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나츠, 햇살 좋은 날
커미션 2000자 / HL 드림
해가 이렇게 강한데 눈부시지 않을까? 미나모토는 멍하니 잠든 히라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반짝거렸다. 구름도 한 점 없는데 이렇게 밝은 곳에서 잠이 들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꽤 깊게 잠이 든 모양인지 가까이 다가오는 제 기척에도 반응이 없다.
옆으로 누워있는 그의 마른 허리 사이에 딱 제가 앉을만한 공간이 있었다. 쪼르르 달려가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보니 햇살을 받으며 잠든 얼굴이 더 가까이에서 보였다. 신기하다. 그리고 진짜 잘 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래도 어느 정도 어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줄까 하다가 작은 제 손으로 가려봤자 고작 눈가만 가려질 것이다.
얼굴에 기미 생기겠다. 신지는 말랑한 볼이 매력인데.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세워 볼을 콕 찔렀다. 손톱 끝이 조금 들어갔다 튕기는 것처럼 나올 때의 느낌이 이상하고 묘하게 매력 있었다. 자꾸만 만지고 싶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래도 너무 세게 누르면 잠에서 깨버릴 테니까 조금 살살 눌러봐야지.
안 누른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든 그의 얼굴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아무리 우라하라의 도움으로 잘 살아남았다고 해도 우리는 도망을 치는 입장이었고, 언제 적과 마주칠 줄 모르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든지 잠을 잘 때 가까이 오면, 그 상대가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혹은 저라고 해도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왜 가까이 오는지 물었다. 장난스러운 말투에 잠에 잔뜩 잠긴 목소리였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있는 경계심까지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오랜만에 보는 이 모습에 집중을 하도록 하자. 콕.. 콕콕. 콕. 문질문질. 꼬집어도 보고 손바닥으로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느낌이 좋았다. 물론 말랑말랑한 것도 좋지만, 그게 신지의 얼굴이라서 더 좋았다. 제가 누를 때마다 삐죽하게 튀어나오는 입술은 귀여웠고, 강한 햇살을 받아 약간 하얗게 보이는 얼굴은 제 눈에 세상 그 누구보다도 단정하고 잘생겨보였다.
귀엽기도 하다. 이렇게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거 정말 편안해 보이고 우리 이제 진짜 괜찮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놓인다. 그의 볼을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빈손으로 눈 주위를 손날로 가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가 짹짹하는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다시 고개를 숙여 그를 봤을 때 동그랗고 노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 어.
“으악..”
“참 빨리도 놀란다..”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가 한 박자 늦게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어이없는 것을 본 사신처럼 헛웃음을 친 그는 여전히 볼에서 떼지 않고 있던 손목이 한손에 확 붙잡혔다. 큼지막한 손이 제 손목 전체를 아프지 않도록 잡아 당겼다. 저는 저항하지 않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얼떨결에 상체가 절반이 숙여지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그는 몸을 빙글 돌리며 겨드랑이 아래 손을 넣고 제 몸을 번쩍 들어 배와 가슴 위로 저를 올렸다. 사신이 너무 놀라면 버둥거릴 수도 없구나. 어버버하며 눈을 깜박거리고 있으니 그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제 몸을 꽉 끌어안았다.
“니, 왜 허락도 없이 남의 얼굴을 만지는데?”
“그거 허락 받아야 하는 거였어?”
제 대답에 허를 찔려서 입술을 짧게 벌리고 있던 그는 겨우 허.. 참나.. 하는 말을 뱉어내며 어이없어 했다. 그렇지만 맞는 말 아닌가? 내가 널 만지는데 허락을 받아야 해?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남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되니까. 하지만 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제 생각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났는지 그는 키득거리며 한 팔로 제 허리를 끌어안고 한 손으로 제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그런 말을 할 거면 뻔뻔하게 하지, 망설이는 표정을 짓는 건 뭐냐고 타박하는 목소리에 재미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웃기고 재미있는 것이다.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았다. 정말 깊게 잠들었다가 방금 깨어났는지, 아직 잠기운이 조금 담겨있는 눈동자와 따뜻한 몸과 느릿하게 제 등을 쓸어주는 손길 같은 것들이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미나모토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볼을 꼬집고 있는 히라코의 손등에 본인의 손을 얹었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에 얼마 들어가지 않았던 힘마저 탁 풀리고, 천천히 바닥으로 팔이 내려갔다. 그 손바닥이 너무 따뜻해서, 마음에 들어서, 칼을 잡는 대장답지 않게 부드러운 게 좋아서 그것을 따라간다는 핑계로 그의 가슴 위에 제 볼을 얹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아, 따뜻하다. 등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포근했다. 이래서 여기서 잠들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턱을 그의 가슴에 대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쳤다. 그는 턱을 잔뜩 당겨 가슴 위에 누워있는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한 눈맞춤을 먼저 피한 것은 저였다. 그를 가만히 마주보고 있으니 느닷없이 얼굴이 빨개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만나서 시선을 마주한 게 얼마나 많은데, 양손으로 다 셀 수도 없을 만큼인데 왜 지금은 그런 느낌이 들까. 아무래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포근한 탓인 것 같았다.
그냥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싶은 척 시선을 피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제 뒤통수에 손을 얹었다. 이럴 때는 그에게 폭 안길 수 있을 만큼의 몸인 제가 좋았고, 이 상황이 좋았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많은 시간들에게 감사했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손바닥에 제 손바닥을 얹고 꼬물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제 손을 손아귀에 감싸 쥐었다. 아마 그도 눈을 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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