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문의 사내

토우나오 귀문의 사내 (1)

남겨진 나오야와 두 관찰자

툇마루 by 담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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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야의 심리 변화를 위해 원작을 어느 정도 왜곡하고 있습니다

* 사망 소재가 있습니다

* 사투리가 어설픕니다

* 본편에서는 토우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프롤로그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비라리

주술계는 불합리하다. 태어나서부터 몸에 새겨진 술식과 주력의 양에 주술사로서의 9할이 결정되고,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엎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술사로 태어난 이상 매번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 본인의 의지로 강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데 주령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매번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며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겪다보면 사람은 자연히 미치게된다. 그래서 주술사들은 전부 미쳐있는 거라고, 고죠가 말했었다.

죽음에 무게를 둘 수 없다. 인연에 무게를 둘 수 없다. 감정에 무게를 둘 수 없다. 사람을 사회적으로 만드는 근간을 모두 소중히 대할 수 없으니 사람의 가치가 줄어든다. 비술사들 사이에서 난 주술사들도 결국에는 사람을 타산적으로 보게되는 세계다. 그런 주술계에서 위세를 떨치는 세 명가, 고삼가가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술식으로 급을 매기고, 더 강한 술식을 가진 자를 얻기 위해 교배시키고, 기르고 사고파는, 인간에 대한 감각이 마비된 가문들이다. 인간을 복권 취급하며 당첨이 나올 때까지 긁고 또 긁는 세계다.

그것이 후시구로 메구미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까닭이었다. 그가 고삼가 중 하나인 젠인가에서 원하는 1등 복권이었기 때문이다. 십종영법술이라 불리는, 젠인가가 제일로 치는 상전 술식이 메구미가 타고난 생득술식이었다.

그 젠인가의 대응접실 한 가운데에 메구미가 앉아있었다. 그의 옆에는 3년 전 메구미에게 나타나 갑작스레 후견인이 되어준 고죠 사토루가 있었고, 그들과 거리를 두고 상석에 젠인의 당주인 젠인 나오비토가 앉아 있었다. 나오비토의 근처에는 가문 내에서도 유력한 자들이 있었고 벽면을 따라 젠인의 사람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다들 좋은 구경하라고 모아놓은 건가? 하긴, 100년이 넘도록 못 본 귀한 술식이니까.”

이 압도적인 인파에도 눌리는 기색 없이 고죠가 태연하게 말했다.

고죠 사토루는 고죠가에서 뽑아낸 1등 당첨 복권이었다. 에도 시대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상전 술식인 무하한과 육안의 조합. 태어난 순간부터 존귀하여 모두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자라난 사내였다. 그런 고죠가의 행운아가 예로부터 앙숙이었던 젠인가의 아픈 점을 꼬집는다.

젠인가는 다른 가문과는 달리 여러 개의 상전술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 제일이 십종영법술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다 쓰러져가던 고죠가가 고죠 사토루라는 존재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것도 배가 아플 텐데, 카모가에서도 방계 출신의 상전 보유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젠인에도 상전 보유자가 있지만 십종영법술은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애 하나를 불러놓고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두 가문이 1등 당첨이 된 마당에 젠인가 혼자만 뒤떨어질 수 없으니 다 큰 어른들이 이리 추하게 구는 것이다.

“메구미.”

고죠는 자신을 노려보는 젠인가의 시선을 가볍게 떨쳐내고 옆에 앉은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고죠는 메구미가 겁을 먹을까 살짝 걱정하긴 했지만, 이 아이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성숙한 부분이 있어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 아이는 불상처럼 평온한 얼굴로 두 손을 모아 그림자 놀이를 하듯이 개 모양의 수인을 만들었다.

“옥견.”

메구미가 나지막히 두 음절을 읊자 바닥에 먹물이 고이는 것처럼 그림자가 퍼져나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아래에서 각각 검은색과 흰색의 털을 가진 늑대를 닮은 개 두 마리가 솟아나, 메구미를 보호하듯 그의 주변을 돌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메구미가 수인을 맺는 순간부터 죽은 듯이 고요해졌던 좌중이 한 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한 마디씩만 내뱉어도 그 수가 많으니 소리가 빌틈이 없이 부대끼며 웅성거림을 만들어냈다. 진짜 십종영법술이다. 젠인가가 그렇게 원하던 상전이다. 어떻게 그 남자에게서. 이렇게 되면 젠인가의 차기 당주는, 그렇다면 지금 후보들은-……. 평가와 계측, 타산이 중앙의 작은 아이에게 쉼 없이 쏟아졌다. 메구미가 그것이 약간 무겁다고 생각할 즈음에, 쿵, 하고 큰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주변의 소음이 가라앉았다.

상석에 앉은 사내 중 한 명이 일어나 있었다. 나이는 고죠 사토루와 엇비슷할까. 젠인의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전통복을 입고 있지만, 그 안에 화이트칼라 셔츠를 입은 청년이었다. 전부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한 와중에 혼자만 끄트머리를 남기고 전부 금색으로 염색을 했고, 귀에는 피어싱이 박혀 있었다. 눈매가 날카롭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었다. 그는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발을 구르며 일어선 듯 했다.

