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뿅/현철명헌] BATTLE!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두 사람을 하룻밤만에 문제를 일으킬 일은 없도록 만드는 주문
* 노시로가 부원당 방 하나라던데?ㅎ
* 그냥 주먹질하는 애들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무언가 구르는 소리가 우당탕탕 요란하게도 났다. 인터하이가 끝나고 새로운 주장에게 제자리를 넘기는 중이던 이전 주장 전수현 군은 기어코 주먹질을 한 두 사람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신현철! 이명헌!"
무슨 소란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냅다 지른 소리에 두 사람 다 수현을 쳐다보았다. 쓰러진 쪽이 이명헌, 주먹 날린 쪽이 신현철. 당연하다. 얼마 전에 자긴 윈터컵 나가야 한다고 누구처럼 성질 못 참아서 주먹 같은 거 안 쥔다고 비꼬아대던 이명헌이 주먹을 휘둘렀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휘두르는 거에 맞아줄 줄은 몰랐지, 맞아도 싸움으로 간주하고 경기 못 나간다고 으름장이라도 놨어야 했나, 수현은 약간 후회했다.
다른 1학년들의 부축을 받아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명헌의 눈동자가 심상치 않아 수현은 일단 두 사람의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뒤에서 당황한 듯 얌전하게 사태를 관망하는 지금 주장 현정호를 보니 눈앞이 깜깜했다. 얘들아, 나 이제 주장 아니야….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두 사람을 따로 공동 공간 한쪽으로 데리고 가니 그제야 정호도 웅성거리며 모여있는 인파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그런다고 소문이 안 나겠나, 주먹질한 게 없던 일이 되겠나, 이것들이 갑자기 친해져서 이럴 일이 없게 되겠나. 전부 제 업보려니, 수현은 제 앞에서 뒷짐 쥐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대기 중인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다시 한 번 푹 한숨을 쉬었다.
이명헌. 입학 전부터 도 감독이 열과 성을 다해 꼬셔온 덕분에 같은 포지션을 담당하는 수현뿐 아닌 모든 농구부원이 다 경계하며 인정하는 천재. 거기다가 1학년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번 인터하이 출장 선수이기도 했다. 잠시간이나마 결승에서까지 투입될 정도로 충분히 완성된 선수로, 아마 이제부터 주전 PG로서 실질적으로 이 농구부를 이끌어나가게 될 것이라는 평이 전반적이었다.
경기 중의 코트에서 시야도 넓고, 선배나 동기들과 사이도 좋고, 선수들의 기량을 파악하는 데에도 뛰어난 편이고, 다만,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으나 신현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눈만 마주쳤다 하면 싸움질이었다.
신현철. 이명헌에 비한다면 그 누구도 무명이겠지만, 신현철은 그중에서도 무명인 쪽이었다. 신체적인 조건에 따른 혹평이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조금 사정이 나았다. 뼈대가 굵으니 조금 더 크겠거니 했던 게 벌써 입학 때 키랑 10cm나 차이가 나니까. 센스도 좋고 열정도 있고 실력도 금방 늘긴 한다. 그래도 이명헌과 동기이니 주전 PG로 뛸 일은 없겠네, 하는 게 현재의 총평이었다.
다른 부원들과의 친한 정도를 따지자면 이명헌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상한 어미를 쓰지 않으며, 엉뚱한 짓도 하지 않고, 포용력 있고, 어울리는 무리도 꽤 다양했다. 성격 좋고, 어디 가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그런 신현철 또한 정말 이상하게도 이명헌만 봤다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서 문제지.
두 사람이 언제부터 저렇게 앙숙 같은 느낌이었느냐면, 중학교 때 뺨 싸대기를 한 대씩 주고받은 이후였다는 말이 가장 신빙성 있는 의견이었다. 관중이 많았던 덕분인가 본데, 그럼에도 싸운 이유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 걸 보면 그때에도 별 시답잖은 이유였거나 쉽게 떠벌리지 못할 만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이 안 좋았다는 말도 있긴 한데, 인제 와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서로의 이름만 들으면 입안에서 욕만 씹고 있는데 누가 물어나 보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수현은 그럴 수 없었다. 눈앞의 두 사람이 욕을 씹든 껌을 씹든 저를 씹고 있던 이 사태의 이유를 알아내고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설명."
