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썰 백업 4
# 1
솔직히 난 이타도리의 되도 않는 당돌함 너무 사랑함. 학교 내에서 성격 제일 더럽다는 선배가 하교 할 때 앞길 막아서고 졸라 당당하게 "저 선배 좋아해요" 이렇게 고백할 거 생각하면 막 짜릿해. 그럼 고죠가 뭐야 이 감자같은 건 이럼서 하찮은 눈길로 보고 지나치는 거지.
"사토루 표정이 왜 그래"
"거슬려서"
오전 수업 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고죠가 신경 쓰인 게토가 넌지시 물어보니 얼굴이 더욱 구겨짐. 하굣길을 막아서고 고백하던 후배가 그날이후로 매일 같이 자기를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임. 아무리 꺼지라고 밀어내고 활짝 웃으면서 내일 보자는데, 그게 아주 짜증나고 거슬렸음.
"그냥 사귀는 사람 있다고 하지"
"그게 통할 것 같았으면 이미 했어"
고민하느라 머리를 너무 굴린 고죠가 하품을 하고선 달달한 게 당긴다며 게토를 끌고 매점으로 향했음.
"어? 고죠 선배!"
"야 스구루 니가 좀 막아봐"
"내가 왜"
둘이 투닥투닥 거리는 사이 빠르게 달려온 이타도리가 막 매점에서 사온 비닐봉다리를 고죠 손에 꼭 쥐어줌.
"단 거 좋아하죠?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거절할 새라 바로 뛰어가버리는데 봉투 안에 초콜렛이랑 사탕이 종류별로 채워져있었음.
"꽤 귀여운데?"
"그럼 니가 데려가던가"
이걸 돌려줘, 말아. 종일 고민하더니 결국 비닐봉다리 그대로 집까지 가져와버림.
"에라 모르겠다 지가 갖다바친 건데 뭐 어때"
더 생각하기도 귀찮아 초콜렛을 그대로 입안에 집어넣어버림. 단 걸 먹다보니 좀 기분이 풀리는 것 같기도. 받기만 하는 건 질색인데 뭐라도 줘야 되나.
한동안 자기 쫓아다니는 이타도리 보면서 뭐 필요한 거 없나 관찰하는데, 이타도리가 자기 발견하고 뛰어오는 거임. 근데 자기한텐 가벼운 고개 인사만 하고 게토한테 친한 척을 하는 거 아니겠어?
"스구루 선배!"
"뛰지 말라니까"
뭔데. 매점 앞에서 마주칠 때만 해도 모르는 사이였잖아. 언제 이름까지 부를 정도로 친근해진 거야. 자긴 아예 병풍인지 둘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고죠가 혼자 걸어나갔음.
"어? 고죠 선배랑 같이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원래 저러니까 신경쓰지 마"
귀찮았는데 잘 됐네. 떨어져 나가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뭔가 짜증났음.
"아깐 왜 먼저 갔어?"
"그것까지 기다려야 돼?"
"또 뭐 때문에 짜증난 건데"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자신의 말에 대답없이 창 밖을 내다보는 고죠의 모습에 게토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로 돌아감. 관심 가는 거 맞는 것 같은데 저 삐뚤어진 자식은 전혀 모르는 것 같네.
그때부터 고죠의 까칠도가 한창 상승함. 누가 지나가다 실수로 부딪히기만 해도 신경질적으로 뭐야. 이러는데 세상 어디 무서워서 복도 걸어다니겠나. 근데 고죠를 더 짜증나게 만드는 건 그때부터 이타도리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거였음.
"너 요즘 유지 못 봤지?"
"내가 걜 봐야 돼?"
인성 파탄났나 진짜. 대답하는 꼬라지가 재수없어서 고죠 뒷통수 한 대 치고 복도로 나가버림.
"아이씨, 야!"
부르면 뭐 해. 그런다고 게토가 올 사람이냐고. 짜증나는 마음에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다시 앉았는데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림.
"스구루 선배!"
"고죠 선배 있어요?"
"있긴 한데 상태가 영... 다음에 오는 게 나을 걸"
"아 그래요...?"
누구 맘대로 보내는 거야. 망할 스구루 자식. 이타도리가 발길을 돌리는 걸 확인한 고죠가 다급하게 뒷문으로 달려나가서 태연한 척 연기함.
"시끄럽게 뭐야 또 너냐?"
스구루가 고죠를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음. 그도 그럴게 교실이 시끌벅적한데 복도에서 떠든다고 그게 시끄럽겠음? 대화 소리가 들렸다는 것도 신기한 마당에.
"아 고죠 선배 드릴 말씀이 있어서..."
"뭔데 빨리 말하고 가"
고죠 괜히 틱틱거리면서 이타도리가 말하길 얌전히 기다리는데 애가 하라는 말은 안 하고 쩔쩔 매기만 하는 거임. 인내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죠가 그걸 얌전히 기다려주겠어? 결국 짜증내겠지.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ㅈ,"
"우리 사귄다"
그때 게토가 이타도리의 어깨를 감싸면서 믿을 수 없는 말과 함께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음.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뭐?"
"우리 사귄다고"
이게 뭐하자는 시츄레이션이야. 씨발 누구랑 누가 뭘 해? 고죠가 이타도리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봤음.
"니 입으로 말해봐 둘이 뭘 해?"
"그러니까 그게..."
