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시스 제국 (4)
1-4
[정령의 아이]는 '공식적으로 저작권이 등록된 작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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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아이
1. 아이시스 제국 (4)
병 안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는 빛들은 아무리 봐도 레이크에게 익숙한 친구들이 확실했다!
이 마을에서 레이크가 본 정령은 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함께 다니는 친구들 뿐이었으니까!
“크레이트! 리온! 괜찮아?”
키가 큰 남자가 들고 있는 병 안의 친구를 걱정하며 레이크가 부르지만, 병 안에서 빛나는 정령들은 병 안을 바삐 날아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늘 벽을 통과해서 날아다니는 그들이 병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니!
빠져나가려고 유리병으로 날아간 정령은 벽에 튕겨 나간 공처럼 병 안으로 나동그라지는 것이 레이크의 눈에 들어왔다.
“얘들아!”
병에서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는 친구들을 본 레이크는 애타는 마음에 친구를 힘껏 부르다가 자신을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이, 이 사람은 대체 누구지?!’
자신처럼 ‘정령을 볼 수 있는 남자를 만났던 일’부터, ‘실체가 없기에 붙잡을 수 없는 정령을 가두는 사람’을 만나다니!
분명히 지금 잠든 게 아니건만,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계속 황당한 일들이 레이크의 앞에 줄지어 나타나고 있었다!
“제 친구들을 돌려주세요! 무슨 짓을 한 건가요! 나쁜 사람!”
“*, *** ****? ***.”
키가 큰 남자는 레이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어라 하더니 순순히 병을 내밀었다. 레이크는 그 병을 받아서 힘껏 병의 입구를 막고 있는 마개를 뽑으려고 했지만……이상하게도 마개는 쉽사리 뽑히지 않았다!
“으윽! 얘들아……조, 조금만……참아! 내가 구해줄게!”
레이크는 온 힘을 다 짜내도 뽑히지 않는 마개를 뽑기 위해 손을 문지른 다음 다시 마개를 잡고 힘껏 잡아당기며 이를 악물었다.
*
“* **** *****! ** ** * ***! ** **!”
“아, 당신은 보이나요? 정령이.”
남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병을 보고는 안색이 급격히 질려서 달려오는 소년에게 순순히 병을 내밀어 주었다.
“그렇군, 네가 바로…….”
정령을 병에 가둔 그는 자신이 건네준 병을 어떻게든 열어보려고 애를 쓰는 소년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교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에퀼 교수님.”
“안녕하세요. 롤레스 교수님……지금 무엇을 하셨길래 레이크가 병을 보고 많이 놀란 거죠?”
에퀼은 떨떠름한 눈빛으로 빈 병을 들고 애를 쓰고 있는 레이크를 쳐다보면서 자신의 연구실에 나타난 남자에게 질문을 건넸다. 지금 그가 무엇을 했기에 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이냐고.
그러자 롤레스는 재밌다는 듯이 환히 웃으면서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그야 들어 있죠! ‘평범한 당신’은 ‘볼 수 없는 존재’가! 그런데 이 귀여운 소년이 대단한 능력을 가졌군요!”
그는 낄낄 웃으면서 자신의 병을 열려고 노력하는 소년의 새빨간 곱슬머리를 힘껏 흐트러트린 다음 ‘이름은 무엇이고 몇 살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지금 레이크의 신경은 온통 친구들이 갇힌 병을 향해 있었고, 남자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남자는 레이크에게 계속 말을 건네다가 반응이 없자 에퀼에게 ‘저 아이는 귀가 멀었냐’고 묻기까지 했다.
“레이크는 청각 장애가 아니고……그저 이 나라 말을 전혀 모르는 것뿐이에요.”
“그렇습니까? 그럼 어떤 나라의 말을 알아듣지요? 교수님은 언어학을 전공하신 분이시니까 저 아이와 소통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을 마친 롤레스는 자신의 병을 붙잡고 애를 쓰고 있는 레이크의 새빨간 곱슬머리를 힘껏 거머쥐고는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크게 기뻐하렴, 얘야!
이 ‘천재님이 네가 마음에 들어서 키워주기’로 방금 마음먹었거든요!”
“악!”
갑자기 머리채가 붙잡힌 레이크가 아픔과 놀람에 비명을 질렀고, 갑작스러운 상황을 본 에퀼이 놀라 소년을 붙잡은 그에게 매섭게 소리를 질렀다.
“그 손 놔요, 롤레스!”
“그만하십시오!”
레이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롤레스의 과격함에 놀라 에퀼이 고함을 지를 때, 그의 손을 붙잡아 레이크를 놓게 만든 사람은 경찰인 짐이었다.
