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적의 첫사랑

원피스 크로커다일 드림

든프 by 정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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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프레드. 크로커다일은 그 여자를 무지 싫어했다.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 주제에, 꼴에 해병이라고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 여자를 처음 만난 건 아버지(おやじ)의 배, 모비딕 호의 갑판 위에서였다. 크로커다일은 해군 영웅의 뒤에 붙어있는 아리땁게 생긴 –크로커다일은 맨입으로 윈프레드를 향해 예쁘다 등등의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의 미모를 차마 부정하진 못했다.- 소녀를 보고 해군 영웅에게 딸이 있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보니 그는 해병의 마린복을 걸치고 있었고, 소녀는 해군 영웅과 함께 모비딕 호의 갑판 위에 올라왔다.

“내 이름은 윈프레드! 해, 해군 영웅이 될 여자다!”

해군 영웅?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를 훑어보았다. 바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흰 피부, 크게 쳐도 160cm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조그만 체구.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외모는 해군이니 정의니, 그런 투박한 단어들이 어울리지 않았다. 윈프레드가 가냘픈 목소리로 해군 영웅을 외쳐댈 때 어떤 이들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지만,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과 맑은 바다는 윈프레드를 위한 무대가 되고, 햇빛은 그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윈프레드를 좀 더 빛나게 했다. 마르코가 옆에서 크로커다일의 이름을 연달아 불렀지만, 크로커다일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윈프레드가 손가락으로 크로커다일을 가리키자, 크로커다일의 눈동자에 안광이 돌아왔다.

“크… 크로커다일!! 이, 이 몸이 해군 영웅이 되기 위한 첫… 발판으로! 널 잡으러 왔다! 지, 지금 당장 나랑 싸우세요!!”

시작부터 말을 더듬는 것을 보고, 해적들은 윈프레드의 성격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남을 도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지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라고 알려준 것을 그대로 읊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하는 것이 서투른 행색이었다. 또 이 몸이니 첫 발판이니 이런 말들을 맨정신으로 내뱉는 것이 스스로도 부끄러운지,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엔 삑사리가 난 목소리로 크게 외치는데,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잘 익은 토마토를 연상케 했다. 화이티 베이는 속으로 윈프레드를 귀여워하며 코웃음을 쳤지만, 도발을 당한 당사자는 그러지 못했다. 주먹을 쥐는 방법도 모를 것 같은데,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는 해군 영웅이 되기 위한 첫 발판으로 날 쓰러트리겠다니. 어지간히 내가 우스워 보였나 생각했다. 크로커다일의 프라이드가 더럽게 높다는 건, 흰수염 해적단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실이니 선원들은 눈을 흘겨 크로커다일의 얼굴을 보았다. 크로커다일은 작게 혀를 차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윈프레드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해군 영웅? 웃기시네. 위대한 항로가 우습게 보였나, 아가씨?”

크로커다일은 검지로 윈프레드의 턱을 올렸다. 외간 남자의 손길이 제 몸에 닿자 윈프레드는 화들짝 놀랐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으나, 해적을 대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크로커다일을 바라보는 두 눈에 각오가 다져있었다. 하! 그런 윈프레드가 가소로워 크로커다일은 콧방귀를 뀌었다.

“너 같은 년은 위대한 항로는커녕 이스트 블루의 쓰레기들도 버거울 거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최악이 아닐 수 없었다.

*

최근 크로커다일은 고민이 생겼다. 첫 대면부터 나를 잡겠다고 큰소리치던 여자. 윈프레드라고 했던가. 윈프레드는 크로커다일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보기 좋게 패배하고 말았다. 힘이나 경험의 차이만 봐도 결과는 뻔했지만, 윈프레드는 분함을 참을 수 없었는지 자신을 비꼬는 크로커다일의 몇 마디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숙녀의 눈물을 보고도 크로커다일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돌아섰는데, 그걸로 윈프레드의 미움을 산 건지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다툼을 벌였다.

