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문의 사내

토우나오 귀문의 사내 (2)

첫만남부터 이별까지

툇마루 by 담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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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오야의 심리 변화를 위해 원작을 어느 정도 왜곡하고 있습니다

* 사망 소재가 있습니다

* 사투리가 어설픕니다

2. 목소반

젠인의 사내들은 인생에 두 번 중요한 시기가 있다. 첫 번째는 태어났을 때, 두 번째는 6세가 되었을 때다. 주술사가 아니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고삼가의 사내아이들은 나서부터 그 주력으로 값매김을 당하고, 6세가 되어 술식이 판명되면서부터 비로소 신분을 부여받는다. 사람이냐, 사람이 아니냐. 강자이냐, 약자이냐. 상전이면 천상계요, 그나마 술식이라도 있으면 인간으로 남으며, 술식이 없다면 그것조차 아니다. 자신의 처지를 6세라는 덜 여문 소년의 몸으로 마주하고, 평생에 걸쳐 그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젠인인 자의 일생이었다.

젠인 나오야가 6세를 앞두고 있었을 때, 젠인에는 당주 외에 상전을 가진 자가 없었다. 이는 좋지 못한 일이었다. 주술계에 몸을 담은 인간들은 대체로 이른 시기에 요절한다. 그런데 술식의 종류에는 유전적인 요소가 작용하니, 주술사 가문들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되도록 이른 시기에 좋은 술식을 가진 자들의 피를 남겨두려 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상전을, 더 강한 주술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문 내에서 가장 강한 자들로 대표되는 주술계 당주의 일이었다. 젠인가의 26대 당주인 젠인 나오비토도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 때까지 여러 상대에게서 많은 사내아이를 보았지만, 상전을 이어받은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직계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서 상전이 나왔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오비토의 큰 형이었던 25대 당주는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한 놈은 상전이 아니었고, 한 놈은 주력조차 없는 천여주박이었다. 오우기는 당시 아직 자식이 없었고, 방계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남자로 태어나 술과 여자를 즐길 줄 아는 나오비토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계속해서 자식을 늘리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주름이 생기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질 즈음에 어떤 여인에게서 본 막내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사내아이. 그것도 주력의 양이 여태껏 본 자식들 중에서 가장 월등한 사내아이였다. 이 아이라면, 하고 나오비토를 포함한 젠인의 사람들은 기대를 모았다. 이 아이라면 지금껏 기다려온 상전의 아이가 아닐까. 천여주박과 잡스러운 술식으로 얼룩져 쇠퇴하고 있는 젠인에 드디어 상전 술식이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젠인 나오야가 6세가 되었을 때, 고죠가의 육안이 무하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1년 전 들려온 배 아픈 소식과 가문의 오랜 염원이 맞물려 많은 사람들이 대응접실에 모여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넓은 대응접실의 사방에 사람들이 벽을 따라 서 있었다. 상석에는 당주인 나오비토가, 그의 양 옆에는 차기 당주 후보인 오우기와 진이치가 앉아있었고, 그 뒤로는 당주의 아들들이 한 줄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응접실의 중앙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그곳에는 검은 머리카락을 짧게 친 6세의 소년 젠인 나오야가 정좌하고 있었다. 모두의 기대와 우려가 어린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데도 아이의 표정에는 걱정이 없었다. 본디 기대라는 것은 양날의 검이라,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순식간에 무섭게 돌변하여 제 목을 조르게 될 텐데, 아이는 옅은 금빛의 눈을 흔들림 없이 치켜 뜨고 제 아비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옅은 황수정 같은 홍채를 두른 검은 동공이 나오비토를 향하고 있었다. 나오비토는 제 막내 아들의 동공 안쪽에서 불길이 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열망하고, 욕망하고, 스스로를 부채질하면서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그러한 불꽃이 저 어린 것의 눈 안에 있었다.

젠인의 사내 아이이기 이전에 순수한 힘을 갈망하는 인간의 눈이었다.

누굴 닮은 것일까. 나오비토는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 둔 술병의 입구를 만지작거렸다. 목이 탔다. 저 눈을 가진 아이의 술식이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는 아무리 목을 축여도 그 갈증이 가시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이의 뒤에 앉아있던 감별사가 손을 내려놓고 앉은 자세를 바르게 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술식의 감별이 끝이 났다는 뜻이었다. 모두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자그마한 아이를 뚫어져라 보는 와중에, 감별사가 앞으로 상체를 숙여 절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나오야님의 술식은 투사주법입니다. 경하드립니다.”

경하. 그 단어는 나오야의 술식이 상전임을 의미했다. 감별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상전. 몇 십년 만의 상전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당주와 같은 술식을 타고 난 아이에 대해 한마디를 던졌다. 드디어 후계로 삼을 만한 아이가 생겼다. 지금껏 혈통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한 시름 놓겠다. 주력의 양도 상당하니 앞으로가 기대 된다.

……- 십종영법술이 아닌 것은 아쉽지만.

