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아이

0. prolog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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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아이]는 '공식적으로 저작권이 등록된 작품'이기에

작가의 허락 외의 개인 유포는 <저작권 침해>이며,

<저작권 침해는 형사 및 민사 고소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시해둡니다.


정령의 아이

0. prologue (2)

갓난아기였던 레이크가 혼자 걸어 다닐 수 있게 되고, 말을 배우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항상 자신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자신에게만 보이는 존재들에 대해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겨난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레이크의 마을에 있는 유일한 도서관에서 발견한 낡은 책이었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그 책에는 세상을 만들어냈다는 신과 다양한 ‘신기한 현상’에 대해 간단히 적혀 있었는데, 레이크는 자신의 곁을 늘 지켜주는 빛들이 책에 적혀 있는 ‘정령’이라고 생각했다.빛들은 자신을 지켜주기도 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쉽게 해냈으니까.

친구들의 도움으로 산에 올라온 레이크는 열심히 나뭇가지들을 줍고, 먹을 수 있는 열매들을 딴 다음에 친구들과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민 산의 경치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름답게 변한 가을의 산을 구경하며 친구들과 떠들고 놀던 레이크는 태양이 지평선으로 가라앉으면서 자아낸 붉은 노을이 하늘을 뒤덮는 것을 보고 자신이 주웠던 장작을 챙겼다.

“이제 집에 가야겠어. 얘들아, 길을 좀 밝혀줘. 부탁해.”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산길이 어두워져 있으니 길을 밝혀달라는 레이크의 부탁에 정령들은 재빠르게 그의 앞을 날아다니며 어두워진 길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러면 돼? 레이크?」

“응. 덕분에 잘 보여. 고마워, 얘들아!”

길을 밝혀달라는 부탁에 자신의 앞을 날아다니며 빛으로 길을 밝히는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레이크는 친구들을 뒤따라 천천히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무사히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 도착한 레이크는 한순간 이상한 기분이 되었고 그런 기분이 된 이유가 오늘따라 마을이 유난히 조용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레이크가 사는 산골 마을은 아주 작은 마을인 데 비해 늘 소란스러운 편이었다. 하루의 일을 마친 일꾼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목청을 높여 떠들었고, 밖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끄러웠던 곳이건만……지금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 시간이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마을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의 향기로 냄새가 가득했고 저녁이 되면 시간을 알리는 마을의 종소리가 들려오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마을이 조용했으니…….

“……이상해.”

누구도 나타나지 않고 조용하기만 한 마을이 낯설게 느껴져서 레이크는 두려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생각을 내뱉었다.

「왜? 뭐가 이상해?」

레이크가 알아차린 마을의 미세한 변화를 깨닫지 못한 정령들이 물었지만, 무겁고도 고요한 마을의 분위기에 겁먹은 레이크는 친구들에게 마을의 변화를 말해주지 못했다.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으니까.

그래서 레이크는 산에서 챙겨온 장작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착각이 아니야! 마을이 이상해졌어!’

집으로 뛰기 시작한 레이크는 자신이 지나친 마을의 집마다 불을 켜지 않은 것을 깨닫고 더더욱 겁에 질렸다. 이제 밤이 다가오고 있으니 모두 불을 켜게 되는 시간인데……불을 켠 집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언제나 시끌벅적하던 마을이었는데 갑자기 사람의 기척을 찾아볼 수 없이 조용해진 모습에 겁에 질린 레이크는 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집에 가야 해!’

이유를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기척이 온전히 사라진 마을의 변화에 레이크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부모님의 곁이 그리워졌고,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진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레이크는 집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집을 향해 뛰던 도중 레이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지금 쉬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달리고 있는데……영원히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섬뜩한 생각이 든 것이다!

‘착, 착각이야!’

겪어보지 못한 고요한 마을이 자아낸 분위기 때문이라며 레이크는 자신이 방금 떠올린 생각을 지우려고 애쓰는 한편,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신의 힘을 짜내어 뛰었다.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계속 달렸던 레이크의 눈앞에 마침내 노을에 의해 붉게 물든 낡고 허름한 집이 나타났다.

반가운 집이 보이자 긴장이 풀린 레이크는 부모님을 크게 부르며 현관문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문을 열려는 순간, 주위를 날아다니던 정령들이 갑자기 레이크의 앞을 막아섰다.

「가지 마!」

「멈춰요!」

「그만!」

“뭐?”

갑자기 친구들이 나타나 자신의 앞을 막아서니 레이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조용히 날아다니더니, 집으로 들어가려는 자신을 말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모두들 왜 그래?”

「집에 가지 마!」

「무서워요! 우리 산에 가요!」

집에 가지 말라고, 무섭다고 말하면서 외치는 정령 중에서 하나가 레이크의 손등에 올라타며 외쳤다. 집에 가지 말고 산으로 다시 가자고!

