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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현제유진] Lacrimosa

Mirror World by Hyeun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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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4월 모두의 온리에 발행한 내스급 2차 창작 팬북 입니다.

+ 주의
1. 현제유진 커플 요소가 있습니다.
2. 사망소재가 있습니다.
3. 약간의 후회공 한스푼을 더했습니다.


0.

한유진이 죽었다.

그날 한유현의 세상은 무너졌다. 형의 장례식 이후 그를 본 사람은 없었다.

1.


한낱 F급 헌터의 죽음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흔한 일이었다. 그 사람이 S급 헌터인 한유현의 형이 아니었다면 화제가 될 만한 일도 아니었다. 발길에 치일 정도로 많은 D급 던전에서 죽은 한유진의 시신을 안고 나온 사람이 유현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한유진이 죽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사망 원인은 던전에서 일어난 테러 때문이었다. 던전이 클리어되면 모든 증거가 사라진다. 그 성질은 많은 이들에게 유용했다. 정당한 길보다 빠른 수단을 강구하는 헌터들뿐만 아니라, 범죄자들에게도 선호되었다. 한유진에게 일어난 일은 안타깝지만, 그저 그뿐이라고 여겨졌다. 개인의 목숨이 한 없이 가벼운 시대였다. 그보다 한유현의 정신 상태를 걱정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오히려 한유현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형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해연의 길드원들은 내심 좋아하기도 했다. 망나니 같은 F급 헌터라니 해연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존재였다. 막말로 던전에서 봤다면 아무도 모르게 한유진을 죽였을 거라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들에게 한유현은 완벽해야 했다. 유현의 마음을 헤아리는 길드원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길드 장에게 있는 흠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S급 헌터였으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처음 한유현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김성한이었다. 그는 길드 내에 팽배한 분위기를 싫어했다. 아무리 한유진이 길드 장에게 폐를 끼쳤다 하더라도 길드원들이 가진 생각은 사람의 도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과 다르게 그는 한유현과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유진의 죽음을 추모하는 이가 없으리란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성한은 고인이 자기 생각만큼 최악은 아닐지도 모른다 여겼다. 

한유현은 상주였지만 제대로 그 일을 해내지 못했다. 넋이 나간 것처럼 관 앞에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뿐이었다. 손님이 와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사람들은 석시명이 대응해야 했다. 유진의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유현의 얼굴을 보고 결국 입을 다물었다. 

유진의 장례는 삼일장으로 치러졌다. 입관 후 화장을 했다. 봉안당에 데려가자는 의견은 무시당했다. 유골함을 받아 품에 안은 유현은 형을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장례가 끝난 후에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김성한은 그를 찾으라고 닦달하는 석시명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발을 옮겼다. 그에게 시간을 주어도 좋으련만, 현실은 한유현을 한시도 놔둘 수 없었다. 고작 25세의 청년이 홀로 세상에 남겨졌는데 그 마음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집에는 당연히 가지 않았다. 어디를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김성한은 혹시나 해 두 형제가 살던 곳으로 향했다. 각성하기 전의 작은 집은 한유현이 사들여 관리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한유현은 유골함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김성한은 일단은 길드로 돌아갔다. 후에 그때 말을 걸었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한유진의 죽음은 다른 이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한유현이 S급 이상의 던전이 터져나가든 말든 귀를 닫고 칩거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를 불러내기 위해 모두에게 유현의 오른팔로 불리는 석시명이 찾아갔지만, 끈질기게 설득을 시도하다 위협을 받아 가벼운 화상을 입은 채 쫓겨나고 말았다. 그 이후로 누구도 한유현에게 가서 던전에 들어가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물론 앞에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으면서 뒤에 가서 입방아를 찧는 인간은 어디에나 있었다. 남의 불행은 먼지와 같지만, 자신의 기분 나쁨은 매우 중요하다 착각하는 머저리들은 흔했다. 모래알 같은 인간군상 중 하나는 손가락을 쉽게 놀렸다.

'F급인 주제에 D급 던전에 들어간 모자란 형을 위해 3년 상이라도 치르려고 하냐?'

고인을 비하하고 빈정거리던 자칭 SNS 논객은 마지막 글이 올라온 후 소식이 없어졌다. 평소에 한유진을 비방해도 아무런 제제가 없던 터라 처음에는 그저 잠수인가 싶었다. 그러나 평상시에 하던 데로 한유진에 관해 쓰레기 같은 말을 지껄이던 이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저 도시 괴담이라고 하기에는 뚜렷하게 증거가 있는 무서운 일이었다. 