수현의 말에 명헌이 고개를 들어 현철을 쳐다보았다. 마치 아무 이유 없이 맞았으니 그 어떤 설명이든 네가 하라는 시선에 현철은 욕 한 바가지를 품고 있는 혀를 꾹 누르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고도 3분여를 어금니 사이에 이명헌이라도 있다는 듯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코트 위에서 사소한 감정 때문에 게임 운영이 단조로워지는 게 화가 나서 항의했는데 그대로 무시당해 순간적으로 울컥했습니다. 주먹을 휘두른 것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현철이 고개를 쑥 숙였다가 들어 올렸다. 현철의 대답을 들은 명헌은 눈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짜증과 화남과 억울함이 조금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얘기가 한참이나 남아 보이는 얼굴로 항의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이내 턱에 힘을 주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현철에게 명헌의 이런 표정 변화는 익숙한 것이었다. 언제나 저런 식이었으니까. 다른 사람이랑은 무던하니 변화도 잔잔하고 때로는 조금 웃기도 하면서, 저랑 눈만 마주쳤다 하면 못 볼 꼴을 봤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입을 씰룩이며 이내 시선을 피해버린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게 있어 보이기도 한데 중학교 때 서로 뺨을 한 대씩 갈긴 뒤로는 목소리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더 읽기 쉬운 얼굴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라는 표정이다. 코트 밖에서야 서로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는 두 사람이지만 연습 경기 때마저 그랬다가는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코트 위로 사소한 감정을 끌고 가지 않기로 한 것은 같은 고등학교에서 서로 마주한 두 사람의 불문율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지금 신현철의 말은 이명헌의 자존심을 건든 것과도 같았다.
눈싸움만으로 살인이 된다면 서로 백만 번 정도는 토막을 내고도 남았을 것 같은 시선 교환에 수현은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는 명헌에게 시선을 건넸다. 어차피 현철이 꺼낸 말도 변명이니, 너도 한 번 변명 비슷한 거라도 해 보란 뜻이었다.
"패스도 제대로 못 받고, 자리도 제대로 못 잡고, 오늘따라 자유투도 안 들어가지, 너한테 공을 줄 이유가?"
…지금 머릿속의 말들을 그대로 내뱉어 시비를 걸라는 의도가 절대 아니었다. 결단코 아니었다. 얼마나 빡이 치셨으면 다용인지 도롱인지 하는 제멋대로 바꿔대는 어미까지 떼고서 저를 노려보는 신현철을 똑같이 노려보며 명헌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쁜 건 둘째치고, 어느 쪽이 다른 한쪽을 싫어하는가 생각해보면, 수현은 이명헌이 신현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명헌은 꽤 티가 나게 현철을 차별했고, 현철은 꽤 수차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개성하고자 노력하는 행동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인사를 건넨다든가, 물이나 수건을 챙겨준다든가, 연습 경기 내용을 공유하려 한다든가, 혹은 명헌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일 때 한 번 더 안색을 체크하는 점 등이 그랬다.
신현철을 싫어하는 명헌은 그보다 좀 더 노골적이었다. 대화 중에 현철이 다가오면 입 다물기, 현철의 물음에 답 안 하기, 가는 길 앞에 현철의 뒤통수가 보이면 돌아가기, 사람 얼굴 앞에서 한숨 쉬기, 화해의 악수 신청에 건성으로 응하기 등등. 솔직하게 말해서 이명헌이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굴 수 있다는 사실을 현철이 아니면 절대 몰랐을 것이다. 그 정도로 현철에 대한 명헌의 태도는 이질적이었다.
근 반년 동안 생각해 온 그 사실이 갑자기 뒤집어져 보인 것은 어째서인지 수현은 답을 내리지 못했다. 명헌을 핑계로 주먹질의 핑계로 댄 현철 때문인지, 자신의 행동은 현철이 먼저 유도했다는 듯 얘기한 명헌 때문인지.
명헌의 질문에 현철은 입을 다물었다. 오늘의 경기를 다시 되새겨 보는 것 같았기 때문에 수현은 그 눈에 다른 빛이 돌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어차피 이렇게 따로 불러낸 것은 일차적으로 더 큰 사달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뿐이지 실제로 어떤 이유로 주먹을 날렸는지까지 궁금했던 것은 아니므로, 두 사람 다 진정된 것을 확인한 수현은 꼬고 있던 팔짱을 풀고 두 사람을 차례대로 가리켰다. 제가 입학하기 전부터 소문만 무성한 유구한 전통, 사이가 안 좋아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두 사람을 하룻밤 만에 문제를 일으킬 일은 없게 하는 주문.
"오늘 둘이 같은 방 써. 내일 오전 훈련까지는 나오지 마."
