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우타] 일어나
236화 스포일러 포함
안녕하세요, 펜슬에서는 처음 인사드리네요.
자주 업로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쓰다보니 자꾸 욕심이 생겨서 쉽지 않습니다🥲
포스타입과 펜슬 중 어느 사이트에서 보시는 게 더 편한지, 스핀이나 멘션으로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236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작과 스토리 진행, 캐릭터 설정이 다른 2차 창작 소설입니다.
*실제 일본 신앙의 요소를 다루지만 실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자장가(https://comeonbabyblue.postype.com/post/15419857)의 후속편이지만 읽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습니다.
주술사에게 후회없는 죽음이란 없다.
너는 어땠니?
너는 후회가 없을 지 몰라도
나는 후회할 거리 투성이라고.
일어나
기시감.
현실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
네 죽음을 느끼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차마 바라보기 힘든 네 모습과 감은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에 낭자한 피만 아니었어도 나는 네가 잠든 것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당당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널 보자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펄럭이는 옷자락 사이로 마주쳤던 눈은 곱게 휘어져 있었는데. 굳게 감긴 눈은 영영 다시 뜨일 생각이 없어보인다. 차라리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떠나지. 묘하게 후련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항상 이랬던 것 같아. 너는 웃고, 나는 화를 내고 있는.
그러다 별안간 눈 앞이 뿌옇게 변한다. 그리고 나는 또 너 때문에 울고 있다.
우타히메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푸른 하늘이 마치 저 녀석의 눈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절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과 같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꼭 감으니 고죠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주마등은 사실 인간이 죽기 직전에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어보는 것이라 했던가. 나는 그럼 너를 살리기 위해 기억의 책장을 톺아보고 있는 걸까.
마지막 순간의 입맞춤, 춤 추던 옷자락 사이로 보이던 네 웃는 얼굴, 함께 싸우고 투쟁한 나날들, 짧았던 우리들의 청춘....
그리고 한껏 나를 놀려대며 화나게 했던 나날들.
갓난아기 시절부터 옷자락을 잡고 늘어져 나를 곤란하게 했던 너.
이제 제법 쫑알쫑알 말도 잘 한다기에 오랜만에 찾아갔더니, 짧은 혀로 처음으로 한 말이 '약한 우타히메'였던 너.
우타히메의 눈이 번쩍 띄였다.
그렇지, 너는 나를 약하다고 그렇게 놀려댔어.
'약한 우타히메'라고 말한 다음 까르르 웃던 네 조그마한 젖니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런데 지금 네 꼴이 이게 뭐야?
시선을 내린 우타히메의 일렁이는 눈에 여전히 평온히 눈을 감은 고죠가 비친다.
어렴풋이 미소를 짓고 있는 그 표정에 별안간 부아가 치밀었다. 마음 같아서는 일으켜 세워 따귀라도 날리고 싶은 마음이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잘 자라는 말, 취소야. 이 괘씸한 놈.
감히 누구 마음대로 눈을 감아?
우타히메의 손이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건 슬픔이 아니다. 이건 격렬한 분노였다. 여태까지 느껴본 적 없을 정도로, 볼의 실핏줄이 다 터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분노가 차올랐다. 피가 돌아 뜨거워진 손으로 어느새 푹 젖어버린 소매를 걷어부쳤다. 차갑고 축축한 옷자락이 피부에 와닿는 감촉이 불쾌하다.
네 추억, 네 감정, 네 인간다움을 모두 나한테 떠넘겨놓고 너는 후련한 미소를 짓겠다고?
웃기지 마.
거친 손길로 방울을 다시 손목에 찼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제 치맛자락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눈 앞이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 있다.
바보라고 불렀더니 진짜로 바보라도 된거야? 나를 두고 너만 후회없는 죽음을 맞겠다고? 너는 못되고, 매사에 경박하고, 진중함이라고는 없는 놈이지만 이기적인 남자는 아니잖아.
머리끈을 팩, 하고 풀어헤쳤다. 머리카락이 뜯기는 소리와 함께 불쾌하게 따끔한 감각이 머리를 찔렀다. 선배? 하고 부르는 쇼코의 흔들리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성큼성큼 걸어가 고죠의 잘린 곳의 위를 덮었다. 흰 머리끈이 점점 그의 피로 물들었다. 우타히메는 붉게 변해가는 천을 노려보았다.
이건 네 색이 아니야. 내 색이지.
고죠 주제에 감히 탐내지 마.
우타히메는 아마도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고죠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장 일어나, 바보 고죠.”
주술사에게 후회없는 죽음은 없다.
네가 후회가 없을 리 없어.
성난 방울이 짤랑, 하고 울린다.
