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죠

퇴색옷장

저택은 감옥같지 않았다. 디오 브란도는 차라리 조난자가 된 기분이었다.

수경 by 수경
  • 죠나단과 디오... 그리고 죠지 1세가 나옵니다. 1부 1화 초반부 시점입니다. 

  • CP 기믹은 딱히 없고, 쓸 때 특정 CP를 전제하고 쓰지 않으니 읽고 싶은 대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증오로 보시면 증오인 거고 로맨스로 보시면 로맨스라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 디오의 대사 중 혐오발언이 약간... 있습니다. 괜찮으신 분들만 봐 주세요.


죠스타 저택은 광막한 곳이었다. 널빤지로 세운 방 한 칸조차 온전하게 허락받지 못했던 그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곳은 영국의 슬럼과는 다른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이 머무는 곳이었고, 낮과 밤이 각기 다른 면모를 보이며 명백히 교차하는 대신 별다른 경계 없이 혼재하는 곳이었다. 디오 브란도는 저택에 도착한 후 꼬박 보름 동안 잠긴 문 뒤 서로 다른 방들의 이름을 외워야만 했다. 그는 겨우 그것만으로도 그의 대부 앞에서 충분히 비상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퇴색옷장 退色衣欌

the oldfashioned closet

디오 브란도는 저택의 안보다는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사용인들과 필요 이상으로 친밀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래, 자신은 위. 그 관계는 디오가 죠스타의 적자가 아니라 피후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꽤 위태롭게 정립되어 있었다. 그들의 한 손에는 한평생 모신 사랑스러운 안주인의 외아들이, 다른 손에는 런던 슬럼에서 온 이름 모를 소년이 있었다. 둘을 차등 없이 대하는 것은 모두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는 대저택을 제 것처럼 자연스레 쏘다닐 수 있었다. 거기에는 명백히 죠지 죠스타의 안배가 작용했다. 디오는 알고 있었다. 그런 안배 없이는 자신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죠나단 죠스타의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가 그 모든 것들을 구태여 재정의하려 들 만큼 갈급하지 않다고 믿었다. 혹은 멍청하지 않은 쪽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디오 브란도는 저택 내부를 흐르는 힘에 순응해야 했다. 그리고 자유를 원할 때는 저택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런 관계들을 깊게 고려하지 않더라도 죠스타 저택은 시간을 보내기에 썩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가 그 저택에 처음 발을 들이고서 얻은 것은 숨 막히는 우울함이었다. 그 공간에서는 은인의 아들을 흔쾌히 떠맡고자 한 남자의 고상함도,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도련님의 천진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택의 샹들리에는 넓은 홀을 전부 밝히기에는 지나치게 어두웠다. 돌로 된 바닥에는 특유의 한기가 있었고,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는 그 흔한 삐걱거리는 판자 하나 없었다. 저택은 지나치게 넓고, 오래되었으며, 대조적으로 깔끔했다. 저택에서 다른 누군가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숨을 죽여 말하지 않아도.

저택은 감옥같지 않았다. 그는 단지 조난자가 된 기분이었다. 디오가 아는 한 런던의 슬럼은 소음들로 가득했다. 그가 애써 본들 도망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대충 올린 가벽 너머 집집마다 나는 소리들은 거리를 걸을 때도, 어렵게 구한 책을 읽을 때도, 심지어 잠들기 직전에도 끊이지 않았다. 그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형편을 숨기지 않았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도, 배고파 우는 아이도, 처지를 비관하는 노파도. 모든 사람들은 알고자 하면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슬럼의 법칙은 그랬다. 소년은 그 곳에서 늘 추적자였지 방랑자가 아니었다.

