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롱을 가득 담아서, 러브 빔!
결제는 소장용/ 메이드 알바하다 고죠에게 걸렸다!
전편!
01.
생각보다 고죠 사토루의 재력은 남달랐다. 궁전 같은 집, 억 소리 나는 고급 가구들을 보자 뱃속 깊숙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던 빈대 기질이 발동했다. 될 수 있으면 이곳에 뼈를 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죠에게 충성할 마음이 들었다. 고죠 사토루가 맞춤 정장과 가지고 싶었던 컨버스화를 내밀 때는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받고 싶을 지경이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았으나, 같이 지낸 지 2주가 다 되어가니 생각지도 못했던 고죠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된다. 타고난 재력가, 날 때부터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던 사람이 예상외로 생색내는 걸 좋아한다.
"유코짱, 내가 열심히 카드 긁었는데 보람이 없네-."
고죠 사토루가 유코를 입에 다는 순간 상황 불문 장소 불문 역할극이 시작된다. 그 애는 귀엽고 깜찍한 유코, 고죠 사토루는 좆같은 주인님. 이 내용이 계약서에 들어갔다니 아직도 믿을 수 없다. 을은 갑이 원하면 언제든지 갑의 유코로 행동한다.
"...주인님. 저 어때요?"
그 애는 고죠 사토루가 새로 맞춰준 양복을 입고 그의 앞에서 한 바퀴 돈다.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도 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정장은 어느 한 곳 불편한 곳 없이 마음에 쏙 든다. 그 애는 새로 산 컨버스화-역시 고죠 사토루가 사줬다-를 내보인다.
고죠가 핸드폰을 들어 그 애의 사진을 찍는다. 고죠와 같이 생활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고죠는 핸드폰이 손에 붙은 것처럼 쥐고 살며 툭하면 사진으로 기록을 남긴다. 오늘 먹은 거, 귀여운 제자들, 길 가다가 발견한 토끼 모양 구름 등 공통점이라고는 단지 고죠의 눈에 든 것이라는 것들 뿐이다.
"유코짱, 포즈가 식상해."
"...어때요?"
"예뻐, 예뻐."
인생무상.
그 애는 웃는 얼굴로 초점 없이 허공을 본다. 깜찍하게 왼쪽 다리를 뒤로 접어 올린 그 애는 고죠 앞에서 손가락 하트 모양을 이리저리 바꾼다.
나 생각보다 이 일 적성에 맞나.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그 애는 힘없이 양손을 내린다. 티끌 하나 없는 유리창에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을 빤히 본다.
02.
고죠 사토루는 쉬는 날에도 유코와 함께하기를 원하는데 대부분 유명하다는 디저트 카페에 가서 달콤한 음식들을 먹고 사진을 찍는 게 일과의 전부다.
"유코, 고개 살짝 왼쪽으로 기울여봐. 응, 응. 좋다."
찰칵. 고죠가 사진을 찍는다. 처음에는 고죠가 들이미는 카메라가 어색했는데 이제는 고죠가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포즈를 취한다. 자연스럽게 다른데 보는 척, 디저트를 입에 물고 웃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고죠 사토루보다 미인이라는 표정 짓기.
"유코, 여기 봐."
그 애는 입안 가득 생크림을 구겨 넣다 말고 고죠의 요구에 따라 카메라를 본다.
"예뻐, 예뻐."
그 애는 반쯤 먹다 만 케이크 접시를 내려놓는다. 생각보다 달아서 쉽게 물린다. 고죠가 한 손으로 메신저 답장을 하면서 그 애가 내려놓은 케이크에 포크를 찍는다. 폭신거리는 시트를 조각내고 날카로운 포크 날에 케이크를 고정한 후 자신의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
고죠가 선사하는 풍족한 자본에 힘에 잠시 현실감각을 잃었으나 역시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점점 이성이 돌아오고 있다. 좀 이상하지 않나? 누가 봐도 데이트 나온 연인 같잖아. 대체 내 사진은 왜 찍는 거야. 그리고 남이 먹던 걸 왜 저렇게 자연스럽게 먹어.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혹시 저희 사이에 무언가 있나요?"
