체도 없이 부셔졌다는 말이었다.

"아니야......"

한유진은 성현제가 군 내에서 더는 올라갈 곳이 없다는 걸 알았다. 태생이 잘났고, 그보다 능력이 더 뛰어났기에 거리낌 없이 진급했다. 하루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물었더니 얼굴 근육 하나 구기지 않고 '전사 이후 유가족의 대우가 가장 좋으니' 따위를 씨부렸다. 마시던 차를 그대로 내던지고 지랄할 거면 차라리 나랑 결혼도 하지 말라 성질냈다. 이제야 약혼식을 치루었는데 무슨 망측한 말이냐고.

그의 바람은 이렇게나마 이루어져서 기쁠까.

믿기지 않아 대답도 늦었다. 고개를 도리저어도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몸이 무너졌다. 와르르 쏟아진 도자기처럼 한유진의 정신도 깨졌다.

육신 없는 죽음이 어디있냐고. 내 남편은 싸가지가 없고 오만한 자라 절대 그렇게 갈 사람이 아니라고. 죽을 때도 내가 죽었으니 너희는 내 장례에 참석해야 옳다 따위나 설파할 사람이라고....

"왜 찾지도 않고 그래. 어디 포로가 되어있을 수도 있잖아. 하다 못해 기억이라도 잃었어봐. 그 사람 얼굴이 얼마나 잘났는데. 창굴 같은 데 끌려가면 어쩌려고!"

"송구합니다, 부인. 백방으로 노력해봤으나 시신은 찾을 수 없고 그 분이 계셨던 곳은 멀쩡하던 건물마저 가루가 된 곳입니다."

"꺼지라고! 가서 찾으란 말이야!"

한유진은 안 돼, 안 돼 따위를 중얼대다 이제는 전사 소식을 전하러 온 보좌관의 멱살을 쥐었다. 그는 감내하겠다는 듯 어쩔 줄 몰라하는 부관을 저지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일흔다섯 번의 소규모 전투와 네 번의 대규모 전투를 직접 진두지휘 하셨습니다. 가장 앞장 서서 적을 일망타진 하시었고,"

"닥치란 말이야!"

비명은 곧 통곡이 되었다. 어억하며 숨을 집어삼켜도 남편은 돌아오지 못함을 안다. 그는 떠났다. 가장 뜨거웠던 여름을 안고 저 멀리, 한유진은 갈 수도 없는 험준한 땅으로 사라졌다.


동부의 여름은 남부의 것과 같았다. 금광이 발견된 산맥 뒤로 무더운 공기가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까닭이다. 그곳의 풀은 이름만 겨울인 날에도 무럭무럭 자랐다. 벌레는 서부의 몇 배는 크고 징그러웠고, 고인 물은 쉽게 썩었다. 성현제는 아스라이 흐려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사지가 꽁꽁 묶인 제 꼴에 조소했다. 한유진을 좋아라하는 왕자가 그를 팔아넘겼다. 폭격이 이는 땅에 밀어넣고 기절한 저를 몰래 빼돌려 너희를 유린한 자이니 마음껏 더 유린하라면서.

아름다운 얼굴은 덕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때는 곤란했다. 습하다 못해 역겨운 지하 감옥에서는 외모가 불행길의 개척 사유였다. 차라리 죽여라며 소리치는 이들 사이에서 성현제는 전사 소식에 기절했을 사랑스러운 부인을 떠올렸다. 미안하게도. 여름 내내 이별하자고 했지 영원히 이별하자고는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잔걱정이 많은데, 제 육신 없는 죽음에 스스로를 혹사할게 뻔했다.

화롯불이 눈이 지져지고, 팔 하나가 괴사한 도중에도 그는 한유진을 생각했다.

아, 유진아.

햇빛 한 점 없는 곳에서도 햇살 같은 얼굴을 떠올렸다.

들리는 거라고는 비명 뿐인 곳에서도 다정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썩기 일보 직전인 다리에도 뛰어들 품을 떠올렸다.

그렇게 몇 개의 조각을 이어붙이니 하루를 연명할 한유진이 완성되고, 그는 살아 나갈 이유를 만들었다.

아, 유진아!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죽지 않고 한유진에게로 달려들어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사과하고 싶었다. 미안해, 그곳의 여름은 생각보다 길어서 같은 변명이나 덧붙이면 부인은 뭐라고 할까.

"이보게나."

성현제는 그렇게 마음 먹고 추잡한 낯의 간수에게 말을 붙였다. 숯댕이와 화상과 곪아 생긴 진물로 가득해도 아름다운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간수는 저도 모르게 이끌려 그에게로 다가갔다. 성현제는 장기에서부터 올라오는 역겨움을 참고, 참고 또 참아내면서.......

몇 날의 밤이 흐르고 그가 얻어낸 건 시궁창 같은 종이 한 장과 마른 잉크의 펜이었다. 분비물 냄새가 가득한 종이는 아주 작아 별 말을 쓸 수 없었는데, 그마저도 오늘이 지나면 보내줄 수 없다는 말에 진정성 있는 말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휘갈겼다.

