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혼자 쓰는 우산이 참 너답다.
습하다. 아니 이건 습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래 여기는 어항 안이다. 알고보니 나는 사람이 아니라 물고기였던 거지, 원래 물속에 살던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말도 안되는 습기가 설명이 안된다. 으으, 이상한 생각만 잔뜩 하다보니 창문 밖이 더 시원해 보인다. 재빨리 대충 늘어진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우산을 들고 나간다.
선택은 옳았다. 세차게 내리는 비와 그에 맞춰 불어오는 바람이 오히려 상쾌하다. 원래는 이정도가 아니었는데, 오늘은 밖에서 시간을 좀 보내야겠다 생각하며 한숨을 쉰다.
어차피 반바지에 쪼리를 신었으니 물 웅덩이를 잔뜩 밟아본다. 닿는 물이 시원하면서 찝찝하다. 계속해서 걷다보니 어느 골목에 들어왔다. 흐린 날씨에 눈에 띄는 밝은 머리색이 보인다. 고죠다. 쟤가 저렇게도 웃었나? 놀래켜야지하며 슬금슬금 걸어간다. 백전백패, 한번도 성공한 적은 없지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도전해볼만 하다.
"워-------! 놀랐지 !"
이럴수가, 하얀색 머리를 움찔하며 놀란건 고죠가 아니라 작은 고양이었다. 이렇게 조그마한 아이를 놀래키다니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온다. 그나마 고죠랑은 사이가 좋았는지 도망가지않고 나를 경계한다.
"고양아 미안해, 나는 얘를 놀래키려고 했는데.." 울상을 짓는다. 하얀 머리는 옆에서 바보라며 비웃는다. 웃음소리에 괜히 너는 어떻게 혼자 우산를 쓰냐며, 비를 다 맞고 있는 고양이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말해본다. 그러자 평생 거둘 수 없다면 오는 비를 맞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고죠 답지 않은 답변이 돌아왔다. 방금 생각한 말 같기도 하지만 비가 와서 그런가 애가 센치해졌네..
그럼에도 나는 잠깐의 휴식처라도 되어주고 싶다고,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올테니 기다리라고 한 뒤 뛰었다. 혹시라도 갔을가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돌아오니 여전히 혼자 우산을 쓰고 있는 고죠다. 그래, 참 너 답다.
"고죠, 나 캔 사왔어! 혹시 몰라서 잔뜩!"이라 말하며 옆으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캔을 열며 고양이에게 내민다. 특유의 짭짤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어디서 왔는지 모를 고양이들이 다가온다. 닮은 것을 보니 가족인가? 중얼거리자 고죠는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고죠, 우리 우산 하나 양보하고 가족끼리 편히 밥먹게 하자, 그동안 잠깐 카페에 가있다가 돌아와서 캔 치우자, 내가 음료 하나 쏜다! " 제안한다. 어차피 나는 저녁까지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고 고죠는 뭐.. 그냥 내 심심풀이 땅콩이다.
그래, 웬일로 순순히 대답한 고죠는 읏차 하고 일어난다. 손잡이에 손을 겹치고 내 우산으로 휙 들어오며 본인 우산은 내려놓는다. 고양이 가족을 위한 작은 공간이 마련되었다. 캔을 한 두개 더 열어 놓고, 편하게 먹으라며 카페로 향한다.
우산 한 개로 같이 걸으며 비 오는 날에 왜 나왔냐, 너가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자주 보이는 고양이다 등등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카페에 도착해서는 에어컨 때문에 춥다며 고죠의 교복 자켓을 뺏고, 요즘 게토가 멍때리는 일이 잦아 졌다고 신경 쓰자며 얘기한다. 시간이 꽤 흘렀다. 음료도 다 마셨고 돌아가기로 한다.
거인이랑 같이 쓰는 우산은 애매하다. 자연스럽게 키가 큰 고죠가 우산을 드는데, 내 얼굴로 비가 다 온다. 이거 맞나? 빨리 캔을 치우고 우산을 따로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다행히 귀여운 고양이 가족들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나보다. 깔끔하게 비워진 캔에는 빗물이 담기고 있었다. 물을 털고, 캔을 봉지에 넣고, 아래에 있던 우산를 고죠에게 내민다. 드디어 1인 1우산이다.
편하게 집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빙그레 웃는데 고죠는 뭔가 뚱한 표정이다. "고양이 가족이 또 오면 어떡하냐 우산 놓고 갈가?"말한다. 아 그들이 걱정되는 거였나, 아까 내리는 비는 어쩌고 하더니 의외로 마음이 약하다.
"그래도 우산을 길거리에 두고 갈수는 없잖아, 다음에 만나면 오늘처럼 같이 잠깐의 휴식처가 되어주자"말하니 그럼 그렇게 할가- 라며 만족스러운 듯이 웃는다.
투-둑 투-둑 우산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함께 고죠와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돌아간다. "근데 고죠, 아까 너 무하한쓰고 나 혼자 우산써도 괜찮지 않았니..?" 하니까 이런 일에 무하한을 낭비할 수는 없단다. 평상시엔 잘만 하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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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습니다.. d( ̄  ̄) 어제 업로드를 안했으니까 어제오늘, 이틀치 합시다 하하
처음에는 그냥 고양이 쳐다보는 고죠가 너무 귀여워서 이걸 어떻게 살려볼가 고민하다가 산책나온 주인공, 잘생긴 사람이 고양이 쳐다보고 있음, 둘이 눈 마주침, 어쩌다보니 인사하게 됨 해서 짧고 굵게 운명적인 만남을 적어 보려 했습니다만,, 결이 완전히 달라졌죠? 하하
그리고 사실 고죠는 주인공이랑 같이 우산 더 쓰고 싶었대요~ 괜히 고양이 가족 걱정 해봤대요~ 또 "같이" 안식처 되주자고 해서 좋았대요~ 괜히 무하한 안썼대요~ 안 비밀이래요~
그럼 다들 좋은 하루 보내시고, 좋은 주말 되세요 :)
참고로 저는 글을 쓸 때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그리는 편인데요. 여러분도 한번 이미지를 그리며 읽어보시는 건 어떨가요? 나름 즐겁답니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유료 내용은 다른 버전으로 짧게 적었어요 :)
유료 부제목은 반드시 만날 우리 입니다요, 약간의 타임루프 설정이구용.
주인공은 기억이 없고, 고죠는 있는 상태입니다. 많관부
*아이들의 나는 아픈건 딱 질색이니까와 함께 읽으면 좋아요. 특히 이 가사 부분이요.
" 평온했던 하늘이 무너지고 어둡던 눈앞이 붉어지며
뭔가 잊고 온 게 있는 것 같아 괜히 이상하게 막 울 것만 같고
그냥 지나치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생각은 딱 질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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