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중

煝露

나는 너를 생각하기에 귀히 배운 어리석음으로 답한다.

煝露

나는 너를 생각하기에

귀히 배운 어리석음으로 답한다.

“네 옛 귀인들은 화를 낼 때 그리 내라고 가르쳤나 보구나. 귀인이라 칭하기엔 부족함이 있는 분들이었나 본데. 허면 너희가 인간이니? 심장도 뛰지 않으면서.”

창자가 꼬였다. 심장이 성냈다. 골치가 아팠다. 그 말마따나 도구에게 없는 기관이었다. 학습에 불과한 착각이었다. 제 어깨 위로 얹혀진 미로의 손짓은 이 빌어먹을 몸뚱어리에 지독히도 현실감을 안겨다 주었다. 현신인 저에게 감각을 허하는 기관이 지당하겠나! 그리하여 옛 귀인의 가르침은 내 분수에 따라 무위로 돌아갈 허상이었나? 현신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시대에 걸맞는 진리를 가리는 세뇌에 불과하였을지도 모른다.

비수처럼 던져진 말이었다. 움켜쥐고 놓지 않은 소중함을 절하하였다. 무형의 발화가 제 사고의 근간을 강타했다. 여려니는 일순 경직되었다. 뛰지 않는 심장 탓인가? 그저 생각을 멈추었고, 감각을 거부했다. 시간이 말라붙었다. 현신의 몸뚱어리가 아니라, 여려니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존재로서 사유도 행동할 의지도 그쳤다.

여려니는 죽음을 체감했다. …, …, ….

그럴 수는 없지! 치미는 본성이 팔딱팔딱 박동했다. 절명이라 일컫는, 사고의 정지는 억겁 같은 찰나뿐이었다. 실로 창졸간이었다.

부여받지 못한 인격을 채워가는 자로서, 태생적으로 지니게 된 신격을 행하는 자로서. 오래전의 사람을 떠올렸다. 자의식이 지금보다 더 방만하니 원초적으로 날뛰었던 무렵, 낮은 탁상 앞에 저를 앉혀두고서 인간 아이에게 훈학을 하듯 가르치던 그 시건방진 작자를. 옛 귀인 중 하나였다. 제 신도의 주인 된 자였다. 진지한 낯짝으로 무어라 거들먹거리며 저란 존재를 생으로 뜻매김했었지? 어찌 살아가라 하였더라?

‘사유할 줄 앎으로써 생이라 부를 지니,

당신이란 존재를 부정하지 마시오.

끊임없이 사유하여 생을 증명하시오.’

‘또한 사유는 신념을 부르는 법이오.

자타가 분별 되듯, 본인에게는 그릇된 소신으로 읽힐지언정

타자에게는 삶을 연명하기 위한 생의 이치이니 존중하시오.’

비루한 소원으로 태어난 저는 인간을 알아야 했다. 그들에게 얹혀살며 그들로부터 배워나갔다. 그들은 제 삶의 시초였다. 그러니 그들, 귀인을 손가락질하면 저의 존재 자체를 모욕하는 일과 마찬가지이지 않겠나. 하여서 제 옛 귀인을 격하하고, 그의 가르침을 부인하고, 종국에는 저란 존재를 도구로 취급하는 자를 보았다.

미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미지를 직시했다. 저 인격체는 아껴온 모든 걸 감춰버릴 안개였다. 이름 두 글자와 달리, 아직 그를 알지 못한 까닭으로 제게는 이슬처럼 투명하지 못하였다. 빛나기는커녕 제 성질을 돋우고 있지 않나! 모른다는 이유로 옳지 않다고 단정 짓지 않겠다. 아, 그래, 역시 나는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존중하여 내 삶을 밝혀야겠다. 우리를 도구라 부르는 신조가 있다면, 그에 마땅한 네가 살아온 삶이 있겠지. 옛 귀인의 말대로 너를 품어야지. 아무렴! 나는 대인배 현신이니까.

여려니는 입을 열었다. 잿빛 시선에 불티가 튀었다.

“심장이 뛰어야만, 인간이어야만! 감정을 품을 수 있냐? 고장이 났다고? 감정이 없는 편이 편할 거라고? 허!”

 

대화를 위해서는 그 머리 숙일 줄 알라고 하였던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이다. 그 이상으로 말주머니를 다듬는 건 여전히 무리다.

“한 수 접어준다. 네게 도구라 정의되어도 좋아. 생각하는 도구를, 삶을 살아가는 도구를, 귀히 여길 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도구를! 존중하지 않는 너는 사람으로서 도리는 갖추었고?”

“인간으로 났으면 그 값어치를 해야지.”

“같이 살아가는 현신에게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어? 네 뜻대로 아무것도 못 느끼고 도움만 주다 사명을 다하는 걸로 족하겠냐고. 도구로 우리가 잔재해 있으면, 진실로 편안해지든?”

이번 차례는 나의 몫이렷다. 여려니는 미로의 어깨를 붙잡았다. 단순히 보이는 물상으로서가 아니라, 접촉으로써 현존하는 제 온 생을 보이겠다는 의지였다.

찬란한 과거, 귀애하는 이들과 보냈던 시절들. 명성이라는 광휘를 잃고 그들은 흙으로 돌아갔으나, 홀로 남겨진 현신이 닳고 닳도록 반추하여 사라지지만은 않았다. 아끼고 사랑하였던 이들이 빚어낸 소산물이 곧 저였다. 상념의 끝에서 눈쌈을 벌였다.

 

“날 때부터 함께한 사람을, 인간과 기생한 내 삶을 부정하지 말아. 살아있는 나를 똑똑히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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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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