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지와 동거 중 002

(2화) 토우지한테 배 곯게 하면 각방 쓸 거라고 했다

토우지와 동거 중 2화

군침이 도……는 게 아니라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쾅-!

“문 열었다. 어서 나와.”

하지만 달콤한 망상이 현실이 되면 스스로 저질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감히 실천하지 못 했다.

“고마워, 토우지.”

아니, 그나저나 보통 마스터 키를 찾거나 문손잡이를 기계로 조작해서 빼내거나 하지 않나?

“그리고 조금 전에 발로 찬 거 미안해. 토우지가 그렇게 만지면 많이 쑥쓰러워서…….”

젠인 토우지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미치도록 검색하고 다닐 적, 원작자 게게 선생이 메구마마와의 연애사를 제대로 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 많이 난감했다. 그래도 사회 생활 10년차. 눈치껏 몇 분 함께 안 붙어있을 적에 익힌 감으로 연기했다.

“어차피 하나도 안 아팠어. 너야말로 괜찮아? 예전에도 좁은 밀실에 갇혀서 공포증이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마스터키 찾는 거 포기하고 바로 부쉈다. 너 호흡 곤란 올까봐.”

아, 무식하게 부순 건 아니었구나. 나는 뒤늦게 스윗한 토우지의 태도에 감탄했다.

더불어 원작에서 봤던 토우지의 살벌함과 거리가 먼 상냥함에 괴리감도 들었다.

물론, 젠인 토우지가 최애니까 팬으로서 다정한 대우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근데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니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난 진짜 메구마마가 아니다. 루시드 드림일뿐이니까, 어느 순간 현실로 돌아가긴 하겠지만…….

“토우지야말로 안 다쳤어? 단단한 문을 한번에 때려서 산산조각 냈잖아. 병원갈까? 아, 곧 이사갈건데 집주인한테 보상금 물어주게 생겼네. 나 때문이야…….”

혼란스러웠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메구마마스럽게 굴었다. 더불어 토우지의 손도 은근슬쩍 만지며 사심도 충족하고, 정말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난 이 정도로 흠집 안 나.”

그러자 피식 웃은 토우지가 내 머리를 큰 손으로 쓰다듬었다.

‘으, 심장이 안 남아나겠네.’

연애 세포는 죽었어도 덕질 세포는 나이가 들어도 살았나 보다. 새삼 잃어버린 동심이 돌아온 기분에 울컥하면서 두근거렸다.

‘꿈에서 깨어나면 커뮤에 자랑해야지. 토우지 나오는 꿈 꿨다고.’

트친들에게도 썰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풀어진 찰나였다.

“당분간 욕실은 안 방에 있는 작은 걸 써야겠어.”

일본은 욕실과 변기가 있는 방이 구분이 되어있어서 그런지, 민망한 일은 없게 되었다.

‘아니, 안심할 때가 아니잖아.’

불현듯 지나치게 현실적인 루시드 드림에 너무 몰입한 거 아닌가 하면서, 왜 예전처럼 꿈에서 깨어날 징조가 안 나타나나 궁금증이 생겼다.

종종 루시드 드림 속에서 몇 년을 보내고 피곤하게 일어나기도 했기에, 토우지와 신혼 생활 즐기게 된다면 잘 즐기다 가자는 쾌락주의적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곧 죄책감이 밀려왔다. 최애 토우지를 봐서 기분은 좋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였다.

‘토우지가 내가 껍데기만 같은 메구마마란 걸 알면, 꿈속이라고 해도 죽임 당하겠지?’

메구마마가 메구미를 낳자마자 죽고, 흑화하여 원래 까칠살벌남으로 돌아온 토우지가 기둥서방을 하게 되었단 설정도 떠올랐다.

띠링-

<시스템>

<저런, 주술회전의 주요 흐름은 하나도 모르시면서 젠인 토우지에 관한 것만 줄줄 외우셨군요!>

시발, 이와중에 시스템은 갑툭튀해서 정곡을 찔렀다. 신나게 토우지에 대한 정보를 탈탈 털다가 원작에서 고인이라길래 짜게 식어서 주술회전 원작 안 읽은 건데.

<시스템>

<상관 없습니다. 쌀, 농업, 결혼, 사랑, 출산, 양육의 여신이신 쿠시나다히메의 선택을 받으셨으니까요!>

저기요, 전 한국인인데.

‘히메 어쩌고니까 여신인가? 근데 일본의 신이 왜 한국인을 만화 속 세상으로 데려가지?’

<시스템>

<신은 모든 곳에서 인간을 굽어살피시니까요. 때마침 이번 차원에 속하신 쿠시나다히메께서 주술사가 존재하는 세계는 갈수록 피의 학살과 죽음만이 가득해서 아예 일본과 연관이 없는 영혼을 데려오기를 바랐습니다.

만약, 영향력을 높이고자 선택한 사도가 일본 본토 출신이면 혹시라도 ‘저주의 왕’을 돕고 있는 재앙의 신이 관여할 지도 모르니까요.>

‘뭐라는 거지?’

젠인 토우지에 관한 것만 찾아보다가 말아서 뭐가 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보다 어째서 속으로 하는 말을 다 알아듣고 있는 걸까? 염화로 대화나눈 것도 아니기에 식겁했다.

<시스템>

<여하튼 쿠시나다히메께서 관장하시는 사랑과 출산, 양육 그리고 결혼의 축복 버프를 진~하게 받으셨으니 마음 편하게 튜토리얼을 즐겨주세요!>

‘아니, 그보다 이거 꿈 아니에요?’

여보세요?!

맘 속으로 아무리 외쳐보았지만 시스템 개새끼는 그뒤로 묵묵부답이었다.

“……키요.”

“아, 미안. 토우지,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

“갑자기 허공을 보면서 멍하니 있던데.”

비상이다.

나는 허둥지둥거리다가 결국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는 토우지의 품에 와락 파고 들었다. 표정을 들키는 것보다 이쪽이 나을 거 같았다.

사람 죽이는 일 했던 녀석은 쓸데없이 감이 좋으니까.

“아무래도 병원에 가볼까 봐. 요새 나……좀 많이 이상하지?”

“그러니까 그동안 왜 무리해서 일을 한 거야? 돈은 내가 벌 수 있다고 했잖아.”

공시우한테 의뢰 받아서 청부업자 모드로 열일하니까 많이 벌겠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눈 뜬 김에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했다. 몸은 비록 메구마마인 상태여도 한국인으로서 밥심은 중요했다. 나는 K-메구마마니까.

“토우지, 뜬금없지만 요새 자주 멍하니까 기억이 흐릿해서 그런데……나 대식가였어?”

“나보단 적게 먹던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난 오늘 빙의했는데!

“그랬나? 여하튼 무슨 일 있어도 나 굶기면 안 돼. 배 곪게 만들면 각방이야.”

나는 아무말이나 지껄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각방…….”

근데 워딩이 너무 강했는지, 토우지는 내가 눈새처럼 굴며 냉장고를 열고 식재료를 꺼내는 동안 같은 단어를 계속 중얼거렸다.

‘너무 심했나?’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