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급리

제건신록 조각글 모음

과거 썼던 것 타싸 재업

찾을 때마다 추가합니다.

21.08.27

남자 혼자 사는 집 현관문에서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침대에 기댄 이는 미동도 없이 책을 읽었다. 달칵. 틀리지 않았음을 알리는 짧은 음악도 잠시, 문이 열렸다. 

 "왔어?"

 집주인 ×××, 아니, 이제는 김신록이 바라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 말에 현관문를 열던 손님, 용제건은 목도리를 풀다 말고 짐짓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김신록이 책을 보지 않았다면 징그럽다고 손사레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책에 집중하느라 용제건을 미처 보지 못했다. 용제건은 김신록이 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 약간의 서운함을 담아 껴안고 침대 위로 누웠다. 무게에 눌리는 침대 주인이 앓는 소리를 냈다.

 "손님에 대한 반가움이 너무 없는거 아니야, 신록아?"

 "방금까지 지겹도록 내 얼굴 보고 온 거 아니었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우리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역용술을 풀어도 괜찮은데. 벌써부터 새 신분을 준비하기에는 이른 거 아니야?"

 용제건의 말에 김신록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오늘이 내 장례식 마지막 날이잖아. 준비하는게 뭐 어때서.

22.01.20

이제야 생각해보면 용제건은 김신록을 사랑했던게 틀림없었다. 분명히.

용제건은 김신록의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여러 번 떠나보낸 ○○○, ○○○, ○○과 같은 전 신분의 장례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동안 바뀌지 않은 법률 때문에 절차는 거의 같았다. 다른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적호 씨, 어서 와. 아들의 장례식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네."

김신록이 없었다. 이름의 주인이 없었다. 애타게 불러도 닿지않는 이름의 주인. 때때로 신록이었고, ○○였으며, ○○, ○였던…. 인간의 이름을 쓴 친구가. 그의 아비를 알 수 없는 이름으로 불리우던 그 호랑이가. 무연고자로 차가운 관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숨이 끊어지기까지 무엇이 그리 두려웠는지 얼굴 하나 보이지 않고서는. 끝내 흙 아래로 떨어졌다.

용제건은 텅 빈 여의보주를 손에 쥐었다. 마른 입술로 조심스레 이름자를 읊었다. 매정한 친우는 답 하나 없다. 추모의 공간 밖에서 언 숨이 하얗게 올라갔다. 향 냄새 하나 없음에도 향 연기 같았다. 이제야 알아버렸지만 용제건은 김신록을 사랑했던 게 틀림없었다. 12월의 말,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눈 아래로 떨어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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