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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꼭 내 꿈을 포기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원피스 크로커다일 드림 / 올비(@oliviCM) 커미션

든프 by 정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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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서 옅은 봄바람이 불어온다. 크로커다일은 항구에 정박한 모비 딕 호를 뒤로 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따라 걸었다. 뒤에서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한 번 정도는 봐주리라고 생각하면서. 언뜻 화이트 베이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그 여자라면 달리 말하지 않고 모른 척해줄 것이다. 물론 돌아왔을 때 예의 이상한 웃음을 짓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정도쯤이야 게으름의 대가치고는 싼 편이다.

봄섬의 봄날은 언제나 그렇듯이 안온했다. 느린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뺨을 간지럽혔고, 곳곳에 핀 들꽃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혀와 사람의 마음을 느슨하게 했다.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크로커다일은 사실 이런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평온하지 않던가. 제가 해적인 것을 잊어버릴 만큼. 이때까지 흘렸던 피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평화롭기 그지없는 광경은, 자신이 해적왕이 되는데 하등 도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쓸모없는 평화다. 대해적 시대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 하나 없는.

그러나, 그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버리고야 마는 것은 왜일까.

“크로!” 

봄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면, 제법 익숙한 풍경 너머 바람의 근원이 보인다. 모든 바람은 저 여자에게서 시작하므로, 그러니 이 간지럽기 그지없는 봄바람 또한, 아마. 

아, 그래. 모두 저 여자의 탓이었다. 크로커다일은 여자의 만면에 피어난 들꽃 같은 미소를 바라보며 떠올린다. 언젠가 여자가 자신에게 속삭였던 그 말을. 절대 깨지지 않을 맹약처럼 굳게 다짐했던 그 말을. 해적도 해군도 없는 바다로 가자. 고요한 바다를 찾아 둘만 있는 곳으로. 그 말은 무엇보다 달콤해야 했음이 틀림없었다. 분명 그런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크로커다일은 그 의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말은 제 꿈을 포기하라는 소리로 들렸으므로. 그 무엇도 없는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자 또한 마찬가지일 테지. 해적이 없는 바다에서는 해군도 필요가 없다. 영웅 같은 거추장스러운 칭호는 더더욱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윈프레드는, 영웅의 후계자라는 이 여자는. 자신을 위해 영웅을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을 잘도 입에 담고야 마는 것이다. 설령 그 말에 조금의 거짓이 섞여 있을지라도. 그저 말뿐인 문장이라도. 자신은 거짓으로나마 그 문장을 뱉을 수도 없고,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음에도. 크로, 다정하게도 제 이름을 속삭이며. 한낱 봄바람처럼 잡을 수 없는 꿈 따위를 입에 담는 여자는, 정말 멍청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었으므로. 그러니 자신 또한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고 싶은 것이다. 해군도 해적도 없는 바다로. 그래, 그런 바다로 가자고. 그런 바보 같은 말에 동조해주며, 기어코 네가 바라는 이상향을 안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리고야 만다.

그러나 크로커다일은 말하지 않는다. 내뱉어버리면 진실이 될 문장들을 망설임 없이 흩트려 놓는다. 제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여자를 놓아줄 마음 또한 없었다. 그저 전부 손에 쥐고 싶었다. 설령 그로 인해 정의로 향하는 바람을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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