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모모] 비너스와 지저스

주의! 모모가 바보임

나나계 by 휘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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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슈퍼스타가 되면, 나랑 사귀어 줄래?"

공연이 끝난 무대 뒤 대기실. 반 씨는 나랑 할 말이 있다는 유키 씨의 말에 먼저 자리를 비우고, 나는 긴장한 채로 서 있었다. 모모 군, 좋아해. 어딜 봐도 잘못 들은 것 같은 말에 눈을 끔뻑였다. 이어지는 줄기찬 고백. 유키 씨에게서는 절대 들을 수 없을 법한 말들이 내 귀에는 마치 속사포처럼 들렸다. 그도 그럴 게,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마지막 문장밖에 내게 닿지 못했다. 

슈퍼스타가 되면….

──그 뒤에,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그런 거, 당치도 않아요!"

헉. 사지를 쭉 뻗으면서 눈을 떴다. …꿈이었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당장 몸을 일으켜 머리를 짚었다. 아니, 이건 평범한 꿈이 아니다. 마치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한 장면이다. 뭐지? 잊고 있었던 기억? 아,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런 일을 잊고 있었다고? 스노하라 모모세, 너 제정신이냐?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유키가 자신에게 하는 스킨십이 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탓에 고삐가 풀렸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때는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 그냥 장난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스킨십이 진행돼서 키스가 되고, 술 알딸딸하게 마신 후에 섹스가 되어 결국엔 '평범한 동료지만 가끔 키스하고 섹스하는 사이'가 된 지금까지도 유키는 그냥 파트너로서 나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빅 이벤트를 잊어버릴 수 있냔 말이다…. 어쩌다가 잊어버렸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저 사건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기는 대충 짐작이 되는데… 내가 머리를 다친 적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예전에 별 이상 없는데 구급차에 실려갔던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1 [누나, 물어볼 거 있는데]

1 오전 9:32 [혹시 나 응급실 간 적 있었나? 예전에]

아니, 아니. 이건 너무 경우 없지. 그리고 구급차 탄 적이 한 번 더 있었다.

 1 [시합 때 다친 거 말고]

1 오전 9:35 [무슨 일 있어서 물어보는 거 아니니까! 갑자기 어렴풋이 생각나서 =͟͟͞͞(•̀ω•́ ‧̣̥̇) ]

휴… 전혀 기억은 안 나지만 일단 물어보기는 해야지. 진짜 중요한 용건이라 어쩔 수 없었어. 미안해, 누나…. 나도 이렇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유키가 나한테 고백한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서 물어봤다고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없잖아!? 유키한테도 누나한테도 실례라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실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되짚어 본 사실은 아래와 같다.

1. 유키는 나한테 고백한 적이 있다

2. 유키는 내가 그걸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게 전혀 기억에 없고, 나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단순한 유키의 변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 유키를 좋아해서, 짝사랑이라고 생각한 탓에 눈물로 밤을 지샜던 날들이 말도 안 되게 바보같이 느껴진다. 우, 우리 사실 서로 좋아했던 거야…? 물론 5년 넘게 지났으니 유키가 지금은 날 안 좋아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단 말이지…. 나에게 친밀하게 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오히려 요즘이 더 LOVE를 잘 표현하게 됐다고나 할까…. 난 그거, 그냥 '내 하나뿐인 파트너 모모♡'를 표현한 줄 알았지!

…근데 왜 고백 안 하지? 생각해보니 이것도 의문이다. 처음으로 BLACK OR WHITE 종합우승을 한지도 벌써 몇 년. 슈퍼스타라고 하면 이미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고백의 기미 따위는 전혀 없었고…. 생각해보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엄청나게 달려 왔지. 지금도 바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 거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 하기로 했고. 

…그렇다는 건, 조만간 유키가 다시 고백을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 가깝게 구는 건 가깝게 구는 거지만, 제대로 고백도 안 받고 어영부영 넘어가는 것도 제 성미에 맞지 않아서.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유키가 고백해오게 만들어야겠다. 내가 하는 건 좀 그렇잖아. 얘기하다 보면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는 걸 들킬지도 모르고…. 나 유키 앞에서는 마음 단단히 먹은 게 아니면 거짓말 못 한단 말이지. …차일지도 모르고. 설마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유키는 이제 나한테 홀딱 빠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노력해야지. …누나의 래빗챗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고, 마침 오늘은 유키랑 만나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유키 이 잠꾸러기! 오늘은 같이 데이트 하기로 했잖아?"