여기저기 당주 직계 막내 아들의 장래를 칭찬하는 말에 섞여 몇 번이나 그 단어가 들려왔다. 십종영법술. 젠인의 상전술식 중 가장 역사가 깊고, 무하한과 적혈조술에 비견되는 술식이었다. 젠인은 고삼가 중 유일하게 다른 유용한 술식도 폭넓게 받아들여 여러 개의 상전술식이 있지만, 그 중 제일이 십종영법술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그러나 십종영법술의 보유자는 수 십년간 나타나지 않았다. 현 당주인 나오비토도 투사주법이고, 그 전 당주도 상전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십종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십종의 부재가 거슬리긴 했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문제는 지금 세대에서 발생했다. 나오야보다 1년 먼저 육안으로 태어나, 고죠가의 상전술식인 무하한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고죠 사토루라는 존재가 상황을 변화시켰다. 400년 만에 등장한 육안과 무하한의 조합이다. 지금은 작은 사내아이일 뿐이지만, 훗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강자로 성장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나오비토가 당주로 부임했을 시절에 가세가 다 기울어가던 고죠가는, 그 아이의 존재만으로 단숨에 형세를 회복하고 다른 가문들이 번듯한 상전이 없다는 사실을 가엽게 여기기까지 했다. 강력한 상전 술식을 가진 주술사의 존재에는 그 만큼의 힘이 있었다. 단 한 명뿐이라도 가문 자체를 일으켜세울 힘이 있었다.

그런 육안과 무하한의 조합을 상대할 만한 술식은 십종영법술 이외에는 지금껏 증명된 바가 없었다. 400년 전, 어전시합에서 고죠 사토루와 동일한 조합을 타고난 고죠가의 당주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는 십종영법술을 지닌 젠인가의 당주였다. 비록 그 젠인가의 당주도 죽어 동귀어진의 꼴이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고죠와 젠인은 견원지간이 되었지만, 어쨌든 그 사건이 알려주는 사실이 있었다.

고죠 사토루를 전면에 내세운 고죠가와 비등한 세력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십종영법술을 가진 차기 당주가 필요했다.

물론 투사주법이 어디 굴러다니는 개뼉다구 술식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십종에 비해 약간 뒤떨어지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투사주법은 그 역사가 짧고, 상전으로 인정받은 계기도 애니메이션의 ‘코마우치’에 기반하여 술식을 해석한 나오비토의 공이 컸다. 또한 나오비토가 당주에 앉은 이유는 마땅한 상전을 이어받은 자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십종영법술을 가진 자가 있었다면 그 자가 나오비토의 자리에 앉아 있었으리라.

그러므로, 이 어린 아이는 앞으로 증명해야 했다. 십종영법술보다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투사주법을 지닌 자신의 가치를 이곳에 모여든 이들에게, 고삼가의 일원들에게, 주술계에게 증명해야 했다. 젠인가를 위해서, 육안과 무하한을 가진 아이를 동세대에 두었다는 이유 만으로 나오비토가 짊어지지 않은 또 다른 책임을 그 작은 어깨에 두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본인과 같은 술식을 가지고,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수많은 어른들의 의도를 받아내는 막내아이가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오비토는 당주였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나오비토는 속으로 조소를 삼켰다. 지금껏 당주로서 많은 자식을 보았고, 잡스러운 술식을 가진 그들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았건만, 늦은 나이에 본 재능있는 막내 아들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그래서 나오비토는 말을 골라, 한 마디를 입 밖에 내며 술병을 기울여 목을 축였다.

“당주가 되기에 충분한 술식이구나.”

그것은 젠인 나오야가 그동안 당주 후보로서 자리를 지켜온 오우기와 진이치를 제치고 가장 우위에 존재를 자리매김 했다는 공표나 다름 없었다. 당주가 직접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음에도, 나오야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원래부터 그럴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이면서 작은 입을 벌려 이렇게 말했다.

“당주는 제엘 강한 자가 나는 거 아인기요. 내는 술식이 머가 났든 그래 되었을 깁니다.”

뭐어, 내는 상전 가지고 있을 기라 확신하긴 했지만. -라고, 나오야가 덧붙였다.

아이다운 자신감과 천진난만함을 가진 말이었으나, 동시에 상전을 가지고 단숨에 차기 당주의 유력자로서 뛰어오른 자의 말이었다. 나오야의 말이 끝나자마자 당주의 뒤에서 주력이 삐죽삐죽하게 솟으며 흔들렸다. 후보 경쟁에서 뒤떨어진 나오야의 손윗형제들의 주력이었다. 나오야는 그 분명한 악의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마주하며 웃었다.

 

그 날 이후로, 나오야를 향하는 대우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나오야의 신분이 당주의 막내아들에서 차기당주감으로 뒤바뀌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딜가든 아첨과 아부가 따라붙었다. 무엇을 하든 틀에 박힌 칭찬이 들려왔다. 

천재. 틀림없는 다음 당주감. 그것이 나오야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나오야는 그런 말들을 듣는 것이 싫지는 않았으나, 한편으로는 새삼스럽다고 생각했다. 젠인에서는 가장 강한 자가 당주가 된다. 날 때부터 강한 주력량과 상전 술식을 타고났으며, 선천적으로 전투에 필요한 센스를 갖추고 있는 자신이 아니면 누가 다음 당주가 된단 말인가. 비록 십종영법술이 아니라고 떠들어대는 떨거지들이 있긴 하지만, 자신이 젠인에서 가장 강한 사내가 되어 입을 다물게 만들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나오야의 덜 여문 작은 손이 수인을 맺었다. 금빛의 눈이 이채를 번쩍이며 훈련장에 준비된 허수아비들을 바늘에 실을 꿰듯 훑었다. 그 다음 순간, 허수아비들의 머리가 퍽, 퍽 소리를 내며 깨진 수박처럼 갈라졌다. 젠인의 훈련용 허수아비는 흙과 나무, 돌, 철을 이용해 그 강도가 다른 것들과는 남달랐다. 그것을 이 작은 아이가 주먹과 발로 1초에 불과한 찰나에 파괴한 것이었다.

