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성우] 강아지 좋아해요?

CHERRY by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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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좋아하세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부정적이라면 부정적인 단어들의 조합,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강아지에 대한 이미지였다.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기, 아니면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쪼르르 달려오기. 이 두 가지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강아지에 대한 모습 전부였다.

 

많고 많은 모습 중에 두 모습만 기억하는 이유는 특별한 건 아니었다.

 

“형!”

 

그저 나만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탓이었다.

 

“헤헤, 여기 있으셨어요?”

 

그런 와중에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던 이유도 하나뿐이었다. 지나치게 바쁜 탓에 주위를 둘러볼 틈이 없어 절 지나쳤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신기한 마음에 뛰어가고 있는 강아지를 붙잡아 말을 걸어보기도 했었다. 제가 먼저 말을 걸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걸 숨기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어디 가냐는 제 한마디에 열 마디로 답했었다. 분명 바쁠 텐데도 걸음을 떼지 않는 모습에 그 후에는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었다.

 

 

강아지는 내가 대꾸하지 않아도 제 할 말만 재잘재잘 늘어놓았다. 그를 대하는 무심한 표정과 말투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런 제 모습이 오히려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린 듯 더 적극적으로 제게 대답을 요구하며, 급기야 몸을 들이밀기까지 하였다. 살짝 뒤로 물러나 어깨를 툭 밀면 그제서야 자각한 듯 얼굴을 붉히며 떨어지는 모습은 제법 웃기기도 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지?”

“하나도 안 듣고 있으셨어요?”

 

언제 붉혔냐는 듯 왕왕거리는 모습도 또 다른 재미였다. 그런 모습을 즐기다 입을 떼면,

“밥 먹으러 가자는 거지?”

“……다 들으셨으면서.”

“어디 갈래? 아, 지금까지 열심히 말하던 곳? 어디에 있어?”

“놀리지 마세요!”


푸흡. 단호하게 말하는 주제에 가고는 싶은지 핸드폰 화면을 척 내밀었다. 그 속에는 아까부터 강아지가 주구장창 장점을 설명하던 음식점이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화면만 쳐다보니 제 핸드폰을 챙기곤 먼저 척척 걸어 나갔다.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씩씩거리며 앞서 나가고 있는 게 다른 동기들이나 후배들이었다면 미련 없이 뒤돌아서 갔을 수도 있지만, 저 강아지의 뒷모습은 눈에 밟혔다. 갈수록 느려지는 발걸음 때문일까, 아니면 뒤돌아볼까 말까 고민하는 뒤통수 때문일까.

 

“우현아, 같이 가.”

 

그것도 아니면 좋다는 표정을 애써 숨기려는 표정이 재밌어서일까. 앞으로 놀리지 마세요! 알았어. 이걸로 의미 없는 약속만 벌써 28번째였다.

 

 

-

 

 

“형은 영화…….”

“안 좋아해.”

“네…….”

 

전공 책 한 번, 내 얼굴 한 번. 다시 전공 책 한 번, 내 얼굴 한 번. 고개를 들자 우현은 책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기는, 목소리에 힘이 없는데. 모른 척 넘어갈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성규는 우현을 다시 불렀다.

 

“풀 죽은 강아지.”

“네?”

“공부 안 해?”

 

할 거예요. 할 거라는 말과는 다르게 우현은 계속 전공 책에 파묻혀 있었다. 공부하다 포기하고 대신 전공 책이랑 한 몸이라도 되고 싶은 건지. 고개를 들 때까지 볼 작정으로 계속 우현을 쳐다보자 그 눈빛을 느꼈는지 우현이 스물스물 몸을 일으켰다. 피곤하면 집에 들어가는 건. 싫어요. 그래.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자 성규는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속도 모르고 야속하게 책으로 눈을 돌려버리는 성규를 바라보며 우현은 입술을 삐죽였다. 정작 당사자는 절 의식하지도 않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어지럽게 적혀있는 글자들을 전투적으로 쏘아보았다. 눈만 아프지 바뀌는 건 하나도 없어서 그것도 포기한 채 한숨을 뱉었다.

절 노려봤다가 책을 노려봤다가 이제는 한숨까지.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가 없다. 원래 강아지들은 다 그런가? 주인이 거절하면 삐져서는 온몸으로 삐졌다는 거 다 티 내고 다니고, 풀 죽어 있고, 주인이 얼른 자기를 달래주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그렇다면 내가 이 강아지 주인인가? 그건 좀 귀찮은데. 아닌가. 괜찮나. 성규가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우현은 여전히 한숨만 포옥 내쉬고 있었다.

 

“영화는 좋아해.”

“그게 뭐예요…….”

“영화관 가자는 거 아니었어?”