유키네 집에 도착해서, 이불을 들추면서 유키를 깨운다. 아직까지 집에서 자고 있는 못된 달링에게는 키스 폭탄입니다! 뺨에 쪼옥, 뽀뽀를 하고 유키를 흔들어 깨우지만 여간내기가 아니다. …뽀뽀하고 나서 괜히 또 부끄러워졌지만. 연인 사이도 아닌데 이런 거 하는 거, 역시 이상한가…. 역시 유키한테 고백 받고 싶어.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날 좋아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확신할 수는 없어서. 내 기억의 착각은 아니겠지?

그래도 오늘은 유키가 힘내서 일어나준다. 우와, 유키 이렇게 밍기적거리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었어? 물론 집까지 깨우러 오기는 했지만, 약속한 시간에서 조금 지났지만…! 혼자서 잠을 깨려고 5초에 한번 하품을 하면서도 씻으러 가는 걸 보면 기특해 보이기만 해서. 역시 난 유키를 너무 좋아하나봐. 아니, 이건 다 유키가 미남인 탓…?

유키의 이불 위에서 데굴거리면서 유키의 살 냄새를 잔뜩 맡고 있으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물건이 방 안에 놓여 있는 게 보인다. …어라, 쇼핑백? 저거 남성 악세사리 브랜드의…. 방금 제 머릿속에서 떠오른 상상에 벌떡 일어나 뺨을 쥐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저거 혹시 나한테 주려고 산 거 아니야…!?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 보니 예쁘게 포장된, 아직 뜯지 않은 쥬얼리 케이스가 보인다. …못본 척 해야지. 난 모르는 사실이야. 그, 그래도 이따가 유키가 몰래 가지고 나올 수 있게 자리를 비워줘야겠지…?

유키가 욕실에서 나올 때가 되면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방 밖으로 빠져나와 거실로 향한다. 휴, 심장 두근거려…. 머리까지 말리고 나온 미남이 다가오는 걸 애써 모른 척 한다.

"누-구게."

"으음, 누구지? 이 손은 분명히… 미남의 손! 냄새도, 좋은 냄새 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미남일까냐?"

배시시 웃으면서 제 눈에 덮인 유키의 손을 떼어내면 유키도 따라 웃는다. …하아, 목욕 가운 걸쳐서 몸 보이는 거 엄청 섹시…. 침을 꼴딱 삼키면 유키가 만류해와서.

"오늘은 외출 데이트잖아? …그런 건 오늘 밤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아,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요!?"

"후후, 거짓말."

"…정말, 알겠으니까 얼른 준비하고 나와."

유키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아까의 쇼핑백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오늘, 고백 받았으면 좋겠다…. 오늘이라는 보장도 뭣도 없지만, 유키가 다른 사람에게 그런 거 줄 리 없잖아. 아무래도 오늘이 아닐까…? 유키가 방 안에 들어가서 깔끔하게 옷을 입고 나올 때까지, 뺨이 계속 따끈따끈한 채다. 너무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 한번 생각하니까 멈출 수가 없어서. …이렇게 멋있는 사람 상대라고? 두근거리지 않을 리 없잖아. 유키가 옷을 다 입고 나오면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시선이 갔다가, 그대로 얼굴로 향한다. 알고 있다는 티를 내면 안되는 거겠지…!

"나갈까?"

"…응!"

"오늘은 저녁에 야경 멋진 호텔에서 식사할 생각이니까, 늦잠 잔 것 정도는 봐줘."

멋지게 차를 몰면서 유키가 하는 말에 나는 속절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런 날에 호텔에서 식사라니, 보통 고백이겠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으니까. 

영화관에 벚꽃이 가득한 산책로를 지나, 카페까지 간 후에야 호텔로 도착한다. 내가 스치듯 말한 가고 싶은 카페, 기억해주고 있다니… 유키 진짜 멋지지 않아?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에 유키도 나를 좋아하는 거야, 역시. 하고 생각하게 되지만. 진짜로 야경이 멋진 자리에 예약을 잡아둬선, 직원의 안내에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린다.

"예약해뒀다고 해서 엄청 놀랐어… 유키, 자고 있었으니까 분명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리 없잖아. 모모랑 같이 있는 오프, 나도 기대하고 있었어."