"무언가가 뭔데?"
"성애라든가...."
"너랑 나 사이에?"
음. 그냥 질문의 대상을 확인하기 위해 되묻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발화자가 고죠 사토루인 이상 곱게 안 들린다. 그 애는 입꼬리에 힘을 준다.
"아니면 말고요."
"있으면?"
"네?"
고죠가 턱을 괴고 포크로 케이크를 푹 찍어 자신의 입에 넣는다. 그 애는 입을 벌리고 그를 올려본다. 왜 말을 하다 말아요.
"나 좋아해?"
"...아니요?"
"없네, 그럼."
고죠가 저 혼자 대화를 마치고 딸기를 입에 넣는다. 그 애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이 대화에서 의미를 찾자고 여기저기 파헤쳐봤자 쓸데없는 짓이다.
03.
그 애는 후임이 구해지자마자 그만두겠다는 조건으로 당분간 메이드 카페에서 근무하는 걸 고죠에게 겨우 허락받았다. 고죠는 그 애가 야간 근무를 시작한 지 4시간 정도가 지나면 매일같이 카페에 찾아온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오늘도 유코를 만나러 와주셔서 기뻐요."
"유코-. 하나도 안 기쁜 표정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고죠가 괴이할 정도로 환하게 웃는 그 애를 지나 매번 앉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고죠가 내일 있을 임무 일정을 확인하는 동안 그 애는 그날 나온 케이크를 정성껏 조각 내 진상하면 된다. 그 애는 라즈베리 치즈케이크를 잘라 그릇에 옮긴다.
"자기 애인 너무 달콤하다. 자기가 밤늦게 퇴근하니까 데리러 오는 거잖아."
"애인이요? 저기 앉은 사람이요?"
"뭘 모른척해. 요즘 소문났어. 유코 이케멘 애인이랑 알콩달콩 연애 중이라고."
"그 얘기 저 사람 귀에 안 들어가게 해주세요. 안 그러면 저 밥줄 잘려요."
고죠가 와서 하는 짓이라고는 케이크를 퍼먹으며 내일 있을 임무 자료를 보고, 일정을 조율하고, 제자들의 임무 보고서를 확인하는, 철저히 업무 관련 일들만 한다. 중증의 일 중독자. 보기 지겨울 정도다.
근무 시작한 지 5시간이 되면 그 애의 퇴근과 함께 고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들은 같은 차에 타고 같은 목적지를 향하며 같은 집에 들어간다.
'있으면?'
문뜩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던 고죠의 말을 곱씹다 머리를 흔든다. 고죠의 전담 팀원 3명 중 오직 자신만 고죠의 집에서 지내고, 쉬는 날에도 함께하며, 거리감이 애매한 친밀한 행동을 주고받지만 직장 동료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을 거다.
'나 좋아해?'
저런 유형, 감정적으로 엮이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니까.
04.
핵인싸슈퍼스타의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소문이 돌 걸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고죠가에 팔려 갔대.'
'난 신장 하나 담보 잡혔다고 들었는데.'
'고죠 씨 눈 밖에 나서 노예계약서 쓴 거 아니었어?'
?
이건 예상 못했다. 그 애는 빨대를 입에 물고 커피를 후루룩 숨 쉬듯 마신다. 무려 고죠 사토루와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24시간 붙어있는데 예상과 전혀 다른 장르의 소문이 돈다. 로맨스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느와르 스릴러 공포물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뭐해, 안 따라오고."
"...가요."
그 애는 핸드폰을 보며 앞서 걸어가는 고죠를 따라나선다. 그래. 태도가 저따위니까 소문에 인신매매나 장기매매, 마약 밀수 정신 나간 장르가 난입하지. 그 애는 고죠를 따라 검은 세단의 뒷좌석에 앉는다.
05.
"혹시 저 오늘 오후 반차 가능할까요."
"왜."
"개인 사정으로...."
"내가 그거 몰라서 물어?"
말하기 싫으니까 말 돌리는 거잖아, 이 싸패야.