나오야는 후우, 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1초 내에 원하는 움직임을 그려내는 것은 제법 몸에 익었으나 나오비토처럼 24개의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은 아직 힘들었다. 주변에서는 나오야에게 투사주법을 사용하는 것이 능하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했으나, 나오야는 아직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것도 곧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성장이 즐거웠고, 향상심이 끊이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성장하고 강해질 것만 같았다.

훈련장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하인이 나오야에게 찬 보리차와 물수건을 가져다 주었다. 나오야는 수건을 받아 이마와 목덜미를 슥슥 닦아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형제분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재능이에요.”

또 다시 틀에 박힌 칭찬이 떨어진다. 나오야는 기쁜 기색도 없이 다 쓴 물수건을 하인에게 건네주었다. 그 쓸모없는 술식에 가여울 정도로 뒤떨어지는 센스를 가진 형들보다 자신이 강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뻔한 사실은 굳이 입 밖으로 내뱉을 필요도 없었다. 나오야는 반응조차 하지 않고 보리차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 귀신 때문에 다들 후계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것으로 당주님도 한 시름 놓으시겠지요.”

이 말은 평소에 듣던 것과 살짝 다르다.

“-귀신?”

“아, 모르셨습니까. 사내놈 주제에 주력도 없는 놈이 하나 있읍지요.”

젠인에서 사내란 인간의 기본 조건이다. 그리고 인간이란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가문에 힘을 보태는 재화였다. 술식이 있다면 주술사가 되고, 술식이 없어도 구구류대에 입대시켜 사병으로 써먹는다. 그런데 그 ‘귀신’은 사내로 태어났으면서 주력이 아예 없다고 한다. 

하, 찌시래기 새이(형)들보다 더 비참하고 씰데없는 녀석이 있었구나?

나오야는 피식피식 웃으며 마저 단련을 하기 위해 훈련장으로 향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젠인가의 북동쪽, 예로부터 귀문이 있어 불길하다는 그 방위에 귀신이 살고 있다고 했다.

주술사에게 있어 귀신이란 허상 뿐인 존재였다. 세간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들은 대부분 주령의 소행이며, 주령은 특정한 것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비술사들의 감정들이 빚어낸 괴생명체였다. 그것을 보고, 듣고, 죽여 없앨 수 있는 주술사에게 귀신이란 주령을 생산하는 틀에 불과했다. 저주라는 비논리적인 세계를 체험하는 자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귀신 따위는 그저 유언비어로 여김이 당연했다.

그러니, 당연히 주술의 명가 중 하나인 젠인가에서 ‘귀신’이란 두려움의 표상이 아니었다. 귀신이라는 것은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것이며 그곳에 존재한다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실체가 없고 알맹이가 없는 것이었다. 투명하고 쓰임새가 없어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

북동쪽. 귀성(鬼星)이 불길한 빛으로 반짝이는 그 아래에서 사는 자는 그러한 존재였다. ‘젠인이 아니면 주술사가 아니고, 주술사가 아니면 인간이 아니다’라는 가훈을 내거는 젠인가에서 가장 이질적인 사내였다. 본가에서 당주 직계로 태어난 주제에 술식도, 주력도 없는데 몸만 튼튼하여 죽지도 않고 질기게 숨만 붙어있다고 했다.

나오야는 그 꼴사나운 사내를 보기 위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일 같이 똑같은 낯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똑같은 칭찬을 듣고 있으니, 가끔은 다른 것도 보고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 법이었다. 하인들도 거의 왕래하지 않는 그곳에는 관리되지 않은 뒤뜰과 낡은 모양새의 작은 창고 비슷한 건물이 있었다. 흙바닥에는 잡초들이 들쑥날쑥 통일감 없이 웃자라 있었고, 나무는 가지치기가 되지 않아 볼썽사납게 마구잡이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그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가로 간 것일까. 하지만 이 집에서 그 귀신이 어디 달리 갈데도 없으니 기다리면 금방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나오야는 벽에 등을 붙이고 마룻바닥에 서서 그 귀신을 기다렸다.

몇 십분 정도가 지났을까. 지루함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바닥을 보던 시야에, 커다란 사내의 발이 불쑥 나타났다. 어? 나오야의 고개가 들렸다. 위를 향한 나오야의 동그란 두 눈에 거대한 사내가 담겼다. 낡은 유카타를 걸치고, 검은 더벅머리를 한 사내가 권태로운 청록색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덩치는 곰처럼 컸고, 팔다리는 근육이 단단하게 붙어 보기만 해도 그 힘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나오야를 압도하는 기운이 그 사내에게 있었다. 구태여 무언가를 보여줄 필요도 없이, 그저 앞을 바라보고 걷는 것만으로도 어린 소년을 짓누르고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중압감이 있었다. 머리를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위압감. 뇌 속을 휘젓는 듯한 그 괴물 같은 존재감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온몸이 전율에 젖어, 그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오야를 두렵게 만들었던 것은, 저러한 기운을 가진 사내가 시야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오야는 그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오야가 그를 인식하고 그 강함에 압도당한 것일 뿐,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 거대한 사내가 나오야를 길가의 돌멩이 보듯이 하며 지나치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오야는 그 사내가 낡은 건물에 들어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그에게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발에 못이 박힌 듯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귀신이라고 했나. 저 사내는 말 그대로 귀신이었다. 사람의 근처에 기척도 없이 불시에 나타나, 단숨에 그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저승사자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의심할 여지 없는 강자였다. 패배 의식을 느끼거나 질투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차이의 강자였다.

