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모모] 밴드 if. 下

모모가 다리를 다친 시간선까지 리바레(밴드)가 이어졌다면, 시공의 뒤틀림을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봐주세요.

빠레빠레 by 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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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덜컹. 웅성웅성.

레일을 따라 철 덩어리가 사람을 태우고 움직이면서 나는 소리는 일정하면서 불규칙적이다. 유키는 자기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덜컹거리는 차체의 움직임을 요람의 흔들림으로 승화시켜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편지라는 것 자체가 특별했다. 팬레터라는 종이 쪼가리는 여러 차례 받아보았지만, 특별한 장식이나 그림 없이 손가락으로 쓸어내렸을 때 부드러운 질감만 전해주는 질 좋은 종이로 쓴 편지에는 유난히 선이 얇은 글로 가득했다. 그러면서 군데군데에 찍힌 볼펜의 잉크 자국은 진하게 남아 뒷면에서도 그 자국이 보였다. 반이 읽어보라고 재촉하지 않았으면 읽지 않고 많은 편지에 섞여 묻혀버렸을 텐데 어떻게 보면 이제까지 중 가장 밋밋한 편지는 유키에게 가장 값진 말을 담고 있었다.

가장 소중히 여기었던 길이 끊겨버렸다고 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 왔는데 다 허사가 되었다고. 편지의 주인에게 그 정도의 사건은 난생처음이라, 주변의 격려에도 구멍이 뻥 뚫린 마음이 서글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고. 그러다 유키와 반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고. 연주를 듣게 된 계기가 유키가 준 티켓이었다고. 언뜻 누군가나 듣는 모두를 향해 화를 내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가치를 몰라주는 것이 분했을 뿐이라고 전하는 노래, 어제의 나, 이제까지 노력해 온 나를 격려하는 노래. 만약 사실은 의도와 다르게 들었을 뿐이라 해도 분명 나에게 노래가 닿았다고. 들려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반복되는 감사의 말, 응원.

난생처음이었다. 노래에서 의미를 찾아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울렸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유키는 그게 기뻐서 편지가 구겨지지 않게 소중히 쥐었다. 부적처럼 들고 다니기도 했다. 하도 꺼내 읽는 탓에 요새 너한테 봄이 찾아온 거 아니냐고 웅성이는 팬이 많다며 반이 한숨을 쉬기도 했다. 봄. 그러고 보면 편지의 주인은 이름에 봄이 들어가 있었다.

“봄이 찾아왔는지도 몰라.”

웃으며 말하자, 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같이 웃어주었다. 넌 그때부터 내게 봄의 목소리를 가져다주었다.




한 시간 가까이 전철 속에서 흔들리고 내려서는 인파에 휩쓸려 겨우 도착한 스튜디오는 드물게 지하에서부터 지상 3층까지가 모두 연습실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모모는 늘 그렇듯 물어보지 않아도 궁금한 부분과 궁금하지 않았던 부분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 해주었다. 친구의 친구에게 추천받은 곳인데 친척이 하는 곳이라 모모에게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다고. 보통 친구의 친구에게 그렇게까지 해주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구태여 묻지 않았다. 물을 타이밍이 이미 지나가기도 했고. 핑크색에 검은 숫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키링이 달린 열쇠를 받은 모모가 10번 방으로 앞장서 들어갔다. 적당히 넓은 방에 세팅된 드럼, 키보드, 앰플, 라디오랑 음원을 틀 수 있는 노트북. 모모가 펼쳐준 파이프 의자에 앉아 오는 길 내내 등에 이고 온 케이스를 내리고 기타를 꺼냈다. 미세조정을 하는 동안 모모는 오는 길 쉼 없이 열리고 닫히던 입을 꼭 닫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어떤 표정이지? 기뻐 보이지는 않는데. 여기 오기 전에 뭘 했더라?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현을 튕기자 그제야 아까 전의 불씨가 기세를 되찾았다. 맞아. 음악.

“하자.”

“────예?”

“이번엔 내 곡을 연주해야 하잖아.”

“어, 그, 그런 약속… 했던가요?”

“약속? 모모는 나랑 같은 밴드인데 음악을 하는데 약속이 필요해?”

