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시오, 겨울에는 겨울답게
커미션 3000자 / HL 드림
“어메, 추운 거..”
히라코는 어깨를 움츠렸다.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새하얀 김이 폴폴 나왔다. 5번대 내부는 어제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어린 대원들 어리지 않은 대원들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나와서 눈을 던지고 놀거나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대사 내에 있는 눈길을 적당히 치워놓았다.
시오는 당당하게 턱을 들고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 호정 내에서 대장보다 부대장이 앞으로 나가는 건 너뿐일 거다. 양팔꿈치를 붙잡고 어깨를 움츠리며 덜덜 떠는 저에 비해서 그녀는 추위라고는 전혀 못 느끼는 사신처럼 행동했다. 보고 있는 제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히라코 대장님, 타카야나기 부대장님 안녕하십니까!”
우리를 발견한 대원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담장 너머로 지나가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는 기척이 느껴졌다. 헛웃음이 나서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웃었다. 이 추운 겨울에 참 기운 좋기도 하지. 오늘은 대장과 부대장이 직접 훈련을 봐주는 날이었다. 이런 날에 꽁꽁 얼어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잠시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제 오랜 친구이자 이제는 제 부관인 시오였다. 안 그렇게 보이지만 제 눈에는 보였다. 귀가 조금 붉어져 있고, 목에 맨 리본 아래 뒷목에 살짝 소름이 돋아 있었다. 추운 게 분명하다. 아니, 그건 당연했다. 어깨며 다리며 드러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겨울에, 사패장 위에 대장복까지 입었는데도 추운 이 겨울에 저러고 다니니까 안 추울 리가 없지.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조금 있으면 맨살이 붉게 얼어버릴 것이다. 저는 그녀를 잘 알았다. 예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다. 그때는 현세에 있을 때였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옷을 사왔는지. 제 눈에는 영 천이 부족해 보이는.. 어떤 조각 같았다. 어쨌거나 지금 계절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여름에 자주 입는 건데.. 아니, 그러면 이 계절에는 찾기도 어려운 게 맞는 거 아니야?
히라코는 당황을 했다. 추워서 손 싹싹 비벼가며 코타츠 속으로 쏙 들어가자마자 옆에 있던 커튼이 벌컥 열렸다. 갑자기 열리는 것만으로도 놀라서 어메!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제 반응을 신경 쓰는 건지, 안 쓰는 건지 그것을 입고 나타난 시오는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뭘 어떠냐고.. 니 지금 미쳤나.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네.. 나머지는 다 어디가고. 왜 옷을 만들다 만 걸 입고 있냐. 하고 대답했다가 이마를 세게 얻어맞은 기억이 있다.
그때 그녀가 사온 건 겨울에 여름옷을 세일하는 행사에서 집어왔다는 수영복이었는데, 그녀에게는 한 사이즈 작아보였다. 그래, 그건 좋다. 여름이 되면 다이어트를 한다고 나설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겨울에 다이어트를 해서 한 사이즈 작은 옷을 입는 게 목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저걸 지금 입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옷이 어울리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 입고 있었다. 아무리 따뜻하게 꾸며놓아도 계절은 겨울이었고,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는 통에 폐공장은 얼음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꿋꿋하게 그것을 입고 거울을 바라보는 그녀의 뒷모습은 당당했다.
저 성격상 아마 마음에 찰 때까지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그것도 아주 약간. 아예 별로였으면 사오지 않았을 것이다. 미묘하게 걸리는 게 있기 때문에 자꾸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럴 거면 제 이마는 왜 때린 거야?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 추운 날 계속 저러고 서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저는 팔짱을 끼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때는 제가 코타츠 속에 앉아서 탁자 위에 얼굴을 문지르고 있을 때였고, 지금은 걸어가고 있다는 점은 다르지만. 어쨌든, 귀가 붉어지고 뒷목에 약간씩 올라오는 소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대원 한 명이 눈을 던지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춥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아, 저 바보가..!
말릴 틈도 없이 대원의 정수리를 손날로 내리친 그녀는 당당하게 팔짱을 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이 정도의 추위에 덜덜 떨면 어쩌자는 거야! 하고 말하는 그녀는 솔직히 살짝 떨고 있었다. 물론 다른 대원들은 전혀 모르는 정도였다. 서로 오래 알고 지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처럼.