저렇게나 강한 사내를, 어째서 그렇게 하찮게 취급할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저런 사내를 투명인간으로 삼고 작당하여 멸시할 수 있는 것일까? 저 강함을, 저 위력을, 나오야를 제외한 그 누구도 느낄 수 없는 것인가? 어째서?

은행빛의 눈이 깜박였다. 그 눈동자의 망막 안쪽에 그 사내의 존재가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고 잔상으로 남았다. 뇌리를 인두로 지진 것처럼 나오야에게 새겨진 그 사내의 존재는, 일순간에 어린 소년의 세상을 망가뜨리고 위아래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젠인에서 가장 강한자는 본인일 것이라 자신했던 소년의 생각을 단번에 부러뜨리고 작은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렇게, 젠인 나오야는 귀문에 사는 그 사내에게 홀리게 된 것이었다.

 

그 귀신의 이름은 젠인 토우지였다. 나오야는 그 날 이후로 짬이 생길 때면 그를 만나러 북동쪽으로 향했다. 토우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집에서 때웠는데, 그런 것치고 그 방에는 있는 것이 없었다. 낡은 이부자리 하나와 얇은 옷 몇 벌, 칫솔과 같은 생필품 몇 가지가 다였다. 토우지는 그 집에서 잠을 자거나 여종들의 비위를 맞추어주며 먹을 것을 얻어 살아가고 있었다.

이 집에서 여종이란 사람이 아닌 존재였다. 태조차 되지 못한 가축이었다. 그런 것들의 밑을 자처해야만 하는 토우지의 처지에 화가 났다.

젠인에서 강자란 곧 권력자였다. 마땅히 대우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젠인 토우지는 강자이면서 그런 천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분했다. 그는 그렇게 취급당해서는 안되는 사내였다. 그래서 나오야는, 자신만은 그를 제대로 대우하고 그를 천하게 취급하는 것들에게 제 분수를 알려주기로 했다. 식사를 걸러 타고난 강자인 그의 몸이 약해지면 안되니 여종들을 닦달하여 식사를 가져다주고, 낡은 건물 때문에 폐병에 걸리면 안되니 곰팡이 슬은 물건을 내다버리고 새 물건을 채워 두었다.

토우지는 나오야가 올 때마다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그의 눈은 그늘진 바닷물의 색을 하고, 언제나 나오야가 아닌 무언가를 보는 듯 흐릿한 시선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강해서 좋았다. 그와 같은 강자인 사내가 자신과 같은 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자신의 옆에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저 그만큼 강한 사내와 동세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처럼 강해지고 싶었다. 선망했다. 일생의 동경이 생겼는데, 어찌 그의 모든 것을 소중히 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오야는  한 손에 고기조림을 넣은 주먹밥을 들고 그 방문을 열었다. 토우지는 얇은 이부자리를 펴고 그 위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 단단한 등을 보고, 나오야는 얼굴을 활짝 피며 다가갔다.

“토우지군, 내 밥 가왔다. 토우지군 좋아하는 괴기 드간 거로 맹글라 혔다.”

나오야가 그렇게 말하자, 토우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토우지는 나오야가 제멋대로 방문할 때마다 귀찮아하며 무시하기 일쑤였으나, 나오야가 주는 것을 거절하는 편은 아니었다. 토우지는 구부정하게 자리에 앉아, 나오야가 건네준 주먹밥을 베어물었다. 허리가 굽은 자세 탓에 얇은 옷깃이 벌어져 그 아래의 탄탄한 몸이 드러났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심하게 구박을 받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육이 단단하게 붙어 다부진 육체였다.

“그래 눕어만 있어도 이래 몸이 좋은 게 참 신기하다. 내나 토우지군이라 그런 긴가? 그래도 좋은 걸 묵꼬 몸을 움직일 시간이 있어야 더 실한 몸이 맹글어질 턴디…….”

나오야가 옆에서 토우지의 몸을 구경하며 쨍알거려도 토우지는 딱히 반응하지 않고 두 번째 주먹밥까지 금세 해치웠다.

“맛있나? 그래보니 담주에는 집안 행사가 소박하게 있어가 음식도 좋은 게 나올턴디, 여름이라 굼장아(장어)가 나오도 모리겠다. 남자인테 굼장아가 그래 조타고 안하나! 내 꼭 토우지군인테도 가아 오께.”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어보이는 소년에게, 토우지는 그 흐릿한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일어나 마루 밖으로 걸어갔다. 신에 대충 발을 끼우고 나가는 사내의 뒤로 나오야가 따라붙었다.

“어레? 산책 나가는기가? 좋다, 몸은 매일 움직여줘야 굳지 않응께. 겉이 가자, 토우지군.”

