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아이

1. 아이시스 제국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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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아이

1. 아이시스 제국 (6)

‘레이크가 자식이냐’고 묻는 한 마디로 에퀼을 당황하게 만든 사람은 제일 먼저 방을 떠난 롤레스였다!

루나와 똑같이 옷을 갈아입고 온 그는 뜨거운 음료를 홀짝이면서 에퀼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던 것.

“……큰일을 저지르셨으면서 다시 제 앞에 나타나셨군요. 교수님.”

여유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원수를 본 에퀼의 목소리는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롤레스는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지금은 당신에게 볼일은 없어. 다시 돌아온 건 저 아이 때문이거든.”

허겁지겁 고기를 먹고 있는 레이크를 보면서 롤레스는 말했다. 지금 자신은 아이에게 볼일이 있어서 돌아온 것이라고.

*

식사하는 레이크의 주변을 날아다니던 정령들은 롤레스가 다시 나타나자 화들짝 놀라며 소란스러워졌다.

「나 저 사람 싫어!」

「나도요! 저 사람 싫어요! 무서웠어요!」

정령들이 흥분하는 한편, 겁을 먹고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모습에 레이크는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윽! 얘, 얘들아! 가만히 있어 봐! 선생님! 저 사람이 왜 돌아왔어요?”

눈앞에서 산만하게 날아다니는 친구들을 진정시키고 레이크가 묻는 말에 에퀼은 ‘나도 모르겠어, 대답을 들으면 알려줄게’라고 답한 다음 롤레스를 노려보며 물었다.

“레이크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시다고 다시 돌아오신 거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롤레스는 식탁에 종이를 내려놓고는 레이크에게 내밀었다.

“그, 그것은……!”

낯익은 종이가 나타나자 에퀼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내민 종이는 바로 이 학교의 입학 신청서였으니까!

“가……갑자기 입학 신청서라니!?”

“돌아가서 생각해봤는데, 능력이 좋은 저 아이가 나의 제자가 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보기 힘든 재능이 아주 뛰어난 아이니까!”

‘아이를 제자로 키우기로 결심했다’는 그의 말에 레이크에게 했던 행동들을 떠올린 에퀼은 기겁하며 반대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레이크는 집으로 돌아갈 거고요! 또 이곳에 입학하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제일 필요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레이크의 입장을 첫 번째 이유로 말한 다음 ‘부모의 동의 없이 입학은 불가능하다’고 학교의 교칙을 말하는 에퀼의 주장에 롤레스는 입술을 올리며 비웃었다.

“보호자의 동의? 교수님, 이 서류를 자세히 보시죠. 그 서류 말입니다,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는 겁니다.

“네? 뭐라고요?”

‘준비가 되어 있는 서류’라는 말에 에퀼은 롤레스가 가져온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가 가져온 ‘입학 신청서’의 몇 가지의 절차가 ‘교장이 확인하고 동의했다’는 증거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이건 이제까지 학교에서 생긴 적이 없었던 일이에요!”

“그렇다면 이번에 생겼군요.”

시큰둥하게 대답한 롤레스는 자신을 막아서는 에퀼을 쏘아보며 말했다.

“교장의 직인이 찍힌 입학서류는 ‘보호자의 동의가 없어도 입학을 허락한다’는 서류가 아닌가요?”

자신의 근무지이자 제국에서 유명한 학교의 도장이 새겨진 입학서류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어진 에퀼은 안타까운 마음이 커졌다.

레이크는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린아이였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입학을 시킨다니!

“교……교수님. 레이크는 이 학교에 입학하는 것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요.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학교를 강제로 다니게 만들어서,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과 떼어놓겠다니요!”

부모님이 그리워서 울던 레이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던 에퀼이 완고하게 학교 입학을 반대했지만, 롤레스의 의견은 변함이 없었다.

“입 다무시죠. 지금 날 방해한다면, 에퀼 당신도 위험해질 거야.”

“뭐……뭐라고요? 지금 그 말은 협박이신가요!”

롤레스의 경고에 흥분한 에퀼의 목소리가 커지자 그와 의견이 같은 차분한 목소리가 뒤따라왔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 당신이 한 말은 ‘협박’에 가까워 협박죄로 신고될 수 있을 정도인 것은 아십니까? 교수님.”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짐이 에퀼을 편들고 말한 것이었다.

그러자 롤레스는 두 사람을 보고는 비웃음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고……

또 ‘저 아이의 입학’이 ‘저만의 욕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때도 반대하실 겁니까?”

“뭐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죠?”

