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시스 제국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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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아이
1. 아이시스 제국 (7)
머나먼 왕국에서 온 소년 레이크를 만나게 된 에퀼의 일상도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란 바로 ‘제국의 문화’가 낯선 레이크에게 제국에 대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가르친다는 것!
레이크는 제국어를 빠르게 습득하지는 못했지만, 그때마다 에퀼은 당연히 낯선 나라를 공부하는 것이니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고 응원해주곤 했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 배우는 게 아니니까 당연히 어려운 게 많을 거야……힘들다고 공부를 포기할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잘 돌봐줘야지.’
항상 듣고 썼던 왕국의 말이 아닌 새로운 나라의 언어를 처음부터 배우는 것이니 당연히 어렵겠다고 생각한 에퀼은 레이크가 최대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는데 다행히 레이크가 동화책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에퀼은 제국의 언어가 아직은 서툰 레이크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다양한 동화책을 늘 준비해두어서 레이크는 즐겁게 외국어를 배워나갔다.
*
어느 날 에퀼은 정령들과 놀고 있는 레이크를 지켜보다가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레이크는 늘 왕국의 말로 친구들과 대화하는 거니?”
“네? 왜……왜요? 혹시 제가 잘못한 건가요?”
정령이 있는 허공을 보면서 말하던 레이크가 깜짝 놀라면서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딱히 잘못은 아니야. 요즘 레이크가 제국어로 책을 읽고, 대화하는 것을 연습하는데 친구들과 말할 때는 왕국어를 쓰더라고. 그래서 궁금했단다.”
레이크야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 제국의 말에 익숙해져야 하지만……정령들은 ‘친구가 쓰는 말이 달라지는 것’에 불만이 없는 것일까? 내심 궁금해진 에퀼은 친구들이 불만을 갖지 않았는지 물었고, 깜짝 놀라게 되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아하! 괜찮아요! 친구들은 공부하지 않아도 제 말을 다 알아듣거든요!”
“뭐? 알아듣는다고? 들리는 언어가 다른데?”
도저히 믿기 힘든 소리였다! 분명 다른 나라의 말인데……공부도 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해를 한다는 것인지!
“저도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친구들은 제가 하는 말은 다 알게 된대요! 그냥 ‘의미를 알게 된다’고 했어요!”
“세상에……!”
언어를 무시하고, 뜻을 이해한다는 레이크의 설명에 에퀼이 당황할 때였다.
“친구들은 원래 ‘대화’를 하지 않는데, 대화가 필요한 저와 친구가 되면서 ‘대화’를 하게 된 거래요!”
정령들은 본래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부분도 신기했지만, 대화가 필요한 레이크를 위해 소통의 방법으로 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언어를 연구하는 에퀼에게 너무나도 놀라운 정보였던 것!
신기하고 낯선 정령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퀼은 문득 하나의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친구들과 아주 잘 지내는 것 같구나……그런데 레이크 넌 힘들지 않니? 정령은 사람의 말을 거의 모르니까 말이야.”
본래 대화를 하지 않는 존재였다면……분명 ‘대화’라는 소통에서 필요한 ‘지식’과 ‘의미의 전달력’이 부족할 것이다. 그 점이 염려된 에퀼이 조심스럽게 소통이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레이크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힘들 때가 아주 많아요! 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자신의 고충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에퀼이 신기했는지 레이크는 눈을 반짝이면서 감탄을 자아냈다.
에퀼은 감탄하는 레이크를 보며 ‘자신은 선생님이니까 다 알고 있다’고 말한 다음 “친구들에게 같이 공부를 하자고 말해보는 건 어떠니?”라고 물었다. 자신이 직접 정령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레이크는 가능하니 말이다.
*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정령’이라는 존재를 이제는 인정하면서 생겨난 궁금증에 에퀼은 레이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보통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는지’ 말이다.
그러자 정령들은 그저 ‘자신들이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는 전혀 듣지 못한다’고 대답하면서 레이크처럼 ‘자신들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고 대답했었다.
그렇기에 ‘정령이 아예 보이지 않는 에퀼은 정령에게 제국의 말을 가르칠 수 없었던 것!
“……가르쳐 주겠다고 말을 했는데……노는 게 더 좋대요. 항상 놀자고 보채기만 하는걸요.”
얼굴을 찡그리는 레이크를 보니, 정령들이 얼마나 공부에 관심이 없는지 보였다.
