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한 갈래 길
세 사람과 망나뇽, 그리고 피카츄는 괴전파의 근원지를 찾아 기지 안을 수색했다. 실버의 포켓몬은 여기로 들어설 때, 복도가 좁으니 잽싸게 움직일 수 있는 피카츄와 함께 다니자는 제노의 설득에 전부 볼 안에 있는 상태였다.
목호와 합류하자마자 실버가 ‘왜 저 사람의 망나뇽은 되고 내 엘리게이는 안 되느냐’는 불만을 담은 눈빛을 쏘아 보냈기에 중요한 전력은 숨길 수록 좋은 법이라고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실버는 납득한 것 같진 않았지만 쩔쩔매는 제노의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더 이상 따지고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목호가 풉, 하고 작게 웃음을 흘렸다.
“… 미안하다, 비웃은 건 아니다.”
지금 이게 누구 망나뇽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웃음이 나오시나요?
점점 더 기지의 깊은 곳으로 향하던 그때, 한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나, 비주기 님이시라고! 우-하하하!”
순간 들려온 이름에 실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제법 튼튼해 보이는 문인데,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으면 내용이 다 들리는 거야…. 목호가 망나뇽에게 눈짓하자, 망나뇽이 발길질 몇 번으로 문을 박살 내버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비주기… 로 변장한 남자와 함께 심향을 위협하고 있는 여자였다. 로켓단의 간부인 람다와 아테나. 두 사람을 알아본 제노는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2대1 승부는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
바로 상황을 파악한 목호가 심향의 곁에 섰다. 람다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쪽은 네 명이잖아! 이 비겁한 놈들!”
맞는 말도 할 줄 아는구나. 이제 심향과 목호의 더블 배틀을 구경만 하면 되겠지 싶었던 제노가 느긋한 감상을 내리고 있던 그때, 아테나와 눈이 마주쳤다.
“흥, 웬 꼬마에, 챔피언에. 게다가 뒤쪽은… 아니, 너…! 그 복장, 그 피카츄! 설마 삼 년 전의…?!”
알아볼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당시 로켓단을 와해시킨 주인공은 레드였으니. 제노가 당황한 사이 뒤이어 람다가 외쳤다.
“이럴 수가, 도련님?! 그런 악마와 같이 다니시면 위험합니다!”
“누가 도련님이야!!”
실버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지금 네가 답하면 네 입으로 도련님이란 걸 인정하는 꼴 아니니…?
“젠장, 네놈들을 쓰러트리고 도련님을 받아 가겠어!”
아, 우리가 악당이야?
*
시작부터 결과가 뻔했던 더블 배틀은 싱겁게 끝났다. 물론 목호의 망나뇽이 압도적이었지만, 심향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주인공들이란. 로켓단의 기지에 단신으로 뛰어들만한 자신은 있다 이거지?
두 간부는 배틀에서 패배하자마자 달아났다. 하여간 옛날부터 도망 하나는 잽싼 녀석들이다.
목호는 망나뇽에게 괴전파의 발생 장치를 부수도록 지시했다. 풀려난 붐볼들은 통통 뛰며 자유를 찾아 밖을 향했다.
“이걸로 호수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다. 포켓몬들을 대신해서, 너희 모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지.”
목호의 깔끔한 마무리. 이대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심향이 목호에게 물었다.
“저…! 삼 년 전이라고 하면, 한 소년이 로켓단을 와해시켰다는 그 일을 말하는 거죠?”
왜 말의 끝에서 나를 쳐다보는 거니? 제노가 입을 다물자 목호가 답했다.
“그래.”
“그때 활약했던 그 사람… 그 사람을 동경해서 저는 포켓몬 마스터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강하고 훌륭한 트레이너의 눈이 머나먼 정점을 비추며 빛났다. 제노는 대답하지 않고 모자를 더욱 눌러쓸 뿐이었다.
그래, 너는 그렇게 되겠지. 그건 의지나 목표 따위와는 상관이 없다. 그저 세계가 정한 일일 뿐이다.
“포켓몬 마스터가 되는 길은 길고 험하지. 그래도 목표로 할 건가? … 그래. 포기할 정도라면 처음부터 꿈꾸지 않았겠지.”
심향의 눈빛을 마주한 목호가 납득했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네 사람은 쑥대밭이 된 기지를 빠져나왔다.
*
떠나기 전 목호가 제노에게 물었다.
“이번엔 성도지방의 배지를 전부 모으는 게 목표인 건가?”
“아, 아니요. 성도지방에는 조사하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예요. 연구하고 있는 게 있거든요.”
“그렇구나. 하긴, 넌 어릴 적부터 똑똑하다고 오 박사님께서 입이 닳도록 칭찬한 아이였으니까.”
“성인이 된 지가 언젠데요.”
“음? 벌써 그렇게 됐나?”
하하, 너털웃음을 터트린 목호가 제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마. 큰 사건 하나가 정리되려면 이것저것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말이야.”
때마침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제노가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한 목호의 배려였다. 짧게 감사 인사를 한 제노는 로켓단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느라 수고한 피카츄를 위해 포켓몬 센터로 향했다. 뒤에선 심향과 실버가 줄레줄레 따라오고 있었다. 센터의 입구에서 멈춰 선 제노가 뒤돌며 말했다.
“심향아 너… 체육관에 도전은 안 할 거니?”
“아 맞다!”
“곧 접수가 끝날 거야. 빨리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모레쯤에나 가능할걸.”
“으악! 다, 다녀오겠습니다!”
심향이 헐레벌떡 체육관을 향해 달려갔다. 제노는 남은 한 명을 바라보았다. 이미 배지를 획득한 실버는 떼어놓을 구실도 없었다. 불퉁한 표정으로 제노를 노려보던 실버가 말했다.
“우리, 할 말이 좀 많지?”
“어… 센터에 들렀다가 하면 안 될까?”
“웃기는 소리. 당신 피카츄 별로 지치지도 않았잖아.”
“….”
예리한 놈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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