“거, 귀한 구경은 다 한 거 겉꼬, 안자 주요한 이바구를 해야 할 턴디 잡어들은 어데 씨잘떼없는 기라. 그제?”

청년의 어투는 느긋하고, 언뜻 가벼운 것처럼도 들렸다. 그러나 제 식솔들을 ‘잡어’라고 칭하는 문장에 배려나 예의는 없었고, 그의 입과 눈에는 웃는 기색이 없었다. 청년은 옆에 앉은 나오비토를 흘끗 바라보다, 나오비토가 대답하지 않고 술을 마시자 주변을 향해 손을 훌훌 움직였다. 마치 개를 내쫓는 듯한 손짓이었다.

“다들 썩 나가라. 느그들이 당주니 뭐니 들어서 무엇에 쓸 건디. 어차피 다~ 구색 맞추기인거 알고 있응께 어여 가라.”

청년이 다시 한 번 말하자 나오비토의 근처에 있는 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맞추더니 우르르 방문을 빠져나갔다. 그들 중 몇몇은 명령에 따르는 하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자신을 가축 보듯이 하며 손짓으로 훠이훠이 내보내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 리가. 청년은 그런 사람들의 기분 따위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다는 듯 멀끔한 낯으로 응접실을 휑하니 비게 만들더니, 자신도 터벅터벅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오야.”

나오비토의 옆에 앉아있던 한 남성이 말했다. 아마 청년의 이름이었던 듯, 문지방에 발을 얹은 그가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바라보았다. 

“머고, 내 눈치 볼 필요 없은께, 패이 이바구혀라.”

청년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방을 멋대로 훌쩍 나가버렸다. 장지문이 탁,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오비토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주술계에서도 드물게 노년에 접어든 남성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짚다가, 다시 시선을 메구미에게 두었다.

“그 녀석의 아들인게로군. 십종영법술의.”

“그래, 보이는 대로야.”

“네가 지금 그 십종의 보호자를 자처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어디로 보내주면 되겠느냐?”

나오비토가 말하자, 고죠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고죠를 정면에서 보는 젠인가의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옆에 있는 메구미는 고죠의 파란 보석 같은 눈이 시린 채도로 빛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 바뀌면 설득하는 자세도 바꿔서 오는 노력을 보이지 그래? 나에게 그런 돈은 휴지조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자신보다 두 배는 더 살아온 남성들에게 하는 소리로는 들리지 않는 말투였다. 아무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주술계라고 한들, 이러한 태도가 당연시 될 리가 없었다. 그를 증명하듯이, 나오비토의 양 옆에 있는 남성들의 얼굴이 굳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태어나서부터 더없이 귀하게 자라,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는 사내 앞에서 아무리 늙은 얼굴에 주름을 잡아보았자 그 뿐이었다.

애초에 고죠는 이들에게 순순히 십종을 내어주러 온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유일한 사내의 유언이 걸렸을 뿐이었고, 내친 김에 맡아주려던 아이가 우연찮게 십종영법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젠인에 얼굴을 내미게 된 것이었다. 다른 술식이면 모를까, 젠인이 제일로 여기며 수십년간 나타나지 않은 상전이다. 육안으로 어떤 술식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고죠 사토루의 입장에서, 십종을 일부러 숨기고 있었냐면서 가문 사이의 일로 끌고 오면 귀찮아진다. 

그렇기에 미리 담판을 지으러 왔다. 그것이 고죠의 목적이었다. 메구미가 십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데리고 오긴 했지만, 그러한 어른들의 추잡한 대거리에 아이가 설 이유는 없었다. 아무리 고죠 사토루도 인권 의식이 마비된 고삼가의 일원이라지만, 그 정도의 윤리 의식은 있었다. 고죠는 옆 자리에서 조용히 꿇어앉아 있는 메구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메구미의 얼굴은 그 나이대의 아이답지 않게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메구미, 밖에서 놀고 있어. 저 녀석들이랑 이야기 좀 하고 찾아갈 테니까.”

메구미는 그 말을 듣고 옥견을 돌려보낸 뒤 조용히 일어났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본인의 처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그닥 기꺼운 일은 아니었지만, 메구미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알고 있으니, 떼를 쓰지 않고 물러난다. 그것 뿐이었다. 그 건조한 성격은 아이의 인격이 확립된다는 시기에 메구미의 집이 그 어떤 역할도 해주지 못했기에, 메구미가 스스로 단단해져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메구미는 장지문을 닫고 나갔다. 일단 불편한 자리에서 나오긴 했지만 막막한 기분만 들었다. 고죠는 ‘놀고 있어’라고 했지만 무엇이 있고 어떻게 생겨먹었는 지도 모르는 장소다. 낯선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아이가 편히 놀기에 적합한 곳도 아니었다. 메구미를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아닌 상전으로 바라보고, 애초에 술식이 판명나기도 전에 거래하려 들었던 집이다. 아이를 아이로 취급하지 않는 집안에 아이의 정서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문 밖에 멍하니 서 있는데, 응접실 안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듣기 싫어 메구미는 일단 걸었다. 가도가도 배치만 조금씩 다른 정원을 낀 미로 같은 건물과 똑같은 차림새의 사람들이 나왔다. 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메구미를 조용히 시선으로 찔러댔다. 외부에서 태어난, 젠인이 염원하던 십종영법술의 아이다. 메구미가 그런 술식 따위 원치 않았다고 한들 그들은 저마다의 가치와 감정으로 메구미를 재단하고 그러한 시선으로 메구미를 바라보았다. 기대, 한탄, 질투, 불쾌함, 조롱, 걱정. 그 시선이 답답해 목에 무언가가 얹힌 것 같았다.