 

네? 아니, 그게…그……. 고장 났네. 정곡을 찌르는 말에 기껏 들었던 고개가 다시 책 속에 처박혔다. 그러다 정말 책 속에 들어가겠네. 저걸 또 어떻게 끌어올린담. 잠시 고민하던 성규가 덤덤하게 툭 내뱉었다.

 

“시험 끝나고 내 자취방 와.”

“에에?”

 

아, 빠져나왔다. 우현은 이제 고장 난 걸 넘어서 작동이 멈춘 듯했다. 볼은 붉어질 대로 붉어져 터질 것 같고, 입술은 다물려질 기미가 안 보였다. 이게 이 정도로 반응할만한 말이었나? 덩달아 머쓱해져 말을 덧붙였다.

 

“집에서 영화 보자고.”

“…….”

“싫어?”

“아니요! 좋아요!”

 

히익. 생각보다 큰 목소리에 스스로도 놀랐는지 제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언뜻 보인 두 손도 붉어 보였다. 무슨 다른 생각이라도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제가 아무리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해도 이 정도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 물음을 입에 담으면 우현은 금세 도망칠지도 몰랐다.

여전히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눈치를 보며 눈을 굴리고 있는 우현을 보며 픽 웃었다. 역시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러니 공부해. 네……. 긴장이 풀려 살짝 떨리는 작은 목소리와 함께 우현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기껏 끌어냈더니 다시 또 책 속에 들어가려고 하네. 오늘은 공부하기 틀렸나. 들고 있던 펜을 돌리며 우현의 반응을 구경하던 성규 역시 펜을 놓았다. 아무래도 나도 틀린 것 같네.

 

 


 

 

“끝났어?”

“어어?”

 

이게 무슨 상황인가 눈을 떼굴 굴리며 고민에 빠진 강아지의 손목을 잡았다. 화들짝 놀라는 폼은 앞으로 몇 번을 더 봐도 질릴 것 같지 않았다.


“이게 마지막 시험이었지?”
“네에….”

“시험은 잘 봤어?”

 

별로였나 봐. 삐죽이는 입술을 장난스럽게 톡 치며 웃자 우현이 파드득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끝나자마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너무해요. 그리고 그렇게 막 입술을……. 역시 기대에 저버리지 않는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리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는 형은 잘 봤어요? 웃는 거 보니 잘 봤나 봐요.”

 

같이 공부했는데……. 작게 비죽이는 목소리에 이번엔 소리를 내어 웃었다. …비웃지 마세요. 소심하게 툭 뱉는 말에 결국 생각만 하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야 넌 공부한다고 해놓고 내 얼굴만 봤잖아.”

 

 


 

여러 이유로 충격을 받은, 아마 그중에 성규가 한 말에 큰 타격을 입어 넋이 나간 우현을 데리고 오는 것까지는 쉬웠다. 다만 집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급격하게 삐끄덕거리기 시작했다. 이유를 대충은 알 것 같아서 내버려 뒀지만.

 

“우현아.”

“네, 네?”

“내가 불편해?”

“아, 아니요!”

 

이건 몇 번을 생각해보고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너무했다. 분명 소파에 앉고 싶다고 했는데, 막상 저도 옆에 앉자 우현은 성규를 피해 끝으로 도망을 가버려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가까이 와도 괜찮다는 말을 계속 해봤지만, 우현은 알았다고만 하고, 들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게 몇 번 반복되자 이미 평소보다 과한 친절을 베풀었다는 생각이 들어 성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영화가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진정 못 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강아지는 원래 성격대로, 아까 다짐대로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인데.

 

한숨을 푹 쉬다가 먼저 우현에게 다가갔다. 한번에 훅 다가가자 우현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뒤로 넘어가려는 몸을 끌어안아 당기자 우현이 품속에서 굳는 게 느껴졌다.

 

“위험하잖아.”

아… 죄송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를 전하며 떨어지려는 걸 성규가 다시 붙잡았다. 어어? 우현이 갑자기 바뀐 시야에 당황해하는 사이에 성규는 우현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등 뒤에 탄탄한 가슴팍이 닿았다. 저, 형……?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보이는 낯에 얼마 못 가 시선은 돌려버렸다.

 

“너 계속 안절부절못하잖아. 진짜 강아지도 아니고.”

“네?”

“넌 나한테 할 말이 그런 거밖에 없냐?”

“제가요……?”

“내가 말 안 할 때는 혼자 재잘재잘 잘도 짖, 말하면서 정작 내가 하는 말에는 네, 에, 같은 대답만 하잖아.”

“…매번 그런 건 아닌데.”

