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드테티, 우연한 만남
커미션 7000자 / HL 드림
여기는 어딜까. 동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지? 테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으리으리하게 크다 못해 곧 하늘에 닿을 것처럼 뻗은 나무들과 빽빽한 나뭇잎에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고개를 한껏 젖히고 있어서 뒷목이 약간 저릿 거릴 정도였다. 양옆을 살피며 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아는 얼굴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게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더 좋았다.
나뭇잎이 특이하게 생겼다. 꼭 주둥이가 뾰족한 동물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았다. 입을 벌리면 정말 뾰족한 이빨이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김새라고나 할까. 어떤 동물을 닮은 것 같기도 한데. 악어? 그것보다는 주둥이가 짧다. 그럼 페리카나? 아니야. 그건 입이 크잖아. 그럼..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발밑에서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저 나뭇잎이 마르면서 떨어졌는데, 그게 발에 밟혀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는 저것의 이름이 너무 궁금했다. 동료들도 찾아야 하고, 그들도 저를 찾고 있을 텐데.. 고개를 위로 들고 있으니 잘 보이지 않아서 아래를 보기로 했다.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은 쪼글쪼글하게 변해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살짝 굽혔다. 참 이상한 모양이다. 이런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하긴, 여기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다.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은 모든지 다 있다. 그러니까 이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제 상상력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
악어와 페리카나 그 사이에 어떠한 동물 같은 나뭇잎을, 말라 비틀어져서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것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 저를 크게 불렀다.
“여자!”
“아..?”
“사람이 바로 옆을 지나가면, 놀라는 척이라도 해야지!”
옆으로 지나가? 슬쩍 눈동자를 돌려 바로 옆을 바라보았다. 발자국대로 나뭇잎이 부서져 있었고, 유스타드가 걸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것도 꽤 가까운 거리에서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 지나간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 해적단은 대체 위기감이라는 게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고 중얼거리더니 제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저는 물러서지도 다가가지도 않고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다가올수록 제게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멍하니 올려다보는 일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왜 그러지? 가까워질수록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을 드러내는 것은 그였다.
아, 나미가 절대 경계하라고 했는데. 뒤늦게 떠오른 동료의 충고에 팔짱을 끼고 눈썹을 높게 치켜 올렸다. 똑같은 포즈를 하고 ‘이, 이렇게?’ 하며 물어봤을 때 로빈은 웃었고 나미는 한숨을 쉬면서 이마를 짚었지만, 그들은 제대로 무섭게 보이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거라도 해야지.
그리고 가슴을 힘껏 내밀며 몸을 부풀렸다. 물론 그의 몸에 비해서 제 몸은 한없이 작고 초라했지만, 이거라도 꼭 하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그는 경계할 대상인가? 우리와 동맹을 맺은 사이 아니었나? 세상에 나쁜 해적은 많다고 하지만, 그는 좋은 해적이 아니었던가?
“..뭐하냐?”
“..아니야.”
테티는 잔뜩 부풀렸던 가슴을 내리고 머리가 띵하게 아프도록 치켜 올렸던 눈썹도 내렸다. 끼고 있던 팔짱도 풀고 약간 민망해져서 볼을 긁적거렸다. 그는 중얼거렸다. 도대체 경계라는 걸 눈곱만치도 안하는 이유가 뭐야, 날 편하게 대하는 이유가 뭐냐고, 너네 일당은?!
경계를 안 하기는! 하고 대꾸를 하고 싶었다. 방금 힘껏, 아주 힘껏 했는데 못 알아봤잖아. 안 하는 것만큼 못하니까, 그래서 안 하는 거라고.
로빈이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상대가 더 우습게 볼 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내가 방금 전 너를 경계한 거라는 것을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가까이 다가온 이는 무슨 말을 못하겠다며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근데 여자, 너 혼자 왜 돌아다니고 있냐?”
“아, 길을 잃어서..”
“..진짜 경계를 안 하는구나.”
눈을 깜박거리며 바라보았다. 그건 저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근처에 우리 동료가 숨어 있다가 너를 공격하기 위해서 나를 미끼로 쓰는 걸 수도 있잖아? 물론 그런 행동을 할 애들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아주 만약에 말이야. 경계하지 않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면서.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쉬며 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저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가던 길을 마저 걸어갔다. 이번에는 하늘에 있는 나뭇잎이나 땅에 떨어진 나뭇잎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잘보면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이 저를 부르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귀도 쫑긋하게 세워야 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정말로 못 찾을 수도 있었다.