그 애는 고죠 앞에 서서 애써 웃는다. 살구색 캔버스화 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입을 연다.
"제가 교토 처음 와서요...."
그 애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난생처음 온 교토인데 업무차 방문하게 된 게 아쉬웠다. 마침 오후 일정에 제령 임무는 없어서 이때를 기회 삼아 교토 관광을 해보려고 한다. 휴가를 써도 승인해주지 않는 미친 워라벨을 가진 보조 감독이 시간 내 교토로 관광을 다시 올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복원이 끝났다는 청수사도, 볼 것 하나도 없이 못생긴 교토 타워도, 색색으로 물든 기온 거리도 보고 싶다. 물론 근교에도 가고 싶은 곳이 산더미지만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건 많아야 두세 곳이라는 걸 안다.
"관광하겠다고?"
그렇게 말하면 뭔가 불성실해 보이는데. 경우 없이 반차 낸 것처럼 보이잖아. 난 인생에 다시 없을 기회를 말하고 있는 건데.
"어디 갈 건데."
"네? 아, 청수사랑, 카모강 근처랑 시간 남으면 기온 거리...."
"다 사진 예쁘게 나오는 곳이네."
"네? 네...."
고죠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애를 내려본다.
"뭐해. 청수사부터 가자."
같이 가자고?
"유코, 나랑 가기 싫어?"
"...아니요, 좋아요."
그 애는 정신없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머리를 싸매며 고죠를 뒤따라간다.
06.
"여기 봐-."
청수사에서, 니넨자카에서 고죠는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면 모조리 그 애를 불러 세워 사진을 찍었다. 그 애는 저물어가는 해를 등지고 카모강의 난간에 기대 고죠를 본다. 핸드폰을 들고 커다란 몸집을 낮춰 자신의 사진에 몰두한 고죠의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린다. 새하얀 백발이 석양 아래 붉게 물들고 시원한 강바람을 따라 그의 체취가 날아오는 것만 같다.
'있으면?'
'나 좋아해?'
그 애는 카메라 렌즈가 아닌 고죠를 보며 입을 연다.
"나 꼬셔요?"
이상하잖아. 사람이 천성이 저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도 정도가 있잖아. 오직 자신에게만 거리감이 이상한 걸 못 본 척 하는 것도 한계다. 고죠 사토루의 행동에 의미 두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자꾸만 덜컹거리는 심장이 못마땅하다. 고죠가 핸드폰을 내리고 그 애와 눈을 마주한다.
"네가 마음에 들긴 해."
고죠가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뭐지, 저 뒤가 구린 대답은. 어째서인지 들으면 안 될 말을 듣게 될 것 같다. 들으면 무척 화가 나고
"하지만 특별한 관계가 되는 건 별로."
자존심 상할 말.
"그냥 이대로, 유코랑 즐겁게 지내고 싶어."
나는 받아들일 수 없고 네 마음대로 놀아나는 유코는 원하고? 왜 원하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거절당해야 하는 거지.
"어때? 네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네 편의를 최대한 봐줄게."
나는 그 무엇도 시작하지 않았고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는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네가 여유가 생겨 네 집으로 돌아가면 끝. 그때까지만 이렇게 지내자, 유코."
"그러다가 둘 중 하나가 감정이 생기면요?"
이상하잖아. 반복해서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관심이 기꺼운 듯 유사 연애를 하는데 마음이 안 생길 수 있을까?
"그때는."
고죠가 쓴 선글라스에 자신의 얼굴이 반사된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왜 상처받은 표정인데.
"그걸로 끝."
그 애는 입을 다문다. 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단번에 뿌리치지 못하는 자신의 행동에 헛웃음이 나온다. 고죠 사토루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어도 호감이 자라나고 있었나보다. 저 얼굴로 예쁘다, 사랑스럽다 속삭이는데 어떻게 아무 감정도 없을 수 있겠어. 어쩌면 고죠의 눈에 든 날부터 자신은 추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아요."
이런 게 무저갱이구나. 그 애는 고죠를 보며 보조개가 푹 파이도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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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죠는 쓰레기여야 제맛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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