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아이

1. 아이시스 제국 (2)

1-2

[정령의 아이]는 '공식적으로 저작권이 등록된 작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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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침해는 형사 및 민사 고소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시해둡니다.


정령의 아이

1장. 아이시스 제국

기나긴 밤, 울다가 지쳐 잠든 레이크의 눈을 떠졌을 때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었으니, 그것은 레이크에게 너무도 낯선 것들이었다.

파릇파릇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던 흙길이 아닌, 딱딱한 돌을 정교하게 배치해서 만들어진 길. 그리고 몸이 편한 폭 넓은 옷이 아닌, 희한하게 몸에 붙어서 불편해 보이는 옷을 입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처음 보는 낯선 도시의 정경이 슬픔의 밤을 보낸 레이크가 보게 된 새로운 세상이었다.

*

창공 위를 빠르게 날아가는 붉은 머리의 소년은, 갑작스럽게 살던 집에서 떨어지게 된 레이크였다. 지금 레이크는 집으로 돌아가자며 울다가, 허공을 날게 된 두려움에 또 울다가……계속 울게 되면서 지쳐 겨우 잠이 든 상태였다.

간신히 잠든 소년의 주변에는 여러 빛이 쉬지 않고 반짝이며 맴돌고 있었다.

「어?」

하늘의 냉기에 떨면서 몸을 한껏 웅크리던 소년의 피부에 닿았던 붉은빛이 무언가를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외쳤다.

「레이크! 일어나!」

“으응…….”

하지만 이름이 불린 소년은 몸만 뒤척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붉은빛은 강하게 빛나며 소년의 손등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앗! 뜨거워!”

그러자 레이크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고 자신의 손에 닿았던 붉은 빛에게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노바!”

「레이크! 리온을 봐!」

손등을 뜨겁게 지졌던 붉은빛, 노바의 말에 레이크는 가장 강하게 빛났던 은색의 빛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먹구름 하나 드리워지지 않은 밤하늘의 달만치 빛나던 어젯밤의 그의 빛이 지금은 무척이나 약해져 있었던 것!

“리온? 왜 그래?”

「리온이 지쳤어!」

깜짝 놀라는 레이크에게 노바가 리온이 지쳤다고 말하는 순간,

귓가를 스치던 매서운 바람 소리가 그쳤다.

또한 몸을 훑고 지나가던 바람 역시.

곧 레이크는 한순간에 찾아온 조용한 분위기의 정체를 깨달았다.

허공을 날던 자신이 추락하는 것으로.

“으아악! 엄마아! 아빠!”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던 몸이 하늘을 날게 되던 지난밤과 전혀 다르게 땅을 향해 떨어지는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레이크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하늘의 구름을 뚫고 추락하는 상황에 비명을 지르며 가족을 부르며 외쳤다. 살려달라고!

「걱정 마요! 레이크는 내가 지켜요!」

비명을 지르는 레이크의 곁으로 날아온 빛은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는데 황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빛이 크게 퍼지자 추락하는 레이크의 아래에 변화가 생겼는데, 그것은 갈대들이 순식간에 길게 자라나 땅 위를 뒤덮기 시작한 것이었다!

풀썩!

높은 하늘을 날던 붉은 머리의 소년은 들판을 가득 뒤덮은 수풀 위로 빠르게 떨어졌다.

황금빛 정령 덕분에 레이크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갑작스러운 충격 탓에 차마 일어설 수 없었고,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누구라도 레이크와 같은 상황을 겪으면 놀라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달이 가까워 보일 정도로 높은 하늘 위를 날다가, 순식간에 땅으로 내던져진 것처럼 떨어졌으니 말이다.

큰 충격에 레이크는 한참을 울다가, 울 기운마저 잃고 나서야 눈물을 그칠 수 있었다.