머릿속에서 윈프레드의 얼굴을 떠올리자 크로커다일은 눈살을 좁혔다. 정말로 바람 같은 여자다. 그 꾀꼬리 같은 목소리도 듣기 싫고 곱게 자란 티가 나는 얼굴도 보기 싫은데, 바람은 어디에도 있는 것처럼 제가 가는 곳마다 항상 그 여자가 있다. 괜히 엮이기 싫어서 그를 못 본 체하고 지나가려 하면, 귀신같이 알아보고 달려와서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가 귀찮았고, 너무나도 싫었다. 어느 날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를 볼 때마다 제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크게 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왜 이러지? 최근 들어 그 여자와 자주 만났는데, 기어이 내가 고혈압이 되고 만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선의한테 찾아가 진료를 보았지만, 크로커다일의 혈압은 정상이었다. 혈압뿐만 아니라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가슴에 큰 응어리가 진 기분이다. 크로커다일은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넘겼다. 사실, 정답이 뭔지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을 볼 때마다 머리에 피가 몰리고 크게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에 감정이 격해지는 현상, 분노 말곤 없었다.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에게 느끼는 감정을 분노와 살의라고 단정 지었다. 해적과 해군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이 적대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와 처음 만났을 때, 결투에서 패배한 윈프레드를 미라로 만들지 못한 것을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 여운이 이제야 싹을 틔운 것이고, 당연한 현상이다. 적대 외의 감정일 리 없었다.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해적과 해군이니까, 더 이상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에게 살의를 느낀다고 생각했다. 정작 윈프레드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면 총을 손에 쥐고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주제에….

*

“…그러니까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말괄량이 아가씨. 너는 싸움에 소질이 없다고.”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의 팔을 가볍게 훑어 내렸다. 새하얀 팔에 남은 흉터는 가볍게 긁힌 자국밖에 없어서 며칠 지나면 사라질 것처럼 보였지만, 윈프레드의 부상을 확인하는 크로커다일의 눈동자에는 걱정과 진중함이 가득했다. 윈프레드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다가 눈동자만 굴려 크로커다일의 어깨를 보았다.

크로커다일은 상대편 보스가 마지막 발악으로 쏜 총에 맞았다. 평소의 크로커다일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늙은 해적 놈이 총구를 겨눈 건 크로커다일이 아닌 윈프레드였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까지 윈프레드는 자신을 향하는 총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고, 크로커다일은 그 녀석이 윈프레드한테 총을 쏘려고 하는 것을 발견했지만 저지하기엔 너무 늦었다. 결국 크로커다일이 윈프레드를 감쌌고, 윈프레드가 뭐 하는 짓이냐며 따지려고 할 때 탕! 발사음이 두 사람의 귀청에 울렸다.

크로커다일은 어깨에 걸친 코트를 끌어 내려 총상을 가렸지만, 그 밑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윈프레드의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보다 이 녀석이 훨씬 중상이잖아. 그런데 어째서 날 챙기는 거야, 지 몸이나 챙기지. 울컥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더니,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힌다. 크로커다일한테 우는 모습을 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꾹 참고 싶었지만 훌쩍이는 소리가 크로커다일의 귀에 닿았고, 그의 눈동자가 윈프레드의 얼굴에 향하자 또르륵,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크로커다일은 당황했다.

“…뭐, 뭐야. 너 갑자기 왜 울어?”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평소라면 숙녀의 눈물을 보고도 움츠러들지 않을 크로커다일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윈프레드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아파? 자기가 발견하지 못하고 놓친 부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지만 윈프레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제 앞에 있는 크로커다일을 밀어내곤 소리쳤다. 윈프레드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지, 지금 내 걱정을 할 때야…?! 나 대신… 총에 맞았잖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네 부상이 제일 심각한데 왜 날 챙겨주고 있는 거야? 네 몸 걱정 좀 하라고 바보야…!!”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착각하지 말라며 윈프레드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제 어깨에 박힌 채 미동도 하지 않을 터인 총알이 몸속에서 날뛰는 것만 같은 고통이 전해지자 그제야 크로커다일은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크로커다일의 자세가 무너지면서 곧 쓰러질 것처럼 보이자 윈프레드는 크로커다일의 뒤에 앉아 그를 받쳐준 다음 살며시, 바닥에 눕혔다.