고죠는 젠인가에 메구미를 데려오면서 누군가가 무례하게 군다면 옥견으로 엉덩이에 잇자국이라도 남겨주라 했지만, 메구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대놓고 위협하면서 공격한다면 모를까 불편하다는 것 만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메구미에겐 아직 이른 일이었다. 고죠가 계속해서 고삼가의 비상식적임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알려주긴 했지만 메구미에게는 아직 보통 사람으로서의 상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메구미는 불편한 시선에 쫓겨 어딘가로 무작정 어딘가로 걷는 것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적은 방향을 골라 즉흥적으로 걷다보니 어느새 인적이 드문 뒤뜰이 나왔다. 지금껏 계속 보였던 잘 손질된 정원과는 거리가 먼 광경이었다. 잡초가 듬성듬성 자라있고, 근처에 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멋대로 뒤틀린 채 무성한 잔가지를 뻗치고 있었다. 그 뒤뜰 너머로 낡은 건물이 있었다. 관리가 덜 되어 있는 것인지 장지며 기둥, 지붕에 파손된 부분이 보수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예 사용하지 않는 폐가로 취급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잘 쓰이지 않는 창고인 듯 했다.

메구미는 그 건물에 다가가 나뭇잎이 몇 장 내려앉은 마루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낡은 나무판에서 삐걱, 하고 큰 소리가 났다.

턱, 하고 안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 때였다.

“니, 머고?”

응접실에서 들었던 청년의 목소리였다. 나오야, 라고 했었나. 메구미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 곳에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니는 사토루군과 함께 있어야 하는 기 아잉교.”

“…… 고죠씨가 잠시 놀고 있으라고 했어요.”

“하아?” 청년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여가 어디 놀이터도 아이고 애를 함부레 풀어노코 자빠짓나 사토루군 제정신이가…….”

순순히 질문에 대답한 것은 청년이 고죠를 ‘사토루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보통 고삼가에서는 성을 부르면 누굴 지칭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부르는 것이 보통이고, ‘~군’이라고 부르는 것도 청년의 말버릇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메구미는 그런 것을 알 수 없으니 둘 사이에 친분이 있으리라 짐작했던 것이다. 

“니, 돌아가는 길은 아나?”

청년의 말에, 메구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청년은 서늘한 기운이 도는 창고에서 나와 신을 꿰어신고 섰다. 내쫓으려나, 싶었는데 눈 앞에 불쑥 손이 내밀어졌다. 하얀 손가락이 늘씬하게 빠진 손이었다. 메구미가 고개를 들어 그 손의 주인을 보니, 초가을의 은행잎의 색을 띤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 데려다 주낀께 이리 온나.”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메구미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기만 할 뿐, 잡지 않았다. 청년은 그것을 딱히 신경쓰지 않고 등을 돌려 앞서 걸었다. 메구미는 청년의 뒤를 따라 걸었다.

“니도 여까지 용케도 왔네. 한참 구석진 곳에 있어가 사람도 밸로 읎는디…… 아, 그래가 온 기가.”

“…… 거기는…….”

“내 방이다.”

메구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년이 잽싸게 대답했다. 거짓말일 것이다. 그 방은 동북쪽에 있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그늘이 져 사람의 침실은 그런 곳에 잘 만들지 않는다. 설령 만든다 해도 이 청년의 방은 아닐 터였다. 청년은 응접실에서도 당주의 옆에 앉아있었고, 무례한 말을 내뱉으며 사람들을 쫓아보내도 질타 한 번 듣지 않았다. 게다가 홀로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염색하고 귀걸이를 할 정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람이다. 입고 있는 옷도 질이 좋은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뒤를 따라 걸으니 메구미가 홀로 집 안을 돌아다닐 때는 따갑게 눈빛을 쏘아대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그를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 유력자의 방이 저런 초라한 별채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왜 이 청년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 것일까. 애초에 왜 그런 누추한 장소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던 것일까. 어째서 그 응접실의 사람들을 물리고, 자신을 신경써 길을 안내해주고 있는 것일까.

궁금한 것은 여러 개 있었지만, 메구미는 구태여 입 밖으로 그것을 내뱉지 않았다. 청년이 있었던 장소가 무엇인지 물었던 것도 무심코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설마하니 대답해 줄 줄은 몰랐다. 아마 거짓으로 답한 것일 테지만.

매듭처럼 얽인 마루를 밟아, 비슷비슷하게 생긴 정원을 수 없이 지나다보니 낯이 익은 문이 보였다. 문이 크고, 장식 상감이 섬세한 것을 보아하니 젠인가의 대응접실의 문이었다. 아직 문 안쪽에서는 고죠와 다른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메구미는 청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문 옆에 섰다. 어딜 가도 고죠가 말한 ‘놀고 있을’ 거리는 없고, 깊이 들어가보았자 길을 잃을 뿐이다. 어디에 갈 데가 없으니 그 자리에서 시간을 때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메구미를 바라보던 청년은, 메구미의 옆에 자리를 지키고 가만히 서 있어 주었다. 

