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급리

[명급리/제건신록] 안녕 나의 주인공

그래 너를 만나러 나, 짜잔 우아하게 등장 23.09.07

가수 IU의 이 지금에서 모티브를 얻어 썼습니다.

있지 저런건 그냥 자그만 돌멩이야

빛이 나는건 여기있잖아

김신록은 바쁜 사람이었다. 은광고의 교사들 중 한가한 사람은 흔치 않은 법이나, 김신록은 특히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기로 악명이 높았다. 종종 신입 교사나 나이 있는 선생은 김신록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며 저가 일을 가져가려 했으나, 어찌되었건 이 또한 신역에서 호족을 위해 하는 행동이었다.

그래도 생명체인 이상 피로는 느끼는 법이다. 할 일이 끝나지 않네. 피로를 느끼며 눈을 깜빡였다 수업자료를 준비하고 옛 제자가 보낸 공문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발급하는 것이 고작인데. 결국 오늘까지 시험문제를 다 낼 것이라는 결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 교직원 사택까지 일을 가져와야 했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자정을 넘어가는 시계를 흘끝 보았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었다. 안되겠다. 슬슬 정리하고 자야지. 김신록은 장기간 형광등 불빛 아래서 지친 눈을 비볐다.

“신록아, 눈을 비비면 안돼.”

“용제건 선생님?”

그런데 어디선가 용제건이 나타났다. 검은색으로 염색을 한 용제건이 말이다. 개인실이라는 느낌보다는 교내라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말을 높인 김신록은 불만스레 오랜 친우를 쏘아보았다, 아니, 교직원 계약은 어쩌고… 저번 크리스마스 때 기점으로 바뀌었던가? 피로에 지친 뇌는 다소 김신록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걸 가장 절실히 실감하는 게 본인이었다. 그의 낯에 서린 불만은 사라지고 그저 눈 앞의 이자가 빨리 돌아가길 바라는 소망이 그득 들어찼다. 어찌되었건 하루 끝에 지친 김신록의 눈에는 이 밤에 연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용제건의 낯이 좀 창백하게 보였다. 그래서 용제건을 바로 쫓아내고 쉬려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너 무슨 일 있어?’ 라던가 ‘왜 얼굴이 그 모양이야?’ 같은 말 중 무엇을 건넬지 고르던 찰나. 용제건은 언제 그랬냐는 듯 혈색이 돌아와 싱글벙글 웃었다.

착각이었나?

“우리 나갈까? 같이 밤에 놀러간지도 좀 됐지?”

착각인게 분명했다. 김신록은 본래 계획대로 용제건을 쫓아내기로 마음 먹었다. 김신록은 긴 한숨을 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손에 익숙한 압정이 잡혔다. 여차하면 던질 속셈이었다.

“나 피곤하니까 돌아가서 내일 다시 연락해. 갑자기 이 밤에 무슨 일이야?”

“나야 신록이가 보고싶어서 왔지. 응? 신록아. 나는 지금 같이 나가고 싶은데….”

“가서 시험문제나 내!”

“난 신록이처럼 일이 많지 않은걸.”

하나하나 얄밉지 않은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던져도 용제건은 재수없게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한 마디도지지 않고 대꾸했다. 지독한 놈! 김신록은 얄미운 그의 입을 아주 단단히 꿰메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움직이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그렇다. 졸렸다. 이 밤에 용제건을 쫓아낸다고 소란을 피우는 것도 현명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이 건물이 방음이 잘되기는 했지만, 그게 이곳에 머무는 뛰어난 플레이어들의 감을 지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결정을 해야했다. 그걸 다 감수하고 용제건 쫓아내기VS후딱 용제건의 난데없는 억지 들어주고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 들어서 다음날 항의하기.

오냐, 네 억지 한 번 들어주마. 김신록은 용제건의 손을 덥썩 잡았다. 빨리 그의 말을 들어주고 자고 싶었다. 같이 손을 잡은 용제건은 기쁜 듯 슬픈 듯 했다.

“문으로 안나가?”

“이쪽이 빠른걸.”

교칙에 적혀있는 ‘문으로 다니세요.’가 무색하게 선생이라는 놈은 김신록을 창문으로 이끌었다. 생전 한 번 맡은 적 없는 0반 담임을 맡더니 자기가 학생인 줄 아는 걸까? 그래도 그 0반은 역대 0반에 비해 조용한 편인데. 그저 호족 수장과 호족의 은인이 있을 뿐이지.

논리적으로 전개되지 못하는 김신록의 사고흐름은 용제건이 그를 안고 비행스킬을 사용하며 멈추었다. 그들은 금방 하늘을 날아 올랐다. 깊은 밤이라 그런가? 진족이 이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은광고등학교 전체가 조용했다. 김신록은 점점 멀어지는 은광고를 내려다 보았다. 결계는 그들을 막지 않았다.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용제건과 밤하늘을 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구름 아래까지 올라와 아득한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 낮에는 번잡했을 호족의 신역은 달이 뜨자 가로등 불빛이 빼곡히 선을 그었다.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신역의 모든 길을 할 수 있었다.

