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의 메두사 (7)
011. 마님은 왜 돌쇠에게 별채를 내주었을까?
처음 이 집에서 나던 역겨운 곰팡이 냄새의 원인은 이것이었다.
그것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몸집에 검은색의 광택이 흐르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잔 가시가 나 있는 6개의 다리와 긴 더듬이를 가진 거대한 벌레.
바선생.
더럽고 습기가 높은 곳에 더러 나타나는 거대 곤충이었다. 문이 열린 걸 알아차린 듯 더듬이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필시 아까 샤샤샥 소리는 저것이 벽을 기어 다니는 소리였을 거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최악.
이레시아가 생리적 혐오감을 느끼며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래서 내가 열지 말랬잖아."
"저걸 왜 그렇게 싫어하지?"
"역겨워."
그녀가 짧게 감상평을 말했다. 오버(Over)에서 지낼 때도 저것이 출몰할 때면 기겁을 하던 그녀였다.
게다가 저건 척 봐도 그렇지 않은가? 머리를 잘라도 죽지 않고 살아 있고.
머리가 잘린 개체가 죽는 건 순전히 굶어서 죽는 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불로 태우는 게 가장 편리하고 확실한 방법이지만, 타는 그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눈에 안 좋아. 정신 건강에도 안 좋고."
그렇게 건강을 챙길 거면 술과 파이프 담배부터 끊는 게 낫지 않을까. 늑대가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여자를 내려봤다.
"... 저거 말고 또 싫어하는 게 있나."
"저딴거 앞에 두고 한가로이 수다 떨자는 남자."
이레시아가 결국 눈썹을 와락 구기며 대답했다. 당장 해치우라는 압박이었다.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었다. 늑대는 결국 바선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 끝에서 수식이 피어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대기 중의 마력이 모여들었다.
"Gladius(칼날). Ventus(바람)."
초승달 같은 바람이 칼날이 되어 바선생을 향해 쏟아졌다. 위기를 느끼고 피하려던 몸의 위를 칼바람이 난도질 했다.
- 키에엑...!!
바선생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읏...!"
뒷목으로 소름이 올라왔다. 이레시아는 두 귀를 틀어막은 채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강한 건지 약한 건지. 못 된 건지 가녀린 건지. 진짜 이상한 여자.
늑대는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바선생의 체액이 방안 이리저리 튀었다. 다리와 더듬이가 떨어지더니 종전엔 결국 머리가 잘려 나갔다. 역시 덩치만 큰 벌레였다. 늑대는 짧은 감상과 함께 그것의 토막 난 사체 위로 불을 붙였다.
"Brevis(간략한). Lampas(등불)."
화악!
이레시아가 파이프 담배에 붙일 때 사용하던 것보다 큰 불꽃이 순식간에 그것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방 안에는 벌레 탄내가 진동했다. 확실히 저것을 태운 뒤의 냄새는 역겨웠다.
"이제 없어."
귀를 틀어막은 손을 떼어내며 늑대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싫어 죽겠다는 표정이 꼭 쥰이 콩조림 따위를 싫어하던 얼굴과 닮아 있었다.
"빨리 둘러보고 나가자."
이레시아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바선생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친 것 치고는 딱히 수확이랄게 없었다. 남아 있는 물건이라고는 현자의 돌과 선악과의 열매, 세계수 따위의 서적들이 전부였다. 그조차도 이곳저곳 찢어지고 종이가 삭아 있었다.
이 정도면 사제보다는 마탑의 연구직이 더 천직이었을 텐데.
이레시아는 낡은 서적 몇 권을 늑대에게 넘겼다.
"됐어. 돌아가자. 더 볼게 없구나."
사실 이 이상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기에 그녀는 미련 없이 사제의 집을 나섰다.
황혼의 장막이 걷히고 밤이 되어 있었다.
빈민가를 비추고 있는 불빛은 초승달뿐이었다. 가난한 그들이 값 비싼 기름값을 구할 수 있을 리 없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이런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사제를 머물게 했을까. 뭘 숨기고 싶었던 걸까. 어쩐지 어디선가 들어본 책 제목이 떠올랐다. 이미 도시를 떠난 사제와 죽어버린 영주 부인을 상대로 질문을 던지던 이레시아는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돌아가는 길에 들를 곳이 한 군데 있어."
또다시 이리저리 골목길을 거닐며 번화가를 향해 가던 이레시아가 입을 열었다. 늑대는 아까 떨어트렸던 너울 모자를 이레시아의 머리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며 물었다.
"어디를 갈 생각이지?"
"서점."
삐뚜름하게 얹어진 너울 모자 사이로 이레시아가 뜻밖의 장소를 말했다. 아니, 영 뜻밖의 장소는 아니지. 이래 봬도 그녀는 고서나 수필을 모으는 꽤나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또 고서를 뒤적거릴 참인가?"
"아니, 이번엔 고서보다 다른 게 더 끌려서 말이야."
늑대의 의문 어린 시선에 이레시아는 눈을 휘며 웃어 보였다.
"동화책을 사러 갈 거야."
동화책을 산다고? 머리가 어떻게 돼버릴 것만 같은 출판 금지된 금서나, 절판되어 그 마저도 소량으로 출고된 고서만 보는 여자가?
늑대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꿈틀거렸다.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무슨 동화책을 사려고?"
"음. 책 제목이 뭐였더라."
이레시아가 고개를 비스듬히 하며 턱을 짚다가 곧이어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 일련의 행동들에 그를 놀리려는 장난기가 가득하였다.
"마님은 왜..."
붉은 눈이 어두운 골목에서 빛나고 있었다.
"돌쇠에게 별채를 내주었을까?"
"............."
동화책 치고는 장르부터 틀려먹었다.