“그건……”

재촉하자 모모가 눈썹을 팔 자(八)로 기울이며 다른 파이프 의자를 끌어와 드럼 앞에 앉았다. 평소에 쓰는 드럼은 아니지만, 자주 연습을 함께 해 와 익숙하다고 했다. 모모가 들어 본 노래를 휴대전화에서 골라 그대로 앰플과 연결해 재생 버튼을 누르고 기타를 잡았다. 간주가 흘러나온다. 스틱이 반 박자 늦게 시작을 알리며 연주가 시작되었다.



녹음된 키보드의 멜로디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잔진동을 이어가는 심벌즈를 손가락으로 눌러 음을 잡아내 연주를 완전히 끝낸다. 들어오거나 나가는 타이밍은 처음을 제외하면 악보대로였고, 쓸데없는 힘을 싣지도 않았다. 그래도 역시 최악이야. 반의 노래로 끌어올려진 모모의 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반짝반짝 시야의 바깥에서부터 시작되는 듯한 반짝임이 둥실둥실 떠올라 하늘 높이 오르더니 폭죽이나 탄산 거품이 터지듯 색색으로 빛나며 경쾌한 소리가 퍼져가는 감각. 이제까지 내 안에 없던 상냥한 음색. 드럼 자체는 부드럽기보다는 거친 음을 내는데 그 속에 모모의 상냥함이 담겨 있었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포근하고 상냥해서 더 많은 사람이 내 음악을 통해 이 음색을 더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전혀 네가 없어.”

“윽.”

모모의 눈에 금방 물기가 스며 들었다. 금방 울기나 하고. 화를 참지 못하고 또 버럭 소리를 치려는 걸 간신히 참아 내고 고개를 저었다. 반은 어떤 술수를 써서 모모에게서 음악을 이끌어 냈다. 화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 하나는 확실하니까 무턱대고 화낼 수는 없다. 유키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주스라도 사러 가자. 사줄게.”

“네!? 아, 아뇨. 제가, 제가 사 올게요!”

“두 번 말 안 해. 자판기 있어?”

“───저쪽이요….”

먹는 거로 낚는 게 좋다고 어딘가에서 들었던 것 같다. 휴게실로 쓰이는 곳에 자판기나 작은 매점이 있어 모모는 시선을 바쁘게 움직이다 겨우 분홍색 음료수를 골랐다. 모모(복숭아)랑 링고(사과) 스파클링. 모모 같은 음료네.

“모모 같은 음료네.”

“네!? 아, 이름이 비슷하죠? 그래서 마셔봤다가 빠지기도 했고요. 모모링이라고 불러요.”

“모모링.”

“헉, 유키씨 입에서 굉장히 귀여운 단어가 나오다니……”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아뇨. 그럴리 가요! 엄청 귀여웠어요!”

“그래. 음. 모모는 이게 좋은 거지?”

“네!”

좋아하는 걸 종종 사주면 되려나? 모모에게서 받은 모모링과 물 한 병을 함께 계산하고 있는데 매점 옆에 있던 문이 열리더니 맨 먼저 나온 녀석이 모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스노하라! 마침 잘 됐다!”

“노부! 왜 그래?”

“드디어 곡을 다 만들었는데 3자의 귀로 평가를 듣고 싶거든. 너, 듣는 귀가 좋잖아. 잠깐 시간 돼?”

“아….”

모모가 바라보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왜 비 맞은 강아지처럼 올려다보는 거야? 그래도 고개를 끄덕여주자, 꽃봉오리가 펼쳐지듯 웃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뒤에는 복슬복슬한 꼬리가 흔들리는 게 보여져서 꼭 처음 만났을 때의 광견을 떠올리게 했다. 아니, 정확히는 모모와는 티켓을 팔면서 처음 봤다고 했지. 기억에는 없어도 편지에서 그랬다고 했으니까.

모모는 노부라는 녀석이 준 이어폰의 한쪽을 받아 자기 귀에 끼우고 폰 화면이 보일 만큼 옆으로 바짝 붙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붙어야 하나? 할 일이 없어 휴게실에 있던 등받이 없는 네모난 소파에 앉아 물로 목을 축이고 있는데 바로 앞에 있어서 그런지 모모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매번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눈꺼풀 사이로 숨기고 이어폰을 낀 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인 모습은 어쩐지 새로웠다. 그러고 보면 모모는 늘 새롭게 만든 노래를 들어보라고 권해도 극구 사양하면서 새빨간 얼굴로 자리를 피하기 바빴다. 밴드에 속하고 나서는 헤드셋을 꽉 잡고 미간을 찌푸리기 바빴고. 그런 모모가 지금은 편안한 표정으로 그러면서 진지하게 노래와 마주하고 있다. 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분이다.

