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만의 유코예요!
결제는 소장용/ 메이드 알바하다 고죠에게 걸렸다!
전편!
01.
"저 사람 고죠 사토루랑...."
진짜 그 미친 소문이 도는 모양이다. 그 애는 구내식당에서 식판에 머리를 거의 박아넣고 점심을 해결하는 중이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열열한 관심에 온몸이 따갑다. 고죠의 파급효과가 이 정도인가.
"거봐. 고죠 씨랑 연애한다는 소문 돈다니까."
"그 말 금지예요, 스와베 씨."
고죠+연애 조합 금지라고.
"이런 시선 불편하지 않아?"
"그걸 말이라고. 저 체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얼른 진짜 연인 만들어."
음. 스와베의 마지막 한 마디로 완벽하게 체했다. 시골에서 무 농사 짓는 우리 엄마도 애인을 만들라 마라 안 하는데. 스와베 씨, 말 많고 좀 성가시지만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발언으로 모든 평범했던 호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와베 씨, 이제 보니까 좀 별로네.
"...누굴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입에 풀칠하기도 바빠요."
"다들 그래도 연애해."
뭔 소리야. 이 양반 답답하네.
그 애는 안 입에 매실장아찌를 모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배님, 저 보고서 밀려서 먼저 가볼게요."
"안 짜...?"
꾸벅. 그 애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식판을 정리하고 구내식당을 나올 때까지 시선이 진득하게 따라붙는다.
02.
고죠가 승차한 세단을 운전하는 건 이지치와 스와베로, 주로 이지치가 맡고 있으나 오늘은 스와베가 운전대를 잡았다.
고죠의 옆에 앉은 그 애는 불편한 얼굴을 애써 감추며 창밖을 본다. 고죠와 연애 중이라는 소문이 난 뒤로 이어진 스와베의 집요한 질문 세례가 달갑지 않다. 고죠 씨와 아무 사이도 아니지? 정말 만나는 사람 없어? 가짜라도 만들어봐. 왜 이래, 나 괜찮은 사람이야.
지겹게 이어지지는 말듯이 모두 한곳을 가리킨다. 그 애는 뾰족한 화살표가 가리키는 정답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 여기서 아는 척 하는 순간 가정은 사실이 된다.
"오늘 저녁에 뭐 해?"
"...저요?"
스와베가 룸미러로 그 애를 보며 묻는다. 그 애는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되묻고는 떨떠름하게 시선을 피한다.
"아마도 잔업...."
사실은 아르바이트 하러 간다.
"잔업? 너 대부분 업무 시간 내에 보고서 전부 끝내지 않아?"
"음...."
그 애가 말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는다. 고죠는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고 있다가 발을 들어 운전석 좌석을 발로 찬다.
"윽!"
"운전이나 해, 스와베."
"넵."
털을 세우며 온몸으로 불편하다는 티를 내던 그 애가 그제야 꼿꼿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 앉는다. 후루룩, 고죠는 그 애가 아메리카노를 빨아 마시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감는다.
03.
고죠는 매장 쇼윈도우에 찰싹 붙어있는 그 애의 사진을 찍는다. 잠깐 업무 전화를 받은 사이에 애가 없어졌길래 의아했는데 근처 컨버스 매장 앞에 서 있더라. 고죠는 찍은 사진을 확인한다. 음. 오늘도 귀엽네.
고죠는 그 애 옆에 서서 그 애가 뚫어져라 보고 있는 신발을 본다. 스니커즈도 아니고 발레 슈즈도 아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발이다. 이미 출시된 지 좀 지난 모델인지 유리 케이스 안에 전시해놓았다.
"사 줄까?"
"아니요. 신발은 네 켤레 이상 안 가지는 주의라서요."
"왜?"
"공간도 돈이거든요. 짐이 많아지면 많아진 대로 더 큰 공간이 필요해요."
고죠는 도쿄 땅값이 어쩌고저쩌고 일장 연설을 하는 그 애를 무시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저 저거 필요 없다니까요?"
"누가 너 사준대?"
고죠의 말에 그 애가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고 입을 다문다. 고죠는 피식 웃으며 프리미엄 가격이 붙은 신발을 검지로 가리킨다. 딱 보니 그 애가 신는 사이즈다. 저 신발 네 거네.