안절부절 하는 모양새가 더 들을 것도 없었음. 정확히는 자기를 좋아한다고 조잘조잘 떠들던 입으로 게토랑 사귄다는 얘기를 듣기 싫은 거. 이타도리가 더 입을 열기도 전에 교실로 들어가서 뒷문을 쾅 닫아버림. 나 좋다고 할 땐 언제고 홀랑 다른 놈한테 붙어먹었다 이거지. 그것도 하필 스구루랑. 다시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에 의자를 걷어참.
"짜증나"
시끌벅적하던 교실이 순간 싸해지고, 반 얘들은 생각했음. 스구루 힘내.
둘이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을까, 집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는데 당최 모르겠는 거임. 고죠가 아는 건 매점 앞에서 마주친 것 뿐이었으니까. 그러다 자기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을 가짐.
"생각해보니까 진짜 짜증나네 내가 이딴 걸 왜 알아야 돼"
그렇게 오락가락하다 밤새우겠지. 저 좋다고 따라다니던 애가 스구루랑 붙어먹어서. 그래 줏대없이 흔들리는 게 싫어서 그래. 밤 새워 내린 결론이 고작 이런 거다. 그 좋은 머리 왜 여기에 쓸 줄 모르는지.
"사토루 너 잠 못 잤어?"
"말 걸지 마"
"네가 데려가라며"
"뭐?"
게토가 항상 웃던 그 얼굴로 웃으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읊어줌 말함. 네가 데려가라고 했잖아. 그 말에 고죠가 벙쪘음. 이 자식 원래 이렇게 얄미웠나.
"누가 뭐래? 난 그냥 걔가 마음에 안 뜰 뿐이야"
"왜?"
"거슬리잖아"
그러니까 왜. 묻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둘까. 가끔은 스스로 잘 생각해 봐 사토루. 네가 왜 그러는지. 게토가 입을 비죽거리는 고죠를 두고 등을 돌렸음.
"아 몰라 진짜 신경 안 쓸 거야 될대로 되라지..."
고죠가 고개를 한 번 흔들더니 책상 위로 엎어졌음.
"스구루 선배!"
"선배라고 하지 말라니까"
"아... 아직 좀 어색해서요"
이타도리가 멋쩍게 웃으며 몸을 베베 꼬았음. 아 눈꼴 시려워. 내가 이걸 왜 봐야 돼. 수업을 마치자마자 강아지마냥 뛰어오더니 자기 앞에서 연애질을 하고 있었다. 좋다고 매달린 사람 앞에서 쪽팔리지도 않은가.
"뭐 해 안 가?"
고죠가 툴툴거리며 말하자 게토가 이타도리의 손을 잡고 가자며 고죠의 등 뒤로 따라붙었음.
"유지 주말에 뭐 해?"
"으음, 아직 계획없는데"
"그럼 나랑 영화 보러 갈까"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대화에 고죠가 얼굴을 확 구겼음. 진짜 신경 안 쓸 거라고.
이런 식으로 주말이 찾아올 때까지 괴로움의 연속이었음. 왜 자꾸 자신이 근처에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건지, 이건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음.
"야 내 앞에서 이러지 말고 좀 저리 가서 좀 놀아"
"왜 또 거슬려?"
"뭐?"
고죠의 눈빛이 사나워졌음. 나름 좋게 얘기했더니 뭐라는 거야.
"아니면 말고"
특유의 능청거림으로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리는데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음. 내가 언제 거슬린다고...! 했지. 그래 그랬지. 그러면서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타도리에게 향했음. 내가 왜 쟤를 거슬려했지. 그렇게 고죠의 때늦은 자각이 시작됐음.
주말에 늦게까지 잠에 빠져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끊임없이 울려댔음. 처음엔 무시하면 끊기겠지 싶었는데 끊기면 또 걸고 끊기면 또 거는 거임. 짜증나서 무음으로 바꾸려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게토한테 부재중이 6통이나 찍힌 거.
"아 뭐야"
- 전화 참 빨리도 받는다
"용건만 말해"
- 나 오늘 유지랑 약속 있는 거 알지
이게 지금 자랑하는 거야, 뭐야. 모르고 싶어도 앞에서 떠들어댄 게 누군데. 잠시만 앞에서?
- 나 아프니까 니가 유지 좀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와라
"내가 귀찮게 뭐하러"
- 애 길 잃을 것 같아서 그래
목소리는 멀쩡한데. 이거 진짜야, 뭐야.
시간도 빠듯하게 알려줘선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애 먹었다. 이게 뭐하는 거야. 옷장 앞에 서서 고민하다 뭣 하러 차려 입어, 해놓고 은근 티 안 나게 꾸몄을 듯. 허점 보이기 싫어서 그런 거라고 자기합리화나 하겠지. 그리고 행여나 기다릴까 택시까지 탐.
"야"
"고죠 선배!"
뭐야. 노란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고죠를 반기는데 그게 꼭 병아리 같았음. 거기다 발목이 드러난 청바지를 입고 하얀 양말을 위로 쭈욱 올려신었는데 거기에 새싹돋은 감자가 박혀있는 거임. 어쩜 지랑 똑같은 걸 신었냐... 귀엽게.
"선배?"
귀엽게? 아니 저게 어떻게 귀여울 수가 있지.
"선배!"
이타도리가 여러 번 불렀음에도 자기 혼자 생각한다고 못 듣고 있다가 크게 소리 함 질러야 정신 차리겠지.
"귀 떨어지겠다"
"대답이 없으시길래요"
그리고 자기 몸통에 두른 빨간 색 힙색을 꼭 쥐어 잡는데, 손 잡으면 한 손에 다 들어오겠다. 나보다 한 마디는 더 작으려나.