토우지는 인적이 드물고 돌이 깔리지 않은 뒷길을 이용했다. 하인들이 물건을 나를 때 쓰는 길로, 나오야는 토우지를 만나기 이전에는 이곳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토우지군, 토우지군. 마치 친한 형동생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름을 부르는 꼬마애와 무뚝뚝한 청년. 그저 보기에는 꽤 푸근한 광경처럼 비칠 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은 젠인가였다. 평범한 일상과는 단절된 주술계 중에서도 그 극치를 달리는 곳이었다. 젠인가를 이끌 것으로 기대받는 차기 당주 도련님과 귀신이라는 멸칭으로 조롱 당하며 그 존재조차 쉬쉬하는 낙오자가 함께 있으니, 다른 이들이 곱게 보아줄 리가 없었다. 귀신이 도련님을 홀려냈다. 계집들을 꾀어내 밤자리나 하며 빌어먹는 원숭이가 도련님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런 수근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나오야는 뒤에서 조용히 수군거리는 하인들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두 눈을 부릅뜨고 쏘아보자 그들은 쥐새끼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바삐 자리를 피했다. 멍청이들. 눈이 삔 머저리들. 나오야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아기새처럼 토우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차기 당주로서 그런 이에게 가까이 가면 곤란하다고 하는 자들은 하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젠인에서도 힘이 있는 진이치나 오우기, 더 나아가 당주인 나오비토도 마찬가지였다. 나오야가 토우지의 존재를 마주한 날, 나오비토에게 토우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나오비토는 이렇게 말했다.

“그 녀석은 주력이 없으니 주술사가 아니다. 젠인이 아니지.”

아, 그런 거였다. 젠인이 아니니 젠인의 강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5대 당주의 아들이며 징벌방에 혈혈단신으로 내던져졌을 때 고작 입가의 상처 하나만 가지고 나온 강자가, 주술사가 아니기 때문에 천대받는 것을 방치한다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젠인 나오비토는 젠인의 당주니까. 그는 젠인의 당주로서 가문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수백년간 술식 제일주의로 다져져온 가풍을, 젠인 토우지라는 존재를 인정함으로서 뒤엎기는 곤란했다. 토우지 한 명을 젠인의 인력으로 끌어들이는 것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만을 잠재우는 것을 비교해보았을 때 수지가 맞지 않다는 것이 나오비토의 판단이었다. 젠인은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강자가 약자를 하대하는 수직관계로 굳어진 가문이므로, 그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자를 건져올리면 여기저기서 잡음이 튀어나올 것이 뻔했다.

당주로서 타당한 판단이었다. 젠인은 주술사만을 사람으로 취급하니 젠인이라면 응당 그래야만 했다.

그 당연한 발언에 의심을 느끼는 일은 없어야 했다. 젠인이라면 그래야 했으니까. 하지만 나오야는 그 말에 눈 뒤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불합리했다. 젠인이란 강자를 숭상하는 가문 아닌가. 술식제일주의란 강한 술식을 가진 주술사가 강하니 생긴 가풍이고, 젠인은 그 강함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고지식한 가문과는 달리 여러 술식을 끌어들여 부흥했다. 술식이 없는 떨거지들이라도 훈련시켜 가문의 토대로 삼았다. 그런데 주력이 없다는 이유 만으로 어떻게 강자를 배척할 수 있단 말인가?

주력이 없으니 주령을 처치할 수 없다는 것도 다 핑계다. 주구 하나만 들려준다면 구구류대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어도 제령하기 어려운 주령도 그는 손 쉽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직감이 나오야의 안에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오야는 토우지의 옆에 항상 붙어 있었으나, 다른 자들은 그것을 못마땅히 여겼다. 자신들이 하대하는 것이 당연한 밑사람을 상전의 도련님이 감싸돌고 있으니 아니꼬왔던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오야보다 약한 자들이 들이대는 잣대는, 그 소년에게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오야가 제령 임무를 맡게 된 이후의 어느 날이었다.

나오야는 사람을 죽였다. 그것에 큰 충격을 먹지는 않았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마비된 주술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다. 생살을 으깨고 뼈를 부수는 감각은 생각보다 선연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나오야는 머리가 으깨져 뇌수와 피를 줄줄 흘리는 시체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이 녀석은 주저사였다. 4급짜리 주령 토벌 임무가 떨어져 가 보았더니만, 그 주령을 배후에서 교묘하게 움직이던 주저사가 있었다. 아마 저급 주령으로 등급이 낮은 주술사들을 꾀어낸 후에 그들을 죽여 주구를 만들어내는 놈인 듯 했다. 운이 없었다. 아직 저급의 임무를 맡는다고는 하나, 전투에 대한 감각 만큼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젠인가의 도련님이 행차한 순간 그 주저사의 운은 다한 것이었다. 

“하아, 하…… 우, 흐.”

나오야는 피가 튄 뺨을 쓸며 거칠게 호흡했다. 숨을 쉴 때마다 얻어맞은 복부의 근육이 통증을 호소했다. 주저사까지 처치한 것은 좋았으나, 아직 덜 발육된 몸의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어 몇 번 공격을 허해야만 했다. 전투가 끝나자 온몸을 빠르게 돌던 혈류의 속도가 느려지고, 근육에 피를 보내기 위해 기능을 일부 정지했던 장기들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마비된 감각이 다시 살아난다. 주력을 모아 방어하긴 했으나, 강하게 타격을 받은 위장이 경련하며 울렁거렸다.