뿌드득. 고개 숙인 두 사람의 턱에서 뭔가 빠그라지는 소리가 났다. 설마하니 그 소문이 사실일 줄은 몰랐겠지만, 어느 정도 사교성이 있는 놈들이니 아예 예상 못 한 것도 아닐 것이다. 놀람의 비명 한 조각 없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수현은 친절하게 두 사람의 방 중에서 아래층에 있는 현철의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된다고 지정해주고, 정호에게 두 사람의 처분을 알리고, 농구부원 사이에 소문이 퍼지도록 내버려두고, 감독에게 보고하러 발걸음을 서둘렀다.
익숙하지 않은 방 안에 들어선 명헌이나 익숙한 공간에 편치 않은 마음으로 들어선 현철이나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현이 예상한 것처럼 둘 다 소문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꼭 이렇게 싸움을 하게 될 예정인 상대방까지 있으니, 선배도 동기도 산왕 농구부에는 그런 소문이 있어, 하며 한 마디씩 보탰기 때문이었다. 다만 3학년 선배들도 실제로 그런 처분을 받은 사례를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예전에나 있었던 처벌이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뿐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방의 주인인 현철이었다. 지금까지의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현철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명헌은 현철이 움직이는 양을 눈동자만 도로록 굴려가며 쳐다봤다.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긴 현철은 벽장을 열어 이불을 깔았다. 제자리의 옆에도 묵묵하게 하나 더. 혼자 쓰는 방에 두 명이 멀찍이 떨어져 잘 공간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명헌은 폐 저 안쪽에서 끌어 오르는 한숨을 꾹 눌러 삼켰다.
이불을 꺼내는 것으로 제 할 일은 다 했다는 것처럼 현철은 벌러덩 이부자리에 누웠다. 원래부터 입구 쪽 가까이에 자는 버릇이 있는지 명헌을 배려한답시고 일부러 그쪽에 누웠는지는 자명하고, 묵묵하게 제 게임기나 꺼내는 꼴을 보다가 명헌도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한 쪽 벽에 궁둥이를 붙였다.
하필 주먹을 날린 것도 저녁 훈련 이후 샤워를 마치고 나온 뒤라서 다른 어떤 걸 핑계로 방 밖을 나갈 수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오늘의 연습 경기 중에서 일부러 현철에게 공을 돌리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었다. 아까 보란 듯이 쏘아댄 그런 말들도 물론 이유가 됐겠지만 단순하게 최근 SF부터 PF까지 섭렵 중인 저 조그만 덩치를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그랬던 것이 컸다.
정정, 지금은 조그맣지 않았다. 자신의 이부자리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대충 자리 잡고 엎어져 있는 신현철은 아마 올해 안으로 자신의 키를 넘어설 것이다. 그걸 상정하고 패스를 돌리기 때문인지 종종 현철이 잡지 못하는 곳에 공을 던지기도 해서, 명헌은 꽤 난감했다. 조금 이기적으로 생각하자면 현철이 제가 공을 보내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고,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현철이 잡을 수 있는 곳에 공을 보내면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렇지 못한 것은 아마 확실하게 저와 맞붙어 싸우던 작은 PG가 점점 자라나 다른 포지션에 넘어가 버린 것에 대한 질투겠지만 말이다.
"이명헌, 아까…."
조용히 오늘의 연습을 떠올리는 중에 들려온 목소리에 명헌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것은 조건반사다. 신현철이 저렇게 명헌을 부르면 대개 명헌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 나왔다. 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니 말로 하라는 둥, 좀 더 사교적으로 친구를 사귀라는 둥, 뭐, 남자 좋아한다는 게 사실이냐는 둥 명헌에겐 가볍지 않은 말들을 툭툭 쉽게 건네곤 했단 말이다. 농구 코트 위의 신현철도 잘 모르겠다곤 하지만 이런 상황의 신현철이 무슨 말을 꺼낼지는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관두지? 너랑 세 마디 이상 나눠서 좋을 게 없어."
명헌의 단호한 말에 사실을 얘기하는 것 외에 다른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처럼 명헌이 저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 현철은 명헌의 말을 상각해 보다가 대답했다.
"…그래, 잘 자라."
현철의 순순한 대답을 들은 명헌은 조금 더 어딘가의 허공을 응시하는 듯하더니 이내 조용히 이부자리에 몸을 뉘었다. 괜히 게임기나 좀 더 만지작대던 현철도 불을 끄고 자리에 눕자, 방 안이 여느 때와 같이 조용해졌다. 다른 점이라곤 제 숨소리 외의 다른 숨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뿐이었다. 평상시 잠드는 시간보다야 이르지만, 혼자도 아니고 둘이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 차라리 눈을 감았다가 떠서 아침이 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던 현철이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뒤척였다. 농구를 하거나 친구들이랑 놀 때에 잠시 잊고 있었던 느낌이었다. 뭔가로 쑤시는 것 같기도 하고, 찌릿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입학 이래로 11cm나 컸는데도 아직도 가시지 않은 성장통이었다. 어제는 좀 괜찮아진 것 같더니 옆에서 자는 놈 때문인지, 찌릿한 느낌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고른 숨소리로 잠들어 있는 놈을 깨워 봤자 또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 같으니, 현철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별로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니고, 새어나오는 소리까지 억눌러가며 참고 있는데 솔직히 명헌도 별 말 않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그 녀석의 짜증스런 표정을 또 보고 싶진 않아서 현철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명헌은 한숨을 짧게 뱉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숨소리 변화도 없이 벌떡 일어난 덕에 괜히 놀란 현철이 이불 속에서 숨을 죽였다. 시선에도 힘이 있다고 했던가, 등지고 있는데다가 이불까지 덮어썼는데도 명헌이 저를 쳐다보는 건 잘 느껴져서, 현철은 숨을 길게, 길게 내뱉었다. 명헌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나설 때까지.
현철에게 명헌은 어려운 존재였다. 존재 자체가 어려웠다. 어릴 때 좀 싸운 거로 아직 으르렁대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첫 단추부터 심각하게 잘못 채워서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싸움은커녕 말다툼조차 거의 없는 현철에게 있어서 이러한 상황들은 꽤 신선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보통 실수를 상대방이 하고 현철이 사과를 받아주는 편이었다. 혹은 다른 두 사람의 싸움을 중재하거나. 간혹 본인의 실수인 경우에도 큰 문제 없이 수습이 되곤 했다. 상대방 쪽에서도 두고두고 화를 낼 정도로 큰 실수를 하지도 않고, 거듭해서 실수를 반복하지도 않기 때문이었을 텐데, 이명헌에게는 아마 둘 다 했고, 이명헌 본인은 이제 자신과 엮이지 않는 쪽이 가장 쉽게 상황이 종료된다고 여기고 있기까지 했다.
정말로 자신이 명헌의 경계 안에 들어가는 것도, 명헌이 자신의 경계 안에 들어오는 것도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고 현철은 잠시 생각했다. 평소에도 말을 걸라치면 자리를 피하는 이명헌이 기어코 주장 명령을 무시하고 방을 뛰쳐나갔으니 말이다. 그렇게나 저와 같이 있는 게 싫었거나 제 목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시끄러웠거나.
"시끄러워."
벌컥 열린 문으로 이명헌이 나갔을 때와 같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밖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무단으로 방 밖을 나섰다는 사실로 혼나지 않을 자신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어딜 갔다 왔는지 물어봐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현철의 허벅지 위로 뜨끈한 물체가 떨어졌다.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있던 이불을 내리고 보니, 명헌은 다시 제 이부자리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고, 제 허벅지 위에는 따뜻한 수건이 몇 장 널브러져 있었다. 어떤 의도로 가져다 놨는지 자명하여 현철은 오히려 명헌을 쳐다보았다.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른 숨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왔다.
"…미련하게 깡으로 버티는 거 아냐."
뒤이어 들려온 말에도 현철은 반응이 없었다. 명헌이 던져놓은 수건을 들고 아직도 이따금 찌릿한 느낌이 오는 부위를 잘 감싸기만 했다. 명헌은 모를 것이다. 현철의 속에서 절대 친해질 일 없는 사람 명단에 1순위로 이름이 적혔다가 5분도 안 되어 사라진 것을.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명헌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현철이 성장통으로 끙끙대는 소리를 듣고 그 옛날 성장통은 무슨 성장통이냐며, 키도 작고, 더 클 일도 없고, 성장통 소리한 의사가 돌팔이라고 소리쳤던 옛날 기억을 떠올려 괜히 찜질용으로 수건이나 뜨겁게 삶아왔다는 것을 현철도 모를 테니까. 와중에도 수건 하나 들고 와서 제 뺨에 하나 댈 걸,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테니까..
* 전 주장은 전 주장,,, 현 주장은 현 주장,,,,,,(?
* 다음 날부터 졸라게 놀림당하고 주먹질 하는 일은 없어지고 이명헌한테 다가가는 방법을 바꾸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 쯤엔 사궛으면 좋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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