이런 생각이 막 드는 거임. 고죠가 또 다시 멍 때리니까 이타도리가 고죠 팔뚝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어어 괜찮아. 이러고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짐.
"저 사실 선배한테 할 말 있어요"
비장한 얼굴로 말하는데, 어디 한 번 해보라며 고개를 까딱였음. 대충 주변 놓여진 돌의자에 앉아서 이번엔 끊기 있게 기다려주려는데 입술이 옴싹달싹 하기만 하고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거.
"대체 뭔데"
"저 선배 좋아해요"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음. 내 친구와 연애하는 이 앙큼한 후배가 나를 좋아한단다.
"스구루 선배랑 사귄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이젠 또 사귀는 게 아니라네. 이게 무슨, 어이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데 문득 이런 계락을 꾸밀 수 있는 한 사람이 머리에 떠오름. 아, 스구루 가만 안 둔다 진짜. 어이없어서 허탈하게 웃고만 있으니까 이타도리가 눈을 꼭 감고 90도로 인사하면서 사과하는 거임.
"선배 속인 거 진짜 죄송해요"
"대충 어떤 그림인지 알겠으니까 됐어"
그래. 얘가 뭔 죄냐. 죄가 있다면 게토의 혀놀림에 넘어간 죄 밖에 없지. 고죠가 괜찮다는 뜻으로 이타도리의 머리를 큰 손으로 덮었음.
"근데 고죠 선배 스구루 선배한테 안 가도 돼요?"
"사토루 선배"
"네?"
"그리고 걔 아프다는 거 구라야"
고죠가 이름을 허락해준 후로 희망을 발견했는지 이타도리가 전보다 더 당돌하게 들이대기 시작함.
"사토루 선배! 같이 점심 먹자!"
"알아서 해"
"선배 나랑 같이 집 가자!"
"(우리 집 반대 반향이야) (일단 끄덕)"
시도때도 없이 들이대는데 이젠 고죠도 어느 정도 받아주고 있었음.
확실하게 이타도리는 고죠를 좋아하고, 고죠도 이타도리한테 감정이 있으면서 둘이 안 사귀는 거. 대체 왜? 그걸 쭉 지켜보던 게토가 고죠 얼굴 보러 왔던 이타도리가 돌아가고 물어봄.
"근데 너희 사귈 생각은 없어?"
"무슨 상관이야"
"그러다 또 뺏기는 거지 난 귀엽다는 거 진심이야"
그래. 네 얼굴에 진심이라고 써 있다.
"건드릴 생각하지 마"
"이왕이면 안 사귈 때 뺏는 게 모양새가 더 괜찮겠지?"
"야"
고죠의 말은 듣지도 않고 홱 등을 돌려버리는 게토였음. 물론 호감가는 건 진짜였지만 굳이 저 친구 좋다는 애를 꼬득일 생각은 없었음.
"사토루 선배! 기다렸어요"
교실문을 열자마자 이타도리가 해맑게 웃으며 고죠를 반겨주는데, 아 그냥 뺏을까.
"선배 나 진짜 진짜 보고 싶은 영화 있는데 이번 주말에 같이 봐주라 응?"
"이번 주말에 사토루 시간 없다는데 나랑 안 볼래?"
"아 스구루!"
게토가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듦. 솔직히 그낭 넘겨주기엔 너무 귀엽잖아. 역시 그때 기회를 주지 말고 그대로 가로챘어야 했나. 지난 행적을 되돌아보는데 이타도리가 씩 웃으면서 고죠한테 냅다 팔짱을 끼는 거임.
"사토루 선배랑 둘!이! 데이트 할 거예요"
아, 이제 안 넘어오네. 게토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있는데 고죠 이타도리 뒤에서 혀를 쭉 내밈.
저 유치한 자식. 아주 꼴 좋다며 게토를 약올리는 거였음. 이러면서 대체 왜 안 사귀는 건지 의문이네.
"됐다, 됐어 나 먼저 간다 그리고 유지 걔도 너 좋아한다?"
저 새끼가. 언제 받아줄지 타이밍을 얼마나 잡고 있었는데; 고죠가 분노로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음. 이 상황 어쩔 거냐고.
"진짜요? 선배 진짜 나 좋아해?"
얼굴을 막 들이밀면서 물어보는데 얜 어째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당돌한 거야.
"네가 알아서 뭐 하게"
"뭐하긴 연애 해야죠! 나 복도에서 선배랑 사귄다고 소리치는 게 소원인데 이거 이뤄지는 거예요?"
"너 하고 싶은대로 다 해라"
연애든, 소원이든.
# 2
고유 연반 대학 선후배 au
이타도리 성격 원래 안 이랬는데 고죠가 다 버렸을 듯. 신입생으로 입학한 그 순간부터 1년 내내 쫓아다니는데 과내에서 햇살을 담당하는 이타도리 첨엔 조심스럽게 거절했겠지. 근데 그걸 알아처먹을 인간이냐고 고죠 사토루가. 거절은 거절일 뿐, 나는 직진한다. 이러고 계속 달려 듦.
"미안 사토루 난 누굴 만날 마음이,"
"오늘도 까였네 내일 봐요 유지 선배"
그러고 과 건물로 홀랑 들어가버리는데 대체 호칭은 언제 이름으로 바뀐 거야. 그때까진 그래도 새내기의 패기라고 생각하며 귀엽게 봤겠지.
"유지! 오늘은 저랑 만날 생각 좀 들어요?"
귀여, 귀여운 후배다...
"유우지~ 이제 나랑 만나줄 때 되지 않았어요?"