“으아앙!”
놀랍고 아팠던 레이크가 엉엉 울면서 그에게 매달리자 짐은 어린 소년의 작은 등을 토닥여주면서 달래주었다. 그리고는 소년이 들고 있던 병을 대신 열어주려고 했지만……이상하게도 병의 마개는 열리지 않았다. 늘 여러 범죄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단련하는 그가 힘을 쓰는데도 말이다!
“윽!”
“호오……늘 바쁘신 경찰께서 어찌하여 이곳에 계시는지요?”
레이크가 들고 있는 병을 열어주려고 애를 쓰는 경찰을 보고 롤레스가 키득키득 웃음을 흘리자 짐은 기분이 나쁘다는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저는 지금 ‘에퀼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조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방해한 거죠.”
“호오. 어떤 사건입니까?”
사건을 조사하는 중이라는 말에 롤레스는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사건에 관해 물었지만, 짐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그가 연구실에 난입하면서 분위기가 흐트러져 버렸으니까!
“……굳이 말할 이유는 없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롤레스는 자신에게 냉정하게 벽을 치는 경찰의 태도가 재밌다는 듯이 한껏 웃으며 ‘혼자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짓만큼 시간 낭비는 없다’는 속담을 꺼내며 자신의 머릴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 나라에서 최고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 둘이나 되는 상황인데 도움을 구하지 않겠다니! ‘시간이 아깝다’는 사실도 모르는 멍청이군요!”
“…….”
“저기…….”
시간을 낭비한다며 자신을 비웃는 롤레스의 모습에 심기가 상해서 인상을 쓰는 짐의 곁으로 에퀼이 살며시 다가와 ‘저 교수님께 사실대로 말하는 것’도 괜찮다는 의견을 밝혔다.
“예? 어째서 교수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 사람이 어떤 학문의 교수이길래!”
“……그건……저 교수님은…….”
에퀼은 자신들을 지켜보며 비웃고 있는 롤레스를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에 힘겹게 질문에 대답했다.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연구한 사람’이라고.
“제가 연구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에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롤레스가 웃음을 지우고 냉랭한 얼굴이 되어 자신의 연구 분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에퀼 당신이나……거기 있는 경찰 씨처럼 ‘평범한 사람’은 절대 볼 수 없겠지만……인간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다른 차원의 존재’에 의해 생긴 것이지요. 나는 그것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사람이죠!”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명문 학교의 교수’임에도 ‘초자연이란 믿기 힘든 것을 연구한다’는 롤레스의 자기소개에 짐은 더욱 얼굴을 찡그렸지만……빈 병을 계속 붙들고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이보다는 대화가 될 것 같다는 판단에 자신이 조사 중인 사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아이는 단수 문제가 발생하여서 조사 중인 현장에서 발견한 아이입니다. 수도관을 망가트린 범인을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잠시 심문 중이었고요.”
짐은 무례하고 거만한 롤레스의 태도에 인상을 구기면서도 침착하게 사건에 대해 정리해서 전달했다. 그의 말을 들은 롤레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에퀼에게 말했다.
“그랬군요, 그럼 에퀼? 저 아이에게 이렇게 전달해줘요. ‘네가 물의 정령으로 수도관을 망가트렸지?’라고.”
“네?”
레이크에게 통역해달라는 롤레스의 한 마디에 에퀼을 포함한 연구실 안에 있던 사람들 전부 놀라고 말았다.
“레……레이크가?”
“저 아이가?”
“어떻게?”
자신의 말에 놀라 레이크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롤레스는 턱을 괴고 통역을 해줄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들 눈엔 보이지 않을 테니 보려고 신경 쓰지 말고 내 말만 제대로 통역해. ‘물의 정령을 쓰지 않았냐’고.”
에퀼은 그가 나타나기 전에 들었던 ‘정령’이란 말을 롤레스에게도 들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령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롤레스는 에퀼의 질문에 침묵했다.
‘정령이란 게……대체 뭐지?’
의문을 품고 에퀼은 레이크에게 ‘물의 정령을 썼냐’고 묻는 롤레스의 질문을 전했고, 레이크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레이크의 머리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걸 본 롤레스는 활짝 웃었다.
“자, 보셨습니까? 경찰 씨. 저 아이가 수도관을 망가트린 범인입니다.”
롤레스는 가볍게 박수치며 자신이 사건을 해결했다며 웃었지만, 무거운 분위기가 바뀌지 않자 인상을 찡그렸다.