“와, 와아! 오늘 밤을 달리자! 하는 느낌이 최고야!”

“그거야 그거! 마침 좀 있으면 여름 축제니까 그때 연주하려고 만든 곡이거든.”

“축제에서 공연…… 멋있겠다.”

“시간 되면 놀러 와! 무대 난입! 대환영!”

“오오~ 이 실력 급상승세를 타고 있는 드러머 모모쨩의 연주를 감당할 수 있을까나~.”

“네 드럼, 같이 연주하고 있으면 평소 이상으로 더 좋은 소리가 나는 느낌이니까. 우린 언제든 환영이야.”

하?

유키가 소파에서 일어나자 근처에서 쑥덕이고 있던 둘의 시선이 꽂혀왔다. 유키가 일어나 성큼 모모의 앞에 섰다. 평소의 초목을 뜯어 먹으며 느긋하게 낮잠을 자는 소에서 빨간 깃발을 눈앞에 둔 성난 소처럼 무서운 기세를 내는 탓에 모모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갔다. 스스로가 뱉은 발언을 되짚어 보아도 유키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말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슬그머니 옆으로 눈길을 주자 모모랑 비슷할 만치 안색이 질린 노부가 시선으로 윽박질러왔다. 이 잘생긴 사람 왜 이래?!

“너……”

“네!”

“나랑 음악을 할 생각이 없으면 연주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돼.”

멱살이라도 잡아 올릴 것 같았던 유키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유키 씨!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나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사람 많은 도심에 자리한 거대한 소음이 그것을 덥썩 삼켜버리고 말았다.





*





스튜디오에서 빠져나와 발 닿는 대로 걷다 보니 금방 지쳐버렸다. 앉을 만한 곳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웬 강아지가 앉아 있는 동상 주변으로 벤치가 놓여있어 보이는 빈자리로 가 주저앉았다. 홧김에 나온 탓에 기타는 물론, 휴대전화도 두고 와버렸다. 음료수를 사주는 명목으로 나왔던 덕에 간신히 지갑만 들고 있는 상태인데 그마저도 100엔짜리 세 개와 10엔짜리 네 개뿐이라 집으로 갈 수도 없게 됐다. 여기 너무 멀지 않아? 모모는 틈만 나면 가마쿠라로 넘어와서 연습하고 돌아갔는데. 언제나 쓴소리 한 번 안 하고 한 시간은 넘게 걸리는 데다 한 번 가는 데만 600엔 넘게 드는 거리를 소화해 내고 있었던 모모를 떠올리자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숨이 쏟아져나왔다.

유키라고 모모의 노력을 모르진 않는다. 모모는 편지의 주인공인 만큼 이제껏 밴드 음악은 커녕 아이돌 음악도 제대로 듣지 않고 축구 외길만 걷던 아이인데 리바레라는 밴드가 무대를 할 수 있도록 생전 처음 드럼을 잡아다 유키의 눈에 들 만큼 실력을 쌓았다. 불합리한 화를 얻어먹어 눈물을 방울방울 흘려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와 주었다. 무대 위로 올라와 주었다. 그게 정말 기뻤으니까. 그래서 유키는 모모까지 포함해서 리바레의 음악을 하고 싶어졌다.

뜻대로 되지 않아서 문제지만.

“이제 와서 팬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어쩌지.”

유키가 바닥에 닿아있던 두 발을 끌어와 무릎을 감싸안고 몸을 웅크렸다. 소금기가 없어서 그런지 평소 맞던 바람보다 조금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이 지금만큼은 혹한의 추위만큼 매서웠다. 그러면서 역시 후덥지근함이 몸을 덮쳐와 올라오는 불쾌감이 화를 부추긴다.

절대 안 되지. 다른 실력도 모르는 밴드랑은 잘도 연주하면서 내 노래로는 역량껏 연주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돼? 내 음악에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쏘아붙이는 거랑 다를 게 뭐야.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제풀에 지쳐 푹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이 더위에 화를 지속시키기에는 체력이 부족하다. 반한테 데리러 오라고 할까. 주머니를 더듬어 보는데 잡히는 게 없다. 맞다. 두고 왔지. 유키가 앉은 자리에서 축 늘어졌다. 오늘따라 멋대로 말을 걸어오는 여자도 없어서 결국 근처에 보이던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10엔을 넣고 어렵게 기억을 더듬어 반의 번호를 하나씩 눌러 나오는 전자음을 가만히 들었다. 반이 데리러 와주면 기타는 어쩌지. 모모가 나중에 가져다주려나. 아니, 내가 그만두라고 하고 나왔잖아. 진짜 그만두나?