나오야는 그제서야 통증에 몸을 앞으로 숙이며 숨을 헐떡였다. 주변에 있는 나무 따위를 부여잡고, 나오야는 속에 있는 것을 고통스럽게 게워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주저사라고는 해도 이 녀석은 3급, 아무리 잘 쳐줘봤자 2급의 턱걸이였을 것이다. 게다가 식신을 부리는 타입이었으니, 그에게는 고속 접근 및 타격기를 주공격으로 삼는 나오야가 천적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전했다. 강한 자였다면, 토우지였다면 애초에 이 녀석에게 반격할 틈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호흡을 겨우 정리한 나오야의 눈에, 문득 주저사가 쥐고 있는 물건이 보였다. 주구일 것이다. 사후경직이 오기 시작한 손을 열어 쥐어보니, 그것은 은장도와 비슷한 작은 호신용 칼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주구가 있다면 토우지도 주령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토우지의 방에는 그를 괴롭히는 녀석들이 종종 저주가 담긴 물건을 두고 가곤 해, 나오야가 방문할 때에는 이따금 승두가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기도 했다. 토우지는 주령을 볼 수는 없으나 뛰어난 오감으로 그것을 감지할 수는 있어, 적당히 대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있다면 토우지도 나오야가 일일이 이 잡듯이 저주를 탐색하고 없애지 않아도 알아서 그것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징벌방에 끌려갔을 때에도 사용할 수 있고.

나오야는 핏물이 번진 주구를 살펴보다, 그것을 제 주머니에 쿡 찔러넣었다. 어차피 저급의 주구일 테다. 사소한 물건이니 기고에 등록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나오야가 제 재량껏 사용해도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등급이 잘못 책정된 임무를 홀로 처리하고, 주저사까지 죽이다니 대단하다. 그런 칭찬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오야는 집으로 돌아왔다. 마루를 걷는 발걸음은 언제나 늘 그렇듯이 동북쪽을 향했다. 오는 길에 잘 닦아, 반질반질한 보자기로 잘 포장해낸 그 주구를 토우지에게 건네주고 싶어 그 걸음이 빠르고 가벼웠다.

모퉁이를 돌아 그곳에 있는 귀문의 별채를 보는데, 오늘은 토우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구류대의 복장을 한 몇 명이 토우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녀석들은 토우지를 손으로 툭, 툭 치며 손가락질하더니, 갑자기 양동이를 들어 토우지의 얼굴에 찬물을 한가득 뒤집어씌웠다. 토우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 밑의 푸른 눈동자는 그저 아득했고, 얼굴에는 마땅히 일어야할 분노가 없었다. 그저 체념한 듯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우뚝 선 채로 떨거지들이 휘두르는 발길질을 받아냈다.

그 대신 노여워하는 쪽은 나오야였다. 그는 토우지 쪽으로 달려가며 두 손을 맞잡아 수인을 맺었다. 분노로 졸아든 동공이 토우지의 주변에 프레임을 그려냈다. 그 다음 순간, 토우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주제를 알라고 지껄이던 놈의 다리가 푹 꺾였다. 그 옆에 있는 놈도, 그 옆에 있는 놈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어, 어? 따위의 멍청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바로 다음 순간, 나오야의 발이 그 얼떨떨한 얼굴을 가차없이 걷어찼다.

“나, 나오야님?!”

그를 알아본 구구류대 중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이 낙오자를 아끼는 도련님이 오늘 임무로 자리를 비운다길래 그 틈을 타 일을 벌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돌아와 놀란 듯 했다.

“그려, 내다. 눈이 싹 다 삔 줄 알았는디, 내는 지대로 알아보는구나?”

나오야는 차갑게 일갈하며 주력을 실은 발로 녀석의 복부를 퍽 소리가 나도록 밟았다. 썩어도 젠인의 사병이라, 주력으로 강화를 한 것인지 배가 뚫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고통은 선명해 녀석은 땅바닥 위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나오야가 투사주법을 사용하여 먹인 일격 때문에 다리가 부러져 일어나지도 못한 채 땅 위를 기는 그 꼴이 같잖았다. 토우지라면 그딴 일격을 허하지도 않고 맨몸으로 받아내더라도 뼈가 부러지지 않는다. 그런 강자다. 그런 강자를, 하찮은 잡어인 너희들이 감히.

분노로 온몸이 들끓는다. 근육이 팽창하고 입이 벌어진다. 하얀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섰다. 나오야는 그러한 화를 담아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발 아래에서 무언가가 뭉개지고 부러지는 감각이 들어도 멈추지 않는, 나오야의 몸을 그렇게 밀쳐내는 감정이 있었다.

왜 토우지군은 그러한 취급을 당해도 가만히 있는 것일까. 토우지군이 이 젠인에서 제일 강한데. 이딴 놈들 따위, 토우지군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텐데. 왜 토우지군은 화를 내지 않는 것일까, 반항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나오야는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그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만큼 나오야가 그를 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분노로 눈 앞이 시허옇게 번져, 그저 그 감정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와중이었다. 크고 단단한 손이 나오야의 양 손목을 붙잡았다.

“그쯤 해둬라.”

낮은 목소리였다. 토우지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었고, 담담했다. 나오야는 그 한 마디에 하아, 느릿하게 숨을 내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군데군데 뼈가 부러지고 멍이 든 떨거지들이 나오야의 발 아래에 있었다. 몇 명은 실신했는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문득 나오야가 제 손을 내려다보니, 상대를 타격할 때 쓰는 손등뼈 부근이 피로 젖어 있었다.

“나오야!!”