불과 백여 년 사이에 바뀐 도시다. 김신록은 그 전의 생김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경이에 찬 일인가?

“신록아, 하늘을 봐야지.”

여전히 힘을 개방하지 않아 검은 용제건의 머리칼이 흔들렸다. 그의 낮은 목소리가 나직히 김신록의 귀를 간질였다. 그 말에 그는 겨우 땅에서 눈을 떼어 하늘을 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천장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과 가까워지며 따라서 커진 달이.

“아래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지?”

“그러게.”

김신록은 용제건의 말에 반박하는 대신 느리게 동의했다. 꿈과 같은 상황이었다. 여전히 눈은 감기고 피곤했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미리 연락을 받고, 준비된 상태에서 봤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직 남은 작은 앙금이 용제건에게 괘씸죄를 더했다.

“정말 예쁘다.”

“맞아.”

용제건은 김신록을 응시한 채 말했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어.”

“시험기간에 말이지….”

“뭐 어때.”

이런 용제건은 정말 분하게 얄미웠다. 그래도 풍경만큼은 좋았다. 땅에도 나름의 별을 따라한 불빛과, 여전히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은 하늘에는 진짜 별들이 있다. 이런 풍경을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였지. 못해도 수백 년은 되었다.

용제건은 김신록을 고쳐 안았다. 그는 눈을 돌려 용제건과 눈을 맞췄다. 용제건의 눈이 접혔다.

“우리 해돋이도 보러갈까?”

“뭐? 새해도 아닌데 무슨 해돋이야?”

“하지만 이미 가고 있었어,”

언제 실실 웃었냐는 듯 용제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그러고보니 땅의 풍경이 익숙한 신역의 모습이 아니게 된건 언제부터였지. 아까부터 하품이 나오던 김신록은 정신을 차렸다. 잠이 달아나고 부아가 치밀었다. 피곤하다니까 이 용은 도무지 들어먹질 않는다. 여기서라면 사택과 달리 좀 싸운다고 들을 주변이 없었다. 허공인게 좀 문제긴 하지만.

“너 지금 안내려놔?”

“응,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기다려봐.”

“지금 내리라고!”

“하지만 신록이가 먼저 나랑 안놀아줬잖아. 나에게 하루만 빌려줘.”

“야!”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다. 용제건은 꼬박꼬박 김신록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용제건은 여전히 김신록을 붙잡은 손을 풀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어디 도망갈까 싶은지 다시 손에 힘을 쥐었다. 김신록은 그의 얼굴을 찬찬히 훑다 한숨 쉬었다. 대체 무엇때문인지 이 용은 제 딴에는 진지하고 초조해보였다. 어찌되었든 공통점은 현재 여유가 없음이다. 고작 해돋이 하나가 무엇이라고.

김신록은 피곤했지만, 그의 친우를 위해 하룻밤 정도 할애 못하지는 않았다. 아무렴 하나뿐인 친우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랴.

“딱 이번만이야.”

결국 김신록은 투덜거리며 압정을 주머니에 넣었다.

“고마워 신록아.”

무슨 생각하는지 짐작도 안가는 용왕신의 탕아는 별명답게 친우의 속을 뒤집으며 김신록을 고쳐안았다. 밤공기가 제법 차갑다.

용궁 인근의 서해로 갈 줄 알았던 용제건은 고작 해돋이가 무엇이라고 한참을 내려왔다. 남해바다로 가고 싶었는데. 아직 해가 뜨기는 이른 시간이었으나, 이 속도로는 한참을 날아도 그가 바라는 곳을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용제건은 아쉬워하며 김신록을 내려놓았다. 오랫동안 배 위에 서 있다 땅을 디뎠을 때와 같은 감각 때문에 잠시 어지러웠다. 김신록은 균형을 잡으며 양발로 섰다. 용제건은 그 와중에 해돋이 명소로 찾아왔다.

김신록은 야식을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새벽부터 밖을 나오면 피곤한 법이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하늘 위에 있었더니 서늘했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시간은 더 남았다. 어디 들렀다 가기 딱 좋았다.

마침 편의점이 있었다.

“저기 들렀다 가자.”

“좋아.”

용제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 문을 열면 시끄럽게 딸랑이는 벨소리가 야간 앏바생의 잠을 깨운다. 이 인근에 사는 대학생일까? 풀다만 토익 교재가 낯익었다. 김신록은 옆에서 뭘 고를지 묻는 용제건을 쫓아내고 온장고 속 따끈한 유리병 두유 두 병을 꺼냈다. 용제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으면서 무엇도 고르지 않았다.

알바생은 새벽에 찾아온 30대 후반 남성들 앞에서 하품을 하며 계산했다. 어쩐지 김신록도 그 모습을 보며 피곤해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딱 지금 자면 좋을텐데.