“공부는 싫어하면서 궁금한 게 생기면 꼭 저한테 물어봐요. 그럼 제가 알려주고요……매번 그렇게 알려주는 것도 지쳐요.”
“그러니? 그래도 친구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건 착한 일이야. 레이크는 대단한 일을 늘 하고 있었구나.”
공부에 관심이 없는 정령의 질문에 대답한다는 레이크를 칭찬하자 레이크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친구들이 공부하는 건 싫어하지만 책을 읽어주는 건 좋아해서, 제가 책을 읽어주곤 해요!”
“어머나, 그래? 잘됐구나. 레이크도 공부를 하고, 친구들도 즐겁게 공부할 수 있으니 말이야.”
앞으로 개학이 몇 달 남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레이크는 제국의 문화와 예절에 익숙해져야 했다.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지만…….
‘레이크도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도 계속 신경 쓰니까……잘 될 거야.’
그날 저녁 레이크를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그 손님이란 바로 레이크가 제국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 경찰관 짐이었다.
자연스럽게 찾아온 그는 자신을 반기는 아이에게 들고 온 상자를 내밀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잘 지냈니? 이건 선물이야.”
“우와! 동화책이다!”
그는 에퀼에게 레이크가 제국의 문화이자 언어를 동화책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동화책을 선물로 준비한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레이크는 깜짝 놀라더니 해맑게 웃으면서 자신보다 훨씬 큰 경찰을 꼭 끌어안으며 감사의 인사를 외쳤다.
“고맙습니다!”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진 않았지만, 이전에 비해 ‘제국의 말’로 말하는 레이크를 짐은 기특하게 생각하며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었다.
“선생님께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지낸다고 들었어. 대단하구나. 레이크.”
“공부! 열심히 해요!”
공부라는 말과 열심히 한다는 말을 알아듣고 레이크는 배시시 웃으면서 주먹을 꼭 쥐어 보였다. 그런 소년을 귀엽게 바라보던 짐은 에퀼이 나타나자 살며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안녕하세요, 경찰관님은 바쁘신데……매번 레이크를 만나러 오시는군요.”
“그야 신경이 쓰이는걸요.”
짐은 자신이 선물로 가져온 책을 펼쳐 더듬거리며 읽는 레이크를 보고 작은 어깨를 두드려주며 ‘이제는 책도 잘 읽고 대단하네’라고 칭찬을 해 줬다.
“후후……아직 ‘고급 회화’ 단계까지는 힘들지만, 쉬운 단어와 문장 정도는 스스로 읽고 쓸 수 있어요. 참 똑똑한 아이랍니다.”
“그런 것 같군요. 차차 좋아지겠죠.”
짐은 선물 받은 책을 읽고 있는 레이크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은 다음 에퀼을 보며 물었다.
“‘그날’ 이후 말썽은 안 피우던가요?”
“전혀요. 레이크가 얼마나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인지 힘든 게 없는걸요. 아, 혹시 차라도 한 잔 준비해 드릴까요?”
“좋네요, 부탁드리죠.”
레이크가 지금 지내고 있는 기숙사 안에 향긋한 차의 향기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자, 한참 책을 읽던 레이크는 책을 내려놓고 에퀼이 다과를 준비한 탁자로 다가왔다.
“잘 먹겠습니다!”
“후후. 맛있게 먹으렴.”
에퀼은 씩씩하게 인사하는 레이크가 맛있게 과자를 먹는 모습을 보다가, 그의 옆에 앉은 짐이 주변을 살피는 듯한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을 찾으시는 건가요?”
“아……그게……지금 여기에 ‘그들’이 있나 싶어서요.”
“‘그들’이라면?”
“레이크의 친구들 말입니다.”
며칠 전 에퀼의 연구실에 큰 피해를 불러온, 재해를 일으켰던 존재. 그들이 지금도 주변에 있을까 싶어 긴장한 모양이었다. 에퀼은 그제야 그가 긴장하는 이유를 알고는 미약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저희는 보이지 않지만, 늘 레이크의 곁에 있다니 여기 어딘가에 있겠죠.”
“참 기분이 이상해집니다……‘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라니.”
“저도 직접 겪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예요. 그 기분 이해합니다.”
에퀼은 자신이 끓인 향긋한 차를 마시면서 레이크를 이전과 다르게 다정하고 따뜻한 눈으로 보고 있는 짐을 몰래 훔쳐보았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사복을 입고 와서일까……오늘의 그는 ‘처음 만났던 날’과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차가워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야.’