“……이제는 너무 어두워져서 안 돼, 내일 놀자. 아까 실컷 놀았잖아. 나는 이제 쉬고 싶어.”

하늘을 보니 이제 노을이 사라지고 컴컴한 밤의 하늘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레이크는 친구들에게 쉬고 싶다고 말하고 집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다른 정령이 다급해진 목소리로 외쳤다.

「집에 가면 안 돼, 절대 안 돼!」

도대체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뿐인데, 정령들이 영문을 모르는 난리를 치고 있으니 답답해진 레이크는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왜 그래? 부모님이 걱정하신단 말이야!”

「그야 레이크, 네 집에서 ‘수상한 것’이 느껴지는걸!」

그러자 레이크의 손에 올라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던 푸른 빛이 이유를 소리 질렀다.

“뭐? ‘수상한 것’이라고?”

「그래!」

“수상한 게 느껴진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엘!”

「레이크는 여기에 있어!」

끝까지 레이크를 말린 정령, 엘은 창문으로 날아가 창틀에 몸을 숨기고는 집안을 몰래 살펴보다가 외쳤다.

「집에 누가 있어! 그런데……레이크, 네 가족이 아니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친구의 말에 레이크가 놀라는 순간, 오랫동안 비바람을 맞은 탓에 틀어져 열리지 않았던 창문이 단숨에 열렸고, 열린 창으로 검은 안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포수처럼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검은 안개들은 레이크를 말리던 엘을 순식간에 덮치고 마는데…….

「꺄악!」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기운에 뒤덮여 모습이 지워진 푸른 빛이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크게 울려 퍼졌다.

“엘!”

검은 안개에 휩쓸려 모습이 지워진 친구의 비명은 두려운 분위기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체를 알 수 없으며 꿈틀거리며 늘어나는 검은 안개와 그 속에 파묻힌 친구의 모습과 비명이 사라지자 레이크는 겁을 먹는 동시에 깨달았다.

친구가 자신을 계속 말려준 덕분에, 자신은 친구가 겪은 일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을!

‘엘을 구해야 해!’

자신을 지키고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에 붙잡힌 친구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에 레이크는 땅에 떨어트렸던 장작 중에서 가장 길고 두꺼운 것을 집어 들었고 힘껏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세차게 휘두른 막대의 풍압에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레이크는 쉬지 않고 장작을 휘둘렀다. 그러자 드문드문 푸른 빛이 조금씩 옅어지는 검은 안개 속에서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친구의 모습을 확인한 레이크가 쉬지 않고 힘껏 장작을 휘둘러 바람을 만들어냈고, 장작의 풍압으로 검은 안개가 옅어지는 매우 짧은 순간에 푸른빛은 간신히 검은 안개 속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엘! 괜찮아? 많이 아파?”

정체 모를 안개에서 벗어난 친구의 빛이 매우 약해진 것을 보고 걱정하는 레이크의 물음에 엘은 힘이 빠져서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마워……정말……위험했어…….」

“저게 뭐야? 너를 괴롭히다니! 널 아프게 만들다니!”

정령을 괴롭힌 검은 안개의 정체를 묻자 엘은 기운이 없는 목소리로 ‘정체를 모르고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금세 꺼질 것처럼 빛이 약해진 정령을 손으로 감싸면서 레이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게 왜 우리 집에 있던 거지?’

정령을 괴롭게 만드는 검은 안개처럼 이상한 것이 어째서 자기 집 안에 있었던 것인지!

‘저게 집 안에 있었다면……부모님은 괜찮으실까?’

친구에게 위험한 검은 안개가 집 안에서 나왔으니, 집에 계셨을 부모님이 걱정되었던 레이크의 눈에 대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부모님은 무사하셨나 보다!

“엄마! 아빠!”

안도하면서 부모님을 불렀던 레이크는 열린 문에서 나타난 사람을 보고는 얼어붙었다.

집에서 나온 사람이 걱정했던 부모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잿빛처럼 탁하고 어두운 피부에 피부보다도 검은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나 있는 남자였다. 어둡고 혼탁한 색밖에 없는 그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무시무시한 악령처럼 보였다.

너저분한 옷을 걸친 악령 같은 남자는 레이크가 볼 수 있을 정도로 하얀 이빨이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누……누구세요? 누구신데 제집에서 나오시는 건가요?”

“내가 누군지 궁금해? 그건 차차 알게 될 건데 말이지.”

겁에 질려서 말을 더듬는 레이크를 본 남자는 조금씩 비틀대면서 다가왔다. 그런 다음에 친구를 지키기 위해 주변을 날아다니는 빛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도 저들이 보이지, 그렇지?”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웃음을 흘리며 묻는 남자의 한마디에 레이크는 머리를 맞은 것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정령을 볼 수 있다니? 대체 누구지?’

