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니아
총 26개의 포스트
고죠의 집은 기본적으로 별로 생활감이 없었다. 사실 집이라는 것을 따로 두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자신만의 공간에 그다지 집착이 없는 그는 어느 순간부터 오로지 효율만을 생각하여 고전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은 필요한 것이었다. 고죠는 스물아홉 살이 되어서야 그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도쿄로 올라오게 된 우타히메와 함께 살 집은
나는 아버지가 없다. 아니, 물론 생물학적 아버지는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를만한 존재도, 사실 존재한다. 없는 것은 서류상의 아버지다. 어렸을 땐, 그러니까 유치원을 다닐 즈음엔 그런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내가 그 사실을 몰랐고, 아버지는 집에 자주 오진 않았지만 얼굴 잊어버리지 않을 주기로는 찾아와서 나와 실컷 놀아주곤
“우~타히메!” “……고죠.” 돌아보는 우타히메의 눈매가 의심쩍다는 듯 구겨졌다. 얼마 전부터 고죠 사토루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는데, 아무튼 뭔가, 미묘하게. 왠지 더 친밀해졌다고 해야 할까. 원래부터 퍼스널 스페이스를 무시하고 들어오는 편이긴 했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우타히메는 최근 고죠에 대한 경계 레벨을 올
후회라는 건, 그 당시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다른 선택지를 끊임없이 곱씹어 보는 일이다.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막을 수 없는 생각의 파도가 밀려와 이성을 질식시키곤 하는 것이다. 친우를 잃은 소년은 그랬기에, 틈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스케줄을 채워 넣고 쉴 새 없이 일했다. 그러나 그를 한 차원
* 대학교 AU. 이름 없는 엑스트라 등장. 설정은 대충 마음대로입니다. (주간창작 챌린지 주제로 어쩐지 전력 60분을 하고 있습니다…) “고죠 군, 제발!” “아, 귀찮은데.” “딱 한 번만! 우리 좀 살려준다고 생각하고!!” 이름도 가물가물한 동기(추정)가 울며 매달리는데도 고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여름 감기로 앓아 누운 보컬 대신 사흘 후 축
몸이 축축하고 무거웠다. 닫힌 창문 너머로 들리는 빗소리가 희미하게 귓가에 와닿았다. 억지로 눈꺼풀을 밀어 올리니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이쪽을 향했다. “마침 깨우려고 했는데. 잘 잤어?” “으응…….” 긍정도 부정도 아닌 소리가 새었다. 다시 눈을 꾹 감고 이불과 함께 몸을 말자 발소리가 다가왔다.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답지 않게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비중있게 나옵니다. “우타히메. 요새 외로워?” 보건실에서 나와 문을 닫자마자 들린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인사도 생략하고 걸어온 말의 내용이 무례하기 그지없는 것이라 우타히메는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예상대로의 인물. 고죠 사토루다. 이런 것을 묻는 저의는 상당히
눈을 떴을 땐 새벽 세 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아아, 또……. 우타히메는 누운 채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요 근래 깊이 잠들지 못하고 새벽에 깨는 일이 잦았다. 원인은 불명.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알고 있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하얀 머리카락이 커튼 새로 스민 달빛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새벽에 눈을 뜰 때면 그는 자고 있
236화를 읽은 직후에 썼던 것을 약간 수정해서 올립니다. 애매한 표현이 많고 짧아요.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상당히 상투적인 연출에 고죠는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힘이 없어서 웃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는 기꺼이 눈을 뜨기로 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주 잘 알기 때문이었다. 흐릿하던 시야에 누군가의 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우타히메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아침에 본 청명한 하늘은 분명 그대로인데, 흙먼지 탓에 시야가 가렸다. 흙먼지. 그랬다. 우타히메는 방금 바닥에 처박혔다. 아니, 처박혔다기엔 어폐가 있다. 하늘로 솟아오른 우타히메를 누군가가 들쳐 메고 바닥에 내리꽂히듯 착지했고, 그 높이가 상당했던 탓에 착지의 충격으로 도로가 부서졌
고죠가 옥문강에서 풀려나기 전에 쓴 글입니다. 제아무리 큰일을 겪어도 삶이 지속되는 이상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막대한 사상자가 나온 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세상은 어찌어찌 굴러갔다. 고죠 사토루가 없어지자마자 휘청이던 주술계가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해가는 것은 누군가에겐 신기한 일이었지만. 특히 고죠와 함께 일했던, 그래서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직원실에 별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딱히 우타히메가 있는 것이 별나다는 것은 아니다. 여긴 교토교이고 우타히메는 이곳의 직원이니 직원실에 그가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다만 그 우타히메가 이런 시각에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파 앞 낮은 책상 위에는 반쯤 비워진 커피잔이 놓여있다. 평소엔 커피보다
