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고죠 사토루 드림」 사랑(愛)

사랑만큼 왜곡된 저주는 없어.

· 비속어 주의, 네임리스 드림

· 원작(8~9권) 스포가 싫으시다면 보지 말아 주세요!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인다. 봐도 못 본 척, 눈이 마주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척.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어쩌겠는가. 비술사들과 섞여 지내기를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인데. 탕비실에서 싸구려 믹스커피를 마시다 한숨을 쉬자 옆에 있던 선배가 어깨를 토닥였다. 분명 내 한숨을 다르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제가 한숨 쉬는 이유는 선배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는 그 징그러운 주령 때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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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주술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목숨 값이라는 것을 알지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힘들었으니까.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선 자기가 다 자란 줄 아는 미성년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주 많이 일어났다.

꾸역꾸역 간신히 버티던 나는 졸업하기 전 떠나버린 친구의 행동에 무너져내렸다.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지긴 했을 상태였기에 그를 탓할 생각은 없다. 주저사가 된 건 좀 그렇지만... 난 이제 주술사 관둘 거니까 상관없다.

졸업 후에 어떻게 할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당연히 주술사를 관두고 비술사 사이에 섞이기로 결심한 이들은 존재했다. 뭐, 나는 그 흔한 비술사들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예전처럼 조금 갑갑한 것 빼고는 문제없을 것이다. 부모님과의 연락은 진작에 끊겼지만 모아둔 돈이 있으니 혼자서 살아가기에 충분했다.

내가 이곳에 반드시 있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인재인 것도 아니고,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나...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것도 아닌, 강경하고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하는 그는

최강이라고 불리는 남자 고죠 사토루였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 그도 나처럼 어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친구 한 명은 주저사가 돼서 떠났지, 다른 한 명은 주술사를 그만두려 하니 두 번 떠나보내기는 싫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선수 칠 걸 그랬나? 귀찮은 짐을 떠맡게 된 것 때문에 잠깐은 게토를 탓하고 싶어졌다.

주술고전에 있었을 때 고죠 사토루와 사이가 좋았냐고 묻는다면 글쎄, 무조건 최악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때의 그는 정말 어떻게 해서라도 한 대 때리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참지 않았으니 항상 먼저 친 사람은 나였다. 물론 그에게 닿진 못했지만. 처음에는 말리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니 귀찮아했다. 후배들 앞에선 자제하긴 했지만... 분명 봤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그 3대 명문가 중 고죠 가문에서 육안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 자체가 엄청난 주술사였고, 나는 평범한 비술사들 사이에서 태어난 그저 그런 주술사였다. 때문에 그와 나 사이에는 비술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가 있었고, 그건 항상 다툼의 이유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 부분에서는 게토와 말이 잘 통했지만... 그런다고 고죠 사토루의 생각을 바꿀 순 없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자라난 환경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

야근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다 끝냈음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회사 옥상에 올라와서 뭐 하는 짓인지. 선배가 퇴근 후 수고하라며 사다 준 커피가 손에 들려있었다. 퇴치 비용치곤 저렴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마시는 것보다 다른 용도로 사용된 빨대는 간신히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생각하면서 뭐 씹는 버릇은 고쳐야 하는데... 집에나 가야겠다는 생각에 기대고 있던 난간에서 몸을 떼어내자

"그 버릇 여전하네."

지금 가장 보기 싫은 사람이 있었다. 아니, 난 아무것도 못 봤다. 눈을 다시 감았다 뜨니 이제는 내 손에 들려있던 커피를 가져갔다.

뭐 하는 짓이야.

"마시지도 못하면서 왜 가져가? 내놔."

"빨대 구경하려고. 멋지네~"

"원하면 줄게. 대신 꺼져주는 걸로?"

오랜만에 만났지만 서로에게 안부 인사 따위는 필요 없다. 궁금하지도 않고, 만약 미쳐서 한다고 해도 받아줄 생각 없으니까.

"이유."

"없어. 그냥 지나가다 보여서 얼굴 보러 왔지."

"신경 긁으러 온 게 아니라?"

"그랬으면 좋겠어?"

그의 그 '눈'은 잘 보이니까 비술사 사이에서 주술사 찾기는 쉽겠지. 근데 찾은 게 하필 나라고? 대답하는데도 힘이 들어 무시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무 말도 안 하는 그에게 뺏듯이 커피를 돌려받고 뚜껑을 열어 커피를 마셨다.

"왜 이제 와서?"

"외로워 보여서~"

"웩, 오글거리게."

그가 날 못 찾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저 눈으로부터 안 보일 수 있겠는가. 치밀어오는 짜증에 짧게 혀를 찬 뒤 옥상을 벗어나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보고 있을 생각은 없는지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있던 그가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내려두며 말했다.

"또 도망치게?"

"그래, 그렇게 생각해. 질리거든?"

"그때처럼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문에 다다르고 문손잡이를 잡아 돌리는 내 손 위로 더 커다란 손이 포개졌다. 반사적으로 팔꿈치를 뒤로 당기며 그의 복부를 가격하려 했으나 손목을 세게 잡혀 저지당했다. 한숨을 쉬고서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외로운 건 너 아냐? 내가 왜 못 도망치겠어. 이미 한 번 해봤는데."