이 와중에도 클리어하지 못한 S급 던전은 늘어갔다. 아무도 한유현의 탓을 하지 못했다. 누구나 도시 괴담의 당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불안은 이제 공포라고 불릴 정도로 커졌다. 던전 근처의 땅은 예전에는 집값이 낮은 정도였지만 이제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버려졌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다들 날카롭게 서 있을 때, 불현듯 이런 소문이 돌았다.

'한유진이 죽은 이유는 단순한 던전 테러가 아니었다. 한유현의 걸림돌이라고 여기던 테러리스트가 의도적으로 그를 죽였다.'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조그마한 개연성이라도 확보한 이야기는 금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의 치안을 책임지던 S급 공무원이 세상을 떠난 지도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자리보전과 권력욕의 화신들은 튀어나온 못을 뽑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들의 수많은 방해 공작과 넘어오지 않는 나무를 갖겠다는 도끼질은 결국 파국을 불렀다. 송태원의 자리가 비었고, 그들이 미는 사람들이 각성자 관리실을 차지하기 위해 맹렬히 싸움을 벌이는 동안 국내는 난장판이 되었다. 그 와중에 송태원의 죽음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성현제는 세성을 들고 해외로 떠나버렸다. 

남은 희망은 한유현과 해연뿐이었다. 그의 힘에 기대 살아남은 인간들은 마치 그를 우상처럼 여겼다. 그의 발뒤꿈치라도 잡아당길 수 있는 한유진의 존재는 대부분의 눈엣가시였다. 혹시라도 한유현의 심기가 어그러질까 걱정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그들 중 누구라도 한유진을 죽이려 들 수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과 비슷했다. 그만큼 인간 사회는 망가진 지 오래였다. 이러다 가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범인을 색출해 한유현의 발아래 집어던질 기세였다. 그나마 비교적 안전하던 한국에서 던전의 위협이 피부로 와닿는 감각은 모두를 패닉에 몰아넣기 충분했다. 집단적인 광기로 발화하여서 한 나라를 불태울 장작은 충분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었지만, 해연도 한유현도 아무런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세상이 불구덩이 위에서 춤을 추기 직전에야 유능한 소방관이 한국 땅을 밟았다. 

불쾌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발을 디딘 성현제의 감상은 그러했다. 덕분에 그의 얼굴은 잔뜩 찌푸린 채였다. 나름 공들여 세운 계획이 어그러지고 귀히 여기던 사람은 죽었다. 목적이 있어서 떠난 곳에 돌아오게 된 이유로는 충분했지만, 기분이 나빠질 이유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도련님은 망가졌고."

말로 내뱉으니 현실이 더 명확해졌다. 핏줄을 지키겠다고 번견이 된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라졌다. 성현제는 한유현의 경계를 사지 않기 위해 한유진을 지켜보던 눈을 뗀 일을 후회했다. 후회를 남기고 떠난 곳에 다른 후회를 수습하러 돌아온 꼴이었다. 

아직은 한국이 무너지면 안 된다. 욕망이 많고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성현제는 일단은 세상을 지키고 싶었다. 남아 있어야 즐길 것이 많지 않겠는가. 그의 계획을 방해하는 존재는 다 지르밟아 없애야 했다. 한국은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그나마 마지막까지 사람이 살만할 환경이 조성된 땅이었다. 그곳을 잘 가꿔놨더니 분탕질을 쳐놓은 해충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칼을 갈아온 그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복수를 빙자한 해충 구제였다. 

한국을 받치고 있던 두 기둥 중 하나인 송태원을 없앤 자들이 스스로 목을 바칠 결심을 했다고 성현제에게 알렸다. 그 거래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갖춰 귀국한 차였다. 그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이 행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자발적으로 나섰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을 몰아세운 것은 다른 권력자들일 게 분명했다. 뭐, 어쨌든 그건 성현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끈 잃은 연 같은 신세가 된 이들이 포박되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꼴이 우스웠다. 이 하찮은 것들이 스스로의 영달을 위해 벌인 짓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모른다. 그게 그들의 목을 조를 지도 몰랐을 것이다. 

"민간인을 건드린다고 송태원이 질색을 하겠군."

이미 없는 사람을 언급하자 벌레들의 눈에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다. 성현제는 친히 그들의 목을 추수할 생각은 없었다. 쓰레기를 굳이 제 손으로 치울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일에 능숙한 손발은 각성하기 전부터 있었다.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고 시체를 처리할 유능한 손발이었다.

차에 타자 막힌 입을 넘어 지르는 비명이 울렸다. S급의 청력은 일반인과 다르게 엄청나게 발달하여 그들이 느낄 고통이 온전히 전해졌지만, 그것은 그에게 그저 배경음악에 불과했다. 성현제는 차를 출발시켰다. 일을 하나 처리했으니 이제 다음 일을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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