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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100건 기념 리퀘. 히츠아서, 결혼

커미션 by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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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에.. 에에에?!”


 히츠가야는 제 부대장인 마츠모토의 반응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눈을 천천히 감았다. 아침 해가 쨍하고 서류는 천장에 닿을 것처럼 쌓였지만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던 그녀는 이리 오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다가왔다. 그리고 제가 내민 종이를 받자마자 엇.. 하고 조용하더니 계속 저 상태인 것이다.

 시선을 옆으로 피하면서 볼을 긁적거렸다. 민망했다. 저는 원래 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는 사신이 아니었다. 괜한 것을 드러냈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까지 놀랄 소식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말하지 말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언제까지 숨길 수만은 없다는 생각도 들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 제 상황은 신경도 쓰지 않고 손에 든 종이를 팔락거리던 그녀는 차분하게 카드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에에에! 하고 소리를 쳤다. 후.. 역시 괜히 줬군.


 “진짜.. 진짜요? 진짜로요? 대장님이?”

 “내가 가짜로 이런 말 하는 거 본 적 있었나.”

 “아뇨, 없죠. 그래서.. 에.. 에에..!”

 “그만 놀려.”


 놀리는 게 아니라 신기해 하는 거라고요! 하고 말한 그녀는 순식간에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후다닥 나가는 이의 머리카락이 팔락거리며 향기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아, 하고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집무실은 제 말을 들을 사신 하나 없이 휑했다. 붙잡을 틈도 없이 사라지는 이의 뒷모습을 그려보면서 손가락으로 이마를 꾸욱 눌렀다. 이제 소문이 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서랍장을 열었다. 안에는 아직 많은 양의 청첩장이 있었다. 이걸 제 부대 대원들에게 모두 돌릴 생각으로 가져오기는 했는데. 다시 서랍장을 닫고 한숨을 쉬었다. 제가 뱉은 숨에 종이가 팔락거렸다. 부관의 반응을 보고 있으니 이게 잘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결혼을 후회한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서류를 천천히 넘겼다. 부대장이 싸인을 해야 하는 칸에 전부 제 부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일하기 싫다고 그렇게 귀가 아프도록 말하면서 본인이 맡은 것은 철저하게 해내기 때문에 지금까지 부대장 자리에 있을 수 있던 것이었다.

 내용은 다 아는 것이었다. 늘 올라오던 종류의 이야기였고 새로운 것은 거의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를 찾아가면서 호정은 예전의 방식을 다시 찾아갔다. 물론 총대장이 바뀐 후로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말하자면 질서가 잡히고 있다는 뜻이었다.

 새로운 것이 매일 올라올 때는 정신이 없었다. 하나 하나 차분하게 다 읽은 다음 결정을 내리는데 힘이 들었다. 그나마 아는 것들이 올라오면 글을 읽는 일에도 훨씬 수월할 텐데 새로운 일은 그렇지도 않았다. 힘들었지. 흐음..

 몇 주 전 받았던 것과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읽고 싸인하고, 다음 서류를 가져와서 또 읽고 사인하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머릿속은 차분해지고 결혼 소식을 괜히 알렸나 하는 생각은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나무에 붙어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펜으로 하나씩 대장 칸을 채워가는 동안 생각은 점점 익숙한 것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제 연인을 떠올린다. 이시카와는 제게 다른 세상을 알게 해준 영혼이었다. 오로지 앞으로 가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제게 그렇지 않은 길도 있다고, 그리고 그 길을 다른 누구와 함께 걸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영혼.

 그녀를 만난 지 40년이 되었다. 어느새..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다고 말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연인으로 지낸 시간은 비록 짧았으나 그동안 수많은 사랑을 느꼈다. 함께 한다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다고 생각했고 다른 어떤 영혼을 만나더라도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잘조잘 떠드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 내가 정말 이 영혼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가만히 시선을 맞추면 그녀는 먼저 눈매를 휘어가며 웃었다. 따스한 봄날의 햇살 같은 존재. 언제나 제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그저 웃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흘렀다. 눈동자를 천천히 굴리면서 서류를 읽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자꾸만 그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존재인 것이었다. 그녀라는 영혼은 제게 늘 행복을 알게 했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늘 헤어지기가 그렇게 아쉬웠다.

 항상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싫었고 늘 보고 싶었다. 눈을 뜨면 그녀가 있기를 바랐고 함께 눈을 감기를 바랐다. 그렇게 옆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줄 수 있었고 포기해야 한다면 기꺼이 포기할 수도 있었다.

