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낙서

[동런] 패착(1)

누구에게나 이력서 쓰기 싫은 날은 있다

나는 생각했다. 사실 그러면 안 됐다. 왜 안 되냐면. 아,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 없다. 어떤 것부터 얘기해야 할 지 모르겠으니 요점만 말하자면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는 이곳에, 이동혁과 덩그러니 앉아있다. 나는 그게 너무 억울하고 원통했다.

“야. 삐졌냐?”

“말 걸지 마.”

“그러니까 왜 삐지고 그러냐? 남자애가 왜이렇게 쪼잔해?”

“여기서 남자애라는 말이 왜 나와? 남자는 삐지면 안 돼?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그거 선입견이야.”

“선입견? 고정관념 아니고?”

“……. 말을 말자.”

아오. 나도 모르게 이동혁을 한 대 때릴뻔했다. 이동혁은 내 속도 모르고 혼자 킬킬 웃었다. 세상에 뭐 이런 애가 다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진심으로 때렸으면 이동혁은 앞니가 몽땅 나가고 코뼈도 부러졌을 것이다. 그러면 이동혁은 엉엉 울다가 수분 부족으로 죽었을 지도 모른다. 지독하게 더운 7월의 여름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동혁의 목숨을 구한 것이나 다름 없다. 내가 무려 생명의 은인이라는 뜻이다.

“이동혁, 황런쥔.”

“넵!”

“어쭈. 복도에서 벌 서라고 했더니 둘이 놀고 있었어? 아직 더운 게 뭔지 모르는 모양이구만?”

“아, 쌤! 저는 얌전히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손 들고 있었는데 황런쥔이 먼저 시비 걸었어요!”

“야! 선생님, 저 억울해요. 이동혁이 먼저 시비 걸었어요!”

“니네, 둘 다, 똑같네요.”

국어가 정수리에 꿀밤을 맥였다. 스크류바 버금 가는 회전력에 눈물이 핑 돌았다. 미친 인간. 국어는 시간을 더 쓰고 싶지도 않다는 듯 창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너 나한테 말 걸지 마!”

“이이잉. 런쥐나. 삐져또? 삐디디마잉.”

“아, 얘 왜 이래?”

이동혁이 끔찍한 애교를 부리며 내게 달라붙어 아양을 떨었다.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끌어안고 얼굴을 마구 부비적거리다 심지어 볼에 입술을 들이밀길래 질겁을 하며 얼굴을 마구잡이로 밀어냈더니 이번엔 서운하다고 지랄이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아 이마를 짚었다.

드르륵 탁.

그때 머리 위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이동혁과 둘이서 거북이마냥 목을 움츠렸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자 국어가 우리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국어의 별명은 조이코패쓰였다.

“둘 다 나가서 운동장 10바퀴.”

슬픈 예감은 늘 틀리지 않고, 이동혁은 내게 슬픈 예감만 주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나의 예감은 맞았다. 나는 이제 이 모든 일이 나의 생각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니기만을 비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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