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익애계 스쿠나 2.5] 식사

컴퓨터 모니터와 한참 눈씨름을 하며 서류를 작성하던 나나미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시부야 사변 이후 나나미는 사후처리와 사멸회유 대책에 시달리고 있었다. 1급 주술사로 시부야 사변에 참가했던 생존자에 무엇보다도 규정 측이라고 판단된 바람에 총감부에서 나나미를 책임자 삼아 일을 맡겨버린 탓이었다. 쏟아지는 업무에 며칠째 밤을 새고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나미가 책임자가 된 덕에 스쿠나의 각성을 숨길 수 있었다.

고죠가 봉인된 지금 이타도리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진다면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나미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입을 맞추고 속박을 맺어 스쿠나의 각성을 숨기고, 이타도리가 스쿠나의 힘까지 제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사용에 제한이 있다고 거짓 보고서를 올렸다. 스쿠나가 싸우며 생긴 현장의 파괴는 특급 주령들과 게토의 몸을 사용하는 켄자쿠의 전투로 인한 것으로 꾸며냈다. 그리고 지금 나나미는 사흘 밤을 샌 끝에 마지막으로 사멸회유의 현상과 대책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한 참이었다.

 

“피곤해...”

 

들을 사람 없는 말을 중얼거린 나나미는 재킷을 들고 힘없는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살짝 도톰한 회색 재킷 한 벌이었지만, 그 재킷 한 벌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져 어깨를 늘어뜨린 채 느리게 걸었다. 이 상태로 스스로 운전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택시를 부를 수도 없으니 수면실에서 자고 내일 한 번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건물을 가로질러가던 그는 식당 앞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멈추었다. 밖에서 보기엔 불은 꺼져 있었지만 된장국 냄새가 나고 있었다.

누군가 야식이라도 먹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구나. 저녁 식사는 편의점 샌드위치였지. 양도 부족했지만 먹고 나서 벌써 6시간은 지났으니 배가 고플 때가 되었어.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잠깐 고민하던 나나미는 식당 문을 열었다. 조금 얻어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몫이 없다면 아쉽다며 가볍게 말하고 물병을 하나 챙겨서 수면실로 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불이 켜진 주방으로 다가간 나나미는 이타도리와 우라우메를 보고 자리에 멈추었다. 이타도리는 냄비에서 국물을 떠 맛을 보더니 등을 돌리고 조리대를 보고 서 있는 우라우메에게 말을 걸었다.

 

“전골 국물은 조금 더 진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피곤하면 양념이 진한 건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대로가 좋겠습니다. 나중에 간을 더 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말한 우라우메는 잘게 썬 야채와 방울 토마토가 가득 담긴 샐러드 그릇을 카운터 위에 올렸다.

 

“쌀밥, 야채, 장아찌 그리고 닭고기 완자 전골까지! 반찬은 적지만 전골에 건더기가 많으니까 괜찮겠지.”

“두부에 버섯과 닭고기 경단까지 들어있으니 충분하겠죠. 그럼 나나미 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제 식사입니까?”

 

이름이 언급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등장한 나나미의 모습에 이타도리가 놀라 들고 있던 국자를 떨어뜨렸다.

 

“우오, 나나밍?!”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싶었더니...”

 

이타도리가 요리를 잘 한다는 이야기는 언뜻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나미는 들고 있던 재킷을 의자 등받이에 걸고 그 옆의 의자를 빼서 앉았다.

 

“...괜찮으시다면 냄비를 통채로 주시겠습니까?”

“어어. 나나밍 주려고 만든 거니까. 물론 괜찮아!”

 

냄비째로 달라는 예의에 어긋난 부탁에 이타도리는 붙임성 좋은 웃음과 함께 대답하고 냄비 받침과 수저, 컵과 물병을 가져와 가지런히 차려놓더니 그 다음에 김이 올라오는 냄비를 가져왔다. 국물 먼저 맛보려 숟가락을 집으려던 차에 그의 손 근처에 맥주캔이 놓여졌다. 학교의 식당에 있어선 안 될 물건에 나나미가 고개를 들자 이타도리가 멋적은 표정으로 뒷목을 긁고 있었다.

 

“냉장고에 숨겨져 있었어. 아마 고기를 재워 둘 때 쓰려고 했나본데. 나나밍은 어른이고 마셔도 되는 거 아닌가. 좀, 필요해 보여서?”

 

이타도리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을 쏟아냈다. 나나미는 그런 그를 멍하니 올려다 보다가 맥주 캔을 따 들이켰다. 그의 커다란 손안에 쏙 들어가는 355ml캔은 한 호흡에 전부 비어버렸다. 빈 캔을 식탁에 내려놓은 나나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식탁 옆에 서 있는 두명을 보고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이타도리 군. 우라우메 씨. 죄송하지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지금은 예의를 차려서 식사할 자신이 없습니다.”

