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사랑의 크기를 헤아린다면

사토루를 향한 마음이 무거운 유우지

Adore U by 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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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로 잴 수 없는 감정의 무게를 재고 싶어.

양팔을 벌려도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크기를 가늠하고 싶다.

사랑의 크기를 헤아린다면

 

커튼 틈새로 스미는 햇빛에 아침임을 깨닫는다. 창에 반사되어 쏟아지는 빛을 피해 보려 촉감 좋은 이불에 얼굴을 부빈다. 암막 커튼은 답답해서 싫다고 부러 얇은 재질을 고른 자신이 원망스럽다. 아무래도 다음 휴일엔 암막 커튼을 사러 가자고 해야겠다. 실눈을 뜬 채로 한껏 얼굴을 찡그리다 제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몸을 알아차렸다. 사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몸을 돌리자 눈을 감아도 잘생긴 얼굴이 자신을 반겨준다.

“선생님 잘 자네…….”

이미 잠은 시원스레 달아난 지 오래. 다시 잠들기는 그른 것 같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사토루를 관찰한다. 그러길 잠깐, 종전 내뱉은 호칭을 가만히 곱씹어본다. 선생님, 고죠 선생님. 자신과 사내는 연인이기 이전에 선생님과 제자 사이다. 하지만 이 외에도 서로를 정의 내리는 말들은 여럿 있다.

고전의 학생,

등급 없는 주술사,

스쿠나의 그릇,

무기한으로 미뤄둔 사형수.

고전의 선생님,

최강의 주술사,

육안의 소유자,

가문의 당주,

아마도 그 미뤄둔 사형을 집행하게 될 처형인.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어보다가, 새삼 극과 극의 상황이란 생각이 들어 실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러니 관계의 당위성에 대해 몇 번이나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선택해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죄악감에 사로잡혀 한 번씩 숨이 막혀버린다. 고작 내가 이 사람을 붙잡고 있어도 되는 건지 몇 번이고 생각한다.

 

데이트 중 쉴새 없이 울리는 업무 전화.

가문의 주요 사항을 논의하는 전화를 받을 때의 진중함.

각각 교탁과 책상을 앞에 두고 마주한 채 전달받는 주요 사항.

 

그때마다 깨달아버리고 만다. 우리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걸.

주술계라는 좁은 세계 안에서도 양극단에 놓여있다. 그 거리감이 한 번씩 무하한 같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른팔을 자신에게 내준 채로 곤히 잠든 사내의 머리를 조심조심 어루만진다. 손끝에 걸리는 새하얀 머리칼의 촉감이 좋다. 내리감긴 눈꺼풀의 끝에 길게 늘어져 있는 속눈썹이 아름다워서 한참이나 넋을 놓고 구경한다. 보기 좋게 매달린 얇은 가닥들을 손가락 끝으로 가만히 쓸어본다. 사토루의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연인인 자신만의 특권이다.

선생님도 잠을 자는구나, 하고 실없는 소리를 던진 적도 있을 정도로 사토루가 자는 모습은 그다지 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도 딱히 길게 자지 않고 두세 시간쯤 눈만 붙인다고 했던가. 항상 반전 술식을 돌리고 있어 괜찮다고는 해도 걱정이 됐다. 하다못해 한 번씩이라도 길게 자면 좋을 텐데.

그런 유우지의 걱정이 먹히기라도 한 건지, 연애를 시작하고 이 넓은 집에 종종 묵고 가는 일이 생기면서 사토루는 제 곁에서 깊은 잠을 자게 됐다. 처음 묵고 가던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맞은편에 곤히 잠들어 있는 그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제 옆에서 잠들어 있는 사토루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아 부러 늦게 잠든 적도 여러 번이다. 이전까진 잠을 참는다는 발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졸음이 잔뜩 몰려와 반밖에 뜨지 못한 눈꺼풀 틈새로, 애정 어린 시선을 담뿍 쏟아붓곤 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사내에게 이 무거운 마음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눈치 좋은 사내이니 이미 알아챘으려나 싶지만, 일단은 혼자만의 비밀이다.

“선생님은 자는 모습도 예쁘네…….”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대면서, 유우지는 잠든 사토루의 뺨을 살살 쓸어내렸다. 듣기로는 어릴 때부터 목숨에 위협을 받는 일이 많아 선잠을 자기 일쑤였다고 했다. 반전 술식을 익히게 된 뒤로는 그마저도 짧게 자고 만다고. 임무도 많은데다 교직에 당주 일까지 겸하고 있으니 처리할 일들이 많아 더 그렇다고 했던가. 이 얘기를 들었던 날 유우지는 안쓰러움에 눈썹을 팔자로 축 늘어트렸고, 와중에 사토루는 귀엽다며 눈썹 끝에 입 맞춰주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과 함께 자면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얼마나 벅차고 기쁜 일인지. 몇 시간이고 숙면에 빠져 유우지가 먼저 눈을 뜨게 되는 일도 종종 생겨났다. 사토루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게 기뻐서 늦잠 자는 그를 깨우지 않은 적도 여러 번이다. 사내의 안식처로 자리 매겨졌다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과 동시에 약간은 슬퍼지기도 했다. 나중에 자신이 먼저 죽고 나면 사토루는 또 선잠만 자야 하는 건가 싶어서.