 참 어색하게 건넨 말이었다. 언젠가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고 함께 산책을 했다. 지나다니는 영혼이 없는 길에 앉아서 가만히 저 먼 곳을 바라보다가 문득 결심이 선 것이었다. 아, 함께 살아야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얼굴이 지금 내 옆에 있는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모습이 하나씩 떠올랐다. 결혼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을 때 환하게 웃던 그 얼굴. 끄덕이던 고개. 두 손을 꼬옥 마주 잡으면서 나도 정말 좋고 기쁘다고 말하던 목소리. 괜히 웃음이 나와서 히죽 웃었다가 큼큼 하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집무실 문과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눈들을 볼 수 있었다.


 “.....”

 “.....”

 “..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일 안 해?”


 우와, 대장님 봤어? 지금 웃고 계셨잖아. 하고 중얼거리는 말로 시작해서 웅성거림이 점점 번지기 시작했다. 다들 너무 신기해서 말이 안 나온다는 식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던 다른 대원들도 이야기를 듣고 다닥다닥 열린 문에 붙었는데 그 가운데 3석 한 명이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장님, 정말입니까?”

 “뭐가.”

 “결혼하신다는 거 말입니다.”

 “그래.”


 우오오.. 하고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 히죽거리며 웃었던 것도 다 본 모양이었다. 마르는 입술을 핥으면서 고민했다. 이것저것 질문하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하아.. 골치가 아팠다. 솔직히 말하면 민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건 껍질이 까진 정도가 아니라 반 갈라져 내부를 그대로 드러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치 본인들의 일처럼 기뻐하면서 박수를 치고 축하드린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뭐.. 숨기지 않은 게 잘 한 일인가.

 저는 서랍장을 열어 청첩장을 내밀었다. 눈치를 보던 다른 대원들 또한 안으로 들어와 제 책상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저는 펜을 내려놓고 그것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대장님, 축하드려요, 행복하세요.. 등등의 인사를 들으면서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문득 청첩장을 하나 꺼내 내미려고 했을 때 눈 앞에 보이는 손은 단단하고 털이 부숭하게 난 것이었다. 이런.. 손을 가진 대원이 있었나? 하고 생각을 더듬기 전에 팔락거리는 대장복과 그 위로 분홍색 옷자락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저는 고개를 들었다. 갓을 쓰고 서서 제게 손을 내밀고 있는 쿄라쿠가 보였다.


 “나는 안 주나?”

 “총대장 자리에 앉으면 조금 더 바빠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아주 허리가 휘겠다고.”

 “그런데 여기는 왜 왔지?”

 “왜 오기는. 경사가 있다는 말에 왔지?”


 음? 하고 손바닥을 흔드는 모습에 그 위에 청첩장을 얹어주었다. 옆으로 약간 비켜선 이는 카드에 적힌 내용을 읽으면서 오오.. 하고 중얼거렸다. 괜히 민망해져서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저는 뒤에 줄을 서 있는 대원들에게 다시 청첩장을 주기 시작했다.

 팔락거리면서 읽고 뒤로 돌렸다가 앞으로 다시 봤다가 뒤집어 봤다가 덮어서 보고 또 위로 높게 들었다가 아래로 쭈욱 내렸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봤다가 크게 뜨고 봤다가.. 저는 참지 못하고 마지막 대원의 손 위에 청첩장을 얹어주면서 말했다.


 “그러고 있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해.”

 “아니이~ 이런 경사가 있나 하는 생각에 말이야. 언제 이렇게 컸나, 응? 호정에 들어온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놀리지 마.”

 “놀리기는. 축하하는 거라고? 마츠모토 부대장한테 듣고 단숨에 달려온 걸 보면 모르나?”

 “일하기 싫었는데 마침 좋은 핑계가 생긴 건 아니고?”

 “자네는 차암. 내가 그런 사신으로 보이나?”


 그걸 말이라고.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싱긋 웃는 표정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츠모토에게 소식을 듣고 일을 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 우리 부대로 달려오는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그쪽도 부대장이 꽤 고생을 하겠군.

 그런데 말이야,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이지? 눈 깜빡했을 뿐인데 벌써 자네가 결혼을 하고 어쩌고 저쩌고 종알종알. 책상에 손바닥을 올리고 기대서서 조잘거리는 그의 손가락 사이에 제가 건넨 청첩장이 끼워져 있었다.


 “그래서 어떤 분인가요, 대장님?”

 “..마츠모토, 대체..”

 “그러게. 나도 궁금하구만. 한 번 말이나 들어보지. 누가 이렇게 잘 큰 히츠가야 대장을 데려가나~”

 “어휴..”