병에 갇혔다는 친구를 걱정하는 레이크를 위해 롤레스에게서 병을 뺏기도 하고, 연구실이 엉망이 되어 속상한 자신에게 먼저 사과를 했던 그는……차가운 인상과 달리 다정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찾아올 용건도 없을 텐데 레이크를 만나러 온 것까지 생각하면…….
‘정이 많은 사람인 걸까?’
“에퀼 교수님.”
재빠르게 짐을 살피며 생각을 하던 에퀼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네? 네! 무슨 일이시죠?”
“사실 오늘 갑자기 찾아온 것은 제가 교수님께 묻고 싶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네? 제게요? 어떤 건가요?”
오늘도 레이크를 보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에게 용건이 있었다니! 한순간 에퀼은 긴장이 되었다.
‘어떤 걸 물으시려는 거지?’
설마……최근에 ‘롤레스와 자신이 다투는 모습’을 보고 오해를 가진 게 아닐까?! 초조해져서 빠르게 뛰던 에퀼의 심장은 짐의 질문을 듣고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저는 ‘롤레스 교수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아시는 걸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자신에게 질문이 있다더니,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관한 질문이라는 사실에 한순간 에퀼은 실망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나도 참! 무슨 생각을 해버린 걸까!’
“에퀼 교수님? 제 얘기 듣고 계십니까?”
자신의 질문을 들은 그가 반응이 없자 짐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면서 그의 의식을 부르며 되물었다.
“아! 네, 네! 듣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죠?”
그러자 짐은 간식을 다 먹은 레이크의 등을 두드린 다음 ‘어른들끼리 할 말이 있으니 다른 곳에서 친구들과 놀라’고 말했고, 에퀼은 왕국의 언어로 설명해서 레이크를 이해시켜 자리를 떠나도록 배려했다.
레이크가 자리를 떠난 후에야 짐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전에 교수님이 도와주셨던 ‘사고의 조사’는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조서를 남기지 말라’는 경고가 왔습니다.”
“네? 경고가 왔다고요?”
성실히 일했을 뿐인 그가 갑자기 ‘경고를 받았다’는 말에 에퀼은 크게 놀랐다. 대체 무엇 때문에?
“‘사건을 조사했던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정도의 경고였지만요……어째서 그런 경고를 받은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아무래도 그 사람이 뭔가 한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래서, 그에 대한 것을 ‘조사하고 싶어진 것’이죠.”
차분하게 대답하는 짐을 본 에퀼은 자신이 받은 경고를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문서 하나를 받았는데요……제가 ‘제국에서 레이크의 보호자가 되었으니 잘 돌보라’는 국가의 문서였어요!”
“교수님도 문서를 받으셨다니…….”
짐은 에퀼이 ‘국가의 문서’를 받았다는 말에 놀라 눈을 살짝 뜨면서 탄식을 흘렸다.
“그때, 롤레스 교수님이 했던 말이 너무 마음에 걸렸었는데…….”
*
“지금 제가 하는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고……
또 ‘저 아이의 입학’이 ‘저만의 욕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때도 반대하실 겁니까?”
자신의 욕심으로 ’레이크를 자신의 학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었다.
“저 아이가 제국에 있길 바라는 것이 ‘이 나라의 뜻’이라면, 그때도 반대하실 것인지 묻는 겁니다.”
*
에퀼은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파의 문장이 찍힌 봉투를 들고 나타난 남자의 준비성에 할 말을 잃었던 날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그 편지는 ‘위조’였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너무 당황해서 속았지 뭐예요.”
“……‘그때 본 봉투’ 말입니까?”
짐은 에퀼이 내뱉은 봉투라는 단어에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반응했다.
“네! 기억하시죠?”
“기억하고 계시니……대화가 빨라지겠군요.”
짐은 팔꿈치를 무릎에 놓고, 깍지를 낀 상태가 되어 턱을 괴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교수님은 그 도장이 찍혀있던 봉투가 ‘위조’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당연하죠!”
당연히 롤레스가 ‘가짜 봉투를 가져온 것이라고 믿은 에퀼의 확신어린 대답에 짐은 짧은 한숨과 함께 진실을 밝혔다.
“……저 역시 ‘위조’라고 생각해서 제일 먼저 봉투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그게 위조가 아닌 ‘진짜 황제파가 사용하는 문서’와 ‘진짜 도장’이라는 것을 확인까지 했지요. 그 문서는 결코 ‘위조’가 아니었습니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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