유우지는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를 몸이니 당연한 건가 싶다. 물론 죽는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무섭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다. 목숨을 바쳐 타인을 구할 수 있다면 곧장 몸을 내던지겠지만, 그 순간엔 솔직하게 겁먹고 두려워할 것이다. 물론 달려가는 발걸음은 느려지지도 멈추지도 않겠지만.

그렇게 남을 구하다 죽겠다고 다짐한 주제에 자꾸만 살고 싶어진다. 이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다. 사토루에게 진심이 되면 될수록,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 오르고 만다.

우스운 일이다. 스쿠나를 품고 있고, 결국은 사형수인데다가, 주술사인 이상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인데도. 설령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사토루는 계속 주술사로 남아있을 거라 생각한다. 등에 짊어진 게 많은 사람이니까. 의외로 다정하고 상냥한 구석이 있는 사내는 결국 세상을 등질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서운하냐 묻는다면, 전혀.

애초에 스쿠나의 그릇인 자신이 죽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위한 일이지 않나. 사토루가 앞으로 구하게 될 생명은 무수히 많을 테고, 그의 뒷배에 타게 될 이들도 여럿일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죽음으로 그의 배에 무게가 덜어질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머리를 쓸어넘겨 볼록한 이마에 쪽, 하고 입맞춤을 남기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모처럼의 휴일이니 좀 더 자게 두고 싶다. 아직 더덕더덕 붙어있는 졸음을 없애기 위해 욕실로 향한다. 사토루의 발 사이즈에 맞춰서 산 욕실 슬리퍼에 발을 꿴다. 한참이나 남아 덜렁거리는 슬리퍼를 직직 끌며 세면대에 마주 섰다. 양팔을 아무렇게나 걷어붙이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마친 후, 컵에 당연스레 꽂혀있는 두 개의 칫솔 중 제 것을 집어 말끔히 양치질까지 마쳤다.

사토루가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준비할 요량으로 익숙하게 주방에서 앞치마를 찾는다. 원래 요리할 때 앞치마를 즐겨 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토루의 옷을 빌려 입고 있을 땐 하는 편이다. 제 눈엔 평범한 티셔츠도 가격표를 확인하면 0의 자릿수가 남다를 테니까. 물론 사토루는 자신이 옷에 뭘 묻혀도 아랑곳하지 않겠지만, 그래서인지 이쪽에서 더 신경 쓰게 된다. 손을 다 가릴 정도로 긴 소매를 몇 번 접어 넘기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치이익, 베이컨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쪼그라들고, 젓가락으로 뒤집어 반대편도 노릇하게 익기를 기다린다. 그 옆엔 정량보다 설탕이 곱절은 들어간 팬케이크가 기포를 터트려가며 구워지고 있다. 아마 이렇게 구워도 팬케이크가 흠뻑 젖을 때까지 메이플 시럽을 부을 것이다. 잠시 뒤의 모습을 상상하며 유우지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에 생크림 사둔 게 있던가. 팬케이크 위에 올려주고 싶은데. 키친타올을 곱게 접어 깔아둔 접시 위로 바삭하게 구워진 베이컨을 옮기며 생각하던 찰나, 타박타박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벌써 깬 모양이다.

“유-지.”

“선생님, 좋은 아침. 잘 잤어?”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와, 허리에 감겨오는 묵직한 팔의 무게가 좋아 입가에 웃음이 스미고 만다. 이렇게 주방에 있는 제게 찾아와 착 달라 붙어오는 것도 좋지만, 사실 식사 준비를 마치고 곤히 잠들어 있는 사내를 깨우는 즐거움도 톡톡하다. 그건 다음번 휴일의 기쁨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제 어깨에 턱을 괸 채로 아침 메뉴를 관찰하고 있는 사내가 못내 귀엽다. 나이도 13살이나 많고 키도 훨씬 큰 사람이 귀엽게 느껴지다니, 아무래도 중증이다. 어깨에 내려앉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후라이팬에 집중을 쏟는다. 뒤집개로 반죽을 뒤집자 착, 하고 노릇한 표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팬케이크. 맛있겠다.”

“응. 선생님이 좋아하는 거지.”

“나는 유우지가 좋은데.”

우와, 닭살. 사토루의 말에 장난스레 양팔을 부빗거리며 소름 돋는단 시늉을 하자 요놈, 하며 볼을 꼬집어온다. 볼이 잔뜩 늘어져 입술이 헤, 벌어지고 틈새를 기다렸다는 듯 사토루의 입술이 부딪혀온다. 갑작스런 입맞춤에, 곧장 입안을 침범해온 혀에 놀라 뒤집개를 떨어트릴 뻔했다.