“여보세요.”

“반. 모모가 밴드를 그만두고 싶다고 해도 받아주면 안 돼.”

“뭐? 유키 너 휴대전화는 어디 두고 공중전화로 전화하는 거야? 아니, 이건 됐고, 모모 군이 밴드를 그만두기는 왜 그만둬.”

 

“...... 아무튼 받아주지 말라고.”

“너…… 모모 군한테 뭐 잘못했냐?”

“모모가 먼저─”

“백 보 양보해서 모모 군이 잘못 했다고 해도 네가 새로 드러머 구해올 거 아니면 얌전히 빌어라. 화해하고. 차 끊기기 전에는 들어오거나 여차하면 모모군네에서 신세라도 지고 와. 그럼.”


“어? 야? 반!”

뚜─ 뚜── 뚜──……

정말로 끊어버렸다. 데리러 오라고는 말도 못 했는데. 결국 유키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박스에서 나왔다. 반 녀석. 모모가 밴드에 들어오고 부터 팬일 때보다 챙겨주는 기색이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차별해도 돼? 지금 억울한 건 나잖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 구멍이라도 뚫린 듯 휑해진 마음이 갈증을 불러왔다. 화보다는 우울함이 밀려오는 탓에 기세가 누그러지면서 처연한 분위기를 내는 유키는 주변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그러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의지를 다지고 다가가려고 할 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왔다. 많은 사람들의 웅성임에도 절대 시들지 않는 또랑또랑한 목소리.

“유키씨!!!”

“모모!”

목소리에 놀라고 익숙한 모습이 시야에 담겨 눈을 동그랗게 뜬 유키가 모모를 한눈에 담고, 모모는 그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유키에게 달려왔다. 헐떡이는 낌새 없이 잔뜩 빨개진 뺨이나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이상으로 물기로 가득 찬 눈망울이 워낙 서럽게 보여 유키는 드물게 자기가 잘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그게. 잘못했어요! 쫓아내지 말아 주세요!”

“뭐? 내가 언제?!”

“네? 유키씨가 좀 전에 밴드 그만두라고……”

“아. 그건 네가 내 음악을 좋아해 주지 않으니까….”

“그럴 리가요!?! 아니에요. 유키씨의 노래는 언제나 매번 최고인걸요! 저는, 유키씨의 마음도 모르고… 그래도 전 그냥 유키씨가 진심으로 자신의 전부를 담아 만드는 음악에 불순물을 더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결국 모모가 와앙, 소리 내고 울어버렸다. 잘못했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 이상으로는 더 이상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말이 뭉개져서 유키는 남들의 시선 이상으로 모모의 눈이 녹아내릴까 걱정이 돼 연신 눈물을 닦아주었다. 한 손으로는 눈물을 닦아주고 한 손으로는 어린애한테 사탕을 쥐여주듯 손을 잡아주자, 그 손을 꼬옥 잡고 뚝뚝 눈물을 흘렸다. 유키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눈물이 많은 게 모모였는데 그런 모모도 오늘만큼 운 적은 없었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만 울어. 사실 이 일에 관해서는 여전히 모모가 나빴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만큼은 내 잘못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면 그만 울 것 같아서.

“아니에요!! 제가, 잘 모르고, 히끅. 고집 피워서.”

눈을 희번덕하게 뜨면서 버럭 소리를 치다 다시 눈물에 잠겼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겨우겨우 노부가, 밴드가, 음악이. 끊어 끊어 나오는 단어를 주워들어 잡은 손을 살짝 끌어당겼다.

“알았어. 스튜디오로 돌아가자.”

거기로 가면 그 쓸데없이 부러운 노부라는 놈이 설명해 주겠지.




*




훌쩍이는 모모와 손을 잡고 돌아와 스튜디오에 남아있던 노부에게 여차저차 들은 설명으로는 유키가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간 다음 노부의 재촉을 받아 모모가 그에게 상황을 알려주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키보드를 쥐고 살다 밴드까지 하게 된 그는 유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만들어내는 음악에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어 유키의 기분을 모모 이상으로 이해해 냈다. 그걸 유키 이상의 언변으로 모모에게 알기 쉽게 전달했다. 유키의 음악을 제대로 연주해주지 않으면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모독이다. 어떠한 배려 없이 충격적인 발언을 고스란히 들은 모모는 절규하다 유키를 찾아 뛰쳐나갔다. 짐을 모두 두고 간 탓에 멤버를 먼저 해산시키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부가 상황 설명을 끝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통이 너무 부족하지 않아? 밴드의 기본은 원활한 소통이라고.”

