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의 메두사 (6)

010. 한 마디도 안 지려 들지, 내 개새끼는.

거리는 이미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이레시아는 제 옆의 남자를 올려다봤다. 검정 일색의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목의 로만 칼라가 답답한지 손끝으로 그것을 느슨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불편해?"

"... 편하진 않지."

당연한 소릴 묻는다는 듯 늑대가 대답했다.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이 목을 조이는 듯한 로만 칼라는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

이레시아가 느슨해진 로만칼라를 다시 단정히 조였다. 하얀 목줄이 다시 목을 조여오자 늑대가 눈매를 조금 찡그렸다.

"그래도 이 옷이 제일 잘 어울리는 걸."

아무래도 이 남자는 제 단정한 얼굴과 검은 사제복이 주는 시너지를 모르는 듯했다. 사제도 아닌 그가 사제복을 입고 있는 건 순전히 그녀의 취향이 담긴 것이었다.

로만칼라를 정리하던 손길이 목을 타고 얼굴에 닿았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이 그녀에게 날아와 박혔다. 흐트러진 것도 보기 좋지만 역시 이쪽이 더 취향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불편해도 참아. 난 당신이 나랑 침대에서 구를 때 빼고는 지금처럼 금욕적인 모습이 좋으니까."

"인형이 따로 없군."

"나를 묶어둘 거였으면 그 정도는 감수 할 생각 했었어야지."

오히려 이 정도는 족쇄 값으로 치자면 후한 거였다. 손끝이 느리게 늑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런 반반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더욱 더 인형처럼 다루고 싶은걸."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남자가 미치도록 제 취향이어서 제 속에 감추어둔 가학성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당신, 정말 운이 없네."

조금만 덜 제 취향이었음 좋았을까 싶어 입 밖으로 생각이 삐져나왔다. 그러자 텅 빈 그의 눈 안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었다.

"... 내가 운이 없다고? 아니, 천만에."

늑대가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레시아의 눈매가 움찔 떨렸다.

"나는 운이 좋아. 그토록 찾아 헤매던 원수를 찾아냈으니까 말이야."

"..............."

"그러니 운이 없는 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

늑대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마치 낙인이라도 찍듯이 여린 손목 안쪽을 깨물었다. 손목 안쪽으로 진하게 이빨 자국이 남겨졌다. 두 눈은 그녀를 예민하게 살피고 있었다.

"... 이건 무슨 짓이지?"

"운이 없는 게 정말 나인가 해서."

"나보다는 당신이 더 낫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아니."

손목 위로 난 잇자국을 가만히 더듬거리며 늑대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이 정도 물린 건 그때 네가 입었던 상처에 비하면 아프지도 않을 텐데. 안 그래, 이레시아?"

아아. 정말이지. 어쩐지 복부가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이레시아의 눈이 묘한 빛을 띄며 휘어지게 웃었다.

"한 마디도 안 지려 들지, 내 개새끼는."

철썩...!

늑대의 고개가 돌아갔다. 붉어진 뺨 위로 이레시아의 손이 다시 내려앉았다. 터진 입술에 맺힌 피가 손 끝에 뭉개졌다.

망가트리고 싶어 미치겠는데, 그 얼굴에 흠집이 나는 건 또 보기가 싫어서 그를 때렸던 손으로 다시 어루만지게 했다.

안쓰러움과 희열감이 동시에 일어 머릿속이 순간 뜨거워졌다. 그 속에는 저열한 만족감도 함께 느껴졌다. 이레시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것들을 밀어냈다.

그 쓰레기 같은 감정 속에 빠져 원 없이 허우적거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일을 하러 갈 때였다.

그래서 그녀는 최대한 말을 골랐다.

"내가 지금 당장 널 내 밑에 깔아놓고 잡아먹는걸 원하지 않는다면... 그 빌어먹을 입은 다무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고른 말이 예쁘게 나가지는 않았지만.

잡아먹는다는 말이 이중적인 의미로 들리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니었을 거다. 열이 오르는 뺨과는 반대로 차갑게 식어가는 그의 눈을 보며 이레시아가 손을 거뒀다. 그가 냈던 잇자국이 순식간에 옅어졌다.

고작 이 정도로 그녀에게 상처를 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얻어맞은 뺨이 얼얼했다. 결국 또 상처 입은 건 그 혼자만이었다.

"날 먹어 치우면 너도 곤란해질 텐데."

"말을 안 듣는 개새끼는 필요가 없어지면 잡아먹히는 법이야."

그러니 당신이 잘해야지. 내가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너를 죽여버리기 전에.

물론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괴이에게도, 인간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돼버리겠지만 말이다. 그녀는 뒤돌아 황혼으로 물드는 거리를 먼저 나아갔다. 늑대는 터진 입술을 닦아내고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울 모자 속의 미인 대신 모조리 그에게 꽂혔다. 왜 아니겠는가? 길거리에서 옷깃을 어루만져주는가 싶더니 다짜고짜 뺨을 얻어 맞았는데.

"억울해?"

이레시아가 힐끔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 역시도 하루하루가 억울하니까.

"때린 사람이 물어볼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것도 그렇네."