"(머리부여잡)"
"나 별로야 유지? 응?"
"(파들)"
점점 말이 짧아지더니 이젠 호칭도 존댓말도 다 까잡수셨다. 근데 거기까지 신경쓸 틈이 있겠냐고 매일 같이 고백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렇게 과제에 시험에 고백에 치이다 한 학기가 끝나버림.
"이타도리 오늘 종강파티 가?"
동기인 후시구로의 물음에 이타도리가 고개를 끄덕임.
"술을 안 마시곤 못 버티겠어..."
"그래 그럼 이따 호프집에서 보자"
시험도 끝났겠다 간만에 술이나 마셔야지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장소로 갔는데 그 날 한 번도 안 마주친 고죠가 있는 거지.
쭉 바라보고 있으니 눈이 마주쳐서 또 달려오려나. 싶었는데 고죠가 인사하듯 눈을 살짝 접어 웃더니 고개를 돌리고 동기랑 얘기를 나눔. 드디어 포기한 건가. 뭔가 꽉 막힌 기 뚫린 듯 시원했음.
"이타도리"
타이밍 좋게 이타도리를 발견한 후시구로가 테이블에 앉아서 손을 흔들었음.
"나 오늘은 아무도 안 챙길 거야"
"그리고 난 널 안 챙길 거고"
"너무해 후시구로"
그동안 술 못 마신 걸 한 번에 마시려는 건지 원없이 소맥으로 말아먹더니 그 말술이라던 이타도리가 취기에 고개를 이리저리 흔듦.
"야 나 애들 챙겨야 돼 진짜 너 못 챙겨"
"으응, 혼자 집에 갈 정도는 돼..."
후시구로 걱정돼서 애들 챙기면서도 이타도리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알아서 짐 챙기는 거 보고 마음 놓고 가겠지. 어질어질한 머리에 집 가야겠다 싶어서 짐 챙겨서 나왔는데 정신이 멍한 거.
"와 진짜 치했다...."
"유지 취했어?"
그때 숙취음료 손에 쥐고 있던 고죠랑 마주치는 거지.
"어... 사터루?"
"혀 제대로 꼬였네 귀엽게"
말씨름 할 기운도 없어서 끄응, 거리면서 지나치려고 하는데 고죠가 이타도리 손에 숙취음료 슥 쥐어줌.
"머야"
"선배 주려고 사 온 거니까 먹어요"
왜 또 존댓말이야. 지금까지 멋대로 반말할 땐 언제고.
"너 포기한 거 아니어써...?"
누가, 내가? 고죠 아까 모르는 척한 거 자기 때문에 이타도리 주목 받는 게 싫어서 그런 거임. 자기만 보고 싶어서. 근데 그런 시커먼 속 모르고 포기 같은 소리를 하다니. 아직도 이타도리는 고죠 사토루를 몰라도 너무 몰랐음.
"내가 유지를? 그걸 바라고 있다면 유지가 포기해야겠는데"
평소라면 한숨이라도 쉬어야 될 이타도리가 취기에 고개를 느리게 끄덕임.
"많이 취한 것 같은데 바래다줄게 집이 어디야?"
그날의 기억 때문에 고죠한테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불편할 듯. 아무리 취했어도 자기 좋다는 사람한테 도움을 받다니. 그때부턴 고죠한테 연락 오면 나 너 안 좋아해. 이러고 단호하게 잘라내는데 세상 태평하게 데이트 할래요? 이러고 답장 와서 아주 답답해서 환장함 ㅋㅋ
그렇게 점점 햇살이라고 불리던 이타도리의 성격이 거칠어지는 거지.
"유지 오늘도 예쁘네?"
"작작 좀 해라 맨날 보는 얼굴 뭐가 예뻐"
"까칠한 것도 매력있어"
"(어이무)"
"유지~!"
"아니야 돌아가"
카톡
- 선배 저 과제하다 모르는 게 있는데!
- (후시구로 연락처)
이런 고죠유지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느냐. 실상 별거 없음. 이타도리는 항상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만 보고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그게 진절머리 나서 연애를 안 한 것 뿐이었음. 근데 시험기간에 피폐해진 몰꼴을 보고도 예쁘다고 하고 자기가 아무리 못되고 까칠하게 굴어도 좋다고 하는데
아 이번은 좀 다른가, 라는 생각이 든 거지. 하물며 그게 쌍방도 아니고 짝사랑으로 1년이면 뭐든 믿음이 가지 않겠어?
"선배 안 심심해요? 심심하면 나랑 연애 안 할래요?"
"그래"
"!? 어????"
"까짓거 하자 연애"
어쩌면 아직도 일방통행일지 모르지만 그게 둘의 시작이었음.
아무런 가꿈없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작이나 해보는 거지. 누가 알아 내가 얘한테 절절하게 매달리게 될지.
"유지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어 알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까칠해 근데 매력있어"
"다 너 때문이거든"
그렇게 저런 문자가 오고 갈 사이가 되었답니다.
