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아이

1. 아이시스 제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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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침해는 형사 및 민사 고소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시해둡니다.


정령의 아이

1. 아이시스 제국 (3)

다시 경찰에게 인계된 레이크는 초조하게 친구가 날아간 방향을 쳐다보다가 어깨에 앉은 친구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크레이트랑 헤어졌는데 어떡하지?”

「너무 걱정하지 마. 분명 레이크가 오지 않아서 다시 돌아올 거니까.」

「그래. 맞아! 크레이트잖아! 레이크가 걱정할 건 없어! 계속 걱정된다면 내가 찾으러 갈까?」

“아니, 노바 너까지 떠나는 건 싫어.”

양쪽 어깨에 앉은 친구들과 소곤거리던 레이크는 콧물이 흐르자 손수건으로 닦은 다음에 자신을 붙잡았으며 손수건을 챙겨준, 길을 안내하는 여학생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저 누나……무척 예뻐.’

아름다운 소녀를 바라보던 레이크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알아차린 정령들은 친구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고는 외쳤다.

「레이크 어디 아파? 얼굴이 노바처럼 변했어!」

「맞아! 레이크는 얼굴이 나처럼 변하면 아프잖아!」

친구들의 말에 당황한 레이크는 급히 머리 색만큼 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 아픈 건 아니야! 그, 그냥……추워서 그래.”

 

 

* * *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여학생은 경찰과 소년을 이끌고 계속 학교를 걷다가,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진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문으로 다가가 정중하게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계시나요, 교수님? 루나입니다.”

그러자 문 너머에서 잔잔하고도 우아한 여성의 목소리가 대답으로 들려왔다.

“예, 무슨 일이죠? 루나?”

이름이 ‘루나’인 여학생은 경찰과 경찰이 붙잡은 붉은 머리의 소년을 한 번 돌아본 다음 솔직하게 용건을 털어놓았다.

“지금 교수님을 만나러 오신 손님들이 계셔요.”

“그렇군요.”

짧은 응답과 함께 문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열리자 화사한 햇살과 함께 나타난 여성은 햇살을 등지고 있어서인지 빛나 보였다. 사실 문이 열리며 나타난 그녀가 무척 아름다웠기도 했지만.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

햇빛처럼 눈 부신 금발의 여성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경찰과 소년을 반기며 자신을 찾아온 용건을 묻자 경찰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에 그녀를 찾아온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다.

“사건 현장에서 만난 소년이 외국인이라 통역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보통 경찰서에 ‘통역해주시는 분’이 계시지 않나요?”

“물론 통역사는 있습니다만……문제는 이 아이가 쓰는 ‘언어를 통역할 수 있는 통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처음 들어보는 나라의 언어였거든요.”

“흠. 그렇군요.”

경찰의 설명을 들은 교수는 콧물을 닦고 있는 소년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언어를 연구하는 저’를 찾아오신 거군요.”

“예. 도와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경찰의 솔직한 대답에 여성은 ‘우선 어느 나라의 사람인지 확인해보겠다’며 조금씩 떨고 있는 소년의 앞으로 다가간 다음에 무릎을 꿇어 소년과 눈높이를 맞췄다.

“**, * **** **?”

곧 독특한 억양의 외국어가 쉬지 않고 여성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자 경찰은 놀랐다. 자신이 모르는 특이한 외국어를 그녀가 많이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긴 이 학교에서 명예 교수까지 되었을 정도니…….’

경찰은 소년의 앞에 앉아 여러 나라의 말로 대화를 시도하려는 여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무슨 말이지?’

레이크는 또다시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나 자신의 앞에 앉아 특이한 억양의 말을 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안녕? 넌 어디에서 왔니?”

한순간, 예쁜 여성의 입에서 레이크가 알아듣는 조국의 말이 튀어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카르타’에서 왔어요!”

“어머.”

여성은 씩씩하게 대답한 레이크의 반응에 조금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정말 먼 곳에서 왔구나.”

“네……어디는 어디에요?”

“여기는 ‘아이시스’라고 불리는 곳인데, 카르타와 아주 먼 나라야.”

에퀼은 레이크의 약간 붉어진 뺨을 살짝 쓰다듬으면서 이름을 물었다. 그래서 레이크는 씩씩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씩씩하고 건강하게 살라’고 아버지가 ‘레이크’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고.

“정말 좋은 이름이구나. 나는 ‘에퀼’이라고 해. 카르타에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지?”

“네, 그래도 이쁜 이름이에요!”

“후후. 고마워. 괜찮으면 내가 ‘레이크’를 이름으로 편하게 불러도 될까?”

“좋아요!”