그건 곤란했다. 여기는 해적들 천지니까. 원래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어떻게든 제 동료들을 찾아야 했으나.. 앞에 먼저 가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저 남자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는 저를 가지고 동료들에게 협박을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 다시 말해야겠다. 그렇게 보이기는 했으나,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저는 전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서 밀짚모자 해적단의 일원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노리면 저를 노릴 확률이 아주 컸다. 동료들도 늘 저를 지키면서 싸움에 임하고는 했으니까. 그런 게 짐처럼 느껴지는 마음을 덜고자 2년간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 노력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몸이 저절로 긴장 되었고, 뱅뱅 돌아가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멈췄다. 그를 읽어야 했다. 다음에 무슨 수를 쓸 지 알아야 적어도 피하는 척은 할 수가 있었다.
마음이 바뀐 건가? 이제 와서 공격이라도 하려고? 그의 능력이라면 지금 당장 저를 데리고 우리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본인의 동료들을 불러 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 너무 방심한 탓인가. 온갖 생각으로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제 예상과 다르게 멈춰선 그는 저를 휙 돌아보면서 짜증스럽게 말했다.
“왜 따라오는 거지?”
“.....”
“내게 볼 일이 있는 거라면 말을 하던가, 해. 따라오지 말고.”
..따라가는 거 아닌데. 그렇게 말하려다가 말았다. 지금 저는 동료들을 찾는 중이었다. 오는 길에 그들은 없었고, 다른 방향으로 향하면 지금 오던 길마저 잃어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가는 길을 쭉 가는 게 나았다. 그게 이 방향이었다.
오히려 저를 따라오는 건 그가 아닌가? 아까는 반대쪽으로 걸어갔으면서. 그러고 보니까 방향은 왜 꺾은 것일까? 볼 일이 있어서 가는 거 아니었나. 설마..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이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 남자도 길을 잃었나? 없어진 동료들을 찾는 건가?
그는 제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었는지 갑자기 큼큼하면서 헛기침을 했다. 아아, 아마도 맞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날 보고 따라온다고 말하는 걸 보면 혼자 찾기는 심심했나보지? 이번에는 왼쪽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시선을 피하면서 얼굴을 획 옆으로 돌렸다. 으리으리한 나무들이 서 있는 것을 어설프게 훑어보면서 코웃음을 친 그는 더듬더듬 입술을 열었다.
“뭐,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그냥. 반대쪽으로 가던 길 같았는데, 갑자기 이쪽으로 가길래.”
“이쪽에 볼 일이 생각난 거야. 여자, 따라간 게 아니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는 머리처럼 붉어진 표정으로 씩씩거리더니 몸을 뒤로 돌려서 쿵쾅쿵쾅 앞으로 걸어갔다. 저에게 해를 가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그와 가까이 있는 것이 제게 도움이 된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치고 나니 그는 훌쩍 멀리 가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뒷모습이 다 생생하게 들어올 정도의 거리는 됐다.
사실 저 남자의 실력이라면 저를 따돌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귀찮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관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는데. 자꾸 힐끔거리는 걸 보면. 나중에 루피를 만났을 때 내 흔적을 발견하고 루피가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서 그런가? 왜 두고 왔냐고, 이 위험한 곳에 저만 두고 다니면 어떡하냐고 따지다가 싸움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쨌든 그를 잘 따라가는 게 제게 도움이 되는 길이었다. 어쩌면 그는 길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긍정회로가 팽팽 돌아갔다. 길을 알고 있어서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해적들이 잔뜩 있는 곳으로.
솔직히 거기서 그가 저를 지켜줄 의무는 없었다. 우리의 동맹은 끝이 났고, 사실 동맹이라고 해봤자 얼굴도 몇 번 보지 못했고, 이렇게 같이 있는 것도 조금 신기하기는 한데. 그는 자꾸만 궁시렁거렸다. 하여간 너네 일당은, 하는 말로 시작된 궁시렁거림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저 말에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험담을 했으면 상황이야 어찌됐건 버럭 화를 냈을 테지만, 그는 어쩐지 화를 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아는 사이라고는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궁시렁거리던 그도 말을 멈추고 조용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따라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화를 내면서 발을 굴리고 욕을 약간 하기도 하더니, 지금은 그것도 지쳤는지 아니면 듣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까 민망해졌는지 아주 조용해졌다.