# 3
고죠 이타도리를 너무 소중하게 아껴서 맨날 부등부등하고 만나면 뽀뽀뽀 어딜가든 꼬옥,,, 품에 넣고 다니고 다치면 안 되는데 하면서 실습이나 임무할 때도 몰래몰래 뒷꽁무니 쫓아다님,,, 그리고 헤어질 때도 기숙사 안까지 데려다주도 헤어질 때 뽀뽀뽀 하고 헤어지는 거지 ㅠ
근데 사귄지 한 달이 넘었는데 뽀뽀뽀만 하는 거... 고죠는 이타돌이 넘 애기같고 톡 건드리면 다칠 것 같고 막 그래서 생에 처음 생긴 사랑을 소듕하게 간직하는 건데 이타도리는 슬슬 답답할 듯. 첨엔 다정해 너무 좋아,,, 선생님이 체고야,,, 이럼서 싱글벙글이었는데
나중엔 자기가 신줏단지도 아니고 아끼고 아끼다 기숙사에 모셔만 두니까 쫌 섭섭하기도 하고 짜증도 나는 거디 ㅠ 내가 글케 성적 매력이 없나,,, 이럼서. 아냐 고죠 선생님이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좀 기다려보자. 하는데 두 달이 지나도 뽀뽀뽀나 하고 있음. 인내심 좋은 울 감자 터짐.
여느 때처럼 고죠가 기숙사에 바래다주고 뽀뽀뽀 하는데 이타도리가 덥썩 목 잡고서 입술 앙 깨뭄. 후욱... 글서 고죠가 깜짝 놀라서 뭐라 할라는데 혀가 꼬물꼬물 들어오는 거지... 서투른 거 귀여워... 이러다가 아니 이거 아니야. 이럼서 이타도리 떼어냈는데 애가 막 울상 짓고 있는 거;
"선생님 저 안 좋아해요...?"
"뭐? 무슨 소리야 유지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아님 저한테 성적매력이 안 느껴져요?"
막 울망울망한 눈으로 올려다 보는데 말문이 막힘. 자기는 혹여나 다치고 망가질까봐 소중하게 다루려고 한 건데 그게 서운할 줄 몰랐지 ㅠㅠ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저 안 건드려요? 저랑 하기 싫어요...?"
결국 닭똥 같은 눈물 뚝뚝 흘리면서 얘기하는데 이타돌이 우는 거 보고 고죠 사고회로 정지될 듯.
"아니 진짜 그런 게 아니라 유지 이거 진짜 오해야 오해"
"...그럼 왜 그러는데요"
오해라는 말에 쵸큼 진정됐는지 훌쩍이면서 물어보는데, 앗쉬 졸라 귀여웡,,, 다치지 않게 소즁하게 다뤄주면 될 줄 알았는데 이런 문제로 울릴 줄이야... 고죠 속으로 바보 멍청이람서 혼자 질책하고. 근데 고죠라고 안 하고 싶었겠냐고 자빠뜨리고 싶어도 아플까, 싫을까, 참고 참은 거지 ㅠㅠ
"유지를 소중히 아껴야된다는 생각에 그랬어 미안해"
"이게 어케 아끼는 거야!"
그래도 고죠가 자기 안 좋아하는 건 아니구나 안심돼서 후에에엥 눈물 터뜨림. 왜 더 우는 거야 ㅠㅠ 고죠 어쩔 줄 몰라서 허둥지둥 안아주고 등 두들겨주다가 중간중간 눈물도 닦아주고 그럴 듯 ㅠ
"그럼 저랑 해요..."
"어?"
울음 그치는가 싶더니 하는 말이 저거임,,,
"저랑 하자구요!!"
글케 머 일을 치고서 담날 이타돌이 걷지도 못하고 막 풀썩 풀썩 주저앉는 거 보고 고죠 애착증세 더 심해질 듯 ㅋㅅㅋㅋ 한 다음 날이면 아예 공쥬님마냥 침대에서 모시고 살 것 같음. 필요한 거 있음 말하고, 먹고 싶은 거 있음 사다줄게. 그리고 잊지 않는 뽀뽀뽀~♡
# 4
저 사실 ㅅㅅ보다 키스에 진심임 빨간 혀, 뜨겁고 물컹한, 축축하게 젖어있는. 이 단어만으로 이미 19금이고 저 단어들이 조합 됐을 때의 모습이 야하다고 생각함 특히 혀 내밀고 하는 건 ㅅㅅ 10판 하는 것보다 더 야살스럽고 보는 사람 애간장 태워 미치게 만든다고 생각함
왜 이렇게 열심히 키스를 찬양하냐고요? 제가 보고 싶어서 그래요...
고죠가 분위기 잡으면서 슬금슬금 다가가면 이타도리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다 눕혀지겠죠? 더 도망갈 곳도 없고 고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얼굴이 이미 끼 떠는 얼굴이라 괜히 침만 넘어가고
근데 위에 올라타서 고개까지 디밀어놓고 쳐다보기만 하는 거예요 이타도리 입안 바싹바싹 말라가는데 와중에 또 침은 넘어가고 아주 환장하겠는 거죠
"유지 혀 내밀어 봐"
키스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웬 혀? 일단 내밀라니까 메롱했는데 고죠가 순간 케치해서 혀끼리 공중에서 얽히는 거지~!
이게 개꼴리는 점이 입 벌리고 혀가 입밖으로 쭉 나와있어서 침도 못 넘겨요 입가로 침이 질질 흐른다구요 근데 그거 신경 쓸 겨를이 어딨어요 막 혀 아래 훑어올렸다가 혀끝부터 안쪽까지 옮아맸다가 혓바닥 간질이고 이게 키스인지 애무인지 겪어본 적 없는 야한 키스로 이미 정신 출타했는데;
고대로 입 닿을 듯 말 듯 다가가주다가 다시 고개를 뒤로 빼면서 혀끝만 깔짝깔짝 대는 게 사람 애간장 지대로 녹인다구요 아시겠어요? 순간 가까워진 숨결에 눈 감다가 멀어지면 왜...? 이러면서 다시 눈 뜨게 되는 거죠 거기에 고죠가 살짝 웃어주면 이제 이타도리 안달나죽는 거임.