저택의 소리들은 차라리 방과 방 사이 어딘가로 삼켜져 들어가는 듯했다. 비단 발걸음 소리뿐만 아니라, 면박을 주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죠나단 죠스타가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소리조차 그가 홀로 복도를 걷는 순간 재빠르게 사라졌다. 그 곳의 미지는 디오로 하여금 여지껏 느껴 본 적 없었던 것들을 알게끔 했다. 저택에 오기 직전 몇 년 간 그가 알았던 것들은 기껏해야 분노, 혹은 경멸이 전부였다. 그는 미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아는 감정의 한도 내에서 저택이 가진 기이함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디오는 저택을 멸시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빠르게 매료되어야 했다. 그 곳의 새 주인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미지의 장소를 온전히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런 나날들이 이어질수록 그를 가장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그의 의형제 죠나단 죠스타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는 디오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적어도 디오가 보기에 죠나단 죠스타는 그 집안을 빼면 특출날 것 하나 없는 소년이었다. 거리의 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죠지 죠스타마저도 디오의 탁월함을 저항 없이 인정했다. 디오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그가 죠나단보다 탁월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죠나단은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죠스타 저택을 아무렇지 않게 쏘다니곤 했다. 그는 불시에 사라지고, 또 나타날 수 있었다. 죠나단은 이따금 디오의 눈 앞에서 등을 보이며 사라진 뒤 태연하게 제 뒤의 복도를 가로지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디오는 저택의 모든 문을 열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죠스타 저택의 교양 있는 양자에게 그런 행동은 당연히 금기시되어 있었다. 단순한 예의범절 문제가 아니었다. 저택에는 명백하게 잠긴 문들이 있었다. 그런 점이 디오로 하여금 저택을 더 증오하도록 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죠스타의 재산을, 그리고 그 가솔들을, 마지막으로 죠스타의 성역을 제 발 밑에 무릎 꿇리고 싶었다. 저택의 모든 것 앞에 그것이 있어야 할 위치를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자신은 위, 그들은 아래. 갈증이 조바심으로 표출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자각하기도 전에 램프를 든 채 복도를 걷고 있었다. 혹 빛이 새어나가기라도 할까 봐 담요까지 뒤집어쓴 채였다.

그가 나머지 빈 손에 쥔 것은 런던에서부터 가져온 머리핀이었다. 감상적인 의도는 없었다. 어머니의 유품은 오래 전에 전부 팔아치워야만 했다. 머리핀을 남긴 것은 단순히 그것이 그럴듯한 모조품이었기 때문이다. 금은방 주인은 가보석에 값어치를 매겨 주지 않았고, 그 머리핀은 끝내 누군가의 유품에서 자물쇠 따는 공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디오는 손 안의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복도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런던에서 온 소년은 여전히 누구도 울부짖지 않는 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윽고 고대하던 잠긴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불가해한 것 앞에서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자신이 저택에서 지낸 약 한 달 간 그 문은 열린 적 없었다. 아니, 열릴 수 없었다. 죠지 죠스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저택을 지탱하는 힘의 논리대로라면 문은 오늘 밤에도 잠겨 있고, 그는 철저하게 침입자였어야 한다. 모든 것은 죠스타를 모조리 빼앗고 싸그리 지배하기 위한 밑거름이다. 그가 감히 이 저택의 정당한 계승자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점유하는 방법은 오직 침략자가 되는 것 뿐이다. 그의 잘 짜인 그림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디오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수는 없다. 그는 이미 변명에는 도가 터 있었다. 전부 다리오 브란도의 포악한 심성 탓이다.

디오는 숨을 죽인 채 방 안으로 한 걸음을 옮겼다.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방에는 그 흔한 커튼도 달려 있지 않아서, 바람이 창틀을 흔드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그 방은 다른 방들과는 명백하게 달랐다. 하지만 문을 열었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디오는 애써 조바심을 죽이고 방 여기저기에 등불을 비추었다. 죠지 죠스타는 거기에 없었다. 저택의 하인들도 숨어있지 않았다. 거기에 있는 건 그저 방뿐이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없는, 지독하게 낡은. 누군가 단순히 실수한 게 분명했다. 그에게 들어갈 수 있는 방과, 들어가서는 안 되는 방을 잘못 알려준 것이다. 날이 밝으면 죠지 죠스타에게 이 방에 대해 물으면 된다. 할 수 있는 한 천연덕스럽게. 그러면 그가 자초지종을 확인해 줄 것이고, 감히 디오의 앞에서 부주의했던 사용인은 문책당할 것이다. 그제야 목구멍에 매캐하게 먼지가 걸리는 것 같았다. 이곳은 그저 빈 방이었다. 저택의 미지와는 무관한. 그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그가 밟은 판자가 삐걱거렸다. 죠스타 저택에 온 이래로는 처음 겪은 일이었다. 