사박사박 발소리만 울렸다. 그를 따라가는 동안 해적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까는 몇 명 만나기도 했는데. 그때는 숨어서 잘 피했지만, 그의 덩치라면 숨기도 힘들 것이다. 아. 아니지, 다가올 해적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음. 아무리 막 나가는 해적이라도 다들 목숨 귀한 줄은 아니까.
숲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 엄청나게 큰 공간은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어쩐지 더 안으로 깊게 들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향을 잘못 선택한 걸까. 저는 여기저기 숨고 도망 다니면서 동료들을 빨리 찾는 법을 익혔다. 그게 몸에 습관처럼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제 본능은 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이쪽으로 가면 누구든 한 명은 만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더 깊어지고 빽빽해져가는 큰 나무들을 보면서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떡하지. 이 길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동안 이 험한 바다에서 목숨을 잃지 않은 것에는 어느 정도 제 노력과 그들을 찾으려는 저의 본능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니. 온전히 그들에게 기대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었다니. 제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어떻게 동료들을 찾아가지..
어두운 생각이 찾아들면 감각은 둔해진다. 약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제 귀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린 후였다.
“테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약간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러자 날아오는 화살이 정확하게 흩날리는 제 머리카락을 뚫고 나무를 향해 꽂혔다. 파르르 떨리는 화살깃을 바라보고 있는데 무작정 몸이 오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어? 하고 생각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유스타드의 팔이 제 몸을 꽉 쥐고 있었다.
날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그의 품속이었다. 깜짝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는데 표정이 상당히 험악했다. 화가 난 루피의 표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를 꽉 물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는데 묘하게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착 가라앉아서 차분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는 제 몸을 쥔 손에 살짝 힘을 풀었다. 마침 조금 세게 잡혔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거대한 철이 작게 찰그락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에게 거의 안긴 채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거대한 나무 뒤에서 꽤 많은 무리들이 걸어 나왔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라서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최근 밀짚모자 해적단과 동맹을 맺었다더니 사실인가보군.”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냐.”
“숨길 필요 없어. 그 여자를 감싸는 순간부터 다 말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여기까지 오면서 조금씩 다른 해적들의 흔적을 느끼기는 했다. 잘 숨어온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맞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저를 찾고 있던 게 분명했다. 시선이 전부 저를 향하고 있었다. 손에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현상금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얼핏 넷 정도 되는 해적단이 서로 손을 잡은 것 같았다. 우리 동료들을 넘기기 위해서는 저를 먼저 잡아야 하는데 마침 딱 좋게 떨어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서야 공격을 하는 이유는 아마 앞에 있는 남자를 봤기 때문이겠지. 상황이 차근차근 머릿속에서 맞춰지는 동안 그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착각 하지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저를 놔줄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러니까 저들에게 넘길 생각 같은 건 조금도 없어보였다. 그들은 무기를 내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를 이리로 넘기면 밀짚모자의 목을 넘겨서 받은 현상금을 주겠다나 뭐라나. 울컥하는 마음에 소리를 치려고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그보다 빠른 웃음소리가 제 말을 막았다.
저는 그에게 가만히 안긴 채로 눈동자를 굴렸다. 너무 크게 웃어서 귀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귀를 막을 생각은 없었다. 비틀거리며 올라간 입술 끝이 말하고 있었다. 참 웃기는 소리들을 하는군, 누가 누굴 넘겨?
“착각하지 말라고 했지.”
“뭐?”
“난 이 여자의 목숨을 구한 게 아니라 너희들의 목숨을 구한 거다. 감히 누구에게 손을 대고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지?”
건방 떨지 마라. 짧게 뱉어내고 반대손으로 제 다리를 감싸 안은 그는 마치 공주님을 안은 것 같은 자세를 하고 그대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제게 조용하게 속삭였다.
“꽉 잡아라, 여자.”
“에.. 으악..!”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떠오른 그는 날아오는 물건들을 전부 발밑에 쌓아두고 화살과 칼과 총의 탑 위에 사뿐하게 올라섰다. 그리고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공중에 발을 대면 발사된 수십 개의 총알이 발판을 만들었고, 수천 개의 칼등이 길을 만들었다.
그러나 저를 공격하는 이들도 거친 바다를 건너온 해적들이었다. 그들 또한 공중으로 뛰어 올라와 공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계산에는 철저하게 저만 들어있던 것이 분명했다. 절대 유스타드를 공격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빼앗겨서 가슴에 찔려 떨어지는 사람, 마구 쏘아댄 총알이 공중에 멈춰 그대로 떨어지는 걸 보고 허탈해 하는 사람, 그 모습에 겁을 먹고 슬쩍 뒤로 빠지는 사람..