울음을 그친 레이크를 보자 그제야 정령들은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레이크는 눈물이 아직 맺힌 눈으로 정령들을 보며 ‘자신이 도착한 곳이 어딘지’ 물었다. 그러자 붉은빛이 그를 데려온 정령이 알 것이라면서 빛이 약해진 정령의 주변을 돌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레이크를 어디로 데려온 거야, 리온!」

「노바. 리온은 지금 많이 지쳤어. 그러니까 괴롭히지 마.」

빛을 간신히 내뿜는 정령을 에워싸며 따지는 불의 정령을 막아선 물의 정령 엘은 차분한 목소리로 리온에게 물었다.

「레이크를 구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지금 레이크가 많이 불안해하고 있어. 여기는 어디야? 그것만 알려줘.」

솔직하게 고마움이 담긴 인사와 함께 차분히 묻는 엘의 모습에 레이크는 지난 밤 나타난 남자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많은 힘을 쓴 친구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리온의 앞으로 걸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빛이 약해진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엘이 말한 대로……고마워. 날 구해줘서. 리온. 그리고 여기가 어딘지 알려주면 고맙겠어. 여기는 내 집에서 많이 먼 곳이야?”

그러자 리온은 아주 짧게, 여러 차례 깜빡였고 그에 따라 엘도 깜빡이며 빛을 내더니 ‘자신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레이크에게 ‘목소리’로 뜻을 전해 주었다.

「레이크에게 미안하대. 리온도……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대……그저, 강한 바람을 따라 그곳에서 너와 함께 도망치는 것이 먼저였대…….」

위험한 사람에게서 벗어나고자 무작정 바람을 따라와서 지금 위치가 어딘지 모른다고, 미안하다는 사과에 레이크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뭐……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자신을 데려왔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도 알고 있을 거라는 예상을 벗어나자 레이크는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레이크! 울지 마!」

다시 눈물이 맺히는 눈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소리를 지른 정령은 기운이 조금 남은 불의 정령, 노바였다.

「괜찮아, 분명히 돌아갈 수 있어!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그 나쁜 녀석을 혼내 줄게! 그러니까 울지 마!」

「노바의 말이 맞아.」

평소 아웅다웅 다투던 편이었지만, 지금은 노바의 말을 수긍하면서 엘은 레이크의 눈물로 젖은 뺨을 몸으로 문질러 닦아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돌아갈 수 있어, 우리가 옆에 있잖아. 여기에 왔던 것처럼,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정말?”

낯선 곳에 갑자기 떨어진 탓에 겁을 먹어 작아진 목소리로 되묻는 레이크의 말에 정령들은 동시에 외쳤다.

「그럼.」

「물론이죠!」

「당연하지!」

정령들의 씩씩한 대답에 레이크는 조금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집을 찾아온 사람이 신경이 쓰였다.

그는 자신처럼 정령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이하게도 정령과 같은 힘까지 썼으니!

‘그 사람은 날 알고 있었어……게다가 내 능력을 끌어내 주겠다고…….’

「레이크!」

생각에 잠겨 있던 레이크의 눈앞으로 날아와 외친 정령은 불의 정령으로, 기세 좋게 빛나고 있었다.

「저 앞에, 사람들이 많아! 저기에 가서 레이크 네 집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자!」

「그러자, 응? 그러니까 기운 내.」

노바를 뒤따라 엘이 날아와 레이크에게 제안했다. 사람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물어보자고.

그 말에 레이크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세워진 거대한 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하늘 위에서 보았을 땐 작게 보였지만, 땅으로 내려와서 보니 무척이나 컸고 한눈에 봐도 견고함이 느껴지는 성벽이었다.

감정을 추스른 레이크는 거대한 벽이 지키고 있는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 * *

거대한 벽 안으로 처음 발을 디딘 레이크는 내부의 정경에 말을 잃고 말았다. 왜냐면 자신이 살았던 마을과는 전혀, 너무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으니까!

레이크가 살았던 마을은 늘 흙과 풀이 뒤엉켜 있는 들판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돌과 같은 것을 반듯하게 다듬어 만든 공간이었다.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믿기 힘든 세상이었기에 레이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물어보기도 전에 덜컥 겁이 났다. 깔끔하게 단장된 도시에 발을 들이기도 겁이 났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복장까지도 무척 세련되었고 화려했으니 말이다.