레이크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외국에서 자신이 아는 말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그래서 그녀가 묻는 말에 빠르게 반응했다.

 

 

*

 

 

에퀼은 레이크가 반응하는 언어로 그의 국적을 알아차렸고 그 사실을 경찰에게 알렸다. 소년은 ‘카르타 왕국의 사람’이라고.

“이 아이는 지금 자신이 카르타 왕국에서 왔다고 말하는데, 그 나라는 지금도 쇄국 정책을 유지 중인 나라 아닌가요?”

“카르타 왕국이라고요? 이런.”

경찰은 자신이 처음 들어본 나라의 말이라서 낯설다고만 생각했는데, 소년이 외교를 하지 않은 나라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은 ‘사건 하나를 조사’하다가 ‘밀입국자’를 찾아내고 만 것이니까!

“이제 이 아이의 나라를 알았으니 체포하시나요?”

“음……실은 하나의 사건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라서, 밀입국에 관한 부분은 다른 부서 쪽에 보고해야죠.”

“사건이요?”

밀입국자의 국적을 알아내기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했던 교수가 당황하자 경찰은 그녀를 찾아온 진짜 이유를 밝혔다. 지금 이 도시 전체의 수도 시설이 망가졌는데, 그 현장에서 발견한 소년이라서 ‘사건의 목격자’인 것 같아서 데려온 것이라고.

“아……그랬군요. 그래서 아까부터 물이 안 나오던 거였군요.”

“예.”

경찰에게 조사할 부분을 들은 교수는 다시 외국인 소년을 바라보았다.

“……한 번 물어볼게요.”

 

 

*

 

 

“레이크, 질문을 하나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물론 모른다면 모른다고 대답하면 돼. 모른다고 해서 혼내지 않을 테니까.”

“네? 뭔데요?”

질문을 하나 하겠다는 말에 레이크는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금발 여성을 바라보았다.

무슨 질문일까 궁금하다는 소년의 순수한 눈빛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에퀼은 젖은 레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경찰이 하려고 했던 질문을 솔직하게 말했다.

“혹시 레이크는 이 도시의 수도관을 고장 낸 사람을 본 적이 있니?”

“네?”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레이크가 놀라자 에퀼은 부랴부랴 설명을 덧붙였다.

“음, 카르타 왕국에는 없는 건데……이 나라는 땅 밑에 아주 큰 통을 넣거든. 그 통 안으로 물이 흐르라고 말이야, 마치 물컵처럼 말이지.”

에퀼은 설명을 하면서 물컵을 가져와 레이크의 눈앞에서 한쪽 컵에 물을 부어 다른 컵에 옮겨 부으면서 말했다. ‘흙에 물이 흡수되지 않도록, 지금 이 컵처럼 물이 옮겨주는 통을 땅속에 넣었는데’ 지금 ‘통이 부서져 물이 줄줄 새고 있어서 사람들이 물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아!”

에퀼의 설명과 함께 컵으로 물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레이크는 딱딱한 땅을 뚫고 나온 커다란 통의 정체를 깨달았다.

“수……그게 망가지면 나쁜 거군요.”

“응. 그렇지.”

“이런, 그런 줄도 모르고…….”

에퀼은 어쩔 줄을 모르는 레이크의 태도와 혼잣말을 듣고는 경찰에게 조용히 아이가 모르는 아이시스의 언어로 전했다. 이 아이가 사건에 관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누가 수도관을 망가트렸는지 말하지는 않았나요?”

“네. 아직은요.”

그렇게 경찰과 대화를 나누던 교수는 한순간 작게 중얼거리는 소년의 혼잣말을 듣게 되었다. 자신이 경찰과 말하는 틈을 틈타 소년도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중얼거리고 있었으니까!

“어떡해? 수……뭐라고 하는 물건이 망가졌대. 역시 문제가 생긴 거 같아. 아, 물론 ‘엘’ 네 잘못은 아니야. 너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잖아.”

‘뭐지?’

에퀼은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하는 상대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자신들 외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하게 잘못했다고 말하자. 그러면 괜찮을 거야. 응? 난 정말 괜찮아. 엘.”

“……지금 말하고 있는 ‘엘’은 누구니? 레이크?”

계속 대화를 하는 상대가 신경 쓰여서 대화의 대상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엘이 대체 누구냐고.

그러자 레이크는 들켜선 안 되는 것을 들킨 것처럼 매우 당황하더니, 이윽고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드……들으셨어……요?”

“그래. ‘엘’은 누구니? 그 애의 잘못이 아니라고 계속 말을 하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려주면 좋겠구나.”

