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빔
유료

저희는 그걸 질투라고 불러요, 주인님!

결제는 소장용/ 메이드 알바하다 고죠에게 걸렸다!

전편!

오늘도 빻음

01.

"고죠 사토루!"

노인네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걱정도 잠시 교토부 가쿠간지 학장이 내던진 서류를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와-. 여기 고죠 사토루 같은 인간이 또 있네. 나 미디어에서만 봤지 서류 내던지는 사람 처음 보는데.

고죠랑 다니다 보니 팔자에도 없던 종이 싸대기를 다 맞는다. 그 애는 고죠 옆에서 뒷짐 지고 서 있다가 난데없이 당한 봉변에 멍하니 바닥만 내려본다. 그 애는 손을 풀고 허리를 굽힌다.

"줍지 마."

그 애의 앞을 손으로 막은 고죠가 말했다. 그 애의 얼굴을 살핀 고죠가 눈살을 찌푸린다. HP 다 닳아서 죽기 직전의 인삼맛 쿠키 같은 가쿠간지 학장도 모자라 고죠 사토루까지 성질을 부릴 참인가. 더러운 주술바닥, 대체 언제 뜰 수 있을까.

휙.

고죠가 그 애의 어깨를 감싸 쥐더니 엄지와 검지로 그 애의 양 볼을 움켜쥐고 가쿠간지 학장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얼떨결에 학장과 눈이 마주친 그 애가 빠르게 시선을 내린다.

"영감. 이거 보여?"

저 양반 지금 혈압 터지기 직전인데 영감이라고 부르면 어떡해요.

"볼게 얼굴뿐인 애 얼굴에 상처 났다고. 보여?"

고죠의 말에 그 애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고전 로맨틱 코미디에 나올 것 같은 대사가 낯간지러워서 보다는 그 말이 고죠 사토루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문제다. 미켈란젤로가 찬양할 외모를 가진 이가 '볼게 얼굴뿐'이라고 칭하면 그게 칭찬인지 모욕인지 헛갈린다.

"더러운 성질머리 부릴 거면 나한테나 하지 애한테 왜 이래. 나이 먹어서 눈도 잘 안 보이시나."

뚝, 뚝. 펠리컨 두 마리가 입을 쩍쩍 벌리며 아가리를 터는 와중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린다. 그 애는 자신의 컨버스화를 내려본다. 새하얀 컨버스 위에 핏물이 한 두 방울 떨어져 여기저기 자잘한 얼룩이 튀었다. 말도 안 돼. 내 생에 처음 가져 본 20만원대 컨버스화인데! 컨버스에 핏물? 그냥 영원히 달고 다닐 문신 같은 거다.

"미친."

"......."

"......."

그 애의 읊조림에 장내가 조용해진다. 그 애는 문신이 새겨진 컨버스화에 아찔해진 시야를 옮겨 고죠를 올려본다. 고죠 씨, 이거 보여요? 지금 내 신발에 핏물 떨어졌다니까?

"너 얼굴, 하. 일단 나가자."

"고죠 사토루!"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요."

누가 내 이름이 고죠 사토루인 거 모르나. 고죠가 중얼거리며 그 애의 손을 잡고 교토부 학장실을 나온다.

02.

"유코짱. 얼굴에 흉지면 어떡해?"

"...이 케이크 드셔보세요."

교토역 앞 카페. 도쿄로 돌아갈 신칸센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는 그 애의 사진을 찍던 고죠가 울상으로 말한다. 그 애는 고죠를 향해 빅토리아 케이크를 내밀며 고개를 돌린다. 유리창에 반사되는 자신의 얼굴을 본다. 교토에는 반전술사도 없냐느니, 애 얼굴 어떻게 할 거냐느니, 이런 거 말고 잘 듣는 약을 가져오라느니 고죠가 하도 난리를 쳐서 그냥 그 애 홀로 소독하고 연고를 바른 다음 반창고를 붙였다.

"나 너무 속상해."

"아-."

아-.

