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몽

5. 주지사 유언

외계인들이 쓰던 무기 중 그나마 조금 알려진 것들이 있었다. 그 첫째가 저 ‘쇠파이프’, 둘째가 에너지 보호막이었다. 유주군의 공격이 막히는 것이 그 방패 때문이었다.

그러니 전차 양 옆으로 호위하듯 진군중인 몇 명이 방패 조종간을 지녔을 것이다.

에너지 방패는 조종간에서 우산처럼 펼쳐지는데 조종간은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작고, 누런 에너지 장벽도 빛이 그리 세지 않아서 이런 대낮엔 맨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이상의 논리를 풀어갈 여력이 지금 유비의 머릿속엔 없었다. 그들에게 활을 있는 대로 쏴보고 안 되면 죽을 뿐이었다.

그때 유비의 맞은편에서 무언가가 돌진해왔다.

자전거에 탄 장비였다. 톨게이트 왼편은 유비 소대가 맡고 오른편은 장비 소대가 맡았었다.

“나는 황건교 장군 정원지의 부장 등무다!”

전차 위에 선 남자가 자랑스럽게 외쳤다.

“하늘의 심판이 외계인의 형상을 빌려 도래했으니, 어리석은 인간들은 헛된 저항을 그만두고 순순히 대현량사 장각의 인도를 따르라! 그러지 않으면......”

등무가 자신 앞으로 돌진해오는 자전거에 쇠파이프를 겨누었다. 눈앞에 날아드는 파리 정도의 존재감을 지닌 저것을 끔찍하게 날려버려서 경고를 완성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조준한 순간 자전거가 휙 방향을 틀었다.

다시 조준하려 해도 장비가 훨씬 잽쌌다. 곡예사처럼 교묘하게 방향을 바꾸어 족족 피하더니 방패 쥔 자를 자전거로 들이박았다.

에너지 방패는 탄환과 폭약류를 막는 일에 특화되어 있었다. 자전거처럼 크고 에너지도 낮은 물체를 막으려면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데 황건군의 병사들은 외계인이 아니었다. 떠밀려 주저앉은 순간 등산화 뒤축이 머리를 찍었다.

“이게 방패야?”

냄비뚜껑보다 작은 원반에 다이얼이 달린 그것을 장비가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등무를 향해 맹수처럼 웃었다.

“어디 쏴보시지!”

방패를 앞세우고 전차 위로 뛰어올라 덤벼들었다. 쇠파이프로 하는 공격도 에너지 방패에 막히는 걸 보고 그자가 당황했다.

장비가 방패 든 손을 휘둘러 등무를 그 자리에 때려눕히고 쇠파이프를 빼앗아 들었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남은 황건군 들으란 듯이 그렇게 외치고, 장비가 한 손에 쇠파이프 한 손에 방패를 든 채 살벌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패 쥔 자가 두 명 더 있었으나 장비만 주목하며 어쩔 줄 모르는 사이 등 뒤에서 화살을 맞고 둘 다 고꾸라졌다.

“외계인 방패도 등 뒤까지 막아주진 않나보네?”

유비가 역시 살벌한 얼굴로 다음 화살을 시위에 먹였다. 그리고 팽팽히 당긴 활을 위협적으로 들었다.

“이 날파리들이!”

황건군 안쪽에서 역시 누런 띠 두르고 외계인의 무기를 든 여자가 나타났다. 장비처럼 한 손에 쇠파이프, 한 손에 방패를 쥐고 있었다.

“이 정원지 앞에서도 그렇게 날뛸 수 있는지 보자!”

장비는 주저없이 그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때 공중에서 무언가가 정원지에게 날아들었다.

정원지는 등무에 비하면 날렵한 동작으로 그것을 피했다. 그러나 자신이 피한 봉이 쿵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에 자국을 내는 걸 보고 표정이 굳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관우가 전기자전거로 돌진해왔다. 오는 길 내내 페달을 밟아 충전한 것이 지금을 위해서인 듯 최고 속력으로 달려와, 던졌던 봉을 주워들고 정원지에게 덤벼들었다.

정원지가 관우에게 쇠파이프를 겨누었다. 관우는 피하는 대신 달려들며 봉을 다시 그에게 던졌다.

근거리에서 할 리 없는 동작에 정원지의 태세가 흐트러졌다. 그 틈에 관우는 몸을 살짝 틀어 쇠파이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허리를 꺾으며 쇠파이프를 크게 휘둘렀다. 정원지를 매단 채로.

“자기가 불사신인 줄 아는 세 사람.”

간옹의 매끈한 이마가 벌개져 있었다. 승전의 기쁨으로 흥분한 것 같지는 않았다.