 

그리고 형이 매번 절 놀라게 만들면서……. 본인이 했던 행동에 대한 자각은 있었는지 풀이 죽은 말투였다. 언젠가 꺼낼 말이었지만 그래도 풀이 죽은 강아지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런 우현의 콧잔등을 톡 건드리자 우현이 축 처진 눈으로 성규를 올려다보았다.

 

“저도 놀라는 거 말고 하고 싶은 말들은 많긴 한데… 안 나오는 걸 어떡해요…….”

“왜?”

그게……. 우현은 대답도 못 하고 입술만 우물거렸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은데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말은 얼마 없었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해. 내가 언제 너한테 뭐라고 한 적 있어?”

 

그러니까 그게 문제예요. 속으로 대꾸하면서도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우현을 보며 픽 웃었다. 안 혼낼 테니 말해도 돼. 강아지를 혼내는 건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덧붙이는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차분해졌는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우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아. 잠깐 멈춰 둬야 했는데.”

이제 진정된 듯해서 다시 화면에 시선이 닿았지만, 그 사이에 한창 진행해버린 영화를 보며 중얼거렸다. 으음. 잠깐 앓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떡하지. 우현아, 다시 처음부터 볼래?”

“괜찮아요. 그냥 여기서부터 봐요. 근데 저 이제 좀…….”

이제 슬슬 품에서 벗어나려 바둥거렸다. 놔주면 또 끝으로 갈 거잖아. 안 갈게요. 그래도 안 돼. 바둥거릴수록 오히려 팔에 단단히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이러면 영화 못 볼 것 같은데…….

 

“우현아, 나 너 어떻게 안 해. 그러니 가만히 있어.”

겨우 진정했는데. 심장이 다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아예 녹다운 된 우현은 성규의 품에 안겨 빠르게 뛰는 가슴 부근에 손을 올렸다. 제발 진정해라. 제발……. 왜 이 형은 그런 말을 해서.

 

금세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성규를 힐끗 훔쳐본 우현이 부루퉁해졌다. 누군 이렇게 설레서 영화에 집중도 못 하게 해놓고. 이 형,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거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래서, 그래서……. 날 가지고 노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제 눈에 이미 콩깍지가 씌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제가 아는, 남들이 아는 김성규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절대 귀찮은 짓 안 하는 사람인데. 그럼 이건 아닌가. 근데 친한 친구들은 전혀 상관없는 남들이 봐도 좋아하는 거 알 정도라고 했으니까 알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결국 알면서도 그런 말들을 하는 걸까. 사람 헷갈리게. 기대……의 여지를 주진 않았나. 이건 조금 헷갈렸다. 같이 밥 먹으면 꼭 사주고 카페에서 만나면 음료도 사주고 집에서 영화도 같이 보고. 이런 건 다른 사람들한테도 해주고 그러겠지. 귀찮아하면서도 부탁은 다 들어주는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아마. 형의 애인이라든가 썸이라든가 그런 사람들한테도. 아. 지금은 없다고 했으니까, 전에 그랬었겠지. 나이도 있으니 애인이 없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때도 이런 식으로 끌어안고 딱 붙어서 봤을까. 물꼬를 튼 생각이 쉼 없이 쏟아졌다. 괜한 생각을 하자 기운이 다 빠졌다.

 

군 휴학과 일반 휴학을 둘 다 쓰고 돌아온 김성규와 군 휴학을 쓰고 돌아온 남우현이 타이밍 좋게 같은 시기에 복학을 했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혼자 있는 성규를 자기가 모르고 있는 동기라고 생각한 우현이 일방적으로 들이댄 것이었지만, 성규는 그런 우현을 밀어내지 않았다.

귀찮아하는 기색은 보여도 결국 뭐든 다 받아주는 성규가 좋았다. 뒤늦게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어 미안해서 고개도 못 드는 우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괜찮다고, 앞으로도 형이라고 부르라고 해준 것도 좋았다. 비단 이런 이유가 아니었더라도 성규를 알고 지내다 보면 좋아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당장 오늘만 해도 우현은 몇 번이나 심장이 쿵 떨어졌었다. 이럴수록 참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걸 형은 알고 있을까. 한숨이 포옥 나왔다.

 

“우현아, 왜.”

이것 봐. 우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절 감싸고 있는 성규의 팔 위에서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성규는 그런 우현이 입을 열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재촉하지 않고. 결심이 선 듯 꼼지락거리던 걸 멈추고 뒤돌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고요한 눈동자를 마주하니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지만, 우현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입술을 뗐다.

 

“형,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응.”

