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만하게 기울어진 포도주 병의 주둥이에서 달큰한 액체가 쏟아져 둥그스름한 잔의 내부를 채우기 시작한다. 손님들의 흥을 깨지 않도록 비어버린 잔을 빠르게 채워넣기만 하면 됐던 동작이 이토록 신중해진 건, 이제 나에게 포도주가 그저 손님들을 화를 잘 내는 빨간 바보로 만드는 물약이 아니라, 모래시계 안에 든 모래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양이 그리 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