그런 유우지를 알아차린 듯 사토루는 아이의 손에서 뒤집개를 빼내어 뒤편에 내던진다. 양손이 자유로워진 유우지는 익숙하게 사토루의 목에 양팔을 둘렀다. 자신의 허리에 둘러진 팔에 보다 힘이 실리는 게 느껴져 맞닿은 입술 틈새로 웃음을 흘렸다. 입천장을 긁어오는 감촉이 기분 좋아 그에 응답하듯 사토루의 혀를 옭아매었다. 뺨에 입 맞추는 것도 부끄러워하던 아이를 이렇게 성장시킨 건 역시 사토루다.

“하아… 선생님, 그만. 팬케이크 탈 거야.”

“에에, 유우지. 나보다 팬케이크가 더 중요한 거야? 사토루 슬퍼….”

진득한 키스에서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유우지 쪽이었다. 잔뜩 부비던 입술을 떼어낸 뒤 쪽, 하고 가벼운 입맞춤을 남긴 채 멀어졌다. 타액으로 번들해진 입술을 혀로 훑으며 뒤돌자 곧장 등에 달라붙어 어리광을 부려온다.

사토루는 덩치는 커도 귀여운 구석이 있고,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다. 덕분에 한 번씩 얼굴을 활용해 부탁해오거나, 애교를 동반한 어리광을 부리곤 한다. 그래도 팬케이크가 자기보다 중요한 거냔 투정은 좀 우습지 않은가 싶다. 애초에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사토루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선생님, 몇 장 먹을래?”

“음, 네 장?”

“우와, 배 터질걸.”

“최강이라 괜찮습니다.”

“그거 위장에도 해당되는 얘기였어?”

선생님은 그 최강이라 괜찮단 말을 너무 남발하지.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팬케이크를 접시에 옮기며 말하자, 그에 응답하듯 투박한 손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손길 너머로 전해지는 온기가 좋아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가고 만다.

역시 놓을 수가 없다.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주는 투박한 손이, 사랑스러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 지켜봐 주는 눈빛이, 그의 뒤에 숨어 오늘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너른 등까지 모두 좋으니까. 이쪽이야말로 못 견디게 좋으니까. 주위에선 모두 사토루에게 붙잡혀서 큰일이라며 걱정해주지만, 사실 놓지 못하고 있는 건 이쪽이다.

사토루가 자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다. 매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으니까. 사랑받는다는 즐거움이 어떤 건지 제게 알려준 사람이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감정의 크기를 매길 수 있다면, 아마 이쪽이 훨씬 클 것이다.

“역시 날 걱정해주는 건 유우지 뿐이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 어깨에 얼굴을 폭 묻어온다. 어느새 익숙해진 이 묵직한 무게감이 좋다. 몇 번이고 기대주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말에 걱정이 담겨있단 걸 알아차린 눈치 빠른 사내는, 매번 이렇게 듣기 좋은 말을 되돌려준다.

“자. 얼른 밥 먹자, 선생님.”

“와아-”

사이좋게 접시를 나르고 식탁에 마주 앉는다. 아침을 함께 한다는 건, 점심이나 저녁과는 다른 가까운 거리감이 느껴져서 좋아한다. 전날을 종일 함께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친밀한 순간이니까.

“맛있어!”

“다행이네에.”

별거 아닌 요리에도 매번 맛있다고 말해주는 걸 잊지 않는다. 그 모습에 역시 다정한 사람이라고, 또 한 번 생각한다. 메이플 시럽으로 흥건해진 팬케이크를 우물대는 모습이 귀엽다.

이후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함께 영화를 보고 감상을 공유하거나, 너른 침대를 놔두고 소파에 억지로 몸을 구겨가며 낮잠을 자거나, 어젯밤의 흐름을 이어가듯 다시금 몸을 겹치거나 하며 휴일을 보낼 것이다.

어느새 익숙해진 휴일의 루틴은 고된 임무가 반복되는 나날을 버티게 해주는 낙으로 자리 잡았다. 특별히 유명 명소에 찾아가지 않아도 좋다. 물론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날이라던가, 세상에 태어나준 것에 감사하는 특별한 날엔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좋아하는 건 일상을 함께하는 것. 자신이 만든 요리를 나눠 먹고, 가끔은 함께 주방에 서기도 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몇 시간이고 주고받는다. 종일 이야기만 해도 웃음이 끊기지 않고 즐겁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은 채로 소파에 기대어,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도 좋아한다. 정적 속의 평온함을 만끽하는 일. 아마 이 사람과 함께라 뭐든 좋은 거겠지.

하지만 자신이 이 정도로 좋아한다는 걸 사토루는 몰라주었으면 한다. 스스로도 한 번씩 놀랄 정도로 무거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 눈치 빠르고 머리 좋은 사내이니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마음을 무게로 환산할 수 있다면,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담컨대 당신을 이토록 사랑할 사람은 이후로도 자신뿐일 거라고 알려주고 싶다. 내가 죽는 순간과, 함께 다가올 우리의 마지막에.

그러니 지금은 몰라주었으면 한다.

사귀기 전 사토루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랑은 일그러진 저주라 했던가.

 

“고죠 선생님.”

“응? 유우지.”

“사랑해.”

 

그렇다면 이건 확실한 저주.

나의 사랑으로 당신을 평생 옭아매고 싶다. 내가 죽고 세상에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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