“전 형이… 절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무 말 없이 절 보는 성규가 두려워 시선을 조금 내려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솔직하게 마음을 전해보는 그런 상황.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성규의 반응까지도. 제 고백에 좋아해 주는 김성규, 미간을 찌푸리며 싫어하는 김성규, 적당히 거절하는 김성규, 미쳤냐고 화내는 김성규,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김성규……. 진짜 김성규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이 두려워 입술도 달달 떨렸지만, 이제 다른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힘겹게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저는 형이 좋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내 가만히 있던 성규가 몸을 틀었다. 자연스레 떨어져 나와 마주 보게 되자 더 심하게 떨렸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속으로는 조금이나마 기뻐하고 있을까, 아니면 거절의 멘트를 준비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을까. 무엇도 알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형이 저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한 거예요. 그러니 형도 이제 그냥 말해주세요. 아니면 아니라고. 받아줄 수 없다고.”

구태여 아까 일을 덧붙였다. 혹시라도 아주 혹시라도 화낼 생각이었다면 하지 말아 달라고. 거절 받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거절하는 김성규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고, 약간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 고백에 화를 내는 김성규는 조금 많이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저 진짜 괜찮으니까…….”

전혀 괜찮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와서 민망한 마음에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래.”

제법 오래 기다린 거 치고는 매우 짧은 대답이었다. 우현은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고 성규를 올려다보았다. 성규는 여전히 덤덤했다. 아……. 거절, 이겠지. 그래도 눈물은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막상 확인하니 눈물이 고였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고인 눈물은 볼을 따라 계속 떨어졌다. 시야는 뿌옇게 번졌고 옷은 눈물방울에 얼룩졌다.

 

“우현아, 왜 울어. 듣기 싫어?”

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질문을 하는 김성규가 미웠지만, 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요. 형이, 절 거절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형이 그동안 저 헷갈리게 했잖아요. 왜 그렇게 잘해줬어요? 왜 오늘도 저 떨어질까 봐 잡아주고, 안아줬어요? 형은 정말 잔인해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잘해준다는 거 아는데,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했잖아요.

 

가만히 제 말을 듣고만 있던 성규가 한숨을 쉬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한숨 소리에 심장이 아파하면서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에는 좋아하는 제 모습을 깨닫고 뒤늦게 성규에게서 떨어졌다.

 

“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

“하지만 형이 방금 아니면 아니라고 하라는 답에 그래, 라고…….”

“하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는 말에 대답한 거야. 말을 더 꺼내기도 전에 혼자 울어버려서 못한 거고.”

 

어? 이번에는 우현이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얼굴로 성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듣기 싫냐는 그 말이……. 지금 내가 형 앞에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우현이 천천히 눈을 끔벅였다. 눈물은 어느새 멎었고 성규가 마저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번에는 성규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이따가 눈 아프겠다.

 

“이제 진정됐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수치가 몰려와 성규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싫은 거 아냐.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는 이렇게 안 해줘.”

성규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할 말을 고르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네가 날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티를 내본 건데.”

“네?”

그 말에 자세히 본 성규는 굉장히 민망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복학하고 친해진 후배가 절 동기인 줄 알고 대하는 게 단순히 웃겨서, 귀여워서 별말 안 하고 내버려 뒀던 건데, 가면 갈수록 눈에 밟혔다. 제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도, 찌르면 찌르는 대로 반응하는 것도. 갈수록 간질간질한 느낌에 나도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각을 한 후 나름 썸 비슷한 걸 타고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는데, 원체 감정이 잘 드러나는 편은 아니다 보니 작은 오해가 생긴 듯했다. 이렇게 오해하고 울어버리는 건 생각 못 했지만.

 

“그, 그럼 형도 제가… 그러니까 형도 제가….”

눈물에 젖어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보야. 혼자 오해해서 울고불고. 가까이 다가온 손에 움츠러들었지만, 정작 닿은 건 다정한 손길이었다. 다정한 손길로 볼을 어루만지다 천천히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우현아, 아까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잖아.”

“그건…….”

순식간에 우현의 몸이 소파에 눕혀졌다. 양손으로 제 옆을 짚고서 절 내려다보는 성규의 모습에 심장이 다시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형한테도 알려줘. 그게 어떤 건지.”

 


 

씻고 나른한 몸을 침대에 맡기니 잠이 솔솔 몰려왔다. 제 옆에 나란히 눕는 성규를 보니 문득 그동안 궁금했던 게 떠올랐다.

 

“형은 강아지 좋아해요?”

“음… 좋아하는 것 같아.”

“좋아하는 것 같다고요?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그게 뭐예요.”

 

이상하다며 웃는 강아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금세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홱 돌렸다. 아, 아쉽네. 그 얼굴 보고 싶어서 한 건데. 그러다 곧 다시 돌아보는 얼굴에 웃음기를 띠며 우현을 바라보았는데 이어지는 말에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저한테 맨날 강아지 같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말하면 어떡해요.”

“알았어. 미안해.”

 

좋아하고 있어, 우리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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