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한 갈래 길
쇼크배지를 손에 쥔 제노가 두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어땠어?”
“누나, 정말 굉장해요! 경기를 보는 내내 정말 우와- 였어요!”
“결국 압도적인 승리라는 건 변함이 없잖아.”
그래서 공격 한 대 맞아줬잖아. 제노가 그렇게 말하니 실버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세상에 그렇게 무식하게 힘껏펀치를 정면으로 맞게 하는 트레이너가 어딨어? 당신, 피카츄를 대체 얼마나 단단하게 키운 거야?”
아니, 그건 내가 명령한 게 아니라 피카츄의 방식이라고…. 하지만 대답하면 할수록 이상해질 것이 뻔했기에, 제노는 입을 다물었다.
누굴 닮은 건지, 제노의 피카츄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 않음으로써 압도적인 실력 차를 보여주는 걸 좋아했다. 더 강한 녀석을 찾아 싸우고 싶어서 안달 난 모습을 보면 아주 장군감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걸로 강챙이의 기술을 알 수 있었어요. 힘껏펀치로 승부를 내기 위해 최면술을 사용하는 거예요.”
심향의 분석이 정확했다. 많은 트레이너들을 계속해서 상대하는 관장들은 다들 어느 정도 정해진 싸움 방식을 선택하기 마련이었다. 사도의 까다로운 조건은 최면술로 상대를 재운 뒤 힘껏펀치를 날릴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누나의 피카츄처럼 그 펀치를 정면으로 맞고 버틸 자신은 없어요… 그렇다면 최면술에 대항할 방식을 찾아야겠어요!”
“칫,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냐?”
모범생 심향의 요약 정리 노트에 토를 다는 불량아 실버.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류가 튀는 기분이었다. 그걸 가만 바라보던 제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 너희 배는 안 고프니?”
꼬르륵. 그 말에 누구의 것일지 모를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
“잘 먹겠습니다!”
크게 외친 심향이 곧바로 수저를 들고 제 몫의 음식을 퍼먹기 시작했다. 찾아 들어간 근처의 가게는 목조로 이루어져 전통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구이집이었다. 가장 잘나가는 메뉴 중 하나라는 분홍장이덮밥정식을 삼 인분, 살짝 매콤한 국물 요리도 하나, 거기에 모듬꼬치구이도 시켰다. 저 나이 때 남자아이들은 잘 먹으니 이 정도는 가뿐할 거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그런가, 가게 안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꼬치구이의 냄새,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대화 사이로 들리는 잔 부딪히는 소리. 말 그대로 오감을 자극하는 가게 내부에 제노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하, 맥주 마시고 싶다….
“실버, 너는 연골 안 먹어?”
“윽, 그런 부위를 왜 먹어?”
“아싸! 그럼 내가 다 먹어도 되지?”
이미 한 꼬치를 비우고 나머지 하나에도 뻗어지는 심향의 손등을 실버가 찰싹 소리 나게 때리고, 연골 꼬치를 차지했다.
“뭐야, 안 먹는다며!”
“그렇다고 누가 너 혼자 다 먹으랬냐?”
너 이것도 혼자 두 개 다 먹었지. 아니야, 나 하나밖에 안 먹었어! 넌 여기 은행 꼬치나 먹어라. 뭐야, 치사해!
두 사람이 꼬치를 가지고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이냐 싸우는 사이 제노는 국물 요리를 공략했다. 해산물과 무로 우려낸 국물은 고춧가루가 들어가 시원 칼칼했다. 나는 참을성 있는 어른이다, 나는 맥주를 참을 수 있다… 속으로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되새긴 제노가 냄비 속의 우동 사리를 공략했다.
딱 알맞게 익은 토실토실한 면발이 국물을 머금어 꼭 살아있는 것처럼 탱글탱글한 자태를 뽐냈다. 하… 여기에 맥주를 마시지 않는 건 죄악이라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면 되잖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심향의 손에서 꼬치를 사수해 낸 실버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혹시 내가 입 밖으로 말했나?
“너… 아니, 당신 표정에 다 쓰여있어.”