그 애의 말에 고죠가 입을 벌린다. 그 애는 조각낸 케이크를 고죠의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케이크의 달콤함에 풀어졌던 고죠의 표정도 잠시 그 애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또 다시 울상이 된다.

그 애는 고죠의 입에 넣었던 포크로 케이크를 푹푹 찍어 자신의 입안에 욱여넣는다. 음, 여기 케이크 맛집이네. 어차피 고죠가 계산하는 거 점장님 드릴 케이크도 좀 포장할까. 그 애가 손을 들어 직원을 부른다.

"여기 빅토리아 홀 케이크 포장해주세요."

"그렇게 맛있어?"

"네. 점장님 좀 드리려고요."

교토 출장 간다고 스케줄 조정해준 것도 감사하고 평소 이것저것 잘 챙겨주시니까 말이지.

"가게 점장님?"

"네."

"유코짱. 유코는 내가 사준 케이크를 다른 남자에게 주고 싶어?"

고죠 사토루가 사줬으니까 이 가격대의 케이크를 선물할 수 있는 거다.

"점장님이 뭔 남자예요."

"그럼 여자야?"

이게 뭔 대화야.

"유코,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구나."

처음부터 사랑이라고 부를만한 거창한 무언가가 없었다.

"그럴 리가요. 저한테는 고죠 씨가 전부인 걸요."

그나마 고죠가 인정머리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밖에서는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한 점이다.

"요즘 들어 고죠 씨가 옆에 있어서 세상이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니까."

반짝반짝 보다는 폭탄이 터지듯이 번쩍거린다는 느낌에 가깝지만. 정신 사납기 그지없다.

"아, 출발 시간 다 되어가요. 이제 플랫폼으로 이동해요."

그 애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고죠는 계산 용지를 들고 그 애를 뒤따라 나선다.

03.

"...선배님 무슨 일 있었어요?"

"하하. 교토에서 온 항의 전화 응대 하느라...."

"아."

그 애는 며칠 사이 폭삭 늙은 이지치에게 교토에서 사 온 야츠하시를 내민다. 이지치가 안경을 고쳐 쓰며 양손으로 쇼핑백을 받아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 애는 이지치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책상에 앉는다. 있다가 커피라도 한 잔 사다 드려야 하나. 물론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건의 정황에 자신이 끼어있어 영 불편하다.

"아, 유코짱."

저놈의 유코. 고죠의 전속 보조 감독은 총 3명. 이지치, 그 애, 그리고 지금 그 애를 유코라고 부른 스와베 씨다. 얼마 전에 고죠가 그 애를 유코라고 부르는 걸 들은 이후 툭하면 그 애의 이름이 아닌 유코라고 부르는 중이다.

"유코짱 요즘 이상한 소문 돌던데."

스와베의 말에 이지치가 흠칫 놀라며 그에게 눈치를 준다. 눈치 없는 스와베가 그 애가 사 온 야츠하시 껍질을 까며 말한다.

"고죠 씨랑 연애 중이라고."

"고죠 씨한테 제 신장 팔았다고... 네에?"

그 애는 이미 알고 있는 소문의 내용을 말했다가 스와베의 말에 입을 쩍 벌린다. 아니 나를 고죠 소속의 신장 하나 없는 마약 운반 노예로 만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연인이래?

"살다 살다 제가 고죠 씨 연인이라는 소문도 다 듣네요."

"역시 아니지? 다행이야-."

뭐가 다행인데.

그 애는 스와베의 말을 무시하며 직원용 PC에 로그인한다. 오늘 오후부터 재개될 고죠의 일정을 살핀 그 애는 조용히 핸드폰을 들어 배달 앱에 들어간다. 고전 근처에 이번에 새로 생긴 커피집이 있는데 대체 뭘 넣은 건지 한 번 마시면 하룻밤 새는 건 문제 없을 정도로 강한 각성제를 판다. 스와베는 주기 싫지만 이지치랑 자신 것을 시키는데 빼놓기도 뭐해서 총 3잔을 배달시킨다. 20분 정도 뒤에 정문으로 나가 수령하면 된다.