레이크는 낯선 도시의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금방 알아차렸고, 그 이유도 깨달았다.

자신은 어제 산에서 놀다 내려온 까닭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데다 넝마에 가까운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부, 부끄러워……!’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레이크는 지금 자신의 모양새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곁을 날아다니는 친구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부탁했다.

‘얘들아, 물을 좀 찾아줘.’

「물?」

「갑자기 물은 왜 찾아요?」

부탁을 들은 정령들은 갑자기 집이 아니라 물을 왜 찾는 것이냐고 묻기 시작해서, 레이크는 자신이 목도 마르고 씻고 싶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덧붙여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정령들은 계속 질문만 하니 말이다.

물을 찾는 이유를 들은 정령들은 마을 속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는데, 레이크의 곁에 남은 정령은 빛이 약해진 물의 정령이었다.

「레이크, 여기는 이상해.」

“응? 왜?”

레이크는 사람들의 이목이 사라진 골목길로 들어오고서야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가 이상하다고 말한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고, 황당한 대답을 듣게 되었다.

「물이 전부 땅 밑에만 있거든!」

“물이 땅 밑에만 있다고?”

친구의 말에 레이크는 자신이 밟은 돌 밑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 돌바닥 밑에는 물이 흐를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흙 한 줌도 보이지 않는 돌로 만든 땅바닥인데다 물에 젖은 흔적 자체가 조금도 없었으니까.

“엘……착각한 거 아니야?”

「아니야! 착각한 게 아니야! 정말로 이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어!」

레이크가 의심하면서 되묻는 말에 엘은 억울하다며 폴짝폴짝 날아다니다가 돌바닥을 뚫고 사라지더니 다시 솟구쳐 날아오르며 외쳤다.

「내가 물을 꺼내 볼게! 그럼 믿어줄 거지?」

엘은 진지하게 레이크가 밟고 서 있는 땅바닥 밑으로 그가 찾고 있는 물이 흐르고 있다고 계속 말할 뿐이었다. 땅 속에 물이 있다고 말하는 친구를 본 레이크는 갈증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해서 ‘믿을 테니까 물을 달라’고 대답했다.

물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는 레이크 한마디에 물의 정령은 다시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는지 점차 빠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는 약한 빛이었지만, 그래도 깜빡거리며 빛나는 푸른빛은 곧 돌로 만든 바닥을 통과하여 땅속으로 사라졌고……레이크는 친구가 사라진 땅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 밑에 물이 있다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돌바닥 밑으로 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진동이 있었다!

그 진동은 바닥의 모든 돌이 들썩이게 할 정도로 커서 레이크가 비틀거리며 진동이 덜한 뒤쪽으로 물러서게 만들었는데 잠시 후,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강해진 진동과 함께 괴상한 소리가 돌바닥 너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헉!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와 강해지는 땅의 진동에 레이크의 마음에 혼란이 소용돌이칠 때!

「레이크, 레이크가 찾던 물이야!」

늘 듣던 앙증맞은 목소리의 외침과 함께 바닥의 모든 돌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앗!”

레이크는 방금까지 자신이 밟고 있었던 땅에 놓였던 큰 돌이 제 머리보다 높은 하늘로 날아오른 것만이 아니라, 그 돌과 함께 나타난 수많은 물줄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 친구가 말한 대로 물이 있던 것이다! 돌로 뒤덮인 딱딱한 땅 밑에!

레이크는 허공으로 흩뿌려지는 물과 모래, 그리고 자신을 향해 빠르게 떨어지는 돌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머리를 팔로 감쌌다.

「레이크!」

엘이 아닌 다른 친구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레이크는 팔을 치우고 하늘을 올려보았고, 허공에서 강하게 빛나는 땅의 정령을 볼 수 있었다.

「다치지 않았어요?」

“응, 네 덕분에…….”

레이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순간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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