그녀는 제 부관이기도 하지만 말한 대로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힘든 시간을 함께 지내왔고, 우리는 가족처럼 단단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추위에 떨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감기에 걸릴 것이다. 그녀는 곧잘 아프거나 하는 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부대장이 아프면 대장이 곤란하기도 하고. 예전처럼 슬그머니 위에 걸쳐줄 코트가 없었다. 벗어놓은 코트를 어깨 위로 감싸주면서 이거라도 입고 보든가. 하고 말했더니, 그녀는 툴툴거리면서도 슬그머니 옷을 입었다. 추운데 왜 저러고 있는겨. 하고 혀를 쯧쯧 찼지만 그 이상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제가 챙겨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하는 동료였다. 굳이 간섭할 필요는 없지만, 감기는 안 걸려야 제가 편하지.
어쨌거나 지금은 코트가 없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대장복을 벗어서 줄 수도 없고. 검지로 볼을 긁적거리던 히라코는 천천히 시오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닿아오는 살이 차가웠다.
“대, 대장님?!”
“조용히 혀라. 귀청 떨어지겠다.”
슬그머니 옷자락을 옆으로 벌려서 그녀의 몸을 제게로 가까이 붙였다. 들리는 숨소리가 조금 떨리는 걸 보니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저도 모르게 재채기를 하고 그걸 쳐다본 대원들의 정수리를 한 대씩 때려줬을지도 모르겠다.
헛웃음을 치면서 꼬옥 어깨를 붙잡고 나란히 걸어갔다. 구부정한 제 자세에 맞출 필요도 없이 품에 쏙 들어오는 그녀를 안고 조금은 빠른 속도로 발을 내딛었다. 집무실에는 현세에서 사온 난로가 있다. 그 앞에 있다 보면 몸이 조금은 녹겠지. 무심한 표정으로 시오를 힐끔 내려다본 히라코는 다시 앞을 보았다.
“그럼 잘들 놀다가 눈 다 치우고 들어가라잉.”
손을 휘적거리자 대원들은 알았다며 한 번 더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아따 목소리 좋다. 있다가 훈련할 때도 이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그동안 제게 얌전히 끌려오던 그녀는 대원들이 다 물러나고 난 뒤에야 속닥속닥 거렸다.
“뭐하세요, 지금.”
“뭐.”
“안 춥다니까요?”
“뻥을 치려면 귀 빨개진 것부터 숨기고 쳐라.”
그러자 작은 손으로 본인의 귀를 더듬더듬 만진 그녀는 흥 하고 콧바람을 내뿜었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춥기는 추웠던 모양인데. 흠. 어떤 옷차림을 하더라도 그것은 본인의 자유였다. 그것을 침범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추운 날 감기가 걸리면 어떡하려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할 생각도 없고, 만약 말한다고 해도 그녀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방안을 생각해내야 했다. 일단 오늘은 부대장을 시켜서까지 밖에 내보낼 일이 없으니까 다행이고. 저번에 사온 담요 하나를 아직 안 뜯었는데 그걸 가져다 놓으면 알아서 쓰려나. 아니, 안 쓸 것이다. 그러니까 쓰라고 말을 하고 뒤에 꼭 대장 명령이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 말을 들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나는 대장인디,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하고 약간 울컥했다가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 하는 생각이 드니까 한숨이 푹 나왔다. 우리가 어떻게 대장 부대장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사이이겠냐. 그냥..
“대장님.”
“왜.”
“일 시작하기 전에 따뜻한 녹차 한 잔 어때요?”
“춥나.”
“아니이, 그런 건 아니고요.”
아니기는. 앞만 바라보던 히라코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시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씨익 웃었다. 어떤 말로 장난을 쳐야하는지, 그 생각이 얼굴 위로 고스란히 다 드러나 보였다. 뭐든 괜찮지만.. 힐끗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어깨 위에도 오소소 돋아 있는 소름이 보였다. 일단은 빨리 집무실로 돌아가서 난로 옆에 앉혀놓는 게 좋겠다.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그녀는 말없이 저를 따라오면서도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다. 장난을 치고 싶은 표정이 얼굴 한 가득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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