“오- 그럴 때 있지. 아무도 없으니까 나나밍 편한대로 해.”

 

과거 시대에서 온 우라우메는 이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지, 미묘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타도리는 우라우메의 뒤를 따라 주방에 들어가는가 싶더니 플라스틱 끈으로 연결된 맥주캔을 들고 와 처음 맥주캔을 내려놓았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6개의 캔을 고정하도록 6개의 원을 연결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끈에는 두 개의 빈 자리가 있었다.

 

“다 마셔도 괜찮아. 우라우메 씨가 수육한 육체는 성인이니까 나중에 사다 달라고 해서 채워 넣어두면 아무도 모를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맞은 편 자리에 앉는 이타도리의 모습에 나나미는 손을 움직이지 못하고 잠시 주저했다. 피로와 허기가 심해 예의범절이고 이성이고 놓아버리고 싶은 상태였지만 아이 앞에서 흉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는 한 가닥 생각이 그를 잡고 있었다.

 

“난 괜찮으니까. 나나밍. 편하게 먹어도 돼. 동갑 남자애들이 얼마나 지저분하게 먹는지 알면 놀랄걸.”

 

그 말에 나나미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왼손으로 턱을 괸 채 앉아있는 이타도리를 웃음 가득한 얼굴을 보다가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고 밥그릇을 들고 냄비 위에서 뒤집어 내용물을 전부 쏟아 넣었다. 이타도리는 그 행동에 놀란 나머지 소리를 낼 뻔한 걸 뺨 안쪽 살을 씹으며 겨우 참았다. 죽은 체 하고 있던 동안뿐 아니라 그 후에도 나나미와 여러 번 식사를 했지만 아무리 피곤할 때라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불쾌할 수 있다며 밥과 국물을 함께 먹을때도 밥을 뜬 수저를 국물에 담가 적시거나, 국물을 밥에 뿌려 적시는 정도였다. 그랬던 나나미의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에 이타도리는 내심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그 후엔 나나미가 말한 대로 평소 그의 행실과는 거리가 먼 식사가 시작되었다. 국물과 밥, 푹 익은 야채를 숟가락에 한가득 떠서 입 안 가득 넣더니 몇 번 씹다가 맥주로 넘겨버렸다. 턱을 타고 맥주나 국물이 흘러도 아랑곳않고 잔뜩 떠서, 입에 넣고, 맥주와 함께 삼킨다. 마지막 맥주캔을 따자 우라우메가 능력으로 살얼음이 맺힐 정도로 차갑게 식힌 물병을 가져다주었다. 나나미는 마지막 맥주캔을 비운 후에는 물과 함께 음식을 삼켰다.

맥주나 국물이 가끔 턱을 타고 흐르는 정도로 끝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서둘러 먹어치우고 있었다. 예의범절과는 거리가 있는 식사법이었지만 그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눈에 콩깍지가 낀 건지 이타도리에게는 그런 나나미의 모습 하나하나가 멋있어 보일 뿐이었다.

 

국물의 기름기로 살짝 반들거리는 얇은 입술.

송곳니와 혀가 잘 보이도록 크게 벌어지는 입.

뺨이 살짝 부풀 정도로 음식을 입에 물고 저작운동을 하며 움직이는 턱.

맥주캔과 물잔을 기울이다 못해 턱을 들고 고개를 젖혀 마실 때 보이는 울대의 움직임.

 

이타도리는 한 팔로 턱을 괸 채 헤실거리면서 나나미를 계속 바라보았다. 얼마 안 지나 4인 가족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냄비에 가득 차 있던 전골이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속도에 믿을 수 없는 식욕이었다.

 

“하아...”

 

나나미는 식탁에 놓여있는 휴지로 입가를 닦고 물병에 조금 남아있는 물로 휴지를 적셔 다시 입가를 닦았다.

 

“나나밍. 충분히 먹었어?”

“...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배가 채워지고 그제야 어느 정도 정신이 든 나나미가 부끄러워하며 답했다. 식사 전에는 다른 사람들 대다수보다 흰 피부에 피로와 공복이 겹쳐 안색이 평소보다 더 창백했지만 지금은 다소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물병과 맥주캔들을 정리하고 옆자리에 걸어둔 재킷을 들고 일어나려던 나나미는 이타도리의 한쪽 뺨에 입과 눈이 나타난 걸 보고 놀라 발을 헛디뎠고, 의자 다리가 나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럼 이젠 잘 차례구나.”

“네?”

 

스쿠나의 말에 저도 모르게 반문한 것을 마지막으로 나나미의 의식이 생득영역으로 끌려들어갔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