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게토] 게토 스구루
: 에 대하여. 당신은 그를 몰랐고, 그 역시 당신을 몰랐다.
공항은 드넓고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주변은 와글하다가도 어느 순간 인영들이 사라진다. 사후라 해도 다들 부지런히 제 할 일을 하게 되구나. 그런 말을 중얼거렸더니 무엇이 웃긴지 하이바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못 본 사이 많이 달라지셨네요. 그리고 그렇게 덧붙였던가. 자신이 수백의 사람을 죽였다 말했을 때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후배가 그 순간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직 게토는 알지 못했다. 게토 스구루는 의자에 앉아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았고 생각은 언제나 그의 오래된 벗 중 하나였기에. 아, 이렇게 말하면 죽을 때 혼자라 말하며 다녀놓고, 정작 마지막 순간엔 절 배웅하러 왔던 자신의 친우가 볼멘 소리를 하게 될까?
정말이지, 내가 너의 유일한 친우라니. 어떻게 그렇게 낯 뜨거운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아하, 아하하, 하하….”
맥없는 웃음소리가 공허히 벽면을 울리고서는 잔향처럼 천천히 잦아든다. 이후 공백이 길다. 이 공간은 그리움이 덧그려진 곳인지라, 유독 이런 감정들을 증폭시키는 면이 있다. 그렇게 한없이 몸을 부풀려서, 차곡하게 접어도 다시금 선명히 올라오듯 부각되는 감정들이 천천히 부딪혀 사그라들듯 흩어지는 것을, 게토는 가만 바라본다. 입술이 달싹였다. 이어지는 것은 듣는 이 없는 방백.
나는 말이야, 네가 미웠어.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를 붙잡을 수 없는 내가 미웠지. 그 날 너는 나에게 어떻게 할 지를 물었고, 나는 ‘의미’가 없다고 답했어. 그런데 그거 아니? 난 그렇게 답하면서도 네가 ‘의미’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어. 네가 나랑 다른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싫다니, 참 어린 생각이지 않아? 사토루. 그런데 그게 나에겐 정말 중요했었나봐. 물론 내가 ‘그렇게’ 된 건 네 탓은 아니지만, 하하! 그러니까 그런 표정은 말아봐. 어떻게 넌 내 상상 안에서조차 내 마음대로 되질 않니. 그때도, 말이지…. 어린 학생들을 굳이 보내 그 아이를 자극한 건, 정말이지…. 난 네 그런 면이 조금 질렸던 것 같아. 네가 그 둘을 보내며 무슨 말을 했을지 선명해. 보나마나 죽음의 무게를 비교하는 뉘앙스였을 거잖아. 내 말이 틀렸니? 내가 정말로 걔넬 죽이면 어쩌려고 그랬어. 상관 없었겠지? 넌 그런 놈이니까. 아, 분명 게토가 살려둘 줄 알았는데, 죽었네. 하고 오래도록 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혼자서 기억하고 있었을 거잖아.
다른 이들이 다 잊어버릴 동안에도.
혼자서만.
그리고 내가 그런 널 미워한 이유는, 난 차라리 네가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길 바라서였던 것 같아.
네가 분노하길 바랐어. 차라리 악행에 노여워하고 선행이 바르기 때문에 행하며 다른 주술사들을 동등한 개체로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전선으로 뛰어드는 이이길 바랐어.
봐, 그의 안으로 들어가기가 얼마나 쉽겠어? 그리고, 바깥으로 벗어나는 것 역시 얼마나 명확하겠어?
하지만 너는 아니지.
너의 기준은 언제나 종잡을 수 없었기에 네가 갑작스레 그 선을 넓히며 교사가 되길 선언한 이유를 나는 알 수 없고 너와 같은 곳을 바라본다 하여도 어느 순간 더 높은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널 나는 따라갈 자신이 없었어 너는 게걸스레 무력을 추구하며 달려나가는데 난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난 아픔에 눈물 짓고 두고 온 것들에 눈길을 뗄 수가 없는데 너는 아니어서.
넌 마음을 둬도 뒤돌아 보지는 않고 그러니 난 영영 너의 안을 헤집어 볼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나서.
그래서 네 안으로 들어간 채로도 어찌해야 할 지 모르고 언젠가 선의 바깥으로 벗어날 순간을 상상하다 결국 먼저 벗어나기로 했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이야!
“어때?”
게토가 나직이 물음을 던진다. 아직 기다리는 손님이 도착하지 않은 공항에는 답하는 소리가 울릴 리 없음을 알면서도.
그래도 괜찮았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많았고 언젠가 만남은 분명히 찾아올 것이므로.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래도 네가 조금은 늦게 이 곳에 도착하길 바란다.
어리석은 이는 자신의 바램과 아집이 전부 무너지는 순간을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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