“뭐가? 누나, 목말라요? 물 줄까요?”
심향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맑은 눈을 하곤 잔에 투명한 물을 잔뜩 따라 제노에게 건넸다. 실버는 코웃음을 쳤다. 고마워, 심향아….
*
해가 뉘엿뉘엿 바다 너머로 기울어지고 별이 뜨기 시작한 시간. 배부르게 먹은 두 사람이 내일의 시합을 위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사이, 제노는 피카츄를 간호순에게 맡기고 포켓몬 센터의 컴퓨터 앞에 자리 잡았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고, 화면에는 오 박사가 나타났다.
“박사님.”
- 오, 제노구나! 대체 언제쯤 전화를 줄지 목이 빠져라 기다렸단다.
“죄송해요, 중간에 일이 좀 있었거든요. 지금은 진청시티예요.”
- 으응? 도라지시티가 아니라?
“네,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요.”
- 모험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오 박사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를 따라 제노의 입가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 그래, 잘 지내고 있는 거니?
“물론이죠. 박사님은 하신다던 연구 잘 되어가세요?”
- 페어리 타입에 대한 연구 말이구나. 얼마 전 새로 분류되어서 그런지,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많은 연구자들이 헤매고 있단다.
“이브이를 페어리 타입으로 진화하게 되면 꼭 연락드릴게요.”
- 그래, 네 말대로 그렇게 된다면 좋겠구나. 리포트도 잊지 말고 부탁한다.
“네에.”
제노가 영 시원찮은 대답을 내놓았다. 쉽게 생각하면 페어리 타입은 페어리 타입일 뿐인데, 이게 도감에 명시되기까지 연구자들이 겪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박사님 눈에 차는 글을 써낼 때까지 걸릴 시간을 생각한 제노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 참, 그러고 보니 네가 맡겼던 알 말이다, 얼마 전에 부화했단다.
“정말요?”
- 그래. 여기에선 볼 수 없는 포켓몬이라 다들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마음 같아선 연구소에 계속 데리고 있고 싶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네가 돌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다 커서 널 못 알아보기라도 하면 큰일이잖니.
“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몬스터볼을 전송해 주마.
“늦은 시간에 정말 감사해요, 박사님.”
- 아니다, 이렇게라도 얼굴을 보니 좋구나.
상투적인 인사를 나누고 연결을 종료했다. 곧 몬스터볼 하나가 전송되어 왔다. 이것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볼은 딱 6개. 손에서 그것을 굴리고 있으니 간호순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료가 끝난 피카츄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즈음, 포켓기어가 울렸다. 기어에 표시된 번호를 확인한 제노가 주변을 살피곤 센터 밖으로 나섰다.
센터의 뒤편, 시간이 늦어 배틀 필드에는 아무도 없었다. 제노는 가로등 불빛마저 닿지 않는 구석에 자리 잡은 뒤 전화를 받았다.
- 늦는군.
“갑자기 전화를 건 게 누군데.”
- 도라지시티에는 언제 도착할 예정이지?
늦다는 게 그걸 말한 거였나. 제노가 입을 다물자 상대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 나갔다.
- 웬 꼬마와 함께 다닌다고 하던데.
이 자식은 나한테 관심이 왜 이렇게 많아.
감시당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적으로 얘기를 들으니 불쾌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전히 대답이 없는 제노에게 상대가 질문했다.
- 그 붉은 머리… 비주기의 아들이더군.
“….”
-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지. 로켓단과는-
“몇 번을 말하지만 다른 놈들한테 협력할 생각 없어. 말을 흘릴 생각도 없고.”
- … 조심하란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련하시겠어.”
좋은 말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 속을 모를 제노가 아니다.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에 미간을 주물렀다.
- 그럼 도라지시티에 도착했을 때 다시 연락하지.
“그래. 아, 맞다. 혹시 예리한손톱이라는 물건, 구할 수 있을까? 포켓몬을 진화시킬 때 필요할 것 같거든.”
- … 알겠다. 구하는 즉시 그쪽으로 보내겠다.
“응. 고마워.”
그제야 얼굴을 편 제노가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대기업의 힘이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지.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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