고죠는 직원이 상자에 집어넣던 신발을 받아 그 애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 애의 발목에 꼼꼼하게 묶인 신발 끈을 푼다. 그 애의 발목을 잡고 신발을 벗긴다. 새로 산 신발을 신기고 발목에 리본을 감는다.
"제 거 아니라면서요."
"발목이 가늘어서 그런가 예쁘네."
그 애의 말을 무시한 고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고죠가 어김없이 핸드폰을 들자 그 애가 반사적으로 발을 이리저리 내밀며 포즈를 잡는다. 고죠는 핸드폰 화면으로 그 애가 부리는 재롱을 보며 미소 짓는다.
"신발 사 주면 새 신 신고 떠난다는데."
고죠의 말에 그 애가 눈을 천장으로 돌리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저는 이미 떠날 날짜가 정해진 사람이니까 상관없지 않나요."
"아."
아. 고죠가 짧게 입을 벌렸다 다문다. 그 애는 별 감흥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사 주신 거니까 잘 신을게요."
뭐, 아마 고죠의 집에서 나가게 되면 공간이 부족해 중고로 팔 것 같지만 말이다. 그 애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자신의 발을 내려본다. 역시, 마음에 들어.
"그래."
고죠가 짧게 대답한다.
04.
"오늘 누구 만나?"
"네?"
"유난히 꾸민 것 같아서."
스와베의 말에 그 애는 한숨을 참으며 입꼬리에 힘을 준다. 내가 꾸미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사실 고전 내부 규정에 정복이라고 딱히 정해진 건 없고 단정한 차림이면 된다. 그 애는 하나뿐인 검은 원피스-주로 장례식 갈 때 입었다-를 입고 어제 고죠가 사준 신발을 신었다. 신발이 워낙 로맨틱한 분위기라 그런가 오늘따라 화려하게 꾸민 기분이 든다.
"그렇게 예쁘게 입고 퇴근하기 아깝지 않아?"
안 아까워.
내 기분 좋아지라고 입은 건데 아깝고 말고가 어디 있나. 그 애는 어깨를 으쓱인다.
"아, 그러고 보니 네가 좋아한다던 작가 개인전 한다던데."
"네? 정말요?"
그 애가 먼 산을 보고 있던 몸을 돌려 스와베를 본다. 스와베가 핸드폰으로 개인전 정보를 검색한다. 그 애는 스와베에게 다가가 그의 핸드폰을 같이 내려본다. 진짜네. 원래는 환경보호 테마 전시에 몇 점 전시하던 무명 작가였는데 요즘 들어 팬들이 많아져 이번에는 한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 전시를 한단다. 전시 시간이, 아. 다섯 시 반까지네. 무리다.
고죠는 사탕을 입에 물고 걸어오다 스와베와 머리를 맞대고 선 그 애를 본다. 오늘 출근하기 직전에 집에서 원피스에 발레 스니커즈를 신은 그 애의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자연광 아래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고죠는 핸드폰을 들어 카메라를 켰다가 앵글 안에 들어오는 스와베를 보고 미간을 좁힌다.
"잉? 현장에서 피규어도 파네. 미쳤다. 가고 싶어."
"같이 갈래?"
같이 갈래? 스와베의 말에 고죠는 입술을 비튼다. 저게 저번부터 사람 신경을 긁네. 와작, 사탕을 깨문 고죠가 보폭을 넓힌다.
"스와베 씨는 근무 시간이 짧은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스와베 씨도 저처럼 18시가 퇴근 시간이거든요?"
"휴일이라는 게 있잖아."
쟤가 왜 휴일을 너랑 보내. 고죠가 헛웃음을 내뱉는다.
"아마 못 갈 거 같아요."
"아쉽네."
"뭐가 아쉬워."
뭐가 아쉬워. 고죠의 말에 그 애의 얼굴을 훔쳐보던 스와베가 반갑다는 듯 고죠를 본다.
"고죠 씨, 저희 이번 주에 조금 일찍 퇴근시켜주시면 안 돼요?"
"뭐?"