겨우 판자 소리 하나를 문제 삼기에 그의 귀는 지나치게 소음에 익숙했다. 디오가 죠스타 저택의 ‘정상적인’ 방에서는 절대 삐걱대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을 때, 문득 그의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 아버지…?” 목소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죠나단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 있는 것은 낡은 옷장 하나뿐이었다. 거슬리는 그의 형제가 아니라.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죄송해요, 저, 저는 그냥…….” 옷장이 불쾌한 소리를 내며 벌컥 열린다. 안에서 나오는 것은 죠나단 죠스타다. 당황한 디오에 못지 않게 그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스친다.

“죠나단.” “……디오?” 그들은 거의 순서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디오는 눈을 굴려 빠르게 옷장 속 내용물을 훑었다. 옷장은 유행 지난 드레스로 가득 차 있다.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누군가는 평생 꿈도 꾸어보지 못했을 고급품임은 그조차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바닥에는 분홍 드레스가 떨어져 있다. 잔뜩 구김이 간 채로. 알 만하군. 디오는 손 안의 머리핀을 꽉 쥔 채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머리핀을 쥔 왼손이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렸지만, 달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그렇다. “시간이 늦었는데 방에 없더군.” 가다듬은 목소리는 부드럽다. 순진한 도련님 앞에서 호의를 가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해서, 찾으러 왔어.” 그리고 죠나단은 그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는 겨우 찾으러 왔다는 말만으로도 명백하게 안도했다. “미안해. 걱정시키고 말았네…….”

“걱정은 무슨.” 디오는 가져 온 담요를 자연스럽게 죠나단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처음부터 너를 위해 준비했다는 듯이. “그런데, 이런 빈 방에서 뭘 하고 있던 거지? 한참 찾았잖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옷장 바닥, 분홍색 드레스를 향해 타오르고 있다. “여긴 우리 어머니 방이야.” “… 돌아가셨다던.” 죠나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디오는 보지 못했다. 그 드레스가 어째서인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건성으로 대답하곤 들고 있던 랜턴으로 드레스를 비추었다. “……디오?” 이윽고 죠나단의 시선도 움직인 빛을 따른다. 그 끝에는 예의 드레스가 있다. 죠나단은 한참이나 말 없이 드레스를 바라보는 디오와, 어머니의 오래된 드레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아.” 긴 침묵 끝에 디오가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가끔 여기에 오는구나. 생각이 복잡할 때.” 그 눈은 어째서인지 다른 대답을 허락하고 있지 않았다. 죠나단은 출처 모를 위화감 끝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잠드는 건 곤란해.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디오는 죠나단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어느새 방 밖을 향했다. “이제 돌아가자.” 그 어떤 문장도 죠나단의 대답을 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오의 눈은 두 사람이 방을 나서 문을 도로 잠그기 직전까지도, 옷장의 낡고 오래된 드레스를 향해 서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죠나단은 그 시선에서 무엇하나 낯익은 것을 읽어낼 수 없었다. 


일가족을 태운 마차가 한적한 교외를 달렸다. 디오가 죠스타 저택에 머문 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된 날이었다. 저택의 생필품은 사용인을 시켜 간단히 조달할 수 있었지만, 사치품은 사용할 사람의 취향을 따르는 것이라 그렇게 구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죠스타 부자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런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들이 언덕 위의 저택에 사는 한은.