어째서였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청년은 응접실에서도 제멋대로 굴었으니, 이것도 그러한 변덕일 것이라고 메구미는 짐작했다. 하지만, 그가 옆에 있어 따가운 시선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것이 편안했고 못내 고맙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응접실의 문이 열리고 백발에 청안을 지닌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오자마자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메구미를 발견하고는 의아하게 입을 열었다.

“어라, 메구미. 여기서 계속 혼자 기다린거야?”

“아니요, 여기……” 메구미는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청년을 가리키려 했으나, 고개를 돌려다보니 그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마치 귀신이 서 있던 것처럼, 청년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있었다. “…… 누가 있었어요.”

메구미는 자신이 멍청하게 들리는 말을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오야일 거야.”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고죠가 창문에 팔을 기대고 턱을 괸 채로 말했다. 나오야, 응접실에서 들었던 이름과 일치했다. 

“그 녀석의 술식은 투사주법이라고, 당주 할배와 같은 거야. 메구미가 나타나기 전에 저 집안에 상전은 그 녀석 하나 뿐이었어.”

창문 너머를 응시하던 파란 눈이 메구미를 향했다. 메구미는 평소와 같은 무심한 얼굴로 고죠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핏 보면 지루해하는 것 같지만, 3년 간 메구미를 지켜본 고죠는 저것이 흥미의 표현임을 알았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메구미를 제외하면 가장 유력한 차기 당주감이라는 거지. 메구미, 라이벌에게 눈도장한 번 크게 찍고 왔네.” 그 기세가 좋아! 라고 고죠가 밝게 덧붙였다.

“…… 당주 같은 거, 될 생각 없어요.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고삼가 녀석들은 원래 남의 말을 잘 안 믿거든. 게다가 메구미는 십종영법술이니까, 메구미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해도 앞으로도 끈질기게 굴 거야.”

고죠는 응접실에서 지독하게 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던 나이 많은 남성들을 떠올리고 얼굴을 구겼다. 뭐, 저쪽도 그만큼 간절한 것이겠지만. 지금 유일하게 상전을 이어받은 주술사가 나오야 뿐인데, 나오야는 성격과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 젠인에서도 통제하기 어려우니 십종에 아직 어린아이인 메구미가 탐이 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젠인의 풍습에 물들이고 싶어 안달이 나, 계약서 따위는 없는 구두계약을 들이밀며 메구미의 신병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고죠는 응접실에서도 보았던 나오야의 행동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그 녀석은 어릴 때부터 당주가 되겠다고 고죠에게 선언하곤 했는데, 인적 기반 따위 신경도 안쓰는 꼴을 보면 정말 그러고 싶은 것이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인망이 없는 것은 고죠도 마찬가지지만, 고죠는 400년 만에 등장한 기적적인 육안와 무하한의 조합이니 처음부터 이기고 들어가는 게임이었다.

“그러니 메구미는 좋든 싫든 일단 당주 후보로 취급될테고, 그렇게 된다면 가장 손해를 보는 건 나오야 그 녀석이지. 그나마 나에게는 살갑게 굴지만, 기본적으로 성격 나쁜 놈이니 경계부터 해. 나오야 그 녀석, 한 번 꽂히면 몸이 부서져도 죽어라 달려들거든. 괜히 미운털 안 박히는 게 좋아.”

아, 이미 박혔나? 고죠는 밉살 맞게 한마디를 더하며 메구미의 뾰족뾰족한 검은 머리를 와삭와삭 휘저었다. 메구미가 짜증스럽게 손을 쳐내도 무하한에 막혀 짝, 소리는 나지 않았다.

고죠는 낄낄 웃으며 손을 떼어내고는, 메구미에게 옛날 이야기를 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고죠가 고전의 학생이었던 시절, 그 찬란했던 푸른 계절을 처음으로 맞이한 때의 이야기였다.

 