+++++
그들이 들린 서점은 번화가 구석에 위치한 작고 오래된 가게였다. 손님은 별로 없었으나, 책 위는 먼지 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레시아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홀린 듯 그 곳으로 들어가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늑대가 제 손 위에 얹어진 갖가지 책들을 보며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동화책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중간중간 삽화도 있잖아."
삽화가 있다고 다 동화책이 아닐 텐데. 그리고 그 삽화들이 죄다 19금이면 더더욱 아닐 테고.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길 잘했지.
늑대는 한숨을 쉬며 책들을 다시 책장에 꽂아 넣었다.
"왜 다시 집어넣어?"
정말 재밌어 보여서 고른 책도 있는데?
이레시아의 물음에 늑대는 그녀의 손에 들린 책 한권도 빼앗아 도로 책장에 꽂았다.
"쥰한테 이런 책들은 한참 일러."
"... 내 볼 권리는?"
"없어."
단호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이레시아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책인데? 아니, 책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렇게 어이없게 내 볼 권리를 뺏긴 적이 있던가?
"정말 도로 다 갖다 놓을 거야? 아, 그건 진짜 재밌어 보이는 건데."
"... 이게?"
마님은 왜 돌쇠에게...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책을 내려다본 늑대는 그것을 한번 간단히 훑어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것을 도로 꽂아 넣었다.
"쯧. 고지식하긴."
이레시아는 혀를 차며 다른 책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어 책 한권을 또 꺼내려는 순간 늑대의 손이 가로막았다.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풍겨 오고 있었다.
"그만 좀 하지."
늑대가 낮게 으르렁 거렸다. 벌써 몇 십 분째인지. 장난도 이 정도면 많이 받아준 듯 싶은데.
"정말 동화책을 사고 싶거든 저 쪽으로 가던가. 쓸데없는 장난질 그만하고."
"흐음."
이레시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진짜 동화책이 놓인 카운터를 바라봤다. 늙은 주인 할아범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곳에는 그녀가 찾는 어린이용 동화책이 잔뜩 쌓여있었다.
그러나 이레시아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가 찾는 건 저게 아닌데?"
"그럼 뭐 하자는 건데 지금."
"혹시나 했지만, 역시. 내가 찾고 있는 '책'은 이곳에도 없는 모양이네."
"뭐?"
늑대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레시아가 짓궂게 웃으며 손가락을 제 입술 위에 얹었다.
쉿.
"화내면 목소리 높아지고, 목소리 높이면 들킨다?"
늑대가 의미를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자 이레시아는 눈으로 건너편 책장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그제서야 늑대는 그 남자가 아까 낮에 골목길에서 만났던 낯익은 얼굴이란걸 깨달았다.
아. 애시당초 흥미롭다는 듯 이 서점으로 들어온 게 저 남자를 봐서인가.
늑대는 날 선 표정을 풀고 남자를 주시했다. 분명 프리실라를 공격할 때 가장 앞에서 주동하던 남자였다. 남자는 정신 없이 광산과 메두사에 대한 책들을 탐닉하고 있었다.
"어쩐지 뭔가 알고 있는 거 같거든, 저 자가."
"신관? 아니면 광산의 메두사를 말하는 건가?"
"어느 쪽이든. 신경 쓰이는 게 있거든."
"신경 쓰이는 거?"
이레시아는 책장과 늑대 사이에 갇힌 채 기어코 마님은 왜 돌쇠에게... 라는 책을 천천히 넘겨 읽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저 남자, 몇 달 전 신문에서 봤어. 영주 부인이 의문사로 죽었다는 기사 옆에 저 남자 얼굴이 걸려있었거든."
"저 자가 누구지?"
"영주 부인 '테사'가 의문의 사고사로 죽은 건 알고 있지?"
티파의 도시는 워낙 큰 영지이기에 그 소식은 늑대 역시 들어 알고 있었다.
분명 신문에도 대문짝만하게 실렸었지. 플라티나 내에서도 나름 그 이야기로 시끌벅적 이기도 했고.
"그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해서 신고한 경비원. 하지만 장례를 치르고 나서 그 시체가 사라졌다고 하지?"
이름이... '카일'이였던가?
남자의 신상을 읊으며 이레시아는 책 속에 몰두했다.
"경비원? 하지만 저 남자는..."
"그래. 프리실라와 아이린을 위협했던 남자지. 그리고 프리실라의 조부는 지금 실종상태이고."
현자의 돌, 수상한 신관, 사라진 록하트, 영주 부인의 의문의 사고사, 그것을 처음 신고한 경비원, 광산의 메두사, 프리실라의 실종된 조부.
모두 하나의 실로 연결되어 있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자가 영주 부인을 살해하고 록하트를 훔쳐서 메두사 소동을 일으켰고, 그걸 알게 된 프리실라의 조부가 실종된 거다..."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전개를 읊으며 이레시아가 책을 탁 소리 나게 덮고 늑대를 올려다봤다. 이레시아는 말갛게 그를 향해 웃으며 덧붙였다.
"뭐 그런 생각이라도 하고 있어?"
그리고 그 말이 아예 틀리진 않았기에 늑대의 눈매가 움찔 떨렸다.
"... 네 생각은 어떻지?"
이레시아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더니 책을 들어 보였다.
"역시, 이 책 재밌는 거 같아. 사야겠어."
마음 같아선 저 남자의 뒤를 밟아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아 오라고 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내 감시가 먼저 인 것 같으니. 그렇게도 제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고 싶다면야...
"혹시 같이 보고 싶어?"
"................"
"결말이 궁금하거든 주인 말을 잘 들어야지, 늑대씨."
이레시아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웃었다. 시답잖은 감시 따위 집어치우고 남자의 뒤나 밟으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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