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끼니만큼은 챙겨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나쁜 놈 잡는다고. 그래서 필은 도진이 세상을 떠난 날도, 순복이 살해당한 날도 입 안에 무언가를 밀어 넣었다. 오늘은 호개의 발인식이었다. 성치 않은 제 몸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괜찮다며 웃어 보인 필은 아픈 내색 하나 없이 호개의 관을 들어 올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방
"태원소방서 화재진압대, 봉도진 대원. 출동 완료하고 영원히 복귀합니다." 10월 17일. 네가 타오르는 불 속에서 죽은 날.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양초를 우득우득 씹어삼키던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먼 발치에서 오열하는 사람들을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다 결국 고개를 돌렸다. 도진이 이 세상을 살다 간 시간도 짧았지만,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
당신은 한여름 붉은 벽돌 담장 위의 흐드러진 능소화를 닮았습니다. 달콤한 향에 이끌린 여느 개미들처럼 나 역시 당신의 곁을 맴돌고 또 맴돌았었습니다. 그대는 알까요, 수없이 망설이던 나의 손길을. 향하다가도 돌아서던 나의 발길을. 당신이 떠난 후에도 그 담장 위의 능소화는 따스한 햇살에 흐드러지게 피어올랐습니다. 명예, 영광, 그리움, 기다림. 능소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