뒤뜰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 때였다. 나오야는 고함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뒤뜰과 본채 건물을 잇는 좁다란 길에 나오비토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노여움으로 구겨져 있었다.

왜 아빠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그 표정은 토우지군이 지어야하는 것 아닌가.

나오야는 단 한 치의 죄책감도 없는 멀끔한 낯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토우지를 뒤로 하고 나오비토의 뒤를 따라가, 한 짓에 대해 크게 혼이 나도 그 생각은 변치 않았다. 차기 당주가 되겠다는 녀석이 대놓고 그렇게 놈을 싸고돌면-, 이라는 말이 이어지자 그제서야 묵묵히 서 있던 나오야가 입을 열었다.

“당주? 젠인서는 제엘 강한 놈이 당주가 된다, 아인기요?”

“욘석아, 강하다고 해도-”

“그라믄 토우지군이 당주가 되는 게 당연하지예. 토우지군이 여서 제엘 강하니까. 아빠도 토우지군이 얼매나 강한 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꺼?”

나오야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나오비토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너무나도 뚜렷해, 나오비토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어떤 말을 들어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을 눈빛이었다. 제 술식이 판명나던 날 자신이 젠인에서 가장 강한 사내가 될 것이라 공언하던 아이는 온 몸과 온 정신을 다해 토우지가 젠인에서 제일가는 강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외치는 눈 안쪽에서 불길이 일고 있었다.

아, 저 아이는 젠인의 사내 아이기 이전에.

나오비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오야는 젠인의 사내 아이여야만 했다. 젠인의 상전을 이어 받은 유일한 아들이었고, 훗날 젠인을 지탱해야 할 가문의 일원이었다. 젠인의 당주란 가장 강한 자가 그 자리에 앉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그렇다고 단지 강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당주는 가문을 하나로 묶어 놓는 힘이 있어야 했다. 주력이 없는 그 귀신 한 명에게 묶여 가문이 지금껏 유지해온 위계질서를 위협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나오비토는 그 날 처음으로 막내 아들에게 매를 들었다.

아이는 우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토-우지군-.”

그 날 밤, 나오야는 어김 없이 토우지의 방을 찾았다. 손에는 소고기로 된 소를 넣고 싸맨 실한 만두가 하나 들려 있었다. 다리를 절뚝일 정도로 매를 맞은 아들이 마지막에는 조금 안쓰러웠던 것인지, 저녁 시간이 지나 나오야의 방으로 들어온 밥상은 젠인에서는 보기 드문 고기나 맛난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 음식을 보고 나오야가 곧바로 고기가 좋다던 토우지를 떠올린 것은, 나오비토에게는 참으로 안된 일이었다.

나오야는 문 안쪽에서 대답이 없자, 낡은 장지문의 틀을 콩콩 두들기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토-우지군-, 내, 맛난 거 들고 왔는디 문 좀 함 열어도.”

나오야가 두어번 더 앞에서 토우지를 부르고 나서야 마지못해 문이 열렸다. 사내는 약간 열린 문틈으로 기쁘게 만두를 내밀어보이는 소년을 바라보더니, 하아, 한숨을 쉬며 문을 밀어 열어주었다. 나오야는 종아리가 쓰라린 것도 잊고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을 밝힐 변변찮은 광원이 없어, 방 안은 어둑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니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 이부자리 위에 삐딱하게 앉아 자신을 향해 흐릿한 시선을 주는 토우지가 보였다. 나오야는 토우지에게 손에 든 것을 건넸다. 토우지는 그것을 가만히 보다, 만두를 건네받았다. 나오야는 이부자리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토우지가 만두를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만두를 반절쯤 해치운 사내는 나오야에게 물끄러미 시선을 두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 많이 맞았냐.”

나오야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순간 이해하지 못해 갸웃거리다가, 그제서야 제 다리가 유카타 밑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눈이 밝은 토우지는 당연히 종아리 위에 선명하게 남은 맷자국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토우지가 그것을 신경쓸 줄은 몰랐던 나오야였다.

“아, 아녀, 내는 개안타. 이런 기 겉으로 보기에만 아퍼 보이지 실제론 별 거 아이다. 증말 개안타, 아빠도 쪼매 미안혔는지 맛난 거 마이도 줘서 잘 묵고 왔다. 토우지군에게 준 만두도 그런 건디, 우뗘, 맛있나?”

“하, …… 적당히 빌었으면 그 영감도 잘 넘어가줬을 텐데. 너,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고집이 세.”

토우지는 나오야의 질문에 다른 소리를 하고는 만두를 마저 먹어 치웠다. 나오야는 고집이 세다는 말에 입을 뾰족하게 세웠다.

“그야 당연한 소리에 막 부리키는디 글타고 맞는 말을 거짓으로 맹글 수는 읎제……. 아빠, 토우지군이 당주에 어울린다 카니까 말도 몬 잇고 매부터 들더만.”

내가 맞는 말만 하니께 반박도 몬하고 새리는 기다. 그렇게 맑은 얼굴로 덧붙이는 아이를, 토우지는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당주는 집안에서 가장 강한 놈이 하는 거 아이가? 토우지군이 이 집에서 제엘 강하니께 원래는 토우지군이 당주가 되어야 하는 기 당연한 긴데…… 다들 참말로 답답하게 군다.”