도쿄 도립 주술 전문 고등학교는 매 여름마다 교토에 있는 자매 학교와 교류회를 한다. 교류회는 보통 1학년과 4학년을 제외하고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해 도쿄교의 1학년들은 보통의 틀로 정의할 수 있는 학생들이 아니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령과 주술사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렸다던 고죠가의 도련님과 주령조작술이라는 다재다능한 술식을 타고난 비술사 출신의 주술사, 그리고 타인에게도 반전술식을 쓸 수 있는 희귀한 반전술사. 가히 규격 외의 신인들이었다. 그 중 고죠 사토루와 게토 스구루는 1학년임에도 이미 1급인데, 지금 특급 승급을 앞두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교류회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실력을 다듬는다는 표면상의 목적도 있지만, 실제로는 앞으로 주술계에 새로 등장할 주술사들을 미리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한 자리에 고죠와 게토를 내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는 교토교에게는 불행한 이야기였다. 교토는 헤이안 시대부터 이어진 주술계의 태풍목이었다. 교토에 있는 주술사들은 그러한 자부심이 있었고, 같은 이유로 도쿄의 주술사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 교류회에서는 영락없이 도쿄교의 1학년생 두 명에게 쫄딱 패배하는 그림이 뻔하게 그려지니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죠 사토루가 자신의 친우들과 함께 교토에 도착했을 때, 환영 인파에는 교토교에 속하지도 않은, 더군다나 고등학생도 아닌 젠인 나오야가 끼어 있었다. 나오야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고죠를 ‘사토루군’, 이라고 부르며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는 고죠에게 ‘내, 사토루군이랑 한판 붙기 됐다. 잘 부탁혀.’ 라고 말해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고죠 사토루는 교토의 늙은이들이 구색 맞추기로 젠인의 차기당주감인 그를 끌어들였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무리 젠인의 상전술식을 가진 젠인 나오야라도 고죠의 상대는 되지 않을 텐데. 다들 그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애 한 명을 이곳에 세워둔 것이었다. 물론 교토교 늙은이들의 입김 만이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교토교에서 나오야를 데려오길 원하더라도 젠인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으니까. 아마 앞으로 고죠와 나란히 고삼가의 당주로 서게 될 나오야의 술식이 고죠가의 상전인 무하한을 상대로 얼마나 먹히는지, 장차 고삼가의 세력 싸움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시험하고 싶다는 젠인의 바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래서 젠인 나오야는 질 것이 분명한 싸움에 서게 되었다.

고죠 사토루에게 젠인 나오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자신을 잘 따르는 남동생 같은 느낌의 소꿉친구…… 아니, 소꿉친구라기에는 좀 애매한 관계였다. 고삼가 회의가 이루어질 때마다 상전을 보유한 차기당주라는 이유로 각자 끌려오긴 했지만, 어른들의 대화나 회식에 낄 수 없어 결국 둘이서 자주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당시 6살이었던 고죠에게는 별다른 또래 친구가 없었다. 날 때부터 남다른 단위의 현상금이 걸려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고, 손발에 물이라도 묻을까 귀하게 애지중지 길러져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싸가지 제로의 꼬맹이였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고죠 사토루가 한 겨울에 산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라도 구해오는 집안이다.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려해도 우선 고개가 다다미 바닥에 닿도록 굽히는 사람들 천지다. 그런 사람들에 싸여 자라오다보니, 고죠는 자신과 인맥을 만들라는 부모의 지시를 받고 온 것이 뻔히 보이는 아이들에게 날선 말을 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말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나쁜 예시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너, 젠인의 차기 당주라더니 뭐야, 잡어잖아?”

-라고, 고죠는 어린 나오야에게 사근사근한 인사말 대신 그런 힐난을 툭 던졌었다. 고죠는 그 말에 해맑은 웃음을 짓던 낯이 삐걱거리는 것을 보고, 그 다음에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거나 훌쩍훌쩍 울게 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우는 애는 귀찮다. 어색한 아첨을 떠는 애도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며 저보다 한 살이 어리다는 아이를 지켜보는데, 그 아이는 그저 당황한 것 뿐이었는지 다시 웃었다. 복숭앗빛 뺨을 부풀리며, 연한 꿀빛 눈동자 한 가득 고죠를 담고 이렇게 말하던 것이었다.

“뭐어, 사토루군인테는 지굼은 그렇게 보이겠제. 그치만 내도 언젠가는 사토루군만큼 강해질 기다. 내, 상전도 가지고 있고, 주력도 병 아저씨들보다 많으니께.”

“하?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 주술계는 태어나면서부터 전부 정해진다고, 못 배웠어?”

젠인에는 체술을 쓰는 술사들이 많아 매일 근육 운동을 하는 고릴라들 밖에 없다고 하더니, 이런 어린 놈조차 뇌까지 근육으로 굳어버린 것인가 싶었다. 주술계는 태어나는 순간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삼가에서는 더 좋은 술식을 가진 주술사를 가지기 위해 갖은 수를 쓴다. 그 천부적인 차이를 근성과 노력으로 메울 수 있었다면, 이런 어린 꼬맹이들을 상전을 가졌다는 이유 만으로 어른들의 자존심 싸움에 끌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죠가 혀를 내밀며 오엑-, 하고 토하는 시늉을 해도 나오야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보다 몇 개월은 늦게 태어난 주제에, 녀석은 마치 세상물정 모르는 꼬맹이를 보는 눈빛으로 고죠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토루군, 모리나 본데, 우리 집에는 주력이 요맹코롬도 없음서 사토루군보다 강한 형도 있다 아이가? 그런 사람도 있는디 아무리 주술계라 캐도 세상사 우째 될지 모리는 기다.”