에퀼은 어린 소년이 겁을 먹고 입을 닫지 않도록, 최대한 자상한 목소리로 물으면서 가냘픈 레이크의 등을 토닥였다. ‘혼내지 않을 테니까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알려달라’고.

사실 상황을 알려주면 혼내지 않겠다고, 자상하게 말한 것은 지금 눈앞의 가냘픈 소년이 어마어마한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었건만……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들을수록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

 

 

혼내지 않을 것이니 사실을 알려달라는 자상한 말을 레이크는 믿고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말해보기로 결심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있었으니까…….

“사실……저는 아주 특별한……‘정령’이라고 제가 부르는 특별한 친구가 있는데요……아. 지금 여기에도 있어요! 그……근데, 친구들은……‘보통 사람들’에게는 안 보여요……거, 거짓말이 아니고……지, 진짠데…….”

자신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과 분위기를 살피면서 레이크는 말을 더듬으며 계속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여기로 온 게, 계속 하늘을 날아서……아, 제 친구 ‘리온’이 저를 날 수 있게 만들었는데요! 제 친구는 그럴 수 있거든요. 그, 근데……하늘에 계속 날고 있으니까 목도 많이 마르고……씨, 씻고 싶었어요. 어제부터 못 씻었거든요. 그래서……‘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엘’이 땅속에 물이 있다고 하더니 진짜로 물을 꺼냈어요. 전 믿지 않았는데…….”

잔뜩 긴장해서 말을 더듬으며 설명하는 레이크는 도저히 거짓말을 하는 눈빛도,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에퀼은 레이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면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정령이라고? 게다가 하늘을 날게도 만들고, 땅속에서 물을 꺼냈다니…….’

맨정신으로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설명에 에퀼이 당황스러워하자, 설명을 마친 레이크는 슬픈 얼굴이 되어서 중얼거렸다.

“역시……제 말을 믿지 않으시겠죠. 진짜로……친구들의 힘으로 여기에 혼자 오게 되었는데……흑.”

자신이 겪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레이크는 뒤늦게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집에……가고 싶……흐으엉!”

‘이, 이런.’

에퀼은 감정에 받쳐 울기 시작한 레이크를 꼭 끌어안고 토닥이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을 날아서 카르타 왕국에서 아이시스 제국까지 왔다는 이야기와 수도관을 ‘친구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망가트렸다는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상상력이 무척 풍부한 아이인 것 같아. 그래서인지, ‘자신의 상상’을 강하게 믿는 것 같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에퀼은 눈물을 펑펑 흘리는 아이를 더는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믿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레이크가 말한, ‘보이지 않는 친구들’은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네?”

이슬처럼 맑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레이크는 에퀼이 자기 말을 믿는 것처럼 말하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제, 제 말을……진짜, 믿어주시는 건가요?”

“그럼. 레이크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는걸.”

울었기 때문에 물기를 한껏 머금은 노란 눈을 보면서 에퀼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에 짐을 보며 ‘레이크가 알아듣지 못하는 제국의 말’로 설명해 주었다.

“이 아이는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카르타 왕국에서 제국까지 하늘을 날아서 왔다고 하고, 자기에게 ‘보이지 않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수도관을 망가트렸다’고 하네요. 좀……정신이 맑지 못한 아이 같아요.”

“……그렇군요.”

짐은 에퀼이 통역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정신이 불안정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집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셨습니까?”

“집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왕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만 말하네요.”

“음…….”

짐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레이크를 바라보았다. 정말 왕국에서 온 밀입국자면, 한동안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를 해야 했으니까.

‘이렇게 어린데……부모님 없이 혼자서 조사를 받을 수 있을까?’

 

“실례. 혹시 ‘이 안에 들어있는 것’이 보이는 사람, 있습니까?”

 

이제는 단수가 아닌 밀입국을 조사받게 될 어린 레이크가 걱정되었던 짐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과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에퀼의 연구실에 조용히 나타난 남자는 검은 머리를 길게 길렀고, 머리 색과 같은 검은 옷을 입은 창백한 안색의 키가 아주 큰 마른 남자였다. 갑자기 나타난 그는 손에 빈 병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에퀼과 짐, 레이크에게 빈 병을 내밀어 보이며 다시 물었다.

“이 병에 들어있는 것이 보이는 사람이 정말 없습니까?”

누가 보아도 그가 들고 있는 병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빈 병이었다.

단 한 사람에게만 빼고.

 

“크, 크레이트!”

 

모두의 눈에 ‘빈 병’으로 보이는 병 속에 들어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는 소년은 깜짝 놀라 친구의 이름을 외치며 병을 들고 있는 남자를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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