그는 날아오는 공격을 여유롭게 쳐내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들이 가져온 철이 매끄럽게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저 멀리서 써니호를 발견하고 팔을 쭉 뻗었다.
“저기 있다!”
“가만히 있어.”
“저기까지 데려다 주면 안 돼?”
“내가 무슨 여자, 니 기사인 줄 알아?!”
눈 밑이 붉어져서 버럭 소리를 지른 이는 흥 하고 콧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겼다. 써니호가 있는 방향이었다. 다들 나를 찾고 있을 텐데.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를 발견할 지도 모르니까.
테티는 팔을 흔들었다. 이건 괜찮다는 뜻이었다. 저는 다른 해적들에게 잡힌 적도 많고 괴수들에게 잡힌 적도 많았다. 해군들에게 잡히는 건 다 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그 과정에서 저는 입이 막히고,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도 그들에게 제 안전을 전하는 법을 배웠다. 바로 팔을 높게 들고 흔드는 것!
양팔을 들고 버둥거리자 그는 가만히 있으라고 고함을 치다가 결국 포기를 하고 제 몸을 더 단단하게 받쳤다. 곧이어 써니호 근처에서 반짝거리는 움직임이 보였다. 저건 프랑키의 어깨였다. 그는 일부러 둥근 어깨에 빛을 반사시켜서 제가 잘 볼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동료의 신호를 받고 나서야 만족해서 팔을 내리자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화살들이 순식간에 비처럼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피가 터지고 비명이 들렸지만 그는 평화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니들의 신호냐?”
“.....”
“이번에는 왜 말이 없어?”
그야 이런 거 절대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조로가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렇게 당부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게 마음을 열어준 그가 해준 경고인 만큼 저는 꼭 그것을 지키고 싶었다.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고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허.. 하고 헛숨을 뱉은 그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눈치도 좋고 괜찮은데, 화가 조금 많았다. 그래보였다. 착한데.. 사실은 되게 착한데. 가만히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은 감쪽같이 사라진, 차분하고 서늘했던 표정을 떠올렸다. 그런 부분에서도 루피랑 잘 맞고. 그래서 동맹을 했나?
“그런데 이대로 직진하면 이 녀석들이 너네 배에 흠집을 낼 지도 몰라.”
“괜찮아. 써니호는 강하니까.”
“니 동료들..”
“내 동료들도 강해.”
“그런데 너는 그 강한 동료들 두고 왜 혼자 돌아다니다가 이 고생을 하는 건데?”
눈앞에 다가온 남자의 목이 순식간에 베어졌다. 피를 탁 털어낸 칼날은 다시 등을 내밀며 길을 만들었다. 가만히 듣다보니 이상하게 비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테티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유스타드를 향해 말했다.
“그건 키드,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뭐?”
“길 잃어버렸지? 솔직하게. 그래서 내가 따라오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우리 동료들 만나서 너네 동료들 찾으려고 했던 거지?”
“아니거든?”
아니기는.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거 다 봤다, 뭐. 메롱 하고 혀를 내밀었더니 그는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이대로 던져버리겠다며 협박을 했다. 그러면서도 몸을 받치고 있는 팔은 여전히 단단했다. 저를 던질 생각은 하나도 없어보였다.
그때 밑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의 공격은 하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를 향했다. 동료들이었다. 써니호에 있던 로빈과 쵸파가 달려 와줬나 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그가 슬슬 발판을 바닥 가까이로 줄였다.
“이제 가.”
“왜? 저기까지 데려다 주면..”
“그리고 자각 좀 해. 넌 밀짚모자 해적단의 일원이라고. 나는 너를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 여자.”
“하지만 키드, 넌 그러지 않을 거잖아.”
아, 이런 말 하는 거 아니라고 우솝이 그랬는데. 말실수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한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우솝이 그랬다. 아무리 그런 상황이 왔다고 해도 속일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모든 것에 솔직해지면 좋지 않다고.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솔직히 버럭 하고 화를 낼 것 같아서 어깨를 움츠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제 당당한 발언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것처럼 입술을 살짝 벌리고 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았는데, 그가 만든 발판은 천천히 줄어들었고, 밑에서 부르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양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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