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상희]침잠하지 않는 뭍
플마고 날조…….
충동의 심해 https://pnxl.me/mr3sjh 와 이어지는 글입니다. 보지 않으셔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원우야.”
“응?”
“입 맞춰볼래?”
그 충동적인 말이 도원우를 잡아끌었다. 그러나 도원우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다.
그는 차라리 자신 또한 끝도 없이 심해 속으로 잠기기를 바랐다.
**
머리가 조금 아팠다. 도원우는 자신이 읽어야할 문서를 읽으면서도 도통 집중하지 못한다. 시간이 나면 단신으로든, 학생회 일원들을 이끌고서든 에너미를 처리하러 갔어야 할 유상희가 오늘은 학생회실에 가만히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도원우는 이러한 비일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직감이었다.
……다만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원우야.”
“응?”
“입 맞춰볼래?”
그렇기 때문에 도원우의 동요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래, 도원우는 유상희의 말에 분명하게도 동요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상희는 위태로웠고, 도원우 자신은 유상희의 불행을 기회로 삼을 수 없었다. 뒤를 지키는 것만이 유일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이 불행을 유상희가 극복하기를 바라면서. 평온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그는 말문을 잃는다.
유상희는 여전히 불행하다. 햇빛 아래에 서서 아스라이 웃고 있는 여자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복수심과 분노라는 잔해를 들고 그것을 원동력 삼아서, 불가능한 복수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도원우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유상희의 뒤를 지켰다. 돌아봐주지 않을 것임을 알았지만, 무력감이 온 몸을 집어 삼켜도 도원우는 유상희의 평온을 바랐다.
……그것은 사실 예정된 끝이다. 그들은 평생 이렇게 살 것이고, 끝까지 평온하지 못할 것이다.
도원우는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아도, 예지스킬이 없어도 벼려진 플레이어의 감이 말해주었기에 알 수 있었다. 유상희는 자신의 결심을 돌이키지 않을 것이기에, 그 끝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안 돼.”
도원우의 동요는 온전히 유상희의 것이다. 그는 침묵하다가, 외면을 택한다. 어느새 제게 조금 더 가까워진 유상희의 모습은 확연하게 야위어 있어서, 그저 가슴 한 구석이 와르르 무너졌다. 항상 단정하고 온화하던 모습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유상희는 더 이상 발 붙일 뭍이 없기 때문이다.
“왜? 하고 싶은 게 아니었어?”
상희야, 네 불행이 내 기회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도원우는 애원하고 싶었다. 내뱉는 숨에 물기가 어렸다. 살짝 떨리는 것 같기도 하다. 도원우가 원한 것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니야, 상희야. 아니야……. 너 답지 않아. 나는……네가 힘든 걸 이용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난 하고 싶어서 말하는 거야, 원우야.”
도원우는 알고 있다. 유상희는 지금 디디고 설 뭍이 없는 것이다. 한치 앞 보이지 않는 미래를 걷는 유상희는, 그저 분노만을 원동력으로 삼고 나아가고 있다. 정확히는, 그 끝없는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혀서 그 안으로 계속해서 침잠하고 있었다. 기약 없는 복수로 자신을 버리는 것을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러므로 침몰이었다.
끝도 없이 늪으로, 혹은 심해로…….
그래. 유상희는 가라앉는 중에 잡아채야 할 곳을 찾았을 뿐이다. 그저, 그것이 자신일 뿐이다. 도원우는 이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냥 행복한 유상희의 곁에서 당당하게 서고 싶었을 뿐이었으므로…….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무력감에 잡아먹힌다. 자신의 뺨을 감싸오는 상처 하나 없는 손은 뼈대가 도드라질 정도로 마르고 창백했다. 유상희는 그 날 이후로 말랐다. 멀리서 보아도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야윈 모습이었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서…….
“그래. 하고 싶어서 말하는 거야. 해보면…… 알 것 같아졌어.”
그게 정말로 네가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 도원우는 창백한 안색으로 입술을 달싹 거렸다. 그렇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렇게 묻지도, 유상희를 밀어내지도 못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유상희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발 디딜 곳 없어 가라앉고 있는데……. 자신이 잡아채야 할 뭍이 되었다면, 도원우는 그저 유상희를 잡아야할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상희야…….”
가라앉는 그 끝에 바닥은 있을까?
아, 상희야. 차라리 내가 너를 따라 심해로 가라앉을 수 있다면 좋았을까.
그는 이대로 사라질 것만 같은 유상희의 팔을 잡고 자신의 고개를 조금 더 위로 들어올린다. 그것은 다소 절박한 손짓이다. 잡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침몰해버릴 것만 같아서.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도원우의 눈가를 간질였다. 입술로 닿아오는 냉기에, 유상희의 팔을 쥔 손이 애처로울 만큼 떨렸다. 아까 전까지 확인하고 있던 종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쓸렸지만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냉기어린 숨을 삼키며 도원우는 파르르 떨리는 눈을 들어 유상희를 본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그 사이로 드리워진 상실감을.
굳어버린 도원우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숨은 차디차고, 입 안으로 들어와 삼키는 감정은 쓰디썼다. 사랑하는 이와의 키스는 달다고 하던데, 왜 이 입맞춤은 그저 씁쓸한 잔향만을 남기는 것인지.
도원우는 유상희를 잡아끄는 그 상실감을 더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그저 유상희를 붙잡을 뿐이었다. 이 이상 침잠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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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침잠하지 않는 뭍이 되기를 바란다. 언제든 유상희가 발 딛을 곳이 있기를 바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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