“하아……이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피곤하다니까……모두 믿기 힘든 것 같군요. 어쩔 수 없지……직접 보여드릴 수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모순적인 말을 하면서 롤레스는 열리지 않는 유리병을 붙들고 있는 레이크에게서 병을 뺏고는 에퀼에게 통역해야 할 말을 전했다.
“에퀼. 이 아이에게 ‘친구들을 풀어 줄 테니 이곳에 비를 내리게 하라’고 전해요.”
“네? 그게 무슨 소리죠?”
“다른 말 말고, 통역이나 해!”
롤레스가 억지스러운 통역을 요구하며 화를 내며 노려보자 기세에 눌린 에퀼은 뒤로 물러났다가 레이크에게 카르타 어로 롤레스의 요구를 통역해주었다.
요구를 전해 들은 레이크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하는데, 에퀼의 귀에는 작은 소리였지만 레이크의 말이 들려왔다.
“어쩔 수 없어……친구들을……구해야 하니까……엘, 도와줘.”
엘. 또다시 ‘물의 정령’이라는 ‘엘’이라는 이름을 에퀼은 들을 수 있었다.
혼잣말을 끝낸 레이크는 에퀼의 창문 중에서 가장 큰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 다음에 허공으로 손을 내뻗으며 ‘부탁해, 엘’이라고 중얼거렸다.
짐은 레이크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보면서 팔짱을 꼈고, 에퀼은 레이크가 아까 전부터 말한 엘을 상상해 보고 있을 때 루나는 이 모든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롤레스를 노려보면서 애꿎은 고급 카펫을 잘근잘근 밟고 있었다.
똑!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한 방울의 물이 에퀼의 매끈한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라? 갑자기 물이?’
에퀼은 물방울로 촉촉해진 코를 만지면서 연구실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설마 위층에서 물이라도 새는 걸까 싶어 바라본 천장의 상황에 에퀼은 놀라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자신의 천장은 천장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커먼 구름이 가득 차 있었던 것!
“이건 대체?!”
“하하. 에퀼. 이제 볼만한 쇼가 시작될 겁니다.”
롤레스는 여유롭게 말하면서 순식간에 방 안을 채워나가는 먹구름을 쳐다보며 즐거운 듯 휘파람을 불었다.
*
「정말 방에 비를 내려도 괜찮아?」
건물 밖으로 빠르게 날아가, 하늘에 떠다니는 물들을 모아온 엘은 걱정이 되어 레이크에게 다시금 물었다. 질문을 들은 레이크는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잖아! 친구들을 구해야지! 그러니까 엘! 부탁할게, 힘내!”
「알았어!」
먹구름을 불러온 푸른빛을 보고 레이크는 다급히 붉은 빛을 손으로 감쌌다.
작은 손으로 친구를 감싼 레이크를 본 푸른빛은 강한 빛을 터트리며 자신이 하늘에서 가져온 물을 방 안으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분명 지금 그들은 건물 안에 있건만……눈앞에는 한여름에 찾아오는 장마와 똑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
“아앗! 서류들이!”
에퀼은 자신의 연구실 안에서 내리는 비가 멈추지 않는 것을 보고는 울상을 지으며 다급히 치우기 시작했고, 짐은 잘 꾸민 머리가 물에 젖어 흐트러지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방 안에서 내리는 비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삽시간에 쏟아진 비로 잠긴 방을 보면서 롤레스만이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하하하하, 역시 훌륭해!”
“*** ***!”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어를 외치는 소년을 본 그는 ‘그래요, 약속을 지켜드리죠’라고는 마개를 열어주었다.
“이 천재님을 능가할 천재가 다시 나타나다니! 기대되는걸!”
롤레스는 병에서 풀려난 친구들과의 재회를 기뻐하는 레이크를 보면서 진한 미소를 지었다.
“롤레스 선생님! 이게 대체……!”
“에퀼. 예전에도 말했지만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제 말. 이젠 믿으시겠소?”
롤레스는 껄껄 웃으면서 레이크에게 다가가 아까와는 다르게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이 아이에게 전해요. 제대로 ‘마법’을 배우고 싶다면 나를 찾아오라고.”
그렇게 자신의 할 말을 마친 롤레스는 자신이 가져왔던 병을 들고, 빗물로 범람한 에퀼의 연구실 문을 열고 문 밖으로 휩쓸려가는 서류와 사라졌다.
‘분명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 안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보게 된 사람들’은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참한 사태를 만든 당사자가 사라지자 그 방에 남은 사람들은 허공에 손을 내뻗으며 웃고 있는 어린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미친 것이 아니었다.
떠난 이가 말했듯이, 자신들이 ‘소년의 친구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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