이번에 변한 것은 디오의 존재뿐이었다.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상, 죠나단과 모든 경험을 동등하게 제공해야만 한다는 것이 죠스타 경의 방침이었다. 그는 되도록 정중하게 디오에게 동행을 청했다. 디오는 한 번 사양하고, 두 번째에 흔쾌히 승낙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들떠 종알거리는 죠나단과 달리 디오는 턱을 괸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런던에서 온 소년에게 시장 풍경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세 사람 중 오직 죠나단만이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꼭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죠나단은 하루종일 양 손을 대고 차창을 들여다봤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모든 정경이 그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하물며 가장 흔하고 남루한 것들마저도. 그들이 이미 저택에 가진 것조차 그 고택을 벗어나서 보면 새로워지는 것 같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손수건을 샀고, 예리하게 각을 세운 모자를 샀다. 고심 끝에 개가 물고 올 만한 부메랑을 샀고, 돌아다니다 주린 배를 채울 빵도 조금 샀다. 디오는 팔짱만 낀 채 지켜봤다. 정형성이라곤 없는 충동구매였다. 동시에 겨우 동전 몇 푼으로 술을 사야 하는 처지에 놓인 적 없었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죠지는 그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디오는 그 날 어떤 것도 고르지 않았다. 몇 번 더 사양하고 검소한 인상을 남길 셈이었다. 그는 죠나단과 달라야 했다. 감히 죠나단의 자리를 탐낸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되었지만, 죠나단이 함부로 그를 대체할 수 있게 두어서도 안 됐다. 질리면 버리는 장난감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한 번쯤 꿈꿔 본 물건들에 손을 뻗는 대신 죠나단이 그날 산 물건들을 4인승 마차의 빈 좌석에 한아름 쌓아놓는 것을 도왔다. 여차하면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그것을 빼앗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죠나단은 분명 그렇게 많은 것들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마차는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머리를 돌려 교외의 저택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종일 질리도록 본 풍경이 차례차례 창 밖을 거꾸로 흘러갔다. 죠나단은 창에 머리를 댄 채 졸고 있었다. 하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죠지 경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오 또한 올 때처럼 창밖의 정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스름한 금빛으로 물든 들판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그에게 어떤 향수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 마을의 모든 것들이 그랬다. 아름답지만 그립지 않았다. 어쩌면 개중 무엇도 그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소년은 자신의 몫을 원했다. 시시한 장난감 따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움켜쥐고 싶었다.

그리고 마을을 완전히 떠나기 직전 예기치 못한 사고처럼, 불시에 그의 시선을 잡아놓는 것이 있었다. 다 쓰러져가는 포목점 구석의 오래된 드레스였다. 왜 그것이어야만 했는지 디오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드레스는 분홍색이었고, 고택에 있던 것처럼 유행이 지난 디자인이었으며, 그가 알던 또 다른 드레스처럼 오랜 시간 팔리지 않은 채 남루하게 낡아 있었다. 디오는 자각하지 못한 채 상체를 기울여 차창에 가까이 댔다. 마차가 그를 위해 속도를 늦춰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 드레스를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보기 위해 처음으로 뒤를 돌아봐야만 했다. 소년은 허름한 포목점이 작은 점처럼 보일 때까지 그렇게 멈춰 있었다. 


“디오.” 죠나단이 머뭇거리며 그를 부른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디오는 그 날도 아침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뛰쳐나가 거리의 아이들과 어울렸다. 음울한 저택의 빈 방들, 그 중에서도 낡은 옷장이 있는 방에 대한 기억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는 명백하게 저택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할 수 있다면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가 낡은 옷장을 싸그리 불태워버리고 싶었다. 그는 장차 이 저택을 소유할 수 있으나, 죽은 사람은 그럴 수 없는 까닭이다.