이레시아는 작게 웃음을 흩뿌렸다. 영 유쾌하지 않은 주제를 입에 올렸으니 그의 자업자득이었다.

거리의 좁은 골목 골목을 이레시아는 마치 익숙한 발걸음으로 누볐다. 으슥한 골목길마다 노숙자와 질 나쁜 사내들의 눈길이 그녀에게 달라붙었지만, 늑대의 눈치를 보며 달려들진 않았다.

골목을 지나 또 골목으로.

그렇게 한참을 걷던 늑대가 별안간 눈살을 찌푸렸다.

"여긴 4구역 광산으로 가는 길이 아니지 않나?"

프리실라와 아이린의 조부가 실종됐다는 광산은 분명히 이 방향이 아니였다. 아니, 이레시아가 향하는 방향 자체가 록하트 산맥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머, 나 광산으로 가는 거 아닌데."

이레시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어디로 가는 거지?"

"이번 사건에서 가장 수상한 사람이 있던 곳."

"... 쌍둥이 여신을 섬긴다는 그 사제를 말하는 건가?"

물론 그 수상한 사제일 일랑 건너뛰고 바로 4구역 광산으로 들어가 조사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상대는 광산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메두사다.

그녀에게는 라미아의 피가 흐르니 돌이 되는 저주를 피할 수 있다 쳐도, 인간인 그는 달랐다.

"당신, 지금 당장 메두사의 눈을 보고도 멀쩡할 자신 있어? 아님, 눈이라도 감고 싸울 셈이었나?"

"............."

메두사의 눈은 각막을 타고 새겨지는 저주였다. 계속 눈을 감고 있거나, 특별한 아티펙트의 효능 없이는 꼼짝 없이 돌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족쇄의 주술에 걸려있는 이상, 그를 광산 입구에 세워두고 그녀 혼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특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그녀는 온몸이 난자 당하는 고통에 혼절해 버리고 말테니까.

그러니 뾰족한 수가 생길 때까진 당분간 광산 안은 못 들어간다는 소리였다. 반박할 수 없는 무력감에 주먹에 가만히 힘이 들어갔다.

"사제가 있던 곳은 어떻게 알고 가는 거지?"

"아무리 잠시 머물렀다고 해도 사람이라는 동물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거든."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을 걸을수록 보이는 건물들은 점차 허름하게 변해 갔다. 도시의 중심에서 떨어진 빈민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게 형체든, 소문이든, 신력이든 말이야."

이레시아는 드디어 을씨년스럽고 허름한 건물 앞에서 멈췄다. 반쯤 삭아버린 낡아빠진 문 앞에 선 이레시아가 고개를 가만히 기울였다.

그나마 이 도시에서 쌍둥이 여신의 신력이 미약하나마 남아 있는 곳은 여기가 맞는데.

예의 그 사제가 잠시 머물다간 곳 치고는 지나치게 낡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작은 신전의 사제라 해도 이 정도로 누추한 곳에서 지내게 하진 않았을 거다. 하물며 쌍둥이 여신을 모시는 신전은 꽤나 큰 곳으로 알고 있는데.

"... 거의 폐가 수준이네."

끼이익.

가볍게 문을 밀자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곰팡이 냄새가 역겹게 흩어졌다. 이레시아가 절로 눈살을 찌푸리며 소매로 입과 코를 틀어막으며 물었다.

"티파의 도시가 모시는 신이 재물의 신 플루토스였던가?"

늑대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물의 신과 쌍둥이 여신이 사이가 나쁘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사제가 도시를 방문하거든 머물 곳을 정해주는 건 영주 내외의 소관이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가장 먼저 희생당한 사람은 영주 부인인 테사.

사제와 영주 부인 사이에 뭔가 있던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도시에서 방문한 사제를 이런 곳에 처박아두진 않았을 텐데.

내부에는 뿌연 먼지가 두텁게 내려앉아 있었다. 걸을 때마다 시끄럽게 바닥이 삐그덕거렸다. 몇 달 전까지 사람이 살다 간 집에 이 정도로 기척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던가.

"이레시아."

늑대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지나치게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선반을 살피던 이레시아가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문이 굳게 닫힌 방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샤샤샤샥..

뭔가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어라? 이 소리는...

오싹하고 목덜미에 소름이 올라왔다. 이레시아가 저도 모르게 방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잠깐."

아까와는 다르게 파리해진 안색으로 그를 제지했다. 생리적 혐오와 불쾌감, 그리고 약간의 공포심이 뒤섞여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녀가 또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 문, 열지 마."

"왜. 무서워?"

문고리를 잡으며 늑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반 토막이 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여자가 고작.

이레시아가 늑대의 등 뒤로 달라붙었다. 너울 모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다는 듯 잔뜩 찡그린 얼굴이 드러났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나갈 셈인가?"

"싫단 말이야, 저거."

왜 저게 여기 있어?

이레시아가 늑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까는 제 뺨을 쳐올렸던 여자가 이제는 제게 매달려 칭얼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저딴 게 왜 무서운데?"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단 맞춰주기 정말 어려운 여자였다. 늑대는 한숨은 쉬며 문고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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