옛날부터 레이크는 자신처럼 정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무리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라도 자기 집에서 나오는 데다가, 그에게는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으로 볼 수 없는 끝없는 어둠만 있었으니!

그래서 레이크는 눈앞에서 웃고 있는 남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당장 집으로 들어가 부모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기분 나쁜 남자가 문을 지키고 있었기에 그를 뿌리치고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레이크, 이 바보야!」

카랑카랑한 외침과 함께 고민하고 있던 레이크의 앞에 나타난 것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찬란한 붉은 색의 빛이었다. 친구가 고민하느라 방심한 틈을 타서 괴한이 조용히 다가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빨리 도망가!」

친구에게 달아나라고 말한 붉은 빛이 강하게 빛나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일순 타오르는 불꽃이 나타나 남자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불길의 등장에 레이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헉, 위험해! 노바! 사람에게 그러지 마!”

불처럼 타오르는 색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불을 조종할 수 있기에 ‘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정령, 노바는 섬뜩한 기운을 잔뜩 풍기는 남자를 향해 불을 날리면서 소릴 질렀다.

「 아니! 저건 ‘사람이 아니야’, ‘위험한 거’지!

어서 도망쳐, 어서! 」

평소였다면 하지 말라는 레이크의 말 한마디에 그만뒀겠지만, 지금 노바는 레이크를 지키기 위해 그의 말을 무시하고 괴한에게 불길을 퍼부을 뿐이었다.

“풋……하하!”

놀라는 레이크와 달리 남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들을 보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재밌던 것인지 계속 웃기만 하던 남자는 불꽃이 자신에게 닿기 전에 파리를 쫓아내듯 한쪽 팔을 휘둘렀고, 그러자 강한 바람이 나타나 불들을 일제히 꺼트렸다.

“대단한 능력을, 겨우 그 정도밖에 못 쓰다니……정말. 가엾게도.”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새까만 눈에 사람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섬뜩한 광기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레이크……내가 네 능력을 전부 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마.”

어느 순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듯한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레이크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지금의 일들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두려움만 커질 뿐이었다.

자신의 집 앞에서 평소와 다른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시……싫어요! 모,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무서워하면서도 싫다고 대답하는 레이크의 모습에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러고 보면, 나는 너를 아주 잘 알고 있는데……너는 나를 모르고 있구나? 나를 소개하자면…….”

자신을 소개하겠다며 남자가 입을 뗀 순간, 레이크는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목소리들의 외침에 놀라고 말았다!

《나는 공포이자! 분노!》

《절망이며! 시기! 그리고 어둠!》

《본능이자 타락! 파괴!》

《살의와 탐욕! 광기라고 불리지!》

분명 지금 눈앞에서 한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젊은 남자와 여자, 아이와 노인 등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게다가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귀를 통과해서 머릿속을 헤집어대는 크나큰 고통에 레이크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양손으로 귀를 힘껏 막으며 생각했다. 친구가 말한 대로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남자는 까만 눈을 번뜩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벌벌 떨고 있는 어린 레이크를 볼 뿐이었다. 남자는 자신을 두려워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레이크를 보고 소년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레이크! 위험해!」

「도망쳐!」

친구를 붙잡으려는 남자를 막기 위해, 정령들은 재빠르게 레이크와 남자의 사이로 날아들며 외쳤다.

「어서! 도망쳐요!」

「빨리 달아나! 빨리!」

「뛰어! 레이크!」

이미 남자에게 자신들의 힘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정령들은 레이크를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다.

“얘, 얘들아!”

레이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뻗어진 남자의 손을 막기 위해 날아온 친구들이 고마운 한편 걱정이 되었다.

아까도 보지 않았던가! 그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노바의 많은 불꽃이 단번에 사라졌던 것을!

그런 역력한 힘의 차이를 보았음에도 정령들은 레이크를 지키기 위해, 친구를 노리는 남자를 막기 위해 일제히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먼저 다시 세차게 빛나는 붉은 빛의 주변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들이 나타나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다시 공격을 시도하는 붉은빛 다음으로 강하게 빛나는 노란빛이 사방으로 빛을 내뿜자 그 빛을 받은 땅이 요동치면서 진흙과 돌로 뒤섞인 석순과 비슷한 형체가 생겨나면서 남자의 발밑에서 솟아올랐다.

하지만 남자는 아까와 같이 가벼운 손짓으로 자신에게 날아드는 많은 불꽃을 꺼트리고, 순식간에 땅에서 솟아난 바윗덩어리를 가볍게 걷어차며 공격을 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생겨난 바위를 가볍게 걷어차서 부숴버린 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풋! 이런 단순한 공격은, 내게 소용이 없단다.”