고죠가 스와베 앞에 삐딱하게 멈추어 선다. 스와베가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고죠를 올려본다. 이것 봐라? 너 지금 나 견제해? 네가? 날?
"유코."
"네?"
"그 전시 가고 싶어?"
그 애가 대답을 망설인다. 고죠가 스와베를 내려보며 말한다.
"그럼 나랑 가야지. 내가 사준 신발 신고 예쁘게 차려입었는데 다른 사람이랑 가면 어떡해."
고죠가 웃으며 가볍게 손뼉을 짝짝, 친다.
"그래, 둘 다 오늘 일찍 퇴근시켜줄게. 유코는 퇴근 후에 나랑 그 전시 보러 가."
"......."
고죠는 웃는 얼굴로 스와베를 내려본다. 여우 같은 인상의 스와베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네까짓 게 뭐 어쩔 건데. 고죠는 스와베를 지나쳐 세단의 문을 열고 앉는다.
"뭐해, 일찍 퇴근하려면 빨리빨리 일 시작해야지."
고죠의 말에 스와베와 그 애가 차에 오른다.
05.
"유코, 여기 봐-."
전시회 입구에 전시된 커다란 포스터 옆에 선 그 애가 얼굴이 하트 모양이 되도록 광대를 부드럽게 부풀리며 웃는다. 정말 좋아하네. 고죠는 잠시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그 애를 본다. 그 애는 고죠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기울이며 고죠에게 다가온다. 고죠가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고개는 왜 갸웃거려. 일부러 저러는 건가? 저게 다 저 귀여운 거 알아서 저러는 것 같은데.
"왜요?"
"유코짱. 귀여운 거 아니까 끼 좀 그만 부려."
"네?"
그 애가 눈썹을 비틀며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짓다 이내 웃는 표정을 만든다. 유코 모드에 들어간 그 애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양 볼을 감싸며 고죠 앞에서 눈을 깜빡인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제 끼를 마음껏 누리셨으면 이제 전시 보러 가는 게 어떨까요."
"그래, 가, 가."
고죠가 웃으며 말한다. 그 애는 뒤따라오는 고죠는 신경도 안 쓰고 먼저 전시장에 입장한다.
형체없이 흐린 존재가 지구 곳곳을 여행하는 여정으로 꾸려진 전시에 그 애는 흠뻑 빠졌다. 고죠는 그림 감상은 뒷전이고 입을 벌리고 그림을 감상하는 그 애의 사진을 찍는다. 고죠는 그 애 옆에 서서 허리를 숙여 그 애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인다.
"뭐가 그렇게 좋아?"
"저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꼭 자신 같아서 그 애는 그림 속 흐릿한 흔적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저희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해요."
"뭐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고."
고죠의 유코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고
"머물렀다가도 필연적으로 떠나는."
결말이 정해진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고죠는 그 애를 내려본다. 어딘가 홀가분한 표정을 지은 그 애가 고죠를 지나쳐 다음 구역으로 이동한다.
06.
"저는 주인님만의 유코예요!"
고죠는 창가 자리에 앉아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다 유리창에 반사되는 그 애를 본다. 고죠의 옆에서 유코는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의 소유를 자처하고 고죠의 요구대로 밝고 사랑스러운 유코로만 존재한다. 고깝지는 않다. 애초에 그게 고죠가 바라던 관계의 형태였으니.
저도 그 음악 좋아해요.
주인님이 좋아하는 거라면 저도 좋아요.
어때요? 주인님의 마음에 드세요?
유코의 모든 대화 속 유코는 없다. 대화 속 나열되는 정보는 전부 주인님에 관한 것일 뿐 유코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유코의 마음에는 드는지 유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철저히 주인님만을 위한 유코.
"유코, 러브 빔이 필요해!"
고죠는 고개를 돌려 손님에게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웃는 그 애를 본다. 그 애의 미소를 마주한 손님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고죠 자신 또한 저 손님과 다르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다시 생각하지만 이게 고까운 건 아니다. 단지,
"너무너무 좋아해, 유코."
"저도요."
희미한 위화감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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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서 떠들지 마...
유코는 고죠 사토루 따위 좆도 신경 안 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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