자신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되묻는 두 사람을 냉기가 서린 푸른 눈으로 노려보면서 롤레스는 한 마디로 두 사람의 목소리를 잘라버렸다.

“저 아이가 제국에 있길 바라는 것이 ‘이 나라의 뜻’이라면,

그때도 반대하실 것인지 묻는 겁니다.”

식당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듣기 힘들 정도의 목소리로 말하면서 그는 봉투 하나를 품에서 꺼내 두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내밀어 보였다. 그가 꺼낸 봉투에는 휘황찬란한 금빛의 문장이 겉에 새겨져 있었는데……그 문장은 바로 ‘제국을 상징’하는 문장인 동시에 왕권을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

“이……이건…….”

두 사람이 말을 잃고 자신이 꺼낸 봉투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롤레스는 약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제 이 일의 ‘중요도’를 아시겠습니까? 잘 들어요. 지금 절 방해……저 아이의 입학을 반대한다면 ‘제국에 대한 반역’도 된다는 말입니다.”

증거물을 내밀면서 한 마디로 반대하는 두 사람의 입을 막은 롤레스는 아직 온기가 남은 잔을 만지며 말했다.

“당신들은 ‘제국의 국민’이니 ‘국가의 뜻’을 따르는 게 신변에 좋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요?”

“아……그……그래도…….”

레이크의 입학에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의 개입’이 있다는 사실에 굳어버린 에퀼이 말문을 잃은 순간, 롤레스는 가볍게 손뼉을 친 다음 자신이 다시 나타난 진짜 이유를 정확하게 밝혔다.

“자, 이제 ‘당신’이 저 애를 학교에 입학시켜요, 에퀼 교수님.
당신이라면 저 아이를 잘 ‘설득’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로……롤레스 교수님……레, 레이크는 갑자기 이곳에 오게 된 아이라고요! 분명히 ‘제국의 문화’가 낯설어서 잘 지내지 못할 거라고요!”

‘이 학교에 입학하도록 권유하라’는 명령을 하는 그에게 쩔쩔매면서 에퀼이 소심하게 반대해 보지만, 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런 문제가 있긴 하군요. 하지만 ‘그 문제의 해결책’이 제국을 전부 통틀어 ‘이 학교밖에’ 없고, 바로 ‘여기’에 있죠. 바로 ‘당신’ 말이야. 에퀼.”

롤레스는 안색이 창백해진 에퀼을 손가락질하면서 ‘저 아이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인재’는 당신밖에 없지 않냐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제국에서 ‘저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당신’이 여기에 있으니, 저 아이에게도 선택지는 이곳밖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렇기에 이제부터 당신은 막중한 일을 맡게 될 겁니다! 아, 발뺌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 아이의 통역이자 생활을 보조해줄 담당자’로 당신을 추천하는 서류를 내가 아까 보냈거든. 아마 ‘황제파’에서 공문을 보낼 거야.”

“그……그런…….”

‘자신의 결정권이 없이 진행된 상황’에 에퀼이 허탈해할 때, 손을 맞잡은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저……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온기가 느낀 에퀼이 고개를 숙이자 손을 잡고서 자신을 걱정하는 착하고 어린 소년이 보였다.

‘아……레이크!’

“얼굴이 어두워졌어요……저 나쁜 사람이 나쁜 말을 했어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는 순수한 소년은 자신보다 어른인 에퀼을 걱정하고 있었다.

에퀼은 이제 레이크에게 ‘제국을 떠나기 힘들다’는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레……레이크…….”

“네!”

“서, 선생님은……괜찮아.”

국가가 이 어린 소년을 원한다고 하는데, 국가의 국민이자 평범한 사람인 자신이 반대할 수 있겠는가.

“……레이크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네! 헤어진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요! 부모님이 무사하신지 걱정도 되고요!”

“그렇구나. 레이크의 부모님은 분명 괜찮으실 거야.”

레이크가 겪은 일을 완전히 모르지만, 분명 헤어진 부모님들은 어른이니 잘 지낼 것이라고 생각한 에퀼은 잘 지낼 것이라고 말하면서 ‘국가의 명령’대로 소년에게 제안하기 위해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레이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는 길을 모른다고 했지? 하늘을 날아서 왔으니까 말이야.”

“……네…….”

부모님과 헤어지게 된 이유를 듣게 된 레이크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슬퍼하면서 에퀼이 조심스럽게 내놓은 제안은……

“어린 레이크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위험하니까, 어른인 우리가 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

“네? 저, 정말요?”

놀라서 눈이 커진 레이크의 얼굴이 울음에서 미소로 바뀌지만, 거짓말이 만들어낸 변화는 에퀼의 마음을 한껏 내리눌렀다.