정령들의 노력을 허사로 만든 남자는 양팔을 벌린 다음 무언가를 끌어안듯이 뻗었던 팔을 다시 모았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다시 흉흉한 기운의 검은 안개들이 나타나 정령들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레이크는 엘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검은 안개가 다른 친구들까지 공격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소릴 지르는 동안, 자신에게 악몽 같은 그가 다가온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검은 안개에 휩싸여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를 깨달았다.

“아……아……!”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그의 중압감에 도망쳐야 한다고 레이크는 생각하면서도,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덜덜 떨고만 있을 때……익숙하면서도, 낯선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것은, 언제나 들을 수 있으면서도 좀처럼 듣기 힘든 소리였다.

그 소리의 정체는 바로 강하고 크게 움직일 때만 들을 수 있는 ‘바람의 소리’였던 것!

휘이잉!

시원하게 귓가를 훑는 소리에 레이크가 눈을 크게 떴을 때, 검은 안개에 휩싸였던 친구 중 가장 조용하고 평소에 얌전하던 은빛이 검은 안개를 지우며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리, 리온!”

이제껏 보지 못했던 강한 빛을 발산하는 친구의 이름을 부른 레이크는 제 주변의 공기들이 강렬히 휘몰아치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보이지 않는 바람의 벽이 남자의 접근을 막고, 친구들을 뒤덮은 검은 안개들을 찢어내고 있었다!

「으윽…….」

「아……고마워, 리온…….」

리온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강한 바람에 검은 안개에 파묻혔던 정령들이 무사히 도망쳐 나와 인사할 때, 그가 만들어낸 또 다른 기적이 나타났다. 검푸른 하늘에 걸려있는 별빛만큼 친구들과 같은 존재들이 날아오고 있었던 것!

무수히 많은 빛은 평소에도 곧잘 보였던 들판을 뛰놀던 정령들 같았다.

「우와……다들 왔어!」

「많이들 왔네?」

「정말!」

레이크의 친구들이 감탄하는 동안, 그들의 주변으로 아름다운 빛의 정령들이 하나가 되어 맴돌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정령이 나타난 순간, 하늘과 땅의 위치가 바뀐 느낌이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진 땅 위로 밤하늘의 별보다 더 많이 나타난 정령들로 인해!

곧 레이크의 집 주변은 수많은 정령의 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기적을 만들어낸 리온이 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날아가 강하게 빛나자, 화답하듯이 정령들이 리온처럼 일제히 빛을 내뿜었다. 그러고는 모두 리온이 만든 바람을 타고 돌기 시작하자 이제껏 보지 못한 거대한 기적이 생겨났다.

그 기적이란 맴돌던 그들의 범위만큼 거대하고도 강한 돌개바람!

《하찮은 것들이! 날 방해하려고?》

정령들이 모두 힘을 합쳐 만든 돌풍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남자는 검은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질렀다.

《모조리 사라져!》

남자는 리온이 만든 바람을 없애기 위해 다시 손을 들어 검은 안개들을 불러냈지만, 강한 돌풍은 안개들을 찢으며 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흉흉한 기운을 가진 검은 안개를 없애면서 돌풍은 자신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어린 소년의 주위를 감쌌고, 그것을 레이크가 알아차렸을 때는 그의 몸이 허공에 떠오른 상태였다.

‘헉! 내가 날고 있어?’

자신이 날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잠시, 순식간에 레이크의 몸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온몸을 휩쓸고 지나가는 거센 바람에 정신을 못 차리던 레이크는 뒤늦게 가족을 떠올렸다.

“리온! 내 부모님도!”

다급히 바람을 조종하는 친구에게 애원했지만, 정작 바람의 정령은 빛나기만 할 뿐이었다.

《놓치지 않겠다!》

레이크가 하늘을 날기 시작하자 남자는 다급히 검은 안개를 날렸지만, 리온은 그가 날린 것들을 전부 바람으로 쳐내고는 공격이 닿지 않을 더 높은 창공으로 날아올랐고, 레이크의 몸도 그를 따라 순식간에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레이크가 하늘로 사라지자, 검은 안개들과 싸우며 남자를 에워싸던 정령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오직 어둠뿐인 깜깜한 밤하늘을 날게 된 레이크는 울음을 터트리며 고함을 질렀다.

“엄마! 아빠! 날 내려줘! 리온!”

멀어져 가는 집을 향해 손을 뻗으며 가족을 애타게 부르던 레이크의 부탁에도, 바람의 정령은 묵묵히 돌풍을 이끌고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렇게 그리운 집은 손이 닿지 않는, 땅거미가 자아낸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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