그게 어느 겨울이었다. 제 나라에서는 한창 추워서 웃돈을 얹지 않으면 전보도 잘 오가지 않은 계절이었다. 성현제는 저 편지가 겨울이 끝나기 전에는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눈을 감았다. 이제 뽑혀서 헐거워진 한 쪽 눈꺼풀 아래에도 한유진을 망상했다.

남편이 죽고 반 년이 지났다. 한유진은 막대한 유산을 차지한 부인이었고, 이제는 왕자의 구애도 받는 예비 왕자비 취급을 받았다. 추파를 던지는 왕자를 볼 때면 죽이고 싶다가도 죽고 싶었다. 제 남편은 이제 없는데 살아 뭐하겠는가? 그는 살아생전 못된 짓을 많이 했으니 기필코 지옥에 떨어졌을 거란 동생의 위로 아닌 위로에 이제는 동의할 수 있었기에 한유진은 그를 따라 지옥으로 가고 싶었다.

사용인 모두가 한유진의 서러움을 달래기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사별한 부인의 슬픔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종류였다.

남편이 없어도 언제 한 번 남편이 당부한 '건강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한유진은 매일 아침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산책도 하고 지인도 만났다. 한가득 쌓인 편지에서 청혼서는 불에 태우고, 사업 계획서나 남편 이름이 적힌 편지,

"편지?"

꼬질꼬질한 종이는 아마 집사가 버리려고 하던 것으로 제대로 봉하지 못한 싸구려 청혼서 씰에 실수로 딸려 왔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열기 전까지만 해도 '아직 남편이 살아있을 거라 믿었던 시절의 한유진'이 했을 법한 상상을 했다. 정말, 몸 건강히 살아있어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낸 거라면. 네 도움 없이는 도저히 나올 수 없다는 어느 항복 선언이 들어있다면. 한유진은 가진 모든 걸 되팔고, 다리가 부서져도 그 땅으로 달려가리라.

편지는 손바닥만한 했다. 그리고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더라.

[ 유진아 아직 내 여름은 끝나지 않았어. ]

"집사! 집사!"

목청껏 집사를 찾았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아직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순진하고 멍청한 과거의 한유진의 꿈처럼.

편지의 진위 여부를 가지고 말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한유현은 막대한 재산을 탐내는 사기꾼을 짓이라 일갈했다. 그러면 한유진은 보기 드물게 제 동생에게 버럭 언성을 높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남편은 어디 성하지 못할 수 있는데 나를 막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형, 마음은 알겠어. 정상적이라면 자기가 지금 어디 있는지를 알려야지."

"그 사람이 어디 정상적인 놈이야?"

"아."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직접 가겠다며 다급한 상황에도 제 남편은 절대 정상인이 아니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한유현은 그들 부부의 약혼 전에도 저 놈은 정상이 아니라며 단언해놓고 이제는 잊은 것처럼 멍청하게 답했다.

남편 잃은 고통에 이제 건강도 잃은 한유진은 직접 가서는 안 된다는 동생의 방해로 편지를 역추적하여 사람을 보내보자는 의견으로 통합됐다.

그리고 동부 전선이었던 평화의 땅 어느 비밀 지하 감옥에서 성현제가 발견했다.

역추적에도, 포로 교환 협정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 시간에도 제 남편은 무사하지 않으니 당장 데려오겠다는 화끈한 한유진을 온 나라가 막았다. 사지 멀쩡한데, 사지 멀쩡하지 않음이 분명한 제 남편이 제게 오기만을 발 동동 구르며 기다리기를 한참. 계절은 다시 여름이 지난 가을. 신의 은총으로 풍년에 든 밀을 수확하기 시작할 즈음 성현제가 탄 배가 항구에 보이기 시작했다.

전사한 줄로만 알았던 전쟁의 영웅, 성현제 대장의 생환 소식에 모두가 기뻐했다. 항구에는 배가 시야에 잡혔다는 선포 뒤로 군악단의 열렬한 연주가 터져나오고, 도착하기에는 몇십 분은 더 있어야 할 배에 그들이 기쁨이 들리기를 바라며 구경 나온 국민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성현제 대장!"

한유진은 그들 사이에서 가장 서글픈 낯이었다. 기뻐야 할 부인의 얼굴이 눈물 바람이라도 어느 하나 나무라지 못했다. 가장 비통한 시절을 꾸역꾸역 살아냈을 마음을 누가 이해하지 못할까.

이윽고 배가 정박하고, 검은 안대에 배에서 준비한 멋들어진 예복의 헐렁한 팔 한 쪽에도 신경쓰지 않던 성현제가 열리기 시작한 배문 틈으로 얼굴을 보였다.

"성현제!"

안에서 기다리라는 다정한 안내에도 한유진은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살아서 돌아온 그들의 영웅에게 던지는 여름 꽃과 색색의 폭죽을 뒤로한 뜀박질은 멈추지 않았다. 화들짝 놀란 성현제는 이내 말갛게 웃었다. 저 멀리서 있던 제 부인은 이내 가까워졌다.

"유진아!"

그리고 이내 뛰어들어 품에 안긴다. 그 어떤 고통에서도 마냥 상상하기만 했던 부인의 뜨거운 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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