나 때문에, 내가 둔하게 서 있어서 크로커다일이 다쳤어. 원래라면 이런 총알 따위 스치지도 않고 피할 녀석인데, 나 때문에. 윈프레드는 손목으로 눈가를 마구 문대서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았다. 정신 차려야 해. 여기서 크로커다일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지금 당장 흰수염 해적단의 사람을 부른다고 해도 언제 올지 모르는 노릇이고, 윈프레드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대는 해군밖에 없는데, 그러면 오히려 크로커다일이 위험해진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해. 윈프레드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

크로커다일은 눈을 떴다.

상체부터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어깨 부근에 느껴지는 갑갑함에 그의 시선은 밑으로 향했다. 핏물로 더럽혀진 셔츠는 벗겨져서 옆자리에 늘어놓아져 있었고, 새하얀 붕대가 총알이 박혔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응급처치를 한 사람은 일단 지혈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겹겹이 둘러서 단단하게 묶인 붕대는 크로커다일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덕분에 피는 멈췄지만. 정신을 잃은 크로커다일의 옆을 줄곧 지키고 있던 윈프레드는 크로커다일이 눈을 뜬 것을 보고 안심한 듯 활짝 웃으며 그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드디어 눈을 떴구나! 다행이다. 난, 나 때문에 네가… 못 깨어날까 봐…. 이 바보야. 또 우냐? 그만 좀 울어라, 울보 아가씨. 크로커다일은 엄지손가락으로 윈프레드의 눈가를 문질렀다. 크로커다일이 잠들어 있는 동안 윈프레드는 몇 번이나 운 건지, 그의 눈가는 이미 붉은 빛을 띠며 퉁퉁 부어 있었다. 크로커다일은 헛웃음을 흘렸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여자다. 해군 영웅이 될 거라고 소리치더니 매번 덜렁대서 넘어지고, 툭하면 울고. 아가씨라서 곱게 자란 티를 숨길 수 없나 보다. 더구나 해군 영웅이 되기 위한 첫 발판으로 날 쓰러트리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총을 맞고 쓰러진 해적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저 아가씨는 나를 과다출혈로 죽도록 방치하거나 숨통을 끊지 않고 총상을 붕대로 감아준 다음 계속 내 옆에 있어 주었다. 정말로 이상한 여자다. 정에 약한 건지, 아니면 바보인 건지… 저런 녀석이 해군 영웅이 될 수 있을 리 없다. 영웅은 상냥할지언정, 정에 약해서는 안 된다. 왜 제 발로 해군 영웅에서 멀어지고 있는 거냐. 바보 같은 여자. ……이런 여자를 미워할 수 있을 리 없잖아. 크로커다일은 윈프레드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분노와 살의라고 단정 지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순진무구한 여자를 죽일 정도로 당시의 크로커다일은 잔혹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럼, 뭐지? 윈프레드를 볼 때마다 머리에 피가 몰리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하지만, 그래. 처음이니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윈프레드와 헤어지고 모비딕 호로 돌아온 크로커다일은 선의에게 부탁해, 어깨에 박힌 총알을 제거했다. 노을이 바다 밑으로 떨어지면서 하늘에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모두 잠든 시간이 되자 크로커다일은 갑판 위로 올라왔다. 하늘의 거울인 바다는 하늘과 같은 색을 띠고 있었으며, 일렁이는 파도 위로 수많은 별과 은색으로 빛나는 달까지 비쳐 보였다. 새벽의 찬 바람이 검은색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크로커다일을 때렸지만, 그마저도 화끈거리는 얼굴을 달래줄 순 없었다. 너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는데. 크로커다일은 한탄하며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윈프레드.

해적왕이 될 내가, 그런 여해군을 사랑하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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