“그래……다만 레이크의 집은 여기서 너무 멀고, 어딘지 모르기에 어른인 우리도 금방 찾지는 못할 것 같아.”

“그런가요? 몇 번이나 자면 찾을 수 있어요? 언제쯤에 제가 집에 갈 수 있을까요?”

“얼마나 자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그래서 레이크의 집을 우리들이 찾는 동안에는 여기서 지내는 건 어떻겠니?”

“네? 제가 여기서 지낸다고요?”

“그래.”

에퀼은 레이크의 눈물과 콧물을 식탁 위에 있는 냅킨으로 닦아주면서 집과 부모님을 찾는 동안에는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며 이 공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레이크가 온 이곳은 사실 공부를 하는 ‘학교’란다. 레이크. 이 학교 멋지지 않니?”

“와! 학교라니! 이렇게 큰 학교는 처음 봤어요!”

자신이 도착한 넓고 큰 건물이 학교라는 설명에 레이크가 신기해서 눈을 크게 뜨고 눈빛을 빛내자 에퀼은 미약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학교는 분명 레이크가 모르는 수업도 많겠지만, 재밌는 것도 많아. 참고로 이 학교는 잠을 잘 수 있는 방도 생기고 아까 먹은 밥처럼 맛있는 식사도 준단다. 분명한 것은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학교’라는 거야.”

“아…….”

제국에 처음 오기도 했지만, 어린 레이크가 보기에도 ‘학교’라고 착한 사람이 알려준 이 멋진 건물은 좋은 장소 같았다. 자신처럼 어린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왔으니까.

“그……그런데 저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닌데……여기서 지내고 있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과 부모님을 찾아주신다고요?”

“그럼. 우리는 어른이니까 레이크처럼 힘든 아이는 도와줘야지.”

‘미안해……레이크……사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야…….’

진심으로 기뻐하며 눈을 빛내는 레이크의 얼굴을 본 에퀼의 가슴은 미안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레이크가 이 종이에 손바닥 도장을 찍으면, 앞으로 여기서 부모님을 기다리며 지내면서 공부도 할 수 있단다. 바로 집으로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으면 좋은 소식이 올 거야.”

에퀼의 말을 들으면서 레이크는 그린 것처럼 보이는 처음 보는 나라의 글자가 적힌 종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돌아가는 길을 모르고 자신을 데려온 친구도 ‘지쳐있는 상황’이니…….

아무리 봐도 읽을 수 없는 처음 보는 글자와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외국어.

무엇보다 ‘혼자’서 이 나라와……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어린 레이크에게는 모든 것이 겁나고 두려운 순간이었다.

“……저 혼자 잘 지낼 수 있을까요?”

기가 죽은 레이크의 작은 목소리에는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아 에퀼도 덩달아 슬퍼졌다.

“……그야 물론이지, 레이크랑 ‘대화가 되는 내’가 늘 도와줄 거야. 또 여기에 있는 모든 선생님이 레이크를 도와줄 거란다.”

“선생님?……혹시 저 사람도 선생님이에요?”

지금 레이크가 보면서 묻는 사람은 다름 아닌 롤레스였다. 에퀼은 롤레스가 자신처럼 이 학교의 선생님이 맞지만 ‘자신과 수업이 다른 선생님이다’고 레이크에게 설명을 했다.

“분명 이 나라는 레이크의 고향과 달라서 힘들겠지만, 내가 꼭 도와줄 거야. 그건 약속할 수 있어.”

에퀼은 도저히 레이크에게 ‘제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아직 가족이 ‘세상의 전부’인 아이에게 이제 가족을 못 만날 거라고,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너무나도 잔인한 짓이니까.

‘어쩌면……레이크에게 이곳이 나을 수 있어. 여기가 더 환경이 좋고, 멋진 곳이잖아.’

지금 당장에는 부모님이 그립겠지만 환경이 더 좋은 이 나라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지내다 보면 서서히 고향을 잊게 되지 않을까…….

부디 레이크가 제국에서 지내는 동안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에퀼이었다.

*

사실 에퀼이 입학서류를 봤을 때, 레이크의 입학서류는 기존의 입학서류와 다른 항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레이크의 생활 및 신변의 보호을 국가가 전부 맡는다’는 파격적인 항목이었다.

어째서 국가가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레이크에게 걸린 조건 중에서 나빠 보이는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국가의 이름’으로 생겨난 특례인 만큼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레이크의 능력을 다른 나라에서 알게 된다면 큰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렇다면……대우가 좋은 제국에서 지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에퀼은 가만히 종이에 손도장을 찍는 레이크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올 일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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