“정신 나갔습니까! 황건군 놈들이 그 잘난 외계인 무기 몇 자루만 믿고 나선 오합지졸이 아니었으면 난 지금 벌집 세 통을 앞에 놓고 있었을 겁니다. 물론 내가 네 번째 벌집이 아닐 경우에 한해서!”

“하지만 오합지졸 맞았잖아.”

대대장이자 큰언니의 책임감으로 유비가 나서서 대꾸했다.

“우리가 오천 명을 다 잡은 것도 아냐. 지휘관 잡고 기선제압 하니까 그 다음은 정규군이 나서서 해결한 거지.”

“기선제압을 왜 어제 참전한 의용군이 해야 하는데요?”

“어쨌든 할 수 있었잖아. 나는 몰라도 관우랑 장비는 정말 자신있게 나설 만한 실력이었어. 간옹이 정원지 날아가는 꼴을 못 봐서 그래. 무술 영화 보는 줄 알았다니까. 막 사람이 하늘 높이 휭.......”

“그러니까 어머님께 그 무용담을 그대로 전해드려도 된다 이거죠?”

“힉!”

유비가 그 자리에 짜부라들었다.

“그런데 그놈들이 오합지졸일 건 충분히 미리 짐작할 수 있는 문제였어.”

관우가 유비보다 약간 더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

“놈들은 원래 외계인이 신의 사도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이비 집단이었지 군사집단이 아니었으니까. 치안이 불안정해진 만큼 각지 경찰은 신경이 곤두섰는데 대놓고 군사훈련 할 수 있었겠어? 게다가 외계인 무기가 좀 SF에나 나올 도깨비 방망이라고는 해도, 원래 모든 무기가 사용법을 제대로 알아야 제 위력이 나오는 거라고. 저런 놈들이 어쩌다 주운 걸 제대로 쓸 수 있을 리 없지.”

“그건 그럭저럭 말이 되지만.”

간옹은 관우에게도 할 말이 있었다.

“합성섬유 봉 안에 철근을 넣고 납을 부어 보강하다니 전직 군인 맞습니까? 전직 범죄자인 건 아니겠지요?”

“외계인 침략 초기에만 해도 납땜질할 전기 정도는 구할 수 있었어.”

관우가 떳떳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그때 자기 몸 지킬 무기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나 말고도 많을 거야. 난 적어도 엄한 사람을 과잉방어로 해치지는 않았어.”

“그야......그렇군요.”

간옹이 안경을 밀어올렸다.

“하지만 제 말 안 끝났습니다. 황건군은 기주와 병주의 정규군 병력도 흡수했지 않습니까?”

“유주에 그들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관우도 할 말이 남아있었다.

“발전소가 있긴 해도 요충지는 아니니까. 기주에도 수력발전소는 있고, 놈들도 수도인 낙양을 우선 점령하고 싶을 텐데 유주는 황건교의 발상지 거록을 기준으로 봤을 때 반대쪽이고. 게다가 그 정규군들은 주지사가 넘어간 것뿐이라, 군대의 충성심은 그리 높지 않을 거거든. 그러니 장각이 가까이 두고 감시하며 자기의 종교적 술수로 압도하려 들겠지. 멀리 보내지 못하리라는 쪽에 걸었어.”

간옹도 반박하지 못했다. 유비와 장비도 감탄한 시선으로 관우를 보았다.

“과연 전직 군인. 발상이 달라.”

“일리는 있군요.”

간옹도 한숨을 내쉬었다.

“세 사람이 황건군 한복판에 뛰어들어 대장들을 때려눕히고 적병들을 위협해 패주시켰다는 말 듣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미안~”

유비가 싹싹 비는 시늉을 했다.

“게다가 등무의 첫 공격으로 정규군은 사상자를 냈단 말입니다.”

그 말에 세 사람 다 움찔 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는데.”

유비가 수업 중에 화장실 다녀오고 싶은 아이처럼 우물쭈물 손을 들었다.

“내 화살에 맞은 사람들, 처음 둘 말고도 몇 명인가 더 쐈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아.”

간옹이 쓴웃음을 지으며 이해한다는 듯 끄덕였다.

“다리에 맞은 한 명은 살아서 잡혔고, 다섯 명은 죽었고 한 명은 중태입니다. 아직 전장 수습이 덜 끝나서 정확한 숫자는 아닙니다.”

유비는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한참 만에야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수술실은 다 찼겠지? 유주군 부상자들로?”

“물론이지요. 화살을 뽑고 상처를 봉합해준 것도 의료진 중에 동정심 많은 의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비는 고개를 숙였다.

“의료진들이 박애정신이나 의료윤리 선서를 몰라서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알아.”