에헤헤…. 유키의 말에 발그레 웃고 있으면 테이블 위에 얹은 손에 유키의 손이 겹쳐져 온다. 깜짝 놀라서 유키를 바라보면, 부끄러워 하고 있는 모습이 뻔히 보여서. …정말, 유키는 못 말린다니까. 이쪽도 손을 꼭 잡는다. 다정한 유키 때문에 계속 두근거려서,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오늘 데이트의 목표를 잊어버리고 있었을 정도니까.

…슬슬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인가? 조금 아쉬운 마음을 담고 유키를 바라본다. 티가 나지는 않았겠지만 일어나자는 눈짓으로 안 건지 유키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으로 밖으로 향하면, 유키가 제 옆에 살짝 붙어 귓속말을 해온다. 얼굴이 단숨에 빨개질 만큼 자극적인 목소리로. 

"…사실 방도 잡아놨는데. 갈래?"

…정말,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안 따라가고 배기겠냐고.

…속았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속은 건 아니지만. 유키 자고 있어. 물론 할거 다 하긴 했는데… 당연히 잠들기 전에 선물 주면서 고백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반질반질한 얼굴로 잠든 유키를 보고 뺨을 부풀린다. 얼굴은 이렇게 잘 생겨서 원망하지도 못하겠고. 대체 고백은 언제 할 거야? …지금까지 안 했으면, 가망 없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직전까지 몸을 섞었는데도 괜히 서러워져서. 이제 나한테 관심 없는 거야? 파트너로서만 좋은 거야…? 파트너로서만 좋은 거여도 나한테는 정말로 기쁜 일이지만, 이렇게 할 거 다 하면서 고백만 쏙 빼놓다니 너무하잖아. …아아, 내가 해봤자 차일 것 같아. 엄청나게 달콤한 분위기였는데…. …내 몸만 목적인 건가. 예전처럼 좋아해주지는 않는 거야? 유키한테 사귀자는 소리, 듣고 싶었는데…. 킁, 코를 훌쩍이며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것도 몇 달. 중간에 수 번의 오프와 고백 타이밍이 있었는데도 아직 고백을 받지 못했다. 스스로 고백할 용기도 없으면서 이렇게 바라기만 하는 거, 비겁하지…. …그치만 유키가 싫어할까봐 걱정 돼. 유키의 마음을 확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불안해지기만 해서….

…그래서, 술을 잔뜩 먹여서 실토시키기로 했다.

"…유키, 유키. 듣고 있어…?"

"으응. …모모, 취했어?"

"아니이, 안 취했어…."

취했을리가 없잖아. 이 정도로…. 물론 엄청나게 많이 마시기는 했는데. 유키가 한숨을 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뭔데 한숨 쉬는 거야, 유키 바보. 맛있는 안주를 잔뜩 만들어주면 술 많이 마시게 되는 게 당연하잖아…?

"…정말, 유키는 내 맘도 모르고…."

"…그러니까 말하라고 계속 얘기하고 있잖아. 들어준다니까?"

유키도 내 투정을 받아주다가 슬슬 인내심이 끊어지기 시작했는지 목소리에 참는 기색이 묻어나온다. 그래도 유키가 나빠. 이럴 거면 그때 왜 고백한 거야. …그치만, 누나한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보증도 받았는걸. 반 씨랑 유키랑 같이 라이브 하던 날에, 끝나고 내가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거. 그냥 열이 펄펄 끓었는데 무대 돕다가 쓰러진 거라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그 대사건을 잊어버린 건 아마 그 탓일거다. 아마 그 당일에 고백 받은 게 아니었을까.

"…유키."

"왜, 모모."

"지난번에 그 악세사리, 뭐야…?"

"악세사리…?"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얼굴을 찌푸리곤 고개를 갸웃거린다. 모르는 척 하기는. 대체 그거 누구 선물이었던 건데…? 여성용 브랜드도 아니었으니 그런 쪽으로 질투할 것도 아니고, 유키의 얄팍한 인간관계로는 그럴 사람 별로 없다는 건 아는데. 후배들 생일 선물로는 뭐 줬는지 다 공유했으니까 그런 것도 아니란 말야. 상자를 열어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진짜 악세사리가 들었을 거 아냐?

"몇달 전에, 방에 있던 쇼핑백 말야."

특정 브랜드의 이름을 거론하니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 듯한 얼굴을 한다. 여전히 '그게 왜?' 라는 표정이지만. …파트너가 그런 걸 다른 사람한테 선물하려고 준비하면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잖아? 이어진 말에는 이쪽도 입을 다물게 되지만.

