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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한 갈래 길

다음날 심향과 실버 두 사람의 체육관전이 이루어졌다.

제노는 두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빠지지 않고 지켜보았다. 둘 다 승리하긴 했지만, 그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먼저, 심향의 경우, 포켓몬과의 유대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센스가 돋보였다. 강챙이의 최면술에 당하자, 스스로에게 기술을 사용해 통증으로 잠들지 않게 하라는 심향과 그 지시에 망설임 없이 따르는 포켓몬의 모습이란. 서로를 강하게 신뢰하지 않고는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실버는 최면술에 당하지는 않았지만, 엘리게이가 쓴 물 기술에 강챙이의 체력이 오히려 회복되자 잠시 당황했다. 저수 특성을 파악하고는 결국 포켓몬을 교체. 두 번째 타자로 나온 고우스트는 상성으로도 유리했고, 얼마 전 진화를 계기로 자신감이 붙었는지 제법 좋은 공격을 보여주었다.

먼저 시합을 끝낸 심향은 이번 관전에서 실버의 고오스가 고우스트로 진화한 모습을 처음 보고는 무슨 생각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었다.

결과만 보면 스스로에게 기술을 쓴 심향의 포켓몬이 가장 많이 다쳤기에, 실버가 먼저 시비를 걺으로써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금세 얌전해졌다.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담청시티로 돌아가기 전, 심향은 토게틱을 꺼내 사도의 부인께 받은 공중날기를 가르쳤다. 토게틱은 작은 날개를 팔랑이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심향이 제노에게 물었다.

“… 토게틱의 공중날기로 갈 순 없겠죠?”

제노는 심향의 상반신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토게틱을 보았다. 너 토게틱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

다시 담청시티의 등대. 심향이 약국에서 구한 비전신약을 규리에게 건네자 전룡에게서 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전룡의 상태를 확인하고 완전히 안심한 규리는 체육관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제 체육관에 도전할 수 있는데….

“누나, 이번에도 배지를 딸 거죠?”

“….”

둘의 시선이 따갑다. 아니, 나는 배지를 모으는 데 관심이 없다니까…. 제노가 미적거리자 실버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하긴, 원하는 만큼 배틀을 보며 배워도 좋다고 하긴 했지. 결국 제노는 곧장 체육관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규리가 막 체육관으로 복귀한 탓에 잠시 정비할 시간을 갖기 위해 오늘은 접수만 가능하고 내일부터 순서대로 도전이 가능하단다. 명단에 이름을 넣은 세 사람은 체육관의 입구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제노는 갑자기 붕 뜬 시간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때 심향이 입을 열었다.

“저희 내일 시합을 대비해 특훈해요!”

심향이 제노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아, 그래. 심향과 실버라면 그런 게 필요할지도 모르지. 제노가 동의하려던 그때 실버가 그의 후드를 잡고 제 뒤쪽으로 당겼다.

“이 녀석이, … 아니, 제노가 왜 너를 도와줘야 하지?”

“뭐?”

이미 다 불러놓고 정정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 거야.

“잠깐 같이 다녔다고 뭔가 착각하나 본데, 우리가 왜 너 같은 약한 녀석하고 어울려줘야 하냔 말이야.”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불탄 탑에서 깨진 거로는 성에 안 차나 보지?”

“뭐야?”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제법 세게 맞받아치는 심향의 발언에 제노가 놀란 사이, 둘의 사이는 꼭 주먹다짐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악화되었다. 관동지방도 그렇고 성도지방도 그렇고. 주인공과 라이벌의 관계는 오래된 기계장치처럼 왜 이렇게 삐걱거리는 건지.

짝. 제노가 손뼉을 크게 쳐 그 흐름을 끊었다.

“그러지 말고, 배틀로 결정하는 건 어때? 그럼 두 사람 다 불만 없지?”

“뭐? 내가 이런 녀석하고 왜-”

“쫄았냐?”

“- 지금 당장 시작해.”

실버가 심향의 도발에 답하면서, 그렇게 배틀이 결정되었다.