유비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유주는 침략 당시에도 큰 전장이 아니었던 덕에 수술실과 시설은 대부분 멀쩡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걸 가동하고 유지할 전기가 없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뿐이랴, 소독약과 외과용 바늘도 이제는 전처럼 공장에서 뽑아낼 수 없었다. 지금쯤 그 의사는 동료들에게 아깝게 왜 그랬냐는 시선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활을 쏜 건 나야.’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자신이 사람을 다섯이나 죽였다는 사실이 갑자기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섯으로 불어날 것이다. 이런 때에 중태라는 건 조금 미뤄진 죽음일 뿐이었다.

갑자기 어깨에 따뜻한 손이 얹혔다.

“잘 했어, 언니.”

관우가 다정하게 다독였다.

“덕분에 적들이 당해낼 수 없겠다고 금방 다 흩어진 거야. 투항하는 자들도 있었고......”

“그들은 살려주는 거지?”

유비가 퍼뜩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관우도 간옹도 장비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당연하죠.”

“에이, 지금이 무슨 중세시대야? 항복한 사람들 다 목 잘라다 효수하게?”

“응. 그렇지.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

유비가 에헤헤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같이 웃었다.

“유비 의원님 일행 여기 계십니까?”

추정이 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들어왔다.

“지사님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옛.”

유비가 벌떡 일어났다.

잔소리 폭풍에 앞서 씻고 양복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에 당장 지사를 보러 가도 안 될 것은 없었다. 그래도 네 사람 모두 긴장해서 추정을 따라나섰다. 장비마저도 옷자락을 괜히 가다듬고 벽에 붙은 거울을 돌아보았다.

주지사의 사무실은 얼핏 보기엔 이전과 달라진 게 없어보였다. 아직 낮이라 창문을 활짝 열어 햇빛을 들이는 중이고 컴퓨터와 에어컨이 꺼져 있을 뿐이었다.

“부상자 치료와 급식 때문에 주 정부청사도 지금은 정전상태네.”

주지사 유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추정과 유비 일행을 맞이했다. TV나 신문으로 가끔 봤던 반백의 여성이었다.

“술 마시나?”

유언이 들어보인 자그마한 병을 보고 유비와 관우는 고개만 끄덕였다. 장비와 간옹은 얼굴이 환해졌다.

볶은 땅콩과 수제 과자가 차려져 있는 탁자 앞에 다들 앉자 유언이 호박빛 액체를 각자에게 따라주었다.

“외계인이 한창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닐 때는 정말 술 생각이 간절했지. 그렇다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비상사태에 주지사가 취했다가 무슨 사달을 낼지 누가 아나. 그래서 이 사태가 어떻게든 해결되면, 그때는 가진 중에 제일 비싼 술로 축배를 들자고 생각했지.”

결국 외계인은 떠났지만 축배를 들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비 역시 침략기간 동안 비슷한 결심을 했었기에 주지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비도 장비가 제일 아끼는 고급술을 아직 맛보지 못했다.

외계인을 무찌르지 못했어도 외계인을 떠받드는 사이비 종교라도 물리쳤으니 이런 작은 일에라도 축배를 들고 싶었다. 깊은 향이 매혹적인 잔을 주지사가 드는 대로 높이 들었다.

“황건교의 세력이 널리 퍼진 것은 그들의 머릿수 때문만이 아니었어. 외계인의 무기를 정말로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아까운 듯 술을 홀짝이면서도 지사가 심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네들이 용감히 나서준 덕에 이기긴 했지만 요행이 컸어. 장각이 유주에 더 큰 병력을 보내고, 외계 무기도 더 능숙하게 다루는 자들로 보냈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죄송합니다.”

보좌관에게 이미 똑같은 소리로 혼났다고 답하는 대신 순순히 시작부터 백기를 들었다.

“전투는 처음이라 그만 이성을 잃었나봅니다.”

“유주군의 목적은 황건교를 추격해 궤멸시키는 것이 아닐세. 유주가 쉽게 침범할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보여줘서 더 이상의 침략을 막는 것이지.”

“예.”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로 버티는 중이라는군. 아무리 이성을 잃은 광신자들이라지만 총 든 군인들 앞에선 살고 싶은 민간인이 되는 거지. 그 편이 우리에게도 좋고.”

“투항한 황건교도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유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약식재판을 거쳐 징역형에 처할 작정이네. 개전의 여지가 보이면 감형이나 가석방 기회도 다른 범죄자들과 비슷하게 줄 거고. 하지만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를 내란자들의 일원이니 몇 년 내로는 꺼내주지 않아. 최소한 지금의 내란이 끝난 뒤에 논의할 일이야.”

유비는 묵묵히 수긍했다. 그리고 현재의 유주 교도소 실태를 생각했다.

감방은 공공기관 중 가장 먼저 전깃불이 꺼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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