우타히메는 팔을 뻗으며 발을 굴렀다. 제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눈치챈 쇼코가 옆으로 와 술식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서늘하면서도 안온한 쇼코의 주력이 그와 우타히메를 감쌌다. 발을 힘차게 내딛자, 쿵 하고 땅이 울린다. 무녀는 몇 번이고 발을 굴러 땅을 깨워낸다. 쇼코의 주력을 두 손 가득 모아 하늘을 향해 뻗어내니, 밝은 빛이 터져나와 지옥으로 변해버린 신주쿠를 비추었다.
우타히메의 술식은 '증폭'. 쇼코의 반전술식을 증폭시켜 고죠의 회복을 돕는 동시에,
박자에 맞추어 걸음을 옮기며 우타히메는 스스로에게 속박을 걸었다.
이미 죽은 이의 반전술식 또한 증폭시킨다.
다시는 노래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사람은 죽어도 몇 분 정도는 뇌가 살아있다고 했던가. 어쨌든 머리가 멀쩡하니 반전 술사에게는 걸어볼 수 있는 도박이다. 이래도 네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나는 모든 걸 잃게 되겠지만, 만에 하나 네가 살아난다면, 실오라기 하나 정도의 희망이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우타히메는 두 손을 모아 잡아 '그녀'에게 기도했다.
제 목소리에 모든 걸 실을게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한 사람을 위해 노래할게요.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장인을 맺었다. 작은 발바닥은 재게 움직이며 정해진 안무를 추었다. 그의 겉옷에서 뜯어낸 매듭을 손에 감아 금줄을 만들었다. 하얀 술 장식이 마치 네 머리카락같아 절로 웃음이 났다. 느릿하게 걷다 빠르게 돌기를 반복하며 우타히메는 '그녀'를 불러낸다.
이것은 신에게 바치는 곡, 오키나(翁).
아메노우즈메(天宇受売命)에게 바치는 우타히메의 무대였다.
조잡한 무대, 불경한 목적, 나약한 무녀이지만, 이런 나의 외침을 부디 들어주시길.
당신께서 아마테라스를 동굴 밖으로 불러내었듯, 새벽의 여신인 당신의 힘을 빌어 그를 다시 살려낼 수 있길.
방울이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며 그의 머리맡에서 경적을 울렸다. 팔을 거칠게 휘두를 때마다 일제히 소리를 내는 것이 마치 일어나라고 고함을 지르는 듯 했다. 저 얄미운 후배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미소만 짓고 있다.
아메노우즈메(天宇受売命)는 무녀의 기원. 우타히메는 어쩌면 자신의 먼 어머니일 수도 있는 그녀에게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시여, 저는 결단코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눈물이 날 정도로 웃어도 보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이 화도 내보고,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울어도 보고,
미친 사람처럼 노래하고 춤도 추기를 바랍니다.
‘최강’이 아니라
‘고죠 사토루’로.
눈을 감은 가엾은 후배를 내려다보았다. 주력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가고는 있으나 아직 별다른 반응은 없다. 거세게 몰아치는 주력에 네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거친 바람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우타히메는 여신께 간청했다.
나는 그가
약간 모자란 듯이 잠을 자고 일어나, 피곤한 눈을 꿈뻑이며 밀린 집안일을 하길 바랍니다.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 가서 명성에 비해 음식이 평범하다고 투덜대기를 바랍니다.
꽉 막힌 도쿄의 도로 위에서 하릴없이 라디오를 돌리며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다 짜증을 내길 바랍니다.
빨래를 하고 난 후의 향긋한 섬유 유연제 냄새,
평범하지만 부담없이 매일 가기에는 꽤 괜찮았던 식당,
주차장같은 도로 위, 차 안에 켜둔 라디오에서 나오는 제일 좋아하는 노래.
나는 그가 원하는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완벽하게 즐거운 하루들이 아니라, 지나고 보니 퍽 즐거웠던 세월을 보내길 바랍니다.
나는 그가
가장 인간다운 감정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가 최강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자비로운 여신께 기도하며, 우타히메는 마지막 힘을 쏟아 목청껏 노래했다. 손목에 매달린 방울들이 파들파들 떨리며 화음을 더했다.
인간에게는 너그러우신 당신께서 부디 이 한 명의 '인간', 고죠 사토루를 도와주시길 바라며.
더 이상 귀찮게 잔소리하지 않을 테니까,
선배를 공경하라고 억지부리지 않을 테니까.
작은 떨림들이 모여 커다란 파도를 만들듯이,
나의 작은 목소리, 보잘 것 없는 움직임이 큰 염원이 되어 너를 깨울 수 있길.
우타히메는 하늘을 향해 양 손을 뻗었다. 따사롭고 눈부신 빛이 우타히메에게 쏟아졌다.
점멸하는 시야의 바깥에서, 여신이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은 것 같기도 했다.
『일어나』
그녀의 마지막 노랫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아아, 정말. 시끄럽네. 쫑알쫑알.
그렇게 불러대면 오던 잠도 다 깨겠어.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목소리가 제 머리 위에서 중얼거린다.
우타히메.
울고 있는 거야?
여신이 아니라 네 미소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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