*

포켓몬 센터 뒤편의 배틀 필드. 중간에서 심판 역할을 맡기로 한 제노가 외쳤다.

“사용하는 포켓몬은 세 마리. 시합하는 도중 포켓몬을 교체하는 건 자유롭게 가능. 두 사람 모두 준비됐어?”

“당연하죠!”

“빨리 시작이나 해.”

심판 역할은 오랜만이다. 제노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오른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럼, 시합 시작!”

제노의 오른팔이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떨어지자마자 두 사람이 각자의 포켓몬을 꺼냈다.

“가라, 고우스트!”

“보송송, 부탁해!”

제노도 몬스터볼에서 포켓몬을 한 마리 꺼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나온 것은 얼마 전 알에서 부화한 포켓몬인 딥상어동이었다. 으르르, 작게 목을 울린 딥상어동이 제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같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노가 딥상어동을 품에 안아 들자 딥상어동은 자연스럽게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둘은 함께 시합을 지켜보았다.

“고우스트, 이상한빛!”

“보송송, 피해!”

오색빛으로 일렁이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보송송이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고우스트, 지금이야!”

“이런, 보송송! 막아!”

이상한 빛으로 보송송의 움직임을 일정하게 만든 고우스트가 다음 위치를 예상하고 정확하게 섀도볼을 날렸다. 콰앙- 큰 소리와 함께 연기가 일었다. 그것이 가라앉고 보이는 것은, 빛의장막을 펼친 보송송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발 늦게 막은 건지 장막은 물론이고 보송송도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쓰러지지 않은 보송송을 확인한 실버가 혀를 찼다.

“쳇. 다음에는 그런 수로 막을 수 없을 거다.”

“심향. 명령을 더 구체적으로 바꿔. 단순히 피하기만 하니까 상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는 거야.”

“네!”

“당신 대체 누구 편이야?!”

싹싹하게 대답하는 심향과 달리 실버가 소리를 빼액 질렀다. 나는 딱히 누구 편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 태연한 제노에 실버는 무어라 더 따져 들고 싶었으나, 참고 다시 배틀에 집중했다. 이번엔 심향이 먼저 명령을 내렸다.

“보송송, 전기자석파로 고우스트를 마비시키는 거야!”

“고우스트, 교란시켜!”

실버는 응용이 빨랐다. 유빈의 전술을 카피한 고우스트가 빠르게 움직이며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자, 보송송의 전기자석파는 계속해서 빗나갔다.

“보송송 멈춰! 차분하게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거야!”

“멍청한 선택을 하는군!”

고우스트의 잔상이 보송송을 둘러싸듯 생겨났다. 보송송은 그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심향의 명령을 기다렸다. 고우스트가 빠른 움직임으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이 들렸다.

“지금이다!”

“뒤쪽이야, 보송송, 번개!”

순식간에 뒤돈 보송송이 눈앞을 향해 전격을 내리꽂았다. 그러나 강한 빛이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놀란 보송송이 짧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멍청하다고 했지! 고우스트, 쓰러트려!”

처음 명령은 사라지는 것.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진짜 공격이었다. 고우스트의 공격이 보송송의 뒤에서 덮쳐왔다. 완전히 무방비로 당한 보송송의 몸이 허공에 떴다가, 쿵,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쓰러진 보송송이 가녀린 울음소리를 뿜었다.

“보송송, 시합 불가능.”

“수고했어 보송송.”

심향이 씁쓸하게 웃으며 보송송을 볼로 들여보냈다. 심향이 다음 포켓몬을 꺼내기 전에 제노가 첨언했다.

“고스트 타입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갔구나.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읽을 게 아니라 차라리 사방으로 전기를 뿜어내어 견제할 수도 있었을 거야.”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심향이 보송송이 든 몬스터볼을 내려다보았다.

“보송송 미안해, 다음번엔 더 잘해보자.”

“당신, 아까부터…!”

“잘했어 실버. 한번 본 것만으로 기술을 따라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야.”

“…….”

실버가 조용해졌다. 그사이 심향이 다음 포켓몬이 든 몬스터볼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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