편의점을 나왔다. 여전히 새벽공기는 애매하게 차가웠다. 김신록은 용제건의 품에 두유 한 병을 안겨줬다. 용제건은 두유 병을 만지작거렸다.

“안 마셔?”

“응. 그럴거 같아. 나중에 신록이가 마셔.”

그리곤 말과는 반대되게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여전히 하늘은 어두웠다. 땅에서는 아까만큼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손에 유리병을 굴리던 김신록은 해안가로 발을 옮겼다. 해가 뜨려면 얼마나 기다려야할까? 생각보다 길고 짧을 시간일게 분명했다.

용제건은 그토록 여유가 보였으면서 해안가에 내린 때부터 소원을 다 이룬 것처럼 굴었다. 둘은 해안가 벤치 대신 모래사장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보았다. 썰물이라 물이 빠져나가기 바빴다.

마치 꿈과 같았다. 오늘 많이 피곤하기는 했다. 방금까지는 호족의 신역에 있었는데, 어느새 바다라니. 어두컴컴한 바닷물이 잠길 것처럼 깊어보였다. 고작해야 무릎이 잠길 높이일테도 말이다.

모래를 깔고 앉아 바다소리를 들으며 해가 뜨기만을 같이 기다리던 용제건은 무슨 생각하는지 김신록에게 물었다.

“신록아, 약속 기억나?”

“언제?”

“입학시험 전에.”

작년 입학시험 전에 무슨 약속을 했던가? 김신록은 기억을 더듬었다.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때는 아마 입학시험 준비를 한다고 바빠서 무슨 약속을 못했던 것 같은데…. 용제건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같이 새해 해돋이 보러 가기로 했었잖아.”

“그건.”

재작년이잖아. 김신록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보니 그 뒤에 약속을 해두고 병원을 오간다고 못갔었다. 다 기억하고 있는 용제건도 한 마디 말이 없었었다. 고작 1년이었는데,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약속 직후에는 보안 문제 때문에 바빴다. 올해 초에는… 그래, 이 용의 승천 때문에 못갔다. 그래서 2년이나 지났는데 그 중 한 번도 같이 해돋이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같이, 다시 보고 싶었어.”

“말을 하지.”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지만 잊은 게 멋쩍었다. 올해 초 분명 용제건이 그 말을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마지막이 되었을지도 몰랐으니 같이 보았을 터였다.

“내년 새해라도 같이 보면 되잖아.”

시간은 많았다. 내년에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겠지만, 별일이 없다면 같이 해돋이 보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을 것이다. 용제건은 한참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잘못했나? 김신록은 자기 말을 되짚어보다, 검푸른 바다를 보는 용제건의 옆얼굴을 보았다. 용제건은 바다 속에서 그리움을 찾고 있었다. 먼 그리움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무언가를 회상하는 눈.

그는 친우를 따라 검푸른 바다를 보았다. 부서지는 파도의 흰 거품은 아까보다 멀리 가 있었다.

저 멀리에서 태양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맞아. 내년 새해에는 꼭 같이 보자.”

바다의 파도는 검푸른색이 아닌 태양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밝게 빛이 났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났다. 태양은 모든 악몽을 물리칠 것처럼 찬란히 떠올랐다. 하얀 물거품도 태양빛을 받아 눈이 부셨다.

김신록은 인기척이 사라진 옆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식은 유리병 두유 하나 만이 남아있었다.

“…용제건?”

아니, 그가 있던 자리에는 빛바랜 동그란 돌멩이 하나도 남아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용제건의 여의보주처럼 동그란 모습이었다. 그러나 김신록은 금이 가고 부수어진 그것을 알지 못한다. 틀림없이 닮은 돌이었다.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김신록의 귀에는 이제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멀어진 파도 소리만이 남아있었다.

새벽 해가 떠올랐다.

플마고 용씨가 오라달콤한적폐2차마법의힘!으로 명급리 신록이를 만나러 온 이야기<입니다

용제건은 퍼클 이후, 김신록은 2학년 2학기 중간고사<즈음을 생각하고 썻어요(트위터에 올릴 당시 썼던 내용)

진짜 후기.

몇 달 전에 쓴 글이지만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쓸 당시에 노래를 듣다가 그냥 자그만 돌멩이~ 부분에 갑자기 꽂혀서… 전체적인 노래 가사가 플마용이 급리신록을 안다면 만나러 오겠구나라는 생각에 급하게 쓰게된 것 같습니다. 원래는 노래 가사에 맞추어 놀이공원 데이트도 하고 끝나지 않는 불꽃놀이도 보다가 어느새 사라진 용제건…과 시간 맞추어 나타난 급리용을 보고싶었는데 쓰다보니까 안어울리더라구요.

그러다 문득 플마고 세계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별이 없었으니 해가 떴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수혁이가 죽었으니 뜨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대리 만족하라고 용제건에게 같이 일출을 보게 해줬습니다. 이 세계는 조의신이 있는 세계니 틀림없이 해가 뜨겠지요?

주저리가 너무 길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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