그의 대답이 늦어지자 죠나단이 재차 그를 불렀다. “디오, 너한테 주고 싶은 게 있어.” 그의 의아한 낯을 읽었는지, 죠나단은 쭈뼛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 읍내에서 말이야. 다른 사람들 선물은 다 샀는데, 네 건 못 샀잖아……. 네가 뭘 좋아할지 아직 잘 몰라서.” 말 그대로다. 그 날 두 사람이 빈 자리에 한가득 쌓았던 물건들은 전부 죠나단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사 온 물건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손수건은 친절한 하녀에게, 모자는 근면한 집사에게, 부메랑은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개에게. 게다가 죠나단은 모아 둔 용돈으로 남모르게 죠지 경에게 넥타이핀까지 선물했다. 그 날 마지막으로 선물을 받은 죠지 경의 얼굴은 아직도 눈에 선했다. 

“필요없어.” 디오는 매몰차게 말하고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분명 시장에서 본 것 중에 그를 만족시킬 만한 것은 없었다. 죠나단이 그 날 그를 제대로 살폈다면 알았을 것이다. 이제 와 때늦게 선물을 준비했다는 꼴을 보면 그러지 않았던 것 같지만. “네 물건이나 사지 그래.” 디오가 빈정거렸다. 죠나단은 방으로 가는 그를 아예 쫓아오고 있었다. “잠깐이면 되니까, 디오.” 그는 결국 정갈하게 포장된 상자를 디오의 손에 들려 주었다. 종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썩 무겁지는 않았다.

“지금 뭘 하는 거지, 죠나단 죠스타.” “……사실 아직도 전혀 모르겠어. 네가 뭘 좋아하는지.” 그렇게 말하는 죠나단 또한 주저하고 있었기 때문에, 디오는 찰나의 변덕으로 물건을 받아들었다. 죠스타 가문의 외아들이 제 말씨, 손짓, 몸짓 따위 사소한 것들을 살피며 눈치나 보는 꼴이라니!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너한테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디오가 포장을 뜯는 동안 죠나단은 여전히 쭈뼛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포장을 벗기자 드러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분홍색 천이었다. 디오는 직감했다. 자신이 오늘 그것을 처음 보지 않았음을.

“……부끄러운 건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꽤 자주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하고 생각해보곤 하니까…….” “죠나단.” 종이 상자가 리본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디오의 손에 들린 것은 그 드레스였다. 마을 한 켠, 오래된 포목점, 가장 초라한 드레스. 죽은 사람은 영원히 치장할 수 없다. 하물며 그 드레스는 고급품조차 아니었다. 그가 오래 전 내다 판 주인 없는 드레스처럼 남루하고 오래된 것이었다. 디오는 미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느끼는 것을 아는 한도 내에서 표현해야 했다. 모멸.

“죠스타.” 그의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죠나단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무고한 얼굴은 마치 지금 저지른 일이 정말로 좋은 의도였다고 말하는 듯했다. “부잣집 도련님이면 도련님답게, 친구들에게 환심을 사는 데 돈을 쓰는 게 더 가치있지 않겠어?” 디오의 손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간 탓이다. 물론 굳이 그것까지 살피지 않아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 죠스타가 천치가 아니라면 말이지. 그는 치가 떨린다는 듯 계단 밑으로 드레스를 집어던졌다.

“디오, 진정해.” 죠나단은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디오는 한숨을 쉬며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 설마 내게 환심을 사 보려는 건가? 죠스타 가 도련님의 구애라니, 이렇게 영광스러울 데가!” “나, 난 그저…….” 죠나단은 이제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디오는 오래된 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분노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자신보다 소름끼치는 것이 바로 죠스타의 친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이딴 걸 선물하고 싶으면 나가서 촌뜨기 계집애들이랑 어울리는 게 어때.” 죠나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골뜨기들이라면 분명 네가 이깟 누더기를 줘도 경탄하겠지.” 그는 조용히 속삭인다.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어쩌면 널 좋아한다고 말해 줄지도 몰라.” 이 음울한 저택에서 유일하게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 방, 그 곳에서도 이 말을 들을 수 없도록. 그는 계단 아래로 떨어진 옷을 흘겨보고 떠난다. 먼 훗날 그가 이 고택을 모조리 빼앗게 된다면, 단언컨대 그 낡은 옷장을 가장 먼저 불태울 것이다. 

그것은 번제다. 일그러진 디오 브란도의 영혼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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