"달라진 게 없네."

"너도 똑같아."

그 개 같은 성격 말이야.

선글라스도 아니고 방해도 되지 않을 안대를 굳이 벗은 그의 맨얼굴을 마주했다. 가까워지는 그의 행동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잊었다고 생각한 그때 기억을 다시 떠올리길 바라나 봐. 눈을 감는다고 그만두진 않을 것 같아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넌 여전히 달았다.

-

게토 스그루가 떠났다. 주술사인 그가 비술사들을 죽였다.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100명이 넘는 비술사들이 사는 어느 마을을 학살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어딘가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었다. 이유라도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제 그는 여기 없으니까.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별거 없는 짐들을 가방에 정리했다. 침대에 누워 닫힌 창문을 비추는 달빛을 등지며 이대로 잠들까 하고 눈을 감았지만, 매너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 불청객 때문에 포기했다.

"안돼."

"너 고작 그 말 하려고 왔어?"

"네가 비술사들하고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그 약해빠진 녀석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누가 그에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귀찮아졌다. 분을 못 이기는지 멱살을 잡힌 탓에 누워있던 내 상체가 반쯤 일으켜지고서야 감았던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러는 이유 모르겠고, 앞으로 오래 살고 싶으면 성격 좀 죽여."

"너까지 왜 이러는데!!"

"욕심쟁이."

"너도 똑같아."

"아니지. 너는 나랑 달리 원하는 게 더 있잖아."

잡혀있던 멱살은 진작 풀려있었기에 손을 뻗어 그의 뒷머리를 세게 움켜쥐고 얼굴을 가까이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지자 내려간 선글라스에 그의 맨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못 가지게 할 거야."

"나 때문이라고?"

"어떻게 생각하던 알 바 아냐. 그냥..."

사랑만큼 왜곡된 저주는 없잖아?

고개를 기울여 그의 입술에 살포시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뒤로 밀리는 힘에 푹신한 침대 위로 넘어졌지만 옷을 잔뜩 구기며 어깨를 붙잡고 있는 그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다시 입을 맞출 때는 거슬리던 선글라스를 아예 치웠다. 아랫입술을 깨물어 틈을 벌린 뒤 고개를 기울여 숨을 섞었다.

-

키스 외에 서로 노골적인 터치는 없었다. 다만 숨소리가 고르지 못했고, 부드러웠던 처음과 달리 주도권을 잡은 그가 난폭하게 구는 탓에 서로의 입술에 상처가 났다. 이것 빼고는 달라지지 않았다. 반전순식을 쓰면 상처가 사라질 테지만 그는 그저 가만히 내 밑에서 아까보다 조금은 풀린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입안은 마치 사탕을 녹여 먹은 듯이 달았다. 내게 이런 단맛은 어울리지 않는데.

"바보 같긴."

"..."

"밀쳐내지 못할 정도로 좋고, 아쉬웠어?"

입 다물라는 듯이 그가 입 맞추려 하기에 아까보다 세게 어깨를 잡아 눌렀으나 소용없었다. 내가 했던 것처럼 아랫입술을 깨물어 틈을 벌리려던 그의 혀를 깨물었다.

"너, 키스는 다시 배워야겠다."

"고죠."

그제야 고개를 떨구는 그의 위에서 벗어나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한 쪽 무릎을 굽히고, 무릎 위에 팔로 턱을 괴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화는 좀 풀렸어?"

"이걸로 풀리면 애새끼지."

"하하..."

이 꼴이 된 그와 내가 조금 웃겨서 작게 웃었다. 그냥 떠날걸. 아니, 날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그렇게 만났더라면 되돌릴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이, 지금이 딱 좋았다.

후회를 안 한다면 글쎄... 거짓말이겠지.

"이제 돌아가. 원래 있을 곳으로."

"내가 다 못 끝내고 왔을 리가-"

"넌... 여기 있으면 안 될 사람이거든."

최강이라며?

선글라스를 그에게 건네자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그가 크게 웃었다. 후련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웃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까 내가 웃은 이유를 그도 똑같이 생각했으리라. 선글라스를 받아쓰고서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하던 그가 뒤돌아서 내게 말했다.

"다시 찾아갈게."

"오지 마."

그리곤 문이 닫혔다.

-

전보다 덜 난폭했지만 단맛은 여전했다. 혀라도 깨물 걸 그랬나. 미간을 찌푸리자 그가 손가락으로 미간 사이를 풀었다. 누구 때문인데 입가심을 위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뚜껑을 열었다.

"이제 놔. 갈 거야."

"어디로?"

"내 집."

"난?"

"차갑게 굳어버린 키쿠후쿠 가지고 돌아가."

"매정하긴~"

말과는 다르게 종이봉투를 가지러 가는 그를 보다가 뒤를 돌아 아까는 열지 못했던 문을 열었다. 잔뜩 피곤함을 느끼며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려 하자 뒤에서 그가 말했다.

"다시 찾아갈게."

대답도 듣지 않고 벌써 사라진 그를 대신해 빈 옥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펜슬 찍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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