# 5
중학교 3학년, 나는 나의 친구를 보고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
축구를 뛰다 열기에 못 이겨 수돗가로 달려가 웃통을 벗어냈다. 어떻게 견뎌 이걸. 더위를 쫓아내려 호스를 틀었고 미처 잡지 못한 호스가 날뛰며 물을 흩뿌렸다. 아 뭐야! 눈에 띄게 특이한 은색의 머리칼과 혼혈이 아닐까, 혼혈이라면 어느 나라일까, 궁금증을 일게 하는 푸른 눈. 입고 있던 흰 색의 무지티가 흠뻑 젖어 안의 살갗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얗고 매끄럽게 빠진 허리와 납작한 배 위로 군데군데 잡혀있는 근육.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햇빛이 쨍쨍하던 여름. 나의 후덥지근한 첫사랑이자, 짝사랑이 시작됐다.
"유우지 뭐 해?"
고등학교 2학년,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은 현재진행중이었다.
"아무것도. 무슨 책 빌려달라고?"
"수학 오늘도 안 가져가면 진짜 운동장이라도 돌릴 기세야"
"이번엔 낙서하지 마!"
본인의 용건만 해결하고 홱 하니 가버리는 저 망할 놈이, 고죠 사토루. 나의 짝남이다.
중학생 땐 활발하고 성격도 좋아서 친구도 많았는데 어째선지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선 성격이 베베 꼬인 탓에 제대로 대화하는 친구는 나 하나 뿐이었다. 나 방금 웃었나. 특별한 어떠한 관계로 여겨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독차지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나보다.
"사토루 고백 받았다며?"
"어?"
"옆 반이 스즈키가 그러던데?"
중학교 때야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모난 성격 탓인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왜 사토루랑 같은 반인데 엄청 예쁘다고 유명한 애. 그 말을 듣는 순간 발길이 저절로 움직였다. 설마 받아줬을까?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고죠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사토루!"
"우리 반까지 찾아오고 별일이네"
사물함에 등을 기대고 있던 고죠가 고개를 돌렸다.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 끝이 동그란 귀여운 코와 작은 입술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살짝 처진 눈꼬리가 강아지를 연상케 만들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쟤구나, 사토루한테 고백한 애가. 그리고 이번 사토루의 여자친구가.
"뭐야 찾아와놓고 왜 말이 없어"
"...교과서 돌려달라고 다음 시간에 들어야 돼"
교과서를 손에 쥐고서도 고죠의 옆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소녀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여자였다면 뭔가 달랐을까. 아니야, 남자라서 이렇게 친구로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거잖아. 허튼 생각하지 말자.
"나 갈게!"
이타도리의 밝은 인사에도 고죠는 그저 손을 휘적휘적 젓는 게 전부였다.
많은 여자친구들이 스쳐지나가는 걸 봐왔지만 이리도 크게 동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독차지했다고 생각한 게 엊그제라서? 그의 안하무인한 행동으로 아무도 다가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무래도 둘 다인 게 맞겠지. 열린 창문 틈으로 불러오는 바람에 커튼이 살랑였다.
폈을 땐 그렇게 예쁘던 벚꽃들이 길바닥에 나뒹구는 쓰레기가 되어 돌아왔다. 사랑의 계절이라고 불리우는 계절도 끝나가는데 연애만 했다 하면 한 달도 채우지 못해 우유 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던 고죠 사토루는, 장장 3 개월의 연애를 이어가고 있었다.
"유우지 보통 기념일엔 뭐 해야 될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말이 곱게 나갈리가 없었다. 불퉁한 이타도리의 대답에 바닥에 누워있던 고죠가 몸을 일으켰다. 가끔 틱틱댈 때는 있어도 이렇게 나 기분 안 좋아요, 티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무슨 일 있어?"
"...오늘 기분이 좀 별로네 미안한데 집에 가주라"
고죠가 이타도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모든 걸 꿰뚫어보려는 그 눈빛에 당장이라도 속내를 들킬 것만 같았다. 뭉툭한 손톱이 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파고 들었다. 싫어,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초조해진 그만 얼굴을 피해버렸다.
"뭐 해 안 가고"
이타도리의 말에도 잠시 밍기적대던 고죠가 흐음,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뭐 알았어 학교에서 보자"
미련없이 나가는 뒷모습에 방문이 닫히고도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불안했다.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게 아닐까 하고. 그때부터 이타도리는 자신도 모르게 고죠를 피하고 있었다. '사토루' 라는 이름만 나와도 몸이 움찔움찔 떨렸고 주변에 그가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사토루 백일 때 엄청 났다며?"
"야 말도 마 머리부터 말끝까지 커플로 맞췄댄다 샤X으로"
고등학생 답지 않은 이벤트에 고죠의 이야기가 하루종일 동급생들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어딜가도 들리는 이야기에 귀를 막고 도망가듯 계단을 뛰어올랐다. 듣고 싶지 않아, 갑자기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어. 혼란스러운 정신으로 잠겨있는 옥상문 앞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유지?"
기껏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을 피해 도망쳤더니 그 이름의 주인이 제 앞에 나타났다.
"역시 너 무슨 일 있지"
뛰어가는 이타도리를 발견하고 뒤쫓아온 고죠가 천천히 계단을 올라 이타도리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퍽 다정한 말투였지만 그의 얼굴은 전혀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너 왜 여기있어...?"
