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울리는 것

원피스 크로커다일 드림

든프 by 정든프
3
0
0

윈프레드는 어릴 적부터 식물을 좋아했다. 가프 씨를 만나 ‘윈프레드’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까지 그는 프란샤 왕국의 캘러이스 마을에서 지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름이 없던 윈프레드를 ‘꼬질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어린아이였던 그가 처음 마을에 나타났을 때 피부며 머리카락이며 입고 있는 옷까지 전부 꼬질꼬질해서 그 모습이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다.

캘러이스 마을의 여자들이 마을 화단을 가꿀 때마다 꼬질이는 집 밖으로 나와 나무나 엄폐물이 될 만한 것 뒤에 숨어서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았다. 어린아이라서 작지만, 덥수룩한 곱슬머리가 너무나도 눈에 띄어서, 마을 여자들은 꼬질이의 시선을 처음부터 눈치챘지만 왜 몰래 쳐다보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꼬질이가 집 앞의 화단에서 자기가 보았던 것을 대강 따라 하는 모습을-심을 씨앗이 없다 보니 삽으로 흙을 파고 돌이나 떨어진 낙엽 같은 것을 넣은 다음에 다시 흙으로 덮고 물을 뿌리는 것이 다다.- 목격하여 아이가 식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화단을 정리할 때마다 꼬질이를 데려와서 옆에서 볼 수 있게 해주고 식물을 기르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배우는 게 빠른 꼬질이는 어른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혼자서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고, ‘윈프레드’라는 이름을 받고 마린포드에서 살게 된 뒤에도 계속 꽃과 식물을 키웠다.

그리고 윈프레드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해군이 되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과 같은 색이 어울리는 남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남성이 해적이고, 식물을 시들게 하는 능력을 가졌다면 어떨까.

“너 같은 년은 낙원은커녕 이스트 블루의 쓰레기들도 버거울 거다.”

그 남자, 크로커다일과의 첫 만남은 가히 최악이었다. 윈프레드는 가프 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당시 손에 꼽히는 루키 해적 중 한 명인 크로커다일을 잡으려고 했지만, 기술과 경험 부족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런 굴욕을 맛보는 건 난생처음이라서, 윈프레드는 분통이 났는데……

“하, 해군 영웅은 이런 여자가 날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보는 눈이 없군! 아니면, 벌써 한물간 노병이라도 된 모양이지?”

자신의 은인을 깎아내리는 말을 해대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윈프레드는 해적들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어린 해병이 우는 것을 본 선원들은 당황했지만, 크로커다일은 시선을 돌린 채 윈프레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눈물이 시야를 가려 흐릿한 인영 같은 것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윈프레드가 뚜렷하게 본 것이 있었다. 허리에 빙 두르고 매듭을 지어 고정한, 초록색의 허리끈.

너무나도 가증스러웠다! 모래모래 열매를 먹어 능력은 물론이고 피부도 건기로 가득한 해적이, 손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광활하고 아름다운 생명을 죽일 수 있는 이 남자가! 식물과 같은 색의 끈을 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증스러웠다. 별 시답잖은 것으로 그러냐고 생각하겠지만, 윈프레드는 크로커다일에게 패배한 직후라서 크로커다일이 무얼 하든 마음에 안 들고 괘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간 뒤엔 기분 전환으로 식물을 돌보려 했지만, 초록색을 보는 순간 크로커다일이 맨 허리끈이 아른거려서 소중한 화분을 깨트릴 뻔했다.

바다는 넓고 해적은 많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세상은 좁은 모양인지 윈프레드가 가는 곳마다 크로커다일이 있었다. 윈프레드는 이번에야말로 너를 잡아주겠다면서 삼류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내뱉었지만, 녀석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윈프레드는 가프 씨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에 포기하지 않고 크로커다일을 쫓아다녔다. 이 쫓고 쫓기는 관계가 연장되다 못해 일상이 되자, 윈프레드의 마음 한구석에는 저 녀석을 잡지 못하는 한, 저는 해군 영웅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윈프레드는 수갑이 아닌 맨손으로 크로커다일의 손목을 붙잡았다. 윈프레드를 향해 총구를 겨눠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크로커다일처럼.

“지, 지금 내 걱정을 할 때야…?! 나 대신, 총에 맞았잖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네 부상이 더 심각한데 왜 날 챙겨주고 있는 거야? 네 몸을 걱정하라고, 바보야…!!”

결국 그 아이러니함은 터지고야 말았다. 윈프레드의 오랜 숙적과의 결투가 끝난 뒤에 일어난 일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지만, 방심하는 순간 큰코다치게 되고, 터지게 되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오색찬란한 폭죽과도 같았다. 너무나도, 이상했다. 윈프레드는 몰라도 크로커다일은 이런 시시한 장난감에 정신이 팔릴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눈을 떼지 못한 이유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허공에 흩날리는 색종이 조각들 너머에… 환하게 웃는 윈프레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것은… 정말로, 이상하고…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원래 없던 것이 터진 게 아니다.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음표를 나열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고, 생각을 쥐어 짜내 그예 답을 내놓았으나 그것은 풀이부터 틀린 오답이라서 자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다. 어째서 그 녀석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지 못했는지, 어째서 그 녀석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는지… 명明과 암暗이 뒤섞이는 순간이었다.