나오야는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다, 아, 하고 생각이 났는지 품 안에서 보자기에 감싸인 작은 물건을 꺼냈다. 토우지에게 주기 위해 몰래 빼돌린 주구였다. 겉을 포장한 천을 풀어내자, 그 안에서 핏자국 없이 말끔하게 닦여 손질된 단도가 드러났다. 나오야는 그것을 토우지에게 내밀며 히, 하고 웃었다.

“이게 뭔데.”

“주구여. 내 오늘 주저사 한 놈을 이래 콱- 하고 죽여뿟다 아이가. 녀석이 가지고 있던 긴데, 뭐어, 잡스러운 물건 같응께 빼돌리도 별 문제 없을 기다. 토우지군헌티 이런 물건은 어불리지 않지만, 그래도 가꼬 있으믄 이 방에 가끔 나타나는 주령도 잡을 수 있을 기고, 징벌방에 끌려드가도 다 없애부릴 수 있겠제.”

토우지의 손 안에서 단도가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주령을 잡을 수 있으믄 주술사나 다름없는 기다. 그릉께, 토우지군이 그런 떨거지들인테 참아줄 필요는 전혀 읎다. 이런 거만 들고 있어도 특급 주령도 막 잡아낼 수 있을 긴데, 와 토우지군이 그런 놈들인테 숙여줘야 하나.”

나오야의 눈에 이채가 비쳤다. 그 빛이 광랑했다.

“그런 놈들, 토우지군이 주먹을 이래 함 휘두르기만 해도 악 소리 내며 다 나가떨어질기다. 내 장담한다.”

“…… 이상한 놈.”

그런 나오야에게, 토우지는 중얼거리듯 툭 말을 내뱉었다. 나오야는 그 소리에 내 말이 맞다면서 이불을 구르며 쫑알거렸고, 이는 토우지가 귀찮으니 입 좀 다물라는 소리를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거 보아라, 내 말이 맞지 않느냐.

그 날, 나오야는 꿈틀거리며 바닥을 피와 내장으로 더럽히는 놈들에게, 토우지의 뒷모습을 보며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는 떨거지들을 향해, 그리고 젠인이 자랑하는 사병집단을 손쉽게 때려잡는 그 크고 단단한 뒷모습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나오야가 방에서 나오비토가 빌려준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기고 쪽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곧 사방이 소란스러워지며 피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오야는 무슨 일인가 싶어 문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하인들이 도망치면서, 나오야님 위험합니다, 따위의 말을 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 나오야는 그들의 말을 산뜻하게 무시하고 소란의 중심지로 향했다. 가까이 갈 수록 피비린내가 더욱 짙어졌다. 치고받는 격투 특유의 소리가 들렸고, 비명과 파괴음이 뒤섞여 요란했다. 먼지 구름과 살점, 피가 뒤얽인 그 장소에 귀신이 서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그 피로 얼룩진 사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머리가 부서지거나 내장이 드러난 구구류대들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고, 병에 소속된 술사 몇 명도 팔다리가 꺾인 채 땅바닥에 뒤엉켜 있었다. 그들이 이를 악물고 덤벼들어도 토우지에게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그는 보이지도 않는 술식을 묘기에 가깝게 피해내고, 손에 들린 석혼도로 사람의 뼈를 종잇장처럼 베어냈다. 비명과 피를 뒤집어쓴 사내는 흉터가 있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고 있었다. 항상 그늘이 져 있었던 청록빛의 눈은 광채를 두르고 귀기어리게 빛나고 있었다.

살아있는 자의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오야는 그 참상을 눈으로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두 주먹을 바짝 쥐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압도적인 강함이 나오야의 눈 앞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며 격동하고 있었다. 심장이 뛰고 뱃속이 꿈틀거렸다. 토우지가 그려내는 그 강함은 지금 나오야가 닿을 수 없는 저편에 있었다.

그 저편에 서고 싶었다.

진정으로 강한 자는, 타인의 가치 판단 따위로 계측 당하지 않는다. 수많은 자들이 토우지를 깎아내리고 업신여겼지만 그는 강함을 직접 온몸으로 밝혀냈다. 눈이 부셔 망막 안쪽이 타들어갈 정도로. 아마 그에게 당주 자리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이었으리라. 굳이 그런 자리를 차지하여 증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토우지는 강한 사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우지가 젠인 제일의 강자라면. 토우지가 필요로 하지 않아도 그 자리는 젠인 토우지의 것이어야만 했다.

토우지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모두 박살낸 후, 나오야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거리가 좁아질 수록 느껴지는 그 힘에 온몸이 다 저릿저릿했다. 단전을 울리는 것이 공포인지 원하는 것을 마주한 흥분인지 구분키 어려웠다. 나오야와의 거리를 좁힌 토우지는, 그저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나오야를 스쳐지나 젠인의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무어라 말을 하려면 지금 일텐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쉼 없이 두근거렸다. 쿵. 쿵. 쿵. 갈비뼈를 아프도록 두들기는 맥동과 함께, 소년은 그의 뒷모습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담아냈다. 

토우지군이 마땅히 가졌어야 하는 자리는 내가 지킬기라. 내가 지켜내가, 토우지군을 업신여긴 놈들인테 말해줄 것이여. 내가 맞다고. 토우지군이 맞다고. 토우지군은 강하다고.

그 뒷모습이 점처럼 작아져 마침내 나오야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젠인의 주술사들이 반쯤 나가죽은 이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사방이 소란스러워졌을 때 쯤에서야, 나오야는 자신이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언제부터 웃고 있었을까, 나오야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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