“내, 가 음악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안 해서…….”

“모모 넌 충분히 했어. 너 드럼 공부하면서 알바도 계속하고 있잖아.”

몰랐다. 반한테도 들은 적 없었는데. 노부가 시선을 느꼈는지 눈썹을 삐딱하게 하고 말을 쏘아붙였다.

“얼굴 번지르르한 그쪽은 뭐 해줄 말 없어요?”

“.......”

처음이랑 인상이 좀 달라진 것 같은데. 그래도 겨우 찾아온 타이밍이다.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고 모모와 눈을 마주 보았다. 양 눈가가 빨개져서 내일이면 퉁퉁 부어있겠지. 지금 돈으로도 얼음주머니 정도는 사줄 수 있을 것 같다.

“난 모모 말대로 내 모두를 음악에 담아내고 있어. 나한테 있어서 중요하고 소중하고… 뭣보다 좋아하니까. 내 음악을 신도 벌레도 좋아해 줬으면 해. 그러다 반이랑 밴드를 하게 되어서 반과의 음악까지 사랑받고 싶었어. 이젠 모모가 더해진 음악도 사랑받고 싶어. 그래서 모모의 연주를 해줬으면 했던 거야. 밴드는… 그러니까… 멤버가 다 같이 해야 하니까?”

어떻게 말을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밴드는 다같이 해야 하니까. 같이 하려면 호흡이 맞아야, 친해져야 하나? 모모랑은 좀 더 친해져도 좋을 것 같다. 보고 있어서 심심하지 않고. 응.

“모모랑 친해지고 싶은데. 일단 오늘 모모네 집에서 자도 돼?”

“네?????”

“친해지면 모모도 연주하기 편할 테니까. 이게 좋겠다. 가는 길에 얼음주머니도 사줄게.”

“네??????????”

눈가만 아니라 얼굴부터 입을 가린 손까지 새빨개진 모모가 바쁘게 눈을 깜빡였다. 가린 입도 뻐끔뻐끔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아 손을 뻗어 치워내자 생각대로 입을 뻐끔거리고 있다. 잡힌 손에 열이 가득하다.

“내일부터 당분간은 나랑만 연습해. 반한테는 비밀로.”

연습해서 이번에는 반이 분해서 벌벌 떨게 만들어 줘야지. 모모의 방에서 잤다고도 자랑해야겠다. 벌써부터 친해진 기분이라 유키가 활짝 웃자 결국 모모의 얼굴이 펑. 터져버렸다.


후술

여기서의 둘은 서로만이 서로의 지지대가 아니라서(조명사고가 없으니까)

원래의 세계관보다 뾰족하고 어리게 적어보려고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실제로도 원작보다 둘 다 어리고!)

그래도 유키는 이후에 모모의 연주를 1000% 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거고 친해지려고 할 거고 그러다 상냥해질 거예요.

복풍과 태양으로 나그네 옷을 벗기려면 태양이 직빵이니까 👍

다만, 여기서의 모모는 유키 옆에 여전히 반이 있고 둘에게 감동을 받아 인원충원을 해주려고 밴드를 시작했을 뿐이라 언제든 나갈 수 있게

마음속으로는 울타리에 늘 발을 걸친 상태? 둘만의 밴드를 이상적으로 보고 있어서? 원작 이상으로 동등한 관계 되기 어려울지도…… 힘내라.

(여기서 최고로 힘든 건 이 둘을 감당 해야하는 반이겠죠. 힘내2)

모브인 노부는 이름은 적당히 지었는데 성격은 모모의 지인이라면~을 상정해서 적어보았어요.

뭐랄까 모모 주변 지인은 텐 같은 스타일이 제법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모모가 에이 괜찮아~ 하고 환불 못 하고 있으면 대신 가서 따박따박 따져서 환불 해올 것 같은 st)

사실 그냥 이랬음 좋겠다 싶어서 넣었어요.

처음엔 그냥 드럼치는 모모가 보고 싶었을 뿐인데

연주 제대로 못 시켰네. 이건 유키가 멋대로 성내고 뛰쳐나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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