"…내 건데?"

"…에…."

모모, 많이 취했어? 그렇게 물어보는 듯한 유키의 눈이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아니, 아니. 아니…. 거짓말. 유키 거일리가 없잖아. …왜 유키 거라고 생각을 못했지? 그치만 유키, 악세사리 잘 안 하는 편이잖아. 귀걸이도 지금까지 일 때문에 말고는 바꾼 적 없잖아? 반지는 더더욱 그렇고. 뜯겨지지도 않고 그렇게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으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진짜…?"

"협찬, 모모한테도 종종 들어오잖아…?"

역시 많이 취했나. 시선으로 말하고 있는 유키 때문에 쥐구멍에라도 숨어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된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고 하지만 일어나다가 발이 꼬여 넘어져 쿠당탕, 바닥에 널브러진다. …아야야…. …진짜 아파. 이게 뭐냐고. 유키도 벌떡 일어나 달려오지만 이쪽은 이미 눈물이 핑 돌아 있다.

"모모…!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나… 바보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모 바보 아니야. …어디 안 다쳤어?"

아픔과 서러움에 눈물이 주륵 흐른다. 그럼 아무것도 아닌 걸 나만 혼자 신경쓰고, 들뜨고…. 그동안 쌓인 감정이 다 폭발해서. 물론 착각한 내가 나쁜 거지만…? 유키도 그 때 이후로 사귀자는 얘기 안 했고,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만…. 눈물을 슥슥 닦으며 고개를 저으면 유키가 어쩔 줄 몰라 나를 일으킨다. …나 지금 유키 얼굴 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유키의 품에 안겨 다시 의자에 앉으면, 유키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나를 올려본다. 나 지금 엄청 꼴사나운데. 이런 거, 유키한테 말할 수도 없잖아. 그래도 서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어서, 입에서 말이 막 튀어나오지만.

"…왜 나한테 고백 안 해? 이제 내가 싫어졌어…?"

싫어졌을 리 없지만. 내가 꼬장 부리고 있는데도 이렇게 상냥하게 받아주는 유키인걸. 그냥, 사귀고 싶을 만큼 좋아하지 않는 거겠지…. 파트너로서 좋아하는 것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건 완전히 다르니까. 나랑 같이 동거도 하고, 이것저것 다 했으니까 환상이 깨져서 이제 안 좋아하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유키랑 같이 살 때 더 귀여운 모습만 보여주는 건데…. 엉엉 울면서 히끅거리자 유키가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는다.

"…갑자기 여기에서 왜 그렇게 돼?"

"그치만, 그치마안…. …슈퍼스타 되면 사귀자고 했으면서, 막상 되고 나니까 전혀 고백하지 않는걸…."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는 유키의 표정에 더 서러워진다. 엄청나게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는 건, 고백할 마음이 없었던 거잖아…?

"…언제 적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뭐야 그거, 너무하잖아. 그 옛날 얘기에 홀랑 낚여서 유키가 나를 좋아하는 거라고 착각했던 나는, 역시 바보인 거 아냐? 유키가 조금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귀여운 얼굴도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나한테 고백한 과거 따위 부끄러운 과거인 거야. 난 몰라. 이제 망했어. 유키한테 차이고 사이도 서먹해질거야. 그룹 해체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모모가 그때 나 찼잖아?"

헤? 눈물이 쏙 들어갈 만큼 충격적인 말이 유키의 입에서 나온다. …찼어? 내가, 유키를…? …내가, 유키 씨의 고백을 거절했다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 말에 입이 꾹 다물린다. 말도 안되지 않나. 내가 감히 유키의 고백을 거절했다는 게…. …설마, 진짜? 흔들리는 동공을 마주보지도 않은 채로 유키가 말을 잇는다. 제 과거가 부끄러운 모양이다.

"당치도 않아요, 하고…. …근데 나랑 이것저것 다 하긴 하니까, 나중에라도 나 좋아하게 되면 말해주겠지 했는데."

"…그런 거 그냥 하는 말인 게 당연하잖아!?"

"하?"

유키의 싸늘한 눈빛에 히끅, 이번에는 딸꾹질이 난다. 급한대로 옆에 있던 술을 꿀꺽꿀꺽 마시면 딸꾹질이 가라앉는다. 그러고 보니 꿈에서 깼을 때 그런 소리를 하면서 깼던 것 같기도 해서. …내가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 전혀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걸로 거절당했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거야?