"선배님, 저 교토 일정 보고서 초고 다 써서 클라우드에 업로드 해놓았어요. 확인 한 번 해주시면 고죠 씨께 서명 받으러 갔다 올게요."

"알겠습니다."

"유코짱은 오자마자 일 처리 착착하네-."

그 애는 어디 가서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특별하게 들은 적이 없다. 딱히 성실하거나 특출나지도 않지만 뒤처지거나 모자라지도 않은 애매한 사람. 딱 그 정도였는데 게으름뱅이 스와베와 같이 일하다 보니 난데없이 일잘러가 된 기분이다.

"오늘 오후 일정 보니까 완전 헬이라서 교토 일도 그렇고 제가 뇌물 겸 커피 시켰어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니요, 이지치 선배는 그 커피 마셔야 할 걸요.

그 애는 핼쑥한 이지치를 보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지잉-. 배달이 시작됐다는 알림이 뜬다.

"저 커피 수령하러 갔다 올게요."

"나도 가, 유코."

아니야. 나 혼자 갈래.

"스와베 씨 방금까지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남았다고...."

"그거야 갔다 와서 금방 하면 되는 거고-. 가자, 가자."

저렇게 게으른데 한 번 마음잡고 일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끝내는 사람이라 스와베의 말에 딱히 딴지 걸 게 없어 아쉽다. 그 애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며 스와베와 사무실을 나온다.

04.

"역시-. 유코 뿐이야."

"...네에."

아, 카페인 수혈. 살 것만 같아. 정문 도리이를 지나며 스와베가 촐랑거리며 따라온다. 처음에는 하도 가벼운 인상에 고죠 사토루가 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까이서 본 고죠는 생각보다 말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대부분 눈짓이나 손짓 가끔 기분 더 나쁘면 턱짓 정도로 간단한 의사는 대신할 정도다. 그런 고죠 사토루와 24시간 붙어있다가 1분 1초도 쉬지 않고 말하는 스와베와 같이 있으니 귀가 먹먹하다.

"유-코-. 듣고 있어?"

"누가 유코야?"

고죠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춘 그 애가 고개를 돌린다. 핸드폰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툭툭 치며 걸어오는 고죠가 입술을 비튼다. 음. 기분 나빠 보이는데.

"안녕하세요, 고죠 씨."

"누가 유코나고."

"네?"

"얘 이름, 유코 아니잖아."

얘, 라고 말하며 고죠가 그 애를 턱짓으로 가리킨다. 누가 또 우리 예민한 상사의 성질을 긁은 거야? 그 애는 커피 상자에서 고죠의 몫으로 주문한 초콜릿 프라푸치노를 찾는다. 사실 보고서 서명 받을 때 쉽게 넘어가려고 산 건데 잘못 걸린 것 같으니 지금 줘야겠다.

"얘, 나만의 유코거든?"

"......."

"...이거 받으세요, 고죠 씨."

고죠가 여전히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스와베를 보며 그 애가 내민 음료를 받는다. 그 애는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본다.

"얘 유코라고 부르지 마, 스와베."

"...네."

휙. 고죠가 스와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먼저 걸어가 버린다. 후루룩, 그 애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숨도 안 쉬고 들이킨다. 안압이 올라가는 것처럼 머리가 찡 아려온다.

"고죠 씨랑 안 만난다면서."

"안 만나요."

"진짜지?"

그럼 가짜겠어?

그 애는 스와베를 내버려 둔 채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 남은 일정이 많다. 보고서 승인도, 오후 일정 동행도, 카페 야간 근무도 남아있다. 스와베와 쓸데없이 기 싸움을 하며 낭비할 체력 따위 없다.

05.

"유코짱! 오늘은 고양이구나! 너무너무 사랑스러워-."

그 애는 발을 동동 구르는 손님 앞에서 살랑살랑 허리에 달린 꼬리를 흔든다. 뇌파에 따라 움직이는 고양이 귀가 쫑긋쫑긋 움직인다. 진짜, 이런 건 어디서 찾아오는 거야? 그 애는 어색하게 자신의 귀 끝을 매만진다.