"뛰어가길래 쫓아왔지 무슨 일 있나 하고"
그러니까 왜. 굳이 소리내어 묻지 않아도 그 해답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네가 내 유일한 '친한 친구' 잖아"
친한 친구. 그 단어가 왜 이렇게 아프게 강조되어 들리는지 모르겠다. 분명 이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단어였는데 이제는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그 단어 아래서 어떻게든 도망가고 싶었다.
너와 그저 친한 친구 사이로 마주한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었나.
유지. 이름을 부르며 머리칼을 넘기는 손길에 울컥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다가온 적 없잖아. 왜 하필 지금이야. 그간 친한 친구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생길 때마다 상자에 꼭꼭 숨겨왔거늘, 그 상자에도 용량이 정해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이렇게 가득차서 넘쳐 흐를 거라곤 더더욱.
"유우지 울어?"
"...안 울어"
"눈물까지 달고서 그런 말은 설득력 없는데"
고죠는 이런 걸 모르는 척 넘어가 줄 위인이 못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는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드는 자신이 짜증나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유우지 나 헤어질까?"
갑작스러웠다. 이런 상황에 이런 질문을? 설마, 했다. 방금까지 눈가가 뜨거울 정도로 흐르려고 아우성을 지르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이타도리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확 치켜들었다. 여느 때처럼 짓궂은 얼굴.
"너... 알고 있었어?"
"뭘?"
알고 있었으면서, 알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그러면서도 고죠는 이타도리가 직접 입을 열기를 바라고 재촉했다.
"언제부터 알았어"
"그렇게 대놓고 티냈으면서 모르길 바란 거야?"
"너 진짜 성격 나빠"
"알아 나도 잘 알고 있어 유지"
고죠의 커다란 손이 이타도리의 볼을 감쌌다.
"나 헤어질까?"
두 번째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알아챘다. 이번 연애를 유독 질질 끌어온 것도 저 때문이란 걸. 당했다. 완전 제대로 당했어. 사람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져도 되는 건가.
"진짜 성격 나쁘다고 너"
"그거 말고"
"헤어져"
"또 다른 말은?"
"좋아해. 좋아해 사토루"
"잘했어 유지"
고죠의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 무작정 시작됐던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은, 생각치도 못하던 방향으로 종결됐다. 또다시 무더운 여름이었다.
# 6
고죠 이타도리한테 고백하려고 졸라 비싸고 예약하기도 힘들다는 호텔 스카이 라운지 데리고 가서 분위기 잡는다고 와인 마시다가 취했으면 좋겠다 ㅋㅋㅋㅋㅋㅋㅋ "유우~지! 내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 응?" "네? 아 네 알죠 알죠" "진짜? 그럼 나랑 만나줄 거야?" 이타도리: (머리짚)
다음 날
고죠: (무릎 꿇) (손 번쩍)
유지: 하아 또 이런 식으로 할 거예요?
고죠: (도리도리)
유지: 오늘부터 술 마시지 마요
고죠: (끄덕끄덕)
유지: 다시는 안 봐줄 거야
고죠: (끝난 건가) (눈치) (팔 슬쩍) 그래서 우리 사귀는,
유지: 손 제대로 들어요
고죠: (시무룩)
# 7
고죠유지 선배au로 점심시간에 유지 무릎베개 하고 자는 고죠 보고 싶당... 유지 익숙하게 고죠 눕혀놓고 혼자 햄스터마냥 야금야금 빵 먹을 듯... 너무 귀여워...ㅠㅠ
그러다 빵조각 조금 뜯어서 고죠 입에 슬쩍 넣어주기... 고죠 눈 감고 자는 (척) 중이었는데 입에 넣어주니까 일단 먹음 ㅋ큐ㅠㅠ
"선배 안 자죠?"
"자는 중이야"
"알겠어요 그렇다고 쳐요"
빵 다 먹고 하늘 구경하는 유지 슬쩍 실눈 뜨고 훔쳐보는 고죠... 근데 시선 다 느껴져서 고죠가 자기 쳐다보는 거 알고 있을 듯 그냥 간질거리는 게 기분 좋아서 모르는 척 하는 거지 ㅠ 넘모 설렝... 그렇게 한참 있다가 둘 다 진짜 잠들 듯 ㅋ ㅋ ㅋㅋ
옥상벽에 기대서 앉아있는 유지랑 그런 유지 허벅지 베고 누워서 자는 고죠가 넘 보고 싶었음...
# 8
이크님이 던진 네 홍차에 독을 탔어. 고죠유지로 한 번 풀어보자... (자신없음)
"각설탕 드릴까요?"
아타도리가 찻잔을 손에 쥐고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그냥 마실게 그래서 할 얘기라는 게 뭐야?"
이타도리가 머뭇거리다 고죠가 홍차를 머금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뗐다.
"선생님 홍차에 독을 탔어요"
그런데 고죠는 전혀 놀라는 기색없이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그대로 이타도리의 턱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삼키지 않고 입안에 머금고 있던 홍차가 이타도리의 입으로 넘어갔다. 급한 손길로 고죠의 어깨를 세게 꾸욱 밀었지만 어찌나 굳건히 버티는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아아, 안 돼. 뱉을 새도 없이 얽혀오는 혀에 입안을 적시던 홍차가 그대로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다.
"유지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았어?"
"아..."
너 나 못 벗어나.
# 9
(뚀님의 문장 제공) 마시멜로처럼 달콤한 맛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시멜로의 달콤한 맛이었다. 이타도리가 마시멜로를 핫초코에 담궈 먹는 고죠를 보고 쫄래쫄래 다가갔다.
"고죠 쌔앰~"
"뭐야 무슨 부탁하려고 애교를 부려?"