"착각할 멘트 치고 몇 년 동안 정정도 안 해 놓고서는, 누구한테 고백 안 한다고 주정 부리는 거야?"

"그, 그건…."

내가… 나빴네. 난 내가 거절한 줄도 몰랐지 뭐야. 유키 앞에서 몇 년이고 잊어버렸다가 몇 달 전에 생각났다고 솔직하게 고해할 수 있을 리 없어서. …누가 열 있는 사람한테 고백한 줄 알았냐고…. 킁, 코를 훌쩍인다. …그래도,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날 안 좋아하는 건 아닌가…? 우리 지금까지, 사귀는 사람들만 하는 거 잔뜩 했으니까…. 용기를 내서 물어본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여기서 계속 침묵했다가는 대역죄인이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서. 술에 진탕 취해 있었다는 변명 말고는 전혀 통하지 않을텐데, 이미 술 깨버렸으니까.

"…그럼, 계속 나 좋아했어?"

"보통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하고 그런 짓 안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유키는 예전에 많이 했잖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리 없어서. …그러면 나도 유키를 좋아한다는 거, 진작 알아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진짜 좋아하는 건가? 내가 먼저 고백했으면, 이렇게 추접스러운 취중고백이 되지 않았을까? 

"악세사리 얘기는 대체 뭐야?"

"…나한테 주는 건줄 알고…."

"그렇게 궁금하면 물어보지."

"서프라이즈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SNS에 한번 비추고 넣어뒀으니까 그런 거 신경 쓸 줄 몰랐는걸. 그것보다 언제 본 거야?"

으…. 확실히 사무소에서 올리는 사진에 갖가지 악세사리를 착용한 모습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 그 중 하나일 줄은 전혀 몰랐는걸. 나 진짜 바보같다…. 내가 거절해놓고 기억도 못하고, 협찬 받은 건 유키가 직접 산 건줄 알고 괜히 기대하고….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테이블에 엎드린다.

"…그런 거 기대했어?"

"알잖아, 나 순정만화 좋아하는거…."

"모모가 나 좋아하는 거 진짜 몰랐어."

"눈치채라고… 이것저것 다 했잖아…."

"몸의 상성이 좋아서 하는 줄 알았지."

확실히 상성은 좋지만!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자지 않는다고요…. 유키는 아무나가 아니긴 한데. 빼꼼 옆을 보면 유키가 싱글싱글 웃고 있다. …직전까지 내가 멍청한 소리 잔뜩 했는데도 기분 좋은가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쪽도 응어리졌던 게 다 풀려서. …역시, 유키는 너무 상냥해. 양팔을 벌리면 내려가서 유키에게 안긴다. 술 그만 마실래…. 제 어리광을 받아주는 유키가 너무 좋아서. 유키에게 얼굴을 부비적거린다.

"유키, 좋아해…."

"나도."

그렇게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끝나고, 유키는 나중에 나한테 반지를 하나 사줬다. …이렇게 옆구리 찔러서 받고 싶었던 건 아닌데. 그래도 분위기 잡고 고백하는 유키가 엄청 멋있었으니까 상관 없지만. 밖에서 끼고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역시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그 뒤로 사귀기로 했지만 별로 변한 건 없다. 키스도 섹스도 데이트도 전부 예전부터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기분만은 확실히 변했지만. 이제는 유키의 마음이 궁금해서 전전긍긍하지도 않는걸. 

그리고 나중에 반 씨한테 내가 구급차 타고 간 날 기억하냐고 슬쩍 물어봤는데, 그 날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유키가 고백하고 차였다는 게 오만군데 다 소문났다나 뭐라나. 우스갯소리로 기절할 만큼 싫었던 거냐는 소리도 하고. 반 씨가 유키에게 위로주도 사줬다고 한다. …진짜, 빼도 박도 못하게 내가 잘못한 거였네. 그런 대형 사고 쳐 놓고 기억도 못했다고 하면 너무한 것 같으니까, 유키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아야지. 


프린세스메이커식 엔딩 -그리고 그 뒤에... 후일담-

맨 처음 대사를 쓰고 싶어서 썼는데 모모가 너무 바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모두 바보가 되죠?

가볍게 읽어주시길...(여기까지 본다면 이미 읽으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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