*엑스트라 시점 우연히 발견한 예쁜 카페가 있다. 번화가에서는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는데, 아치형 입구에 한껏 피어있는 장미꽃부터 눈길을 꾸는 곳이었다. 입구까지 돌다리로 연결된 정원은 계절감이 있으면서도 깔끔한 것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홀린 듯이 들어가니 실내도 운치 있게 잘 꾸며져 있었다. 시험 삼아 시켜본
네가 죽으면 나는 바로 재혼할 거야. 만약 당신이 신혼 초에 남편과 위와 같은 말을 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사람마다 답은 다르겠지만, 일단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미친놈인가…?’ 그렇다. 내가 바로 저런 말을 들은 장본인이다. 그리고 물론 남편, 고죠 사토루는 미친놈이 맞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게 할
그래서 이건, 어떻게 된 상황일까. 테이블 위로 한껏 퍼져있는 고죠를 보고 우타히메는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죠 사토루는 기본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못 마시기 때문이다. 스무 살 이후로 자기 객관화를 완벽히 끝낸 그는 ‘한 모금쯤?’ 하는 객기도 부리지 않으니, 이건 필연적으로 속아 마신 게 되겠다. 아니면 미쳤거나. 어쨌든 전자의 가능성이
흔들리는 시야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우타히메. 대답은 없다. 자는 사람은 보통 대답하지 않으니까. 차가 흔들리는 대로 고개를 꾸벅거린다. 곧 유리창에 머리를 박거나 이쪽으로 쓰러지거나. 어느 쪽이 좋냐고 하면, 어느 쪽이든 좋다. 덜컹. 길가에 돌이라도 있었는지 차가 크게 흔들린다. 부족한 인원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려면 차는 혹사
주술회전 헤테로 합작에 참여했던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고죠는 침대 위에 늘어져 있었다. 털털 돌아가는 선풍기는 시원찮았고 끈적거리는 공기 때문에 살갗에 닿는 시트의 감각도 별로였다. 늘 최상의 환경에서 살던 도련님에게는 많은 것들이 처음이었고, 이런 여름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있어도 체력이 깎여나가는 듯한 느낌은 그다지 기분 좋지 않다.
결론 없는, 뒷맛 나쁜 짧은 이야기 우타히메가 사라졌다. 고죠가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고, 좁은 주술계에서 이따금 들리는 풍문으로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 고죠 사토루와 이오리 우타히메의 사이란 그런 것이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소식이 들리면 들리는 대로, 들리지 않으면 들리지 않
저녁에 고전으로 고죠 사토루가 온대요. 자료를 넘겨주기 위해 아침 일찍 만난 보조감독이 하는 말에 우타히메는 저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교내 분위기가 묘하게 들떠있다 했더니, 눈앞의 보조 감독을 포함하여 아직 고죠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만들어낸 것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하니 그들이나 상대해주면 좋으련
“우타히메, 약해서 큰일이네. 이래서야 앞으로 주술사 일 잘 할 수 있겠어?” 명백히 사람의 화를 돋우려는 목적의 저 말투. 시끄러우니까 꺼지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목이 완전히 잠겨서 말은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술식이다 보니 고집을 부릴 틈도 없이 임무는 캔슬. 아마
고죠 사토루는 재능으로 넘친다. 육안과 무하한 술식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그것만으로도 이미 과한 축복일 텐데. 마치 세계의 변혁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듯 그 외모와 두뇌마저도 평범한 사람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단점이 있다면 그 성격. 그조차 본인에겐 아무런 해도 되지 않고, 자기가 그러고자 한다면 좋은 성격을
“저기,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얼굴의 그 상처는 어쩌다…….” 지겹도록 들은 질문. 이오리 우타히메가 살아온 서른한 해 중 상처가 있던 시간은 극히 일부인데도, 그것은 금세 우타히메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되었다. “주술사니까요. 상처 한두 개쯤은 이상할 것도 없죠.” 반복되는 질문에 답안처럼 만들어둔 대답을 읊는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장례식이다. 누구의 장례식인지는 알 수 없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누군가의 우는 소리, 향냄새. 익숙한 풍경. 그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다. 머리가 멍하다. 슬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리가 무거웠다. 땅속에서 무언가가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듯한 답답한 감각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가 죽은 걸까. 누가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