"어려운 건 아니고 저도 그거 하나만 주면 안 돼요?"
고죠가 손에 들린 마시멜로를 핫초코에 퐁당 담구더니 이타도리에게 내밀었다.
"그게 마지막이야"
"앗싸"
핫초코에 꽂혀있는 꼬챙이로 마시멜로를 푹 꽂아 와앙 한 입에 집어넣었다. 입을 우물우물 움직이며 컵을 다시 내밀었다. 컵을 옆으로 치운 고죠가 테이블에 턱을 괴고 이타도리를 바라봤다.
"맛있어?"
말없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는데 그게 퍽 귀여워 웃음이 새어나왔다. 겁도 없이 아무한테나 이러고 다니면 어쩌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앞에서도 이런다는 것을 상상하니 조금 심술이 났는 지도 모른다. 손을 까딱이며 부른 이타도리의 뒷통수를 부드럽게 감싸잡았다.
아직 넘기지 못해 남아있던 마시멜로가 입안을 굴러다녔다. 방금까지 제가 먹고 있던 것이었는데 왜 더 달게 느껴지는지, 어깨를 꼭 쥔 어린 소년의 주먹이 바들거렸다.
"어디서 그렇게 웃고 다니지 마 알았지?"
입술이 떨어지고, 이타도리가 볼을 발그레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 10
이타도리가 먼저 달려드는 거 보고 싶어서 스킨십 제대로 안 하고 은근히 건드리기만 하는 고죠.
원래 고죠 이타도리한테 찹쌀떡마냥 붙어다녔는데 이타도리가 먼저 스킨십 한 적 있냐는 이에이리의 가벼운 질문에 뭔가 내부에서 쩌저적 갈라졌을 듯. 그리고 그 후부터 이타도리가 먼저 스킨십 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거리를 두는 거지. 붙어있으면서도 스킨십은 간단한 포옹까지만. 뭔가 뽀뽀 할 것처럼 몽실몽실한 분위기가 생성되면 고개 홱 돌리고
"어 저게 뭐지" 요딴 되도 않는 연기나 하면서 피하고,
둘이 있을 땐 지가 먼저 은근하게 야한 말 뱉어놓고 이타도리 빤히 쳐다보다가 이상야릇한 분위기 생성되면
"오늘 늦을 것 같아" 이럼서 이마에 입 맞춰주고 도망감.
나중엔 이타도리가 먼저 몸이 달겠지? 자기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들던 사람이 거의 3주 가까이 안 건드리니까 뭔가 서운하고 그럴 것 같음.
"쌤 오늘도 바빠요?"
"왜?"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치는 고죠. 이타도리가 뭐 땜에 그러는지 잘 알면서 절대 먼저 굽힐 수 없다는 의지임. 이타도리가 손을 꼼지락 대면서 침대에 걸터앉은 고죠를 스윽 올려다 보다가 못내 고개를 돌려버렸음. 원래 말하기도 전에 달려들던 사람인데 직접 말하기가 부끄러운 거지 ㅠ
"말을 해야 알지 유지"
"어, 음... 그건 그런데"
결국 말하기보다 행동을 선택한 이타도리가 고죠를 마주보며 허벅지 위에 앉아서 창피한 듯 으으, 앓는 소리를 내다 쪽 입을 맞췄음.
"하하, 뭐야?"
"으아, 왜 이러는지 알잖아요"
"잘 모르겠는데?"
이미 좋아서 입꼬리 올라가있는 주제에. 아주 신이 났다, 신이 났어.
이타도리가 눈 꼭 감고 다시 한 번 입술을 꾹 찍었음. 이번엔 뭔가 해보려는 듯 계속 입술을 붙이고는 있는데... 그냥 그것뿐임. 먼저 리드해본 적 따위 없어서 어케 해야 될지 모름. 고죠가 기다리다 못해 입술을 살짝 벌리고 혀로 핥아주면 기다렸다는 듯 입술이 열리지 않을까? 근데 딱 핥기만 하고 고개를 뒤로 빼는 거지. 왜...? 이타도리가 안달난 눈으로 막 고죠 쳐다보는데 흔들리는 눈동자가 자길 향해 있는 게 너무 귀여운 거임. 거기서 못된 놈의 심보가 또 발동함.
"유지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
자기만 안달난 게 아니란 것 쯤은 이타도리도 알고 있었음. 뽀뽀를 했을 때부터 고죠가 반응하는 게 엉덩이로 다 느껴졌거든... 근데 이렇게 여유 부리니까 고죠가 밉고 원하는대로 해주기 싫은 거.
"됐어 저 안 할래요"
그럼서 고죠 위에서 내려가려고 하는데 허리를 딱 붙잡히는 거지.
"내가 이대로 보내줄 줄 알았어?"
"뭐예요 이거 놔요!"
"싫은데 다시 제대로 해 봐 그럼 원하는대로 해줄게"
"진짜 미워"
알았으니까 빨리. 고죠의 재촉에 이타도리가 다시 입술을 붙이고선 고죠가 하던 걸 머릿속에 그리면서 서툴게 혀로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갔음. 자기가 하던 방식 그대로 따라하는 이타도리가 얼마나 귀여울까... 열심히 어깨 붙잡고 꼬물꼬물 움직이는 거 좀 더 즐기다가, 이타도리가 먼저 스킨십 하기! 란 목적은 달성했으니 그 후부턴 다시 고죠가 리드하겠지.
이 다음엔 유지가 리드하는 것도 좋겠다. < 이타도리 눕히던 고죠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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