해적과 해군이라는 정반대의 처지는 치기 어린 감정을 말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윈프레드는 크로커다일을 사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과 같은 색을 띠고 있어서 기분 나빴던 허리끈도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허전했다. 사람의 감정이란 참 이상하지 않나. 윈프레드가 삼총사를 읽으면서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밀레디를 향한 달타냥의 마음이었다. 달타냥은 아토스에게 온갖 충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밀레디에게 반하고 말았다. 수백 번을 다시 봐도 그 부분만은 이해되지 않았는데… ‘달타냥’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성을 거스르고 오직 감정만이 앞서가기 때문에 사랑이란 것을. 그렇기에 이 감정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 치기 어린 감정이 어딜 향해 치닫는지,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비극을 맞이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크로커다일과 윈프레드 또한 비극을 맞았다.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가 된 크로커다일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윈프레드에게 소리쳤다. 나는 해적왕이 될 남자다! 너처럼 머리통에 꽃밭밖에 없는 여자랑 어울려 줄 시간은 없다고! 그러니까… 어서 내 눈앞에서 사라져. 윈프레드는 그 말에 상처받았다. 하지만 똑똑히 보았다. 크로커다일의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을. 그의 뺨을 타고 내려가는 눈물이 흉터를 덮은 붕대를 적시는 것을 보고 윈프레드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가시밖에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흘리는 눈물이 마치, 우리 둘은 안된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아서. 윈프레드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제 주위를 둘러보아도 크로커다일이 보이지 않자, 물을 한가득 담고 있던 유리병이 깨진 것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마음 아픈 실연을 겪었지만, 윈프레드는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프 씨와 쿠잔 덕분이었다. 그리고 윈프레드한텐 해군 영웅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으니 몸에 수많은 흉터가 남아도 앞으로 걸어가야 했다. 어떤 상처든 그 위로 살이 돋아나 낫게 되어있다. 그러나 흉은 남는 법. 윈프레드는 아무리 즐거운 일을 해도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식물을 돌볼 때는 더 심해져서,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 일 이후로 크로커다일을 아예 만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칠무해의 창설 멤버로 뽑힌 크로커다일은 세계정부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칠무해가 되었다. 해적들에게 정부의 개라며 손가락질받지만, 그는 그딴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윈프레드는 가프의 대리로 참여한 칠무해 소집 회의에서 크로커다일과 재회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윈프레드는 크로커다일을 따로 불러서 대화를 나누었지만 좀처럼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애써 대화를 이어가도 입에선 잘 지냈냐는 시답잖은 말 밖에 나오지 않았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이 막히는 동시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크로커다일을 바라보아도 그와 눈이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게 돼서, 그를 부른 것은 자신인데도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마침 콩 원수가 회장에 들어오시자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에게 다음을 기약하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제야 윈프레드는 깨닫고 만다. 크로커다일이 늘 하고 다니던 초록색의 허리끈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크로커다일의 소식만 접하면 비운의 여주인공처럼 극도로 우울해지지만,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윈프레드는 크로커다일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잡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질 정도로 일상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 윈프레드는 안심했다. 세계정부에서 사용을 금지한 댄스파우더를 악용해 알라바스타에 반란이 일어나도록 암약하고 알라바스타와 고대 병기 플루톤을 차지하려는 크로커다일의 음모가 들통나면서 그가 임펠다운에 투옥되었을 때도 이제 다 끝났다면서 시원한 기분으로 가볍게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윈프레드는 무너지고 말았다. 크로커다일이 포트거스 D. 에이스를 구하기 위해 임펠다운에 쳐들어온 밀짚모자 루피와 임시 동맹을 맺고 임펠다운에서 탈옥했다. 심해의 감옥에서 탈출한 크로커다일은 죄수복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회색 바지에 검은색 와이셔츠, 어깨엔 늘 그랬듯이 털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크라바트 또한 매고 있었는데, 윈프레드는 크라바트를 보는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그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20년 전의 그날에 갇혀 있다가 겨우 빠져나왔지만, 크로커다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제가 알고 있는 ‘크로’가 아닌 Sir.크로커다일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는 여전했다. 소싯적에 두르고 다녔던 허리끈과 같은 색의 크라바트. 너는 누구보다도 건조하고 손쉽게 식물을 죽일 수 있는 남자임에도, 너는, 당신은 여전히, 그 색이 가장 잘 어울려. 아, 달라진 게 없는 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구나.

아, 그리고… 가장 슬픈 것은… 나 역시… 여전히, 당신을…….

카테고리
#기타
페어
#HL
#그 외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