 제게 청첩장을 받고 나갔던 3석은 시원한 차를 가져와 쇼파가 있는 자리에 내려놓았다.


 “여기 앉아서 대화하시죠. 차 내왔습니다.”

 “어어, 고마워~”


 쿄라쿠는 후다닥 쇼파로 건너가 앉더니 무릎을 콩콩 때렸다. 요즘에는 잠깐만 서 있어도 너무 힘들다는 말이야. 여기저기 쑤셔서 살 수가 없다고? 하고 말하는 것을 들은 마츠모토는 과자 먼저 짚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것처럼 아, 그러면 마사지 받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이번에 새로 생긴 가게가 있는데 얼마나 잘하는지, 저 거기 다녀와서 피로가 싸악 풀렸다니까요?

 히츠가야는 펜을 들고 다시 서류에 싸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참이나 마사지와 현세에서 받았던 것과의 차이점, 기술, 사용하는 오일의 향기까지 종알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시에 저를 쳐다보았다.


 “말 안 해줄 건가?”

 “대장님, 알려주세요.”


 저는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그들의 눈빛이 저를 향하고 있었다. 제 부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얼음이 담긴 찻잔을 제 책상에 내려준 다음 다시 쇼파로 돌아갔다. 약간 목을 축이고 나니 저 눈빛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는데 자꾸만 민망함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침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살짝 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오옹, 나나오짱. 이리 와봐.”

 “대장님, 여기서 뭐하시는..”

 “히츠가야 대장이 결혼하는 사람에 대해 소개해준다고 하는군.”

 “예? 아..”


 안경을 살짝 들어올린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본인의 대장 옆자리에 앉았다. 부담스러운 눈빛이 세 쌍이 되자 저는 입술을 달싹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세 쌍이 아니었다. 이 집무실 주변에서 많은 영압이 느껴졌다.

 아마 다른 부대의 사신들도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는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다 쫓아낼까. 하지만 어차피 그들은 결혼식에 올 이들이다. 아서를 볼 것이고 그 전까지는 수많은 추측을 할 것이다. 괜한 소문에 휘둘리기 전에 제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게 나았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을 많이 가려. 민망해하면서 수줍어하지. 그런 모습 때문에 말을 자주 나누지는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천천히 풀어지더군. 잘 웃고 자주 행복해 하는 영혼이야. 뭐.. 가끔은 나도 어떤 점이 그렇게 그녀를 기분 좋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저 그렇구나 하고 있어. 타인을 배려할 줄도 아는 영혼이고. 생긴 건.. 예쁘지. 특히 머리카락이 부드러워. 만지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그리고..”

 “.....”

 “오래 만난 건 아니지만 나에게 확신을 주기도 해. 이런 일에 있어서.. 너무 급하게 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접게 만들어. 아예 떠오르지도 않아. 그냥..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옆에 그 영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


 중얼거리면서 이야기하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이군. 물어본 건 그냥 생김새일 텐데. 저는 다시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며 그들을 보았다. 창문 위로 불쑥 올라와 있는 얼굴들과 더운 바람이 들어오도록 열린 문틈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신들.

 그리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저를 보고 있는 제 부대장과 은근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총대장과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그의 부대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단 5초의 침묵이 흐른 다음 저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말해달라는 부탁에 아무런 말이나 줄줄 해버린 것 같아서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이마를 긁적거리다가 괜히 책상을 탕 치면서 말했다.


 “이제 됐으니까 다들 돌아가서 일이나 봐. 마츠모토, 이거 살펴보고.”

 “오, 대장님 진짜 사랑하시나보다. 오오..”

 “그러게 말이야? 저렇게 말하는 히츠가야 대장은 처음 보는 걸.”

 “축하드립니다.”


 붉어진 볼을 마구 문지르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제 부대장은 검지로 저를 가리키면서 앗, 대장님 얼굴 빨개지셨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에 더 민망해져서 뒷목을 손바닥으로 문질거렸다. 뜨끈뜨끈했다. 열이 오르는 것을 감출 수가 없어서 으으.. 하고 소리를 내다가 얼음이 덜그럭거리는 잔을 들어 꿀꺽꿀꺽 차를 마셨다.

 다른 대원들도 눈치를 보다가 오오~ 하고 소리를 냈고 저는 화끈화끈거리는 얼굴에서 열을 가라앉히기 위해 열심히 종이를 들어 부채질을 했다. 소용없었다. 그들의 환호소리에 매미가 우는 소리는 잠잠해지고 제 머릿속에는 오로지 아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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