"잘 어울리나요?"

"응. 정말 귀여워. 걱정하지 마."

고죠는 매번 앉는 창가 자리에 앉아 귀를 팔랑이며 돌아다니는 그 애를 본다. 오늘따라 영 답이 안 나오는 일정 조율 때문인지,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유코 고양이 때문인지 머리가 아프다. 고죠는 핸드폰으로 일정을 조율하다 말고 제자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읽는다. 일단 답이 안 나오는 건 뒤로 미뤄놓고 빨리 끝낼 수 있는 일부터 끝내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음. 노바라랑 유지 또 메구미 보고서 베껴서 냈네."

내가 이걸 안 읽어볼 줄 알았나? 저번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두 번은 안 되겠다. 고죠는 1학년 단톡방에 들어가 메시지를 남긴다. 노바라랑 유지, 내일 교무실로 와~🩷

"으앗! 꼬리 만지면 아파요, 주인님!"

"미안, 미안."

"......."

고죠는 포크로 케이크를 자르려다 그대로 접시에 폭, 구멍을 낸다. 접시에 수직으로 꽂힌 포크를 내려보던 고죠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꼬리를 양손으로 쥐고 끌어안은 그 애를 본다. 꼬리가 치마 속에 달려있어 정말로 당황한 표정이다.

고죠가 그 애를 빤히 보자 당황한 점장이 나와 손님께 양해를 구한다. 카페 입구에 쓰여있는 주의사항을 숙지해달라, 부드럽게 돌려 말한다. 고죠가 보기에는 그냥 손모가지를 잘라도 될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유코짱, 정말 미안해."

"괜찮아요, 주인님. 라즈베리 파이 말씀하셨죠? 유코가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당황해서 주먹을 움찔거릴 정도였으면서.

고죠는 그 애의 뇌파에 영향을 받아 납작하게 뒤로 날아갔던 고양이 귀를 곱씹으며 포크가 찍힌 케이크 접시를 테이블 끝으로 밀어낸다.

제자들 보고서 확인은 끝났고, 내일 일정 조율만 남았는데 어떻게 해도 일이 더 줄 것 같지는 않다. 오늘 교토에서 오자마자 오후 근무를 하고 야간 알바까지 한 그 애가 과연 이 지옥 같은 스케줄을 감당해낼 수 있으려나.

"아! 정말요! 주인님의 응원 덕분에 힘이 나요!"

뭐, 그렇다네.

그럼 내일 일정은 이대로 그냥 진행해도 되겠다. 고죠는 그대로 스케줄을 저장한다.

"잉? 포크 떨어뜨리셨구나. 유코가 새로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고죠는 무심코 눈길로 그 애를 좇다 신발 끈이 풀린 그 애의 컨버스화를 본다. 어제 교토에서 컨버스에 피가 묻었다며 길길이 날뛰는 그 애에게 새로 사준 똑같은 모델의 컨버스화다.

"유코."

유코. 고죠가 그 애를 부른다. 그 애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고죠를 본다. 고죠가 손으로 턱을 괴고 눈짓으로 그 애의 신발을 가리킨다.

"신발 끈 풀렸어."

"아."

"허리 굽히지 마."

허리 굽히지 마. 고죠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자세를 낮춰 바닥에 무릎을 굽힌 고죠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신발 끈을 잡아 그 애의 발목에 야무지게 묶는다.

"치마 짧잖아."

"아... 감사해요, 주인님!"

"다 됐다."

다 됐다. 고죠가 신발에서 손을 뗀다. 고죠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보는 그 애를 보다 피식 웃는다.

"반했어?"

"네?"

"어서 가봐, 유코."

고죠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자신의 창가 자리에 앉는다. 고죠는 턱을 괴고 귀를 정신없이 팔락이며 주방으로 걸어가는 그 애의 뒷모습을 보고 웃는다.

-

아니, 소재부터가 빻아서 매일 빻을 수 밖에 없음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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