나오야는 팔짱을 끼고 자신만만하게 고죠를 바라보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 모습이 정말로 낯설었다. 낯설었기에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보아도 자신보다 약한 녀석이, 주력이 없는 놈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자신만큼 강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저 한 치의 의심 없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렇게 말해오는 그 낯섦이 성격 나쁜 꼬마님의 흥미를 끌어 당겼다. 고죠 사토루 인생 첫 또래친구이자, 고전에 입학하기 전까지 유일했던 소꿉친구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젠인 나오야가 고죠에게 살갑게 군 이유는 그저 고죠 사토루가 강한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나오야는 강함에 유별난 애착이 있어, 아주 강한 남자가 있다면 세간의 평가가 어떻게 되든 간에 좋은 평가를 내리곤 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토우지라는 그 주력이 전혀 없다는 천여주박의 사내였다. 술식 제일주의인 젠인 내에서 주력이 없는 남자가 태어났으니, 젠인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를 귀신 취급하며 멸시했는데, 나오야는 그게 아주 눈꼴시었던 모양이었다. 토우지를 욕하는 말이 들리면 그게 누구든 단박에 달려가서 정강이를 있는 힘껏 차버리는데, 그것을 보다못한 당주가 강경책으로 매를 들어도 절대 그 짓을 그만두지 않았다고 했다.

“내는 당주가 된 모습을 토우지군헌티 보여줄기다.” 주방에서 여종들에게 얻어온 고기 만두를 먹으며 나오야가 말했다. “내가 토우지군 이바구를 할 때마장 잡어 놈들이 주제도 모름서 궁시렁대는 건 내가 당주가 아니기 따문이여. 젠인에서 제엘 강한 사내가 아닌께 그런 기다. 내가 당주가 되가 그래 말하믄, 녀석들도 찍소리 몬하겠제.”

고죠 사토루는 태어나서부터 당주가 되기로 정해져 있었다. 술식이 나타나기 전부터 그랬다. 술식도 고죠가의 상전인 무하한임이 판명나자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고죠는 당주라는 자리에 무게나 의미를 두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 의미를 가지고, 본 때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웃는 그 얼굴이 신선했다. 토우지라는 그 녀석을 조금 부러워해버릴 정도로.

하여튼, 도쿄교 1학년생이었던 당시의 고죠 사토루는 젠인 나오야를 조금 귀여워할 만한 몇 개월 아래의 동생 내지 또래 친구로 여겼다. 강함을 열망하고, 자부심이 강한 동생. 성장기를 맞이해 팔다리가 길쭉하게 자라고, 젠인 출생답게 몸에도 근육이 붙었지만 그 강함에 대한 순수한 동경은 여전했다. 

그런 녀석을 고전 관계자들과 외부 구경꾼들이 있는 앞에서 패배시킨다니, 조금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스구루, 개인전에서 말이야. 그 녀석, 한 방에 끝내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적당히 상대가 되는 척 해주다가 끝내주는 게 좋을까?”

“나쁜 고민을 하네, 사토루.”

나오야가 참전하지 않은 단체전을 단 5분 만에 끝내놓고, 땀 한방울 흘리지 않은 상태의 고죠가 친우에게 그렇게 물었더니 게토는 그렇게 말했다.

“그건 답이 아니잖아.”

고죠는 그렇게 말하며, 개인전 준비가 완료된 뜰을 내려다보았다. 개인전은 1대1, 한쪽이 패배 선언을 하거나 일정 이상의 부상을 입으면 강제 중단이 기본 원칙이었다. 안 그래도 수가 적은 주술사가 활동하기도 전에 부상 은퇴를 당해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실력차가 큰 경우에는 강력한 기술을 쓰지 못하게 규칙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타인에게 반전술식이 가능한 이에이리 쇼코의 존재가 있다. 그래서인지, 사지가 날아가는 수준만 아니라면 아무래도 오케이, 라는 듯 했다.

이에이리의 존재는 핑계고, 고죠나 게토라는 요주의 인물의 공격 능력을 더 잘 보고 싶은 것 뿐일 테다. 그러나 이에이리가 있다 한들 그 공격을 받아내는 상대의 내구도가 너무나도 낮으면 소용이 없으니, 더 튼튼한 고기방패를 대타로 데려온 것이다. 그것이 젠인 나오야였다.

그 녀석, 싸우게 되었다고 기쁜 표정 짓고 있었지. 지가 고기방패인 걸 알기나 할까?

그렇게 고죠가 가엽게 여기던 녀석은, 경기장에서도 여전히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보다 강한 상대를 대상으로 느끼는 승부욕, 기대, 흥분. 당시의 고죠는 잘 모르던 그런 것들. 그 낯이 예전과 다를 바가 없어서, 고죠는 조금 웃었다. 여전하네, 나오야.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나오야는 손바닥으로 수인을 맺었다. 눈 한 번을 깜빡이니 나오야가 고죠의 코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빠른 공격이긴 하지만, 수인을 포착하기만 하면 예측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고죠의 젖힌 고개 위로 주먹이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고죠의 손바닥 안에서 어두운 빛이 번쩍였다. 빛마저 삼키는 음수의 무하한이 밤하늘 같은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술식 순전 창「蒼」이 경기장의 바닥과 공기를 순식간에 공처럼 뭉쳐냈다. 그 잔해 사이에 옷자락이 끼여있었다. 나오야가 입고있는 기모노의 긴 소맷부리였다. 아마 조금만 더 반응이 늦었더라면 옷 뿐만이 아니라 팔이 휩쓸려 못 쓰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옷을 확인한 나오야는, 하아, 하고 숨을 내쉬더니,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고죠는 그런 희열에 물들어가는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쇼코가 고쳐줄 정도로만 공격해줄게.

그 뒤로부터는 고죠의 무하한을 이용한 원거리 포화와 나오야의 투사주법을 이용한 회피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오야는 창과 혁을 피하며 어떻게든 접근전의 순간을 노려보았지만, 전부 시도에 그쳤다. 태생적인 차이도 있지만, 애초에 상성이 좋지 않았다. 고죠의 술식은 원거리와 근거리 공격에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고, 거리를 좁히는 등 회피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오야의 술식인 투사주법은 빠른 속도와 상대에게 페널티를 부여하는 특성을 가진 술식으로, 실질적인 공격력은 0에 수렴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근접 격투기가 주가 된다. 공격의 범위가 다르다. 거기에 더해 고죠는 무하한을 두르고 있어 그것을 풀어내지 않는한 근접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고, 술식 중 상대와 접촉해 술식의 조건을 강제하는 페널티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것부터가 큰 문제인데, 더군다나 고죠에게는 육안이 있었다. 주력의 흐름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눈은 1초에 24개의 프레임을 그려내는 그 주력의 형태도 잡아낼 수 있었다. 그 순간이 몹시 빠르게 이루어지긴 하지만, 나오야의 투사주법은 수인을 사용한다. 수인을 맺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면 프레임의 형태를 읽고 회피하는 것이야 쉬웠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고죠는 적당히 출력을 조절하며 나오야를 향해 술식 반전 혁「赫」을 사용했다. 시작했을 때보다 나오야의 회피 반응이 느렸다. 당연했다. 상처는 커녕 생채기도 나지 않은 고죠에 비해, 나오야는 조금씩 공격을 받아 부상이 생기고 있었다. 장기전에 있어서 상처의 존재는 크다. 통증으로 인해 의식을 방해받고, 출혈은 몸의 반응을 무디게 만들 뿐 아니라 주술사에게 있어 중요한 뇌의 사고력을 저하시킨다. 아무리 투사주법을 이용해 고속 회피가 가능하다고는 해도 투사주법은 기본적으로 사용하기 까다로운 섬세한 술식이었다. 부상이 생긴다면 당연히 술식의 응용이 힘들어진다. 아무리 주구를 사용하고 특징인 고속을 이용하여 교란하려 들어도 그것은 잔재주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천칭이나 다름 없는 싸움을 그러한 잔재주로 뒤엎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된 결과가 이랬다. 몇 십분이 지난 후, 나오야는 간신히 바닥을 딛고 서 있었다. 창과 혁에 몇 번이나 스친 옷과 살갗은 너덜너덜하고, 왼팔은 움직임을 예측한 창에 의해 뼈가 부서졌다. 오른팔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조금 전에 고죠가 방출한 혁은 나오야가 간신히 몸을 비틀어 피해내긴 했지만, 완전히 회피한 것은 아니라 복부에도 긴 상처가 생겼다. 나오야는 숨을 헐떡이며, 오른손으로 복부를 꾸욱 누르고 있었다. 내장이라도 나오는 것 같은 걸까. 나오야가 등허리를 들썩이며 호흡을 할 때마다 피가 툭툭 떨어져 엉망이 된 시험장 바닥에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하하, 하…… 내나, 사토루군에게 이런 잔재주는 안되겠제.”

배를 부여잡고 있던 나오야가 흐읍 숨을 들이마셨다. 아니, 이쯤이면 그런 말보다는 패배 선언을 먼저 해야하지 않아? 고죠는 생각했다. 고죠와 나오야가 개인전을 치르기 전에 이 경기장을 사용한 사람은 게토 스구루였는데, 그 상대는 게토가 주령을 제대로 꺼내기도 전에 체술로 패배했다. 몇 대 얻어맞더니 얼빠지게 패배를 선언해서 경기장을 재단장하는 데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떤 놈이던 압도적인 차이를 경험한다면 맥이 빠지기 마련이고, 앞길이 막막하면 꼬리를 내리는 것이 보통인데. 이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덤비려고 하는 나오야도 미련하지만, 그런 나오야를 지켜보는 주변인들의 모습도 어이가 없었다. 이 정도로 다쳤으면 경기 중단을 선언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전술사가 있다고 해도 정도껏이다.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믿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고죠는 이제 슬슬 끝을 내려고 했다.

그 때였다. 나오야가 자세를 취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장이 복부의 상처 사이로 흘러나올 것 같아 배를 부여잡던 녀석이, 공격을 위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손이 망가져 수인도 맺을 수 없을 텐데. 그런 초라한 공격이라도 계속 하고 싶다는 것일까. 고죠가 검지와 엄지를 맞대어 둥글게 만든 손을 나오야에게 향하게 했을 때, 순간, 갑자기 눈 앞으로 프레임의 열이 빽빽하게 늘어섰다.

수인 없이. 그 어떤 기교 없이. 나오야와 고죠 사이에 일직선으로 24개의 프레임이 일렬로 서 있었다. 

1초.

아음속의 청년이 부상당한 오른팔을 주력으로 묶어 억지로 강화해가며, 고죠 사토루의 눈 앞으로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그 뻗어진 주먹은 한 없이 고죠에게 가까이 다가오다, 어느 순간 그를 지탱하던 끈이 끊긴 것마냥 바닥으로 추락했다.

“…… 독한 놈.”

고죠는 바닥에 쓰러진 녀석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런 일이 있었다.

 

“~라는 일이 있었지. 그 정도로 독종 중에 상 독종이라는 말씀.”

고죠는 그렇게 옛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주머니에 있던 각설탕의 포장을 뜯었다. 흰색으로 반짝이는 사각형의 물체가 손바닥 위로 데굴 굴러나왔다. 그것을 통째로 씹으며 메구미에게 하나를 건네주려고 하니, 메구미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거부했다.

“보통 어린애라면 단 걸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메구미, 늙었네~.”

“당신 입맛이 나잇값을 못하는 걸 제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고죠는 남은 하나도 입으로 홀랑 가져가며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오야는 그런 녀석이었다. 독종. 강함을 열망하며, 자신의 잣대에 맞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가치판단 따위 신경쓰지 않고 동경한다.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얼만큼의 고통이 주어지든 상관치 않는다. 단순하고도 명쾌하고 그 누구도 굽힐 수 없는 신념이 녀석의 안에 있었다.

고죠가 봐왔던 나오야의 표정은 단 두 가지였다. 강함을 앞에 둔 희열, 나약한 것들에 대한 불쾌함.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다른 표정을 지었던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고전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이었다. 하늘은 새파란 색으로 선명하게 물들었고, 매미 소리도 선명했던 그 날. 고죠 사토루는 젠인 나오야에게 그가 선망하는 사내를 돌려주었다.

주력이 전혀 없던, 고죠 사토루보다 강한 형. 그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면서 정작 그를 죽일 때까지 그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던 고죠였다. 그의 시신을 수습했을 때 사내의 이름이 후시구로 토우지라는 것을 듣고, 아, 나오야의 그 녀석이었구나. 하며 그 존재를 기억해냈다.

나오야의 친척 형이라면 젠인일텐데, 왜 후시구로라는 성을 달고 있는지. 어째서 젠인이 아닌 밖에서 주술사 살인청부업을 생업으로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고죠는 그런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젠인으로 향했다.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고죠는 그저 그와의 사투에서 한 번 죽었다 화려하게 부활하며 비로소 하늘 아래 유일하게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제서야 교류회에서 나오야가 보여주었던 전투의 희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죠는 뼈에 사무치고 살이 에이도록 실감했다. 고죠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다였다. 강함 이외에는 개자식이었던 이 녀석에 대해 굳이 더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저 멀리서도 그 어마무시한 위용을 자랑하는 젠인가의 고택을 향해 걸어가는데, 대문으로 이어지는 잘 깔린 돌길 위에 한 놈이 서 있었다. 젠인 나오야였다. 녀석은 한여름에도 기모노와 하카마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더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평소에도 하얀 피부의 얼굴은 묘하게 창백해서 오히려 추위를 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다리들은 여저이 토우지군을 좋아하지 않은께. 영 불안해가.” 나오야가 희미하게 웃었다. “내 미리 여 기다리고 있었다.”

고죠는 유골함 하나 분량으로 남은 후시구로 토우지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나오야가 동경하던 거체의 사내는 이제 그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유골함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나오야는, 손끝으로 그 도기면을 매만지다 얇은 입술을 열어 조용히 말했다.

“…… 우뗬나?”

고죠는 나오야가 무엇을 묻는 지 알았다. 그의 가치 판단은 강함에 있었고, 토우지는 나오야에게는 최상위권에 위치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토우지가 나오야의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서 최후를 맞아, 지금 뼈와 재만 남긴 채 이렇게 돌아왔다. 그가 알지 못하는 강함에 대해, 나오야가 동경하는 또다른 강자인 고죠에게 판단을 맡기고 있는 것이었다.

고죠는 오른손을 들어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 아래, 부자연스럽게 움푹 패인 자국이 드러났다. 토우지가 천역모로 찔러 꿰뚫었던 상흔의 흔적이었다.

“강하더라.”

물론 개자식이지만. 어찌보아도 개자식이지만. 고죠는 뒷말을 삼키며 네 음절의 말을 내뱉었다.

나오야의 눈꺼풀이 반쯤 내려갔다. 항상 그의 고집만큼 날카롭게 세워져 있던 눈꼬리에는 감정의 무게가 실려 그 눈매가 내려앉고, 눈썹도 따라 휘었다. 입가는 구겨진 종이처럼 꿈틀거리다, 무언가를 말하지 못하고 벌어졌다 닫히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렇게 고죠에게는 처음 보여주는 감정을 삼켜낸 나오야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응, 고마워, 사토루군.”

녀석은 침잠한 호박색의 눈동자로 고죠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려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오야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슬픔을 삼켜내는 그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전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 뒤로도 보지 못한 표정이라 그런 걸지도 몰랐다. 그 독종에게 그런 감정을 심고 그러한 표정을 짓게 만드는 존재는 후시구로 토우지 외에는 없는 것이겠지. 고죠는 실 없는 생각을 하며, 그 개자식의 얼굴을 꼭 빼다박은 아이를 보고 씩 웃었다. 메구미는 그런 고죠의 